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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우X정희원 칼럼] 걷기 : 이동과 운동의 접점에서

전현우 정희원의 거대 도시에서 이동하기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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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활동은 따로 '운동'으로 해야만 하는 거대 도시. 우리가 바라 마지않는, 번쩍이는 거대 도시의 설계는 사람들을 자연스레 가속 노화의 악순환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2023.08.04)


기후 위기 시대, 도시의 이동을 탐구하는 교통, 철학 연구자 전현우와
도시인의 이동성 문제에 관심이 많은 노년내과 의사 정희원의 크로스 에세이.
매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언스플래쉬

섭씨 30도가 넘는 여름밤, 나는 땀을 흘리며 고속터미널역의 계단을 오른다. 이어폰 속의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에서는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간주곡이 연주되고 있다. 다행히도 어딘가에서 날아드는 총알은 없다. 계단을 오를 때 이 곡을 듣게 되면 늘 영화 <대부>가 떠오르는 법이다. 이 간주곡을 처음 들어 기억하는 것은 공교롭게도 영등포역을 지나치며 서울역을 향하는 무궁화호 열차 안에서였다. 1995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상하리만큼 나의 기억에 비디오테이프처럼 명확히 남아 있는 것은 밤 10시경 서울행 무궁화호에서 재생되었던 마스카니의 이 곡이다. 나는 삽화에 대한 기억력이 그다지 좋지 않은 편이지만 유독 어떤 이동과 함께한 음악의 기억들과 당시 장면의 편린들은 이렇게 세세하게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음악을 들으면 그 음악과 연관된 과거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재생되는 식이다. 이렇게, 우리는 꽉 막힌 고속도로에 멈추어 서서 글리에르를 듣던 자동차와 노후되어 역사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는 구형 무궁화호를 뒤로한 철도의 사정들을 거쳐, 바야흐로 이동의 날것인 걷기의 이야기로 넘어왔다.

"걸으면 무릎 상하는 것 아니냐" 이번 주에도 결국 그 이야기를 듣고야 말았다. 나를 마주한 장년의 직장인 남성은 아파트를 한 바퀴 도는 일도 너무 지겹고 힘이 든다고 했다. 400미터를 채 걷지 못하는 것은 노인의학 연구에서는 '이동성 장애(mobility disability)'로 분류하거나 '신체 노쇠'로 분류할 수 있는 일이다. 호흡을 바라보거나, 속보를 하거나, 또는 조깅을 하는 것은 어떻겠냐고 제안하여도 보았다. 이미 무릎이 편치 않은데 말도 마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주변에 달리다가 무릎을 다쳐 더욱 신체 기능이 나빠진 이가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꼭 주변에는 이런 이가 있고, 이들이 만난 의사 선생님들은 꼭 걷지 말 것을 권유한다. 이런 에피소드를 전해 들은 이들은 걷지 않을 이유가 하나 더 생긴다.

'무릎 주위 근육이 취약해서 그렇기도 하거니와 고관절, 발목 관절의 가동 범위가 감소되고 상·하체의 전반적인 균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나쁜 자세로 걷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관절 가동 범위를 개선하고 근육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걷는 양을 늘여가야 합니다. 지금 연배에 이렇게 준비를 하셔야 70, 80대에도 걸으실 수가 있어요. 지금 포기하시면 여생을 여기저기가 아픈 채, 주로 침대에서 보내셔야 합니다. 트레이너 선생님한테 가서 제대로 걸을 수 있게 코어, 둔근, 허벅지와 관절 가동 범위를 봐 달라고 하세요.'

그의 눈빛이 변했다. 운동하실 것 같다.

걸으면 소모품인 무릎이 닳아 없어진다는 생각이 팽배하다. 하지만, 제대로만 걸으면 무릎은 닳기보다는 오히려 강화된다. 장거리 달리기 선수들의 무릎 건강을 추적한 연구들을 보면 관절염 발생은 달리지 않는 이들에 비해 유의한 차이가 없거나 또는 오히려 적다. 노년기가 될 때까지 고강도의 신체 활동을 이어간 전문 운동가들은 80, 90대가 되어도 중년의 일반인과 비교하면 최상위권의 신체 기능을 유지한다.


