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대중문화 > 김윤하의 전설이 될 거야
케이팝의 근간을 흔들다 : 뉴진스 'Get Up'
K팝의 또 다른 대안
반복적인 음악 스타일 특성상, 다른 멤버들이 같은 부분을 주고받듯 부르는 파트에 특히 귀 기울여 보면, 누가 누군지 단번에 눈치챌 수 있는 파워퍼프걸 뉴진스 캐릭터처럼 금세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개성과 재능과 매력이 뚜렷한 멤버들이 모였다는 뜻일 것이다. (2023.08.02)
지난 1년, 자신만의 마이크와 펜을 가지고 있는 사람 가운데 뉴진스에 한 마디 보태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케이팝이나 대중음악을 이야기하는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비주얼, 패션, 마케팅, 문화 현상, 트렌드 등 분야를 막론한 붐이었다. 악플보다 무플이 나쁘다는 말이 상식처럼 떠도는 세상에서 이는 어마어마한 가치이자 권력이 되었다. 새 EP <Get Up> 발매 후 역시나 화려하게 쏟아지는 다양한 각도의 시각을 가만히 바라봤다. 뭐 하나 걸리지 않고 술술 넘어가는 이 한없이 부드러운 콘텐츠의 어디가 사람들을 그렇게 소란스럽게 만드는 걸까. 그때 한 단어가 느슨히 떠올랐다. 안티-케이팝(Anti-K-pop). 뉴진스가 다른 건, 뉴진스가 그가 속한 케이팝의 정수와 정서에 반(反)하기 때문이었다. 그제야 부족한 데 없이 말끔히 떨어지는 콘텐츠 구석구석 붙은 안티 딱지가 보였다.
겉만 보자면 뉴진스는 굳이 설명을 보탤 필요도 없는 케이팝 그 자체다. 동일 성별의 다수 멤버, 10대 중후반 나이로 구성된 다재다능한 멤버들의 면면에 음악과 춤의 적절한 조화, 새 음악 발매와 함께 도는 음악 방송 출연과 차례로 공개되는 자체 제작 콘텐츠, 라이브 방송이나 일 대 다수 메시지 교환을 통한 팬과의 적극적인 소통, 각자 이미지에 맞춘 명품 앰버서더 활동까지... 2020년대 케이팝 아이돌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해도 좋을 정도다.
결국 다른 건 그를 이루는 속이다. 그리고 그 다른 속은 케이팝을 알면 알수록 더 선명한 차이가 보인다. 대표적인 건 알고 보면 케이팝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의 활용 방식이다. 음악, 퍼포먼스, 프로듀싱, 팬덤 등 케이팝 콘텐츠를 분석하는 길은 수십, 수백 갈래다. 그러나 그렇게 나날이 다채로워지고 있는 케이팝에서 절대 변하지 않는 하나의 중심이 있었으니, 바로 '사람'이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케이팝은 사람에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났다. 잘 만든 기획이란 그룹을 이루는 멤버들의 특성을 잘 살린 것이었고, 그를 한계 없이 증폭시키는 역할 역시 사람이 가진 무한한 잠재력이었다. 정교한 세계관과 완성도 높은 퍼포먼스에 이끌려 케이팝 관심을 가진 이도 끝내 사랑하게 되는 건 '최애'와 그룹과 그들 사이의 시너지였고, 그로 인해 충성도 높은, 때로는 '가족'으로까지 불리는 그들만의 새로운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슬프게도 그 영원할 것 같던 믿음을 깨게 만드는 것도 사람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덕분에 케이팝의 가장 큰 무기이자 리스크는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사람'이었다. 가상 인간이나 AI를 케이팝 산업 내부로 끌어들이고자 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진 이유 가운데, 그 근원적 불안과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한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는 누구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뉴진스가 살짝 핸들을 튼 건 이 지점이다. '뉴진스'라는 그룹의 역학은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케이팝을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지겹도록 관찰해 온 제작자에 의해 순도 높게 완성된 어떤 이상향이다. 뉴진스의 세계는 음악과 비주얼 모두 시대와 세대를 초월해 누구나 한 번쯤 매료되었던 젊은 날의 푸르고 시린 감각을 기반으로 꼼꼼하게 채워져 있다. 그 강고한 세계관 아닌 세계관 위에서 멤버들은 물론 어떤 캐릭터, 어떤 신매체, 어떤 브랜드도 제약 없이 뛰어놀 수 있다. 정말이지 아무런 제약이 없다. 노래는 자고로 3분은 돼야 한다는, 후렴구에서 메인 보컬이 한 번쯤 질러줘야 한다는, 무엇도 멤버에 앞서서는 안 된다는, 코어 팬덤이 대중 인지도까지 견인한다는 거의 모든 케이팝 상식이 해체된 곳에서 뉴진스의 음악과 영상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날개를 뻗어 나간다. 살짝 방향을 튼 핸들이, 이렇게나 먼 곳에 닿았다.
고무적인 건 그렇다고 해서 멤버들이 소모되지만은 않는다는 점이다. 뉴진스는 사람에 온 체중을 싣지 않았을 뿐, 사람을 지우지는 않는 콘텐츠다. <Get Up>만 들어봐도 알 수 있다. 총 6곡, 12분짜리 앨범은 거의 한 곡으로 느껴질 정도로 일관되게 노래와 보컬 매무새를 다듬는다. 그리고 그 안에서 멤버들은 놀라울 정도로 자신의 색깔을 뚜렷이 드러낸다. 반복적인 음악 스타일 특성상, 다른 멤버들이 같은 부분을 주고받듯 부르는 파트에 특히 귀 기울여 보면, 누가 누군지 단번에 눈치챌 수 있는 파워퍼프걸 뉴진스 캐릭터처럼 금세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개성과 재능과 매력이 뚜렷한 멤버들이 모였다는 뜻일 것이다. 앨범을 몇 번이고 반복해 들으며 문득 뉴진스 데뷔 전 레이블 대표 민희진이 언급했던 '정반합(正反合)론'을 떠올렸다. 이 모든 반(反, Anti)이 케이팝의 또 다른 대안(alternative)이 될 수 있을까. 뉴진스가 거칠게 흔든 뿌리의 다음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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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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