[책읽아웃] 언제나 오늘의 작가이고 싶어요 (G. 은희경 소설가)
책읽아웃 - 황정은의 야심한 책 (237회) 『장미의 이름은 장미』
예전에 썼던 것들로 제 모습을 평가 받거나 하는 것보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생각, 지금 하고 있는 일로 저를 봐주셨으면 하는 생각이 있어요. (2022.03.10)
“마마두를 검색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마마두들의 국적과 언어, 그리고 마마두는 마호메트이고 그들의 나라에서는 가장 흔한 이름이라는 것 정도이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 반찬의 이름은 반찬, 마마두의 이름은 마마두.”
안녕하세요, 소설 쓰는 황정은입니다. 오늘은 은희경 작가님의 소설 『장미의 이름은 장미』로 <야심한책>을 열었습니다. 은희경 작가님의 이번 소설들에는 이름이 많이 등장합니다. 민영과 승아와 현주와 수진은 동양인이고 마마두는 흑인이며 유정은 어머니이자 할머니입니다. 동양인, 흑인, 어머니, 할머니라는 이름은 민영, 승아, 현주, 수진, 마마두, 그리고 유정의 개별성과 복잡성을 지워버립니다. 그러나 수많은 마마두의 이름이 마마두인 것처럼 우리 각자는 불가피하게 어떤 집단의 얼굴이자 이름이기도 합니다. 지난 방송과 이번 방송 사이에 2주라는 시간이 흘렀는데요. 그 시간 동안에 지구에서는 또 한 번 전쟁이 시작되었고 그래서 저는 이름을 계속 생각했습니다. 수많은 마마두의 이름이 마마두인 것처럼 저의 이름은 사람이고 제 삶의 이름은 삶인데 나와 마찬가지로 사람이고 삶인 이름들이 전쟁으로 이렇게 난폭하고 아프게 지워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잠을 잘 잘 수가 없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럴 텐데요. 분노든 우울이든 이렇게 힘든 시기에 우리 각자가 사람이라는 이름을 생각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으면 합니다. <황정은의 야심한책> 시작합니다.
오늘 모신 손님은 ‘유효한 질문을 계속하는 작가’이기를 바라는 소설가입니다. 소설집 『장미의 이름은 장미』를 쓰신 은희경 작가님을 모셨습니다.
황정은 : 작가님은 어떤 작가로 소개될 때 가장 기쁘세요?
은희경 : 글쎄요, 그렇게 해줄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의 작가’? (웃음) 오늘의 작가는 너무 했고, 아무튼 당대랄지 지금이랄지... 그런 것들이 좋아요. 왜냐하면 예전에 썼던 것들로 제 모습을 평가 받거나 하는 것보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생각, 지금 하고 있는 일로 저를 봐주셨으면 하는 생각이 좀 있어서요.
황정은 : 『장미의 이름은 장미』, 은희경 작가님의 열다섯 번째 책입니다. 작가의 말에서 “새삼스럽게 서툰 마음”으로 이 소설들을 묶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은희경 : 사실 이번 책만 그런 건 아니긴 해요. 언제부터인가 책을 낼 때 긴장이 돼요. 제가 책을 열다섯 권 냈는데 일고여덟 권 낼 때까지는 별로 그런 걸 몰랐던 것 같아요. 그런 걸 감당할 에너지가 있었다고 할까, 아니면 이 다음을 염려할 만한 처지가 아니었다고 할까, 모르겠어요. 근데 이제는 책을 낼 때 다음에 내가 책을 내게 될까, 어떤 책을 내게 될까, 낼 수 있을까, 이런 생각도 하고. 그리고 이 책이 이전 책에 비해서 뭐가 달라지거나 나아질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도 하게 되고. 자꾸 흐름 속에서 저의 좌표를 읽는 것 같아요.
황정은 : 그 동안의 작업 속에서.