이동에서 소외된 걷기

전현우 작가는 앞선 화에서 걷기를 도시의 교통 환경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움직여야만 하는 '교통 공학의 걷기'와 즐거움, 휴식을 위해 움직이는 '인문학의 걷기'로 분류했다. 내가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에서 여러 운동 가이드라인들과 유사한 방법으로 신체 활동을 이동으로서의 움직임과 운동으로서의 움직임으로 일단 분류하였던 것과도 매우 흡사하다. 한편, 이러한 분류는 상당히 산업 사회적인 것이기도 하다. 과거, 수렵·채취 시대의 인류는 종족을 보전하기 위한 활동 자체로 운동량이 많았다. 걷거나 뛰는 행위는 기초적인 생산 활동이었다. 연구자들은 평균적으로 하루 10~20km 정도를 걷거나 뛰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식량을 충분히 구하면 배를 채우고 쉬었고, 다시 식량이 필요해지면 아주 긴 거리를 걷거나 뛰어야 했다. 인간은 장거리를 느리게 뛸 수 있는 능력도 매우 뛰어나서, 일단 뛰면서 버티기만 하면 단거리 달리기 능력이 훨씬 뛰어난 사냥감을 추격하거나 맹수의 공격으로부터 달아나는 것도 가능했다. 남아프리카의 !쿵족, 파라과이의 아체족 등 수렵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찰 연구를 바탕으로 추산해 보면 70kg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신체 활동에 의해 소모하는 에너지가 900~1800Kcal에 달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이동과 운동을 분리하지 않았다.

인간은 충분한 에너지를 확보하면 쉬었다. 아마도 인간은 쉬는 것, 편안한 것을 선호하도록 진화적으로 선택되었을 것이다. 냉장고도 없는 수렵·채취 사회에서 쉬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것을 오히려 선호하는 인간은 스스로의 유전자를 보전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이 때문에, 사람은 본능적으로 일상생활에서 더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근육을 사용해서 이동하는 것을 무언가 손해 보는 선택이라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엘리베이터와 철도, 자동차 등 동력을 이용한 탈것과 내연기관이나 전기, 유압 장치 등의 동력을 이용한 기계의 보급은 적어도 백만 년 이상의 오랜 기간 동안 일차적인 이동, 생산, 생존 수단이었던 사람의 근골격계를 자유롭게(?) 해 주었다. 거대 도시가 만들어졌고, 인간의 몸은 일단의 편안함을 얻었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가옥은 달동네의 위치에서 펜트하우스라는 용어로 격상되었고, 지가가 높은 곳은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며 사람들을 끌어모아 더욱더 높은 지가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런 곳에서 걷기는 피해야 할 이동 수단이 된다.

'계단으로는 막혀 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셔야 돼요.' 나 역시도 1차적 수직 이동 수단은 계단이지만, 최근에는 이런 이야기를 안내 직원에게 듣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지난달 강의를 위해 방문했던 경기도청의 경우는 특히 상당한 고통을 경험할 수 있었다. 단 2층만 올라가면 되는데, 외부인은 계단을 사용할 수 없게 되어있었다. 엘리베이터 앞에 운집한 군중 뒤에서 20분여를 기다린 결과, 간신히 그 2층을 오를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냉방이 제공되며 장식물이 화려한 빌딩의 중심부에 존재하지만, 계단은 어둡고 칙칙한 뒷 공간에 존재한다. 항공기를 타면 기본 음료로(설탕이 가득하여 질병 발생과 조기 사망 발생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콜라 또는 주스를 제안하는 것처럼, 현대의 거대 건물은 기본값으로 몸이 편안한 이동 수단을 제안한다.

평균적인 현대인은 신체 활동으로 사용하는 열량이 하루 250~300Kcal 정도이다. 질병관리청의 만성 질환 건강 통계에 따르면, 최근 1주일 동안 1회 10분 이상, 1일 30분 이상 걷기를 주 5일 이상 실천한 사람은 조사 대상 인구에서 2020년 기준 37.4%로, 2008년의 50.6%에 비해 하락했다. 서울특별시의 조사에 따르면 2011년 서울 시민이 하루 평균 걷는 시간은 66분으로 걷는 거리는 4.5km 정도로 추정했다. 역시 200Kcal 정도로 볼 수 있다. 전현우 작가가 언급한 것처럼, '3보 탑승'에 맞춰진 몸은 이동에 근육을 쓰지 않도록 적응된다. 이런 삶을 성인기 내내 지속하다 보면, 50, 60대에 이미 이동성을 좌우하는 근골격계 시스템은 노년기 '근감소증'에 필적할 만큼 상태가 좋지 않게 된다. 급기야 걸어 보려니 무릎이 아픈 상황이 된다. 걸을 힘도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겉보기엔 멀쩡하지만, 속은 아파트 한 바퀴를 걷기도 부담스러운 몸.


걷기 운동

그렇게, 이동이 결핍된 근육을 아주 산업 사회적인 방법으로 만회하는 방법이 '걷기 운동'이다.

"평소 무슨 운동을 하세요?"

"걷기 운동이요."

