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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재의 사랑하는 시] 작고도 고요한 기록의 힘
고명재의 사랑하는 시 2편
우리의 삶은 '돌멩이'처럼 무용하고도, 무가치하며, 파고들면 해답도 없다. 그러나 어떤 '실감'으로 우리는 존재했다. 그래서 자꾸 돌을 두고 오는 건 아닐까. (2023.07.27)
고명재 시인이 매달 마음 깊이 사랑하는 시를 전합니다. 시인의 사려 깊은 시선을 통해, 환한 사랑의 세계를 만나 보세요. |
아주 아름다운 소설에서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있다. 한 여자가 허망하게 변기에 빠져죽는다. 그녀는 연못가에 만들어 둔 화장실에서 발을 헛디뎌 머리부터 떨어져 죽는다. 목격자도 커다란 소음도 없다. 그녀의 죽음은 이렇게나 고요하다.
살이 노랗고 살갗이 반들거리는, 비늘이 없고 기억력이 없는 메기들이 그녀를 둘러쌌다.
_킴 투이, 『루』, 문학과 지성사 중에서
사람이 죽었는데 소란이나 소음이 없다. 이런 냉담한 서술은 실재하는 현실과 같다. 전쟁기의 베트남. 그 시기에는 '여인들이 베트남을 짊어지고 있었다.' 전쟁으로 찢겨 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찢겨 나갈 자식과 아비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쪽이 더 힘들고 가슴 아플지 나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다만 그랬던 여인 중 하나가 이런 식으로 분뇨 구덩이에 빠져서 조용히 죽었다. 그리고 우리는 질문한다. 소설은 왜 이런 죽음을 기록하는가.
가끔 문학이나 시에 관해 냉소적으로 '그게 도대체 무얼 할 수 있느냐'라고 묻는 분들이 있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머릿속으로 『루』 같은 소설을 떠올린다. 문학이요? 문학은 해낼 수 있죠. 곧장 무언가를 보여주거나 만들 순 없지만, 적어도 문학은 '기억'을 해낼 수 있어요. '작고도 고요한 기록의 힘'을 보여줄 수 있어요.
아주 흔하고 별것 아닌 하나의 생명. 가차 없이 소멸될 개인의 삶. 역사서엔 한 줄 쓰일 가치가 없는 것.
'고광희, 1953년 4월 출생.'
'너희 할머니는 백설기를 좋아했단다.'
'2009년 3월, 처음 시 수업을 들은 날.'
'처음 키운 강아지의 이름은 보리.'
이런 것들은 역사적으로 전혀 중요하지 않지만, 우리에겐 궁극적인 의미를 준다.
소중한 존재는 그 자체가 궁극이지만, 중요한 존재는 궁극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이다."
_김소연, 『마음사전』, 마음산책 중에서
돈이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녔지만, 소중한 것은 결코 될 수 없듯이, 소중한 건 그 자체가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이 말이 옳다면 적어도 문학은, '중요'하진 않아도 '소중'한 것을 지켜낼 힘이 있다.
그녀가 죽은 뒤 나는 일요일마다 하노이 교외에 연꽃이 피는 연못에 갔다. 그곳에 가면 나이 든 여자 두세 명이 둥근 바구니 배로 장대 노를 저어 물 위를 옮겨 다니면서 벌어진 연꽃 봉우리 안에 찻잎을 넣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그녀들은 이튿날 연꽃잎이 시들기 전에 다시 가서 밤새 꽃술의 향기를 빨아들인 찻잎을 하나하나 걷어 왔다. 그녀들이 들려준 말에 따르면, 며칠 밖에 살지 못하는 연꽃의 영혼이 그렇게 찻잎 속에 보존될 수 있다. _킴 투이, 『루』, 중에서
나는 박물관에서도 미술관에서도 이토록 아름답게, 존재를 보존하는 방법을 본 적이 없다. 이런 차를 마시면 어떤 향이 날까. 찻물에서 연꽃 향기가 슬쩍 스칠까. 소멸될 대상을 향기로 지켜내는 것. 저물어 갈 것을 찻잎에 옮겨오는 것. 이는 다향(茶香)을 입히는 방법에 관한 서술이지만, '그녀가 죽은 뒤'에 쓰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한 여자가 허망하게 사라졌다. 끔찍한 삶을 견뎌내고도 발을 헛디뎌, 어이없게도 세상을 떠나야 했다. 그러나 소설은 기어코 이를 기록해낸다. 소설가는 그것을 해내려 한다. 그러니까 어쩌면 문학이란 건, 연약한 존재를 '아름답게 지키는 보존법'이 아닐까. 모든 '개인의 삶'은 허망하게 사라지지만, '영혼이 그렇게 찻잎 속에 보존될 수 있다'고 믿는 것. 그 세부들, 미세한 것, 참새만 한 것, 그 안에 어쩌면 삶의 빛이 있다고.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는 이제껏
언제가 제일 행복했어?