은희경 : 네. 책을 더 활발히 내고 그럴 때는 뭐랄까, 그 에너지가 있었던 것 같아요. 어느 날 멈춰 생각을 해보니까 ‘내가 2년에 한 번은 꼭 냈고 사이사이 1년에 한 번씩 낸 때도 있었구나’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너무 열심히 일했고 주어지면 막 성의껏 하는 어떤... 약간 성실한 거라고 할까요, 그걸로 때우려고 하는 거라고 할까요, 그런 것 때문에 그렇게 해왔는데 그 생각을 하면서부터 행보가 느려지고. 그 생각을 하는 시기랑 제가 약간씩 에너지가 떨어지는 시기랑 겹쳤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때서부터 3년에 한 번, 그래도 여전히 좀 많이 내는 편인데, 그렇게 책을 내고 있는데. 그때부터는 낼 때마다 긴장이 좀 되고 내가 지금 잘 가고 있는 건지 불안하고 그런 마음이 있어요. 그런데 이 책은 특히, 뭐라 그럴까, 제가 갖고 있었던 편견이나 선입견 같은 것이 좀 많이 나와요. 그래서 일단 내가 솔직했나, 이런 것도 걱정되고 이런 게 또 너무 에고가 강한 자의 엄살 같은 게 아닌가, 그렇게 보이지 않을까, 이런 걱정도 있고 그래서 어떻게 읽힐까 좀 긴장했던 것 같아요.
황정은 : 갖고 계셨던 선입견이나 편견이 좀 두렵기도 하셨나 봐요.
은희경 : 네, 왜냐하면 그런 거 별로 없다고 생각하고 살잖아요. 그러면서 그런 걸 많이 갖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 질책을 하고. 그런데 ‘아, 내 안에 이런 게 이렇게 많았구나’ 이런 거를 느낄 때 좀 식은땀이 나면서 ‘내 친구들은 나를 어떻게 견뎠지?’ 이런 생각도 나고...
황정은 : 이번 소설에 타인들이 갖고 있는 선입견이나 편견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그런 이야기들을 쓰다 보면 그냥 자연스러운 과정인 것 같아요. 내가 갖고 있는 선입견이나 편견에 대해서도 발견하고 생각할 기회가 새삼 주어지는 것 같아요.
네 편의 소설이 모두 뉴욕의 배경입니다. 발표한 시기도 보면 2020년, 2021년에 이 소설들을 쓰셨더라고요. 그런데 그 시기가 한국이 방역으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을 때였잖아요. 하필이면 그때 인물들을 뉴욕으로 내보내서 소설을 쓰셨어요.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은희경 : 소설 네 편이 다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그래서 연작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 쓸 생각은 아니었고 첫 번째 소설을 우선 썼어요. 이 책 이전에 장편 소설을 썼는데 5년 정도 그 소설에만 매달렸었거든요. 그 작품이 끝나고 처음 쓴 단편 소설이 이 책에 나오는 첫 번째 소설인데, (작업이) 너무 안 되는 거예요. 또 호들갑스러운 마음에 ‘이제 앞으로 영영 안 되나’ 이런 걱정도 막 들면서, 그럴 때는 그냥 잘 아는 얘기를 좁혀서 써야 된다는 생각이 있잖아요. 그래서 제가 그때, 이 (단편)소설을 마감할 때, 두 달 뒤에 뉴욕을 가야 했어요. 그래서 계속 뉴욕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던 시기라서 ‘그러면 내가 잘 아는 얘기란 어쩌면 그런 얘기일 테니까 뉴욕에 관한 얘기를 좀 좁혀서 써보자’ 하고 쓴 게 이 첫 번째 소설이거든요. 소설을 겨우 겨우 마감을 해놓고 급히 뉴욕에 갔어요.
황정은 : 그러면 2019년 연말쯤이었겠네요.
은희경 : 네, 그때가 팬데믹 시작이었어요. 그런데 그 소설을 쓰고 왔기 때문에, 계속 뉴욕에 대한 생각을 몇 달을 했기 때문에, 소설을 마감해도 안 끝나잖아요. 머릿속에서 교정하고 있고 진행되고 있고 그렇잖아요. 그곳에서 계속 그러다 보니까 ‘뉴욕에 대해서 내가 더 쓸 얘기가 있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럼 몇 편을 더 써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근데 팬데믹 시작돼가지고 그곳(뉴욕)에 간 건 마지막이었죠. 그 뒤부터 쓰기 시작한 게 이렇게 네 편의 연작으로 묶이게 된 거예요.
황정은 : 그때 뉴욕에 얼마나 머무셨어요?
은희경 : 한 달 반쯤 있었나요. 가까운 사람이 뉴욕에 살고 있어서 한 10년 넘게 자주 갔었고요. 특히 이 소설에 담긴 단순 여행자로서가 아니라 뉴욕에 뿌리를 내리려는 사람에 대한 염려라고 할까, 아니면 그 사람 입장에서 또 다르게 보려고 하는 시각에는, 아마 거기 살고 있는 지인에 대한 애정도 많이 반영이 됐을 것 같아요.