가장 많이 듣는 대답이다. 걷기가 따로 해야 하는 운동이 되어버린 세상이다. 늘 피트니스 센터에서 가장 인기 있는 운동 기구는 트레드밀이지 않던가. 평소 걷기를 최소화하려 안간힘을 쓰고 수직 이동은 엘리베이터에 의존하다가, 트레드밀에서 TV나 스마트폰을 보며 걷는다. 그렇게 부족한 신체 활동을 털어버리면 어쨌든 운동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하는 최소한의 신체 활동량은 맞출 수 있다는 속죄의 기대. 장년기에 접어들며 몸에 여기저기 고장을 느끼며 이렇게 시작한 걷기는 하지만 관절의 불편함을 또 만들어낸다. 지난 수십 년간의 편안함으로 몸이 굳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걸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걷기를 운동으로조차 하지 않는 이들이 과반이니까. 하지만 걷기만으로 운동을 마치려는 전략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이동과 운동을 합쳐, 일상 속에서 움직임을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 기본이다. 사실, 운동으로서는 100세까지 걸을 수 있는 몸을 만들기 위한 근력, 관절 가동 범위, 균형과 협응을 개선하기 위한 다면적인 노력을 챙겨주는 것이 좋다. 똑같은 분량의 걷기나 달리기라도, 몸의 기본기가 충분히 갖춰진 상태에서라면 선순환을 만들고, 기본기가 없는 상태에서라면 근골격계 질환과 통증, 외상을 낳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걷기 운동'이라는 대답을 듣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하루 종일 움직이지 않다가 '걷기 운동'에 30분을 내는 것은, 마치 하루 종일 콜라만 마시다가 저녁에 시간을 따로 내서 한 끼 정도는 밥을 먹는 것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것과 비슷하니까. 

'걷기 운동'이라는 단어를 싫어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걷기는 어찌 보면 1/3쯤은 신체 활동, 2/3쯤은 정신 활동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걷는 과정에서 내 몸의 긴장을 바라보고, 바른 자세를 만들며 호흡에 집중하는 것은 아주 질 좋은 마음챙김 과정이 된다. 이런 신체 활동을 지속하면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몸에서 떨어지고, 우울, 불안, 수면 장애가 개선되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신체 활동의 정도가 많은 사람은 노화 속도가 느리고 치매 발병 가능성도 동년배에 비해 더 낮다. 몸의 움직임은 뇌세포의 성장을 촉진하는 여러 물질들의 분비를 유발하기도 한다.



애나벨 스트리츠는 그의 책 『걷는 존재』에서 이렇게 몸과 마음의 감각을 깨우며 걸을 수 있는 무수한 방법들을 제시한다. 어쩌면, 걷기를 단순한 운동 행위로 환원해 버린 탓에, 많은 이들이 그저 다리만 움직이며 상체는 구부린 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긴 시간의 스마트폰 사용은 연구들에서 우울, 불안, 수면 장애의 악화, 나쁜 자세와 연관되어 있음을 보인다. 그래서 걷기가 가지는 이점을 오롯이 누리기 위해서는 '운동'이라는 딱지를 떼어놓는 것이 좋다.


결론

어쩌면, 문제의 근원은 굳이 우리 몸의 움직임을 분류하고 이중 잣대를 적용하는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이동 수단으로서의 걷기는 최대한 줄여내야만 이익인 것처럼 느끼지만, 운동으로서의 걷기는 내세울 만한 자랑거리가 되는 생각.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전현우 작가의 이야기를 곱씹을 필요가 있다. '교통 공학의 걷기'는 '인문학의 걷기'와 합쳐질 수 있지만, 거대 도시의 설계는 해가 갈수록 그 속에서 사람이 다리로 이동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 간다. 앞으로 서울에는 더 높은 아파트들이 들어선다고 한다. 화려한 고층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이들은 '거함거포형' SUV로 직행할 것이다. 아마도 근육은 부족하고, 지방은 과잉인 몸을 가진 채로. 실제로 미국의 사고 데이터를 분석한 대규모 관찰 연구에서 더 높은 체질량 지수를 가진 사람들은 소형 승용차보다는 큰 SUV를 탈 가능성이 높음을 제시했다. 신체 활동은 따로 '운동'으로 해야만 하는 거대 도시. 우리가 바라 마지않는, 번쩍이는 거대 도시의 설계는 사람들을 자연스레 가속 노화의 악순환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
정희원 저
더퀘스트
걷는 존재
걷는 존재
애나벨 스트리츠 저 | 이유림 역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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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희원(노년내과 의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으며,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전문의를 취득했다. 현재는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 의과대학 시절, 호른을 연습하던 중 근육 유지의 중요성을 깨닫고 근감소증에 관심 갖기 시작했다. 이후 내과 실습을 돌며 노인의학에 완전히 매료되었으며, 내과 전공의 시절 노쇠에 대해 연구하다가 공부에 대한 갈증이 생겨 의과학대학원에 들어가 이학박사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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