열네 살의 어느 날
나는 문득 물었다
할머니가 참말로 쓸쓸해 보이던 날
지나온 세월을 이리저리 더듬으며
천천히 생각하실 줄 알았는데
할머니는 의외로 단번에 대답하셨다
"아이들을 화로에 둘러앉혀놓고
떡을 구워줬을 때"
눈보라치는 저녁
눈의 마녀가 나타날 것 같던 밤
어스름한 램프 밑에 대여섯 명
화로 앞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었다
아이들 사이에 우리 엄마도 있었으리라
아주 오랫동안 준비해온 것처럼
물어봐주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너무도 구체적이고
빠른 대답에 놀랐다
그날 이후 오십 년
사람들은 모두
감쪽같이 사라지고
_이바라기 노리코, 「답」 중에서 (『처음 가는 마을』, 봄날의 책, 2019)
삶이 뭐예요. 문학이 뭐예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어떤 거대하고 거창한 질문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이 시에서 말하는 '답'을 떠올리고는 한다.
아이들을 화로에 둘러앉혀놓고
떡을 구워줬을 때
그 순간이 인생의 궁극적인 한때가 된다고. 게다가 이 답이 '즉답'이라는 점은 더 눈부시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바로 말해줄 수 있는 것. 그러니까 '답'은 언제나 도처에 있다. 민들레를 호~ 하고 불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강변을 걷거나 시를 읽거나 손을 잡거나 미역국을 넘길 때 그 모든 순간이 우리의 빛이 될 수 있다고. 이건 역사나 과학이 결코 기록하지 않는 것. 너무 흔해 가치가 없다고 믿어버린 것. 그러나 유한한 우리가 놀랍게 빚어내는 춤. 모든 장면이 매번의 답이 되기도 한다고. 늙은 할머니는 그런 답을 들려준다. 더 감동적인 건, 이 시를 쓸 때 이바라기 노리코는 이 시 속의 할머니보다도 훨씬 더 나이가 많이 들었다는 것. 답을 받고 답을 쥐고 답을 넘어서 할머니가 된 시인은 답을 시로 쓰고.
무덤의 편평한 석판 위에는 여러 가지 작은 물체들이 놓여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작은 돌멩이들이다. (중략) 돌멩이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 곁에 가만히 놓아두는 조개껍데기, 도자기 파편, 유리구슬, 심지어 콘크리트나 벽돌 조각 등은 아마도 선물의 가장 본질적인 원형이 아닐까. 무가치한, 따라서 쓸모도 없고 맞바꿀 수도 없는, 내가 가졌던 것도 아니고 받는 이가 원하지도 않을, 버리듯 주고 준 뒤에는 잊을, 순수한 줌의 상징.
_윤경희, 「묘지 박물학」, 『분더카머』, 문학과 지성사
유럽의 상당수의 도심 속에는 묘지가 있다. 삶 속에 죽음이 나란히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묘지를 여행하던 한 작가는 공통적으로 '돌멩이'가 놓여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들은 왜 고인의 묘지에 '돌'을 놓았을까. 왜 무의미해 보이는 물질을 두고 갔을까. 그것은 순수하게 무언가를 주고픈 마음의 상징. 소유권을 생각지 않는 아름다운 증여. 여기서 나는 이런 생각도 덧붙여본다. 우리의 삶은 '돌멩이'처럼 무용하고도, 무가치하며, 파고들면 해답도 없다. 그러나 어떤 '실감'으로 우리는 존재했다. 그래서 자꾸 돌을 두고 오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면 당신이 늘 곁에 있었어. 그 놀라운 실감. 돌을 놓는 무게감. 남겨진 이들은 그걸 쥐고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그 하찮지만 소중한 무게를, 오래도록 기억하며 살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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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첫 시집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과 첫 산문집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