황정은 : 네, 그랬을 것 같네요. 그리고 작가님한테는 타인을 겪는 장소라는 면에서도 뉴욕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나 봐요. 첫 번째 단편에 등장하는 민영이 말고는 다른 사람들은 좀 낯선 환경에 있게 되는 사람들인 거잖아요. 이 사람들이 아시안이라거나 동양인이라거나 흑인 혹은 한국인, 할머니 등으로 축약이 되면서 이 사람들이 가진 개별적인 특성이나 혹은 복잡한 삶, 조건, 이런 것들을 무시당하는 사건들을 계속 겪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장미의 이름은 장미”라는 문장에 많은 의미를 숨겨두신 것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 말이 두 번째 단편의 제목인데 책 이름이기도 해요.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은희경 : 이걸 쓴 기간이 팬데믹 기간이었잖아요. 과거를 소재로 하든 미래를 배경으로 하든 글에는 지금 현재의 자기 생각이 반영되니까, 이 소설에도 말씀하신 대로 인종적 편견이나 외부인들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나 이런 것들이 많이 들어갔던 것 같아요. 팬데믹 시기에 제가 많이 그런 걸 느꼈기 때문에 거기로 많이 이야기가 흘러갔던 것 같아요. 어려운 시기에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혐오와 차별이 더 드러나는 것이 굉장히 마음 아팠어요. 그런 뉴스들을 볼 때마다 제가 오래 전에 겪었던 일이라든지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잠재워졌던 분노라든지 이런 것들이 조금 살아나면서 소설 속에 그런 장면들이 조금씩 반영된 것 같아요.
처음 뉴욕 얘기를 쓰려고 했을 때, 딱히 제가 뉴욕에 대해서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이 도시에 대해서 쓰려고 한 게 아니라 그냥 낯선 장소에 갔을 때 사람들에게 환기시키는 여러 가지 감정이나 자기 자신과의 대면 같은 얘기를 쓰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까 제가 원래 생각한 것보다 더 구체적으로 많이 들어갔던 것 같아요. 사실은 어느 도시나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쓰려고 했는데, 그냥 이것은 어떤 배경 그림이라고 생각하고 쓰려고 했는데, 좀 더 많이 들어간 것 같아요. 그게 다 제가 직접 가지 못하고 이 안에서 그 소식에 귀를 기울이면서 써서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사실 이전에 소설을 쓸 때보다 이 소설을 쓸 때 너무 독하게 쓰지 않으려고 애를 썼어요. 왜냐하면 우리 다 힘드니까. 저도 힘들고. 어쨌든 현실은 힘들다고 쓰지만 그래도 좀 따뜻한 장면들을 넣고 싶었어요. “장미의 이름은 장미”라는 게, 두 번째 소설에서 식물원의 이야기가 잠깐 나오잖아요. ‘셰익스피어 정원’이라고, 셰익스피어의 글에 나오는 식물들을 심어놓고 그 앞에 셰익스피어가 쓴 말을 인용해 놓은 식물원이 나오는데, 거기를 갔던 얘기를 하면서 “장미의 이름은 장미”라는 얘기를 이 사람(마마두)이 하는데요. 상대 여자를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서 그 여자가 거기에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장면인데, 그 장면에서 너무 낭만적이지는 않으면서 조금 냉정하면서도 조금 핑크빛인 어떤 그런 걸 그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장미를 내세우는데, 셰익스피어가 ‘딴 이름으로 불러도 장미의 향기가 어디 가지 않는다, 무엇으로 불러도 장미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한 말이 떠올라서 제목으로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은희경 1959년 전북 고창에서 출생했고 전주여고를 거쳐 숙명여대 국문과와 연세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출판사와 잡지사에서 근무하였다.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의 고독과 내면적 상처에 관심을 쏟는 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하여 젊은 작가군의 선두 주자가 되었다. 등단 3년만인 1998년에 『아내의 상자』로 제22회 이상문학상 수상하면서 소설가로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한국문학번역원 비상임이사(제4대, 임기3년), 문화관광부 한국문학예술위원회 문학위원회 상임위원, 미국 워싱턴대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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