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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검사 J의 무탈한 나날] 물끄러미와 넌지시 사이에서 - 마지막 화
시골검사 J의 무탈한 나날 10화(마지막 화)
건네줄 위로가 마땅치 않은 빈 주머니 속을 뒤적거리는 날들이 많았다. 그러나 나는 거기 있었다.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나는 여전히 물결 일렁이는 봄논의 가장자리, 그 어디쯤에 서 있다. (2023.07.26)
격주 수요일, <채널예스>에서 대한민국 검찰청의 귀퉁이에서 이끼처럼 자생하던 18년차 검사 정명원이 지방 소도시에서 일하며 만난 세상 사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
검사가 되어 처음 발령받은 곳은 이전에는 가본 적 없는 낯선 지방이었다.
막 부흥이 시작된 도심과 조금만 차를 달려 나가면 너르게 펼쳐지던 들녘은 생경하고도 아름다웠다. 오래된 검찰청 건물은 낡았지만 단단해 보였다. 이런 곳에서 검사로 일하게 되다니... 검사로 일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던 때였지만 출근을 위해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가슴 한쪽이 벅차올랐다.
그러나 사무실에 도착해 컴퓨터를 켜고 캐비닛을 여는 순간부터 나는 그저 해본 적 없는 전쟁에 투입된 초보 병사일 뿐이었다. 총탄이 어디서 날아오는지 그럴 땐 어디로 피하거나 싸워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우왕좌왕하다 보면 하루가 갔다. 검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분명 어금니 꽉 깨물고 두 주먹 불끈 쥐었으나 매일의 퇴근길에서 나는 입을 반쯤 벌린 채 멍한 표정이 되곤 했다. 사건은 양적 질적 면에서 나의 상상을 압도했다.
여기저기 총상을 입고 너덜너덜해진 영혼을 겨우 챙겨 퇴근하던 어느 날 저녁에, 그 지역에서 활동한다는 시인의 시집을 한 권 샀다. 아직 눈과 머리가 법률 문장에 갇히기 전, 시를 읽을 수 있던 시절이었다. 그 지역의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이정록 시인의 시집에서 「물끄러미에 대하여」라는 시를 발견했다. 시인이 그려낸 모내기를 마친 무논의 풍경은 처음 와본 그 지역의 들판만큼이나 생경한 것이어서 아주 오래 찬찬히 들여다봐야 했다. 그리고 어느 날은 그 시를 프린트해 나의 검사실 책상 귀퉁이에 붙여두었다.
미꾸라지 같은 것을 잡으려다가 어린 벼 포기를 짓밟고 벌 받듯 서 있는 왜가리와 진창에 처박힌 어린 모의 안간힘으로 몸살을 앓는 봄 논의 물결이 시 안에 그려졌다. 어쩐지 검사가 되어 내가 마주할 세상 역시 그러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막연히 생각했다. 검사가 무엇인지,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도통 모르는 것투성이였지만, 그런 것이라며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창에 처박힌 존재의 안간힘과 함께 기꺼이 일렁이는 자가 되고 싶었다. 호기로운 시절이었다.
사건을 아무리 처리해도 사람들의 아픔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 일을 하는 동안 나를 따라다니는 본질적인 회의였다. 이미 일어나버린 범죄가 있는 이상 범인을 밝히고 그를 처벌한다고 해서 과거의 시간 자체가 회복되지는 않는다. 범죄로 인하여 피해를 입은 사람도 혹은 범죄를 저질러 벌을 받게 된 사람도 모두 아팠다. 죄를 지어 마땅히 감옥에 가는 사람에게 조차도 그의 부재를 아파하는 가족과 그의 남은 생이 있었다. 사건을 잘 처리했다는 나의 성취 너머로 언제나 슬픈 얼굴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일을 잘하려고 할수록 그들의 슬픈 얼굴을 자주 많이 보아야 했다. 그리고 아주 많은 순간 무엇이 마땅한지 그 경계가 흐릿했다. 본질적으로는 아무도 구원할 수 없는 싸움을 진탕 속에서 벌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그만 떠나고 싶었다. 사회적으로 분명 가치 있는 일이겠지만, 이걸 내가 꼭 해야 할까... 나도 보다 명확하게 행복한 세상으로 가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떠나지 않고 여기에 있다.('떠나지 못하고'라고 썼다가 '떠나지 않고'라고 고쳐 쓴다) 무너질 듯 위태롭게 기록이 쌓여 있는 검사실 책상 귀퉁이에 시를 붙여두고 한 번씩 물끄러미 들여다보던 날로부터 많은 시간을 지나왔다. 18년쯤, 출근을 하고 사건들을 마주하고 가끔 뿌듯해하거나 간혹 후회하며, 어쨌든 검사로, 직장인으로 살아왔다. 범죄로 구성되는 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지만, 세상과 삶이라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도 아련한 것들로 이루어진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입증되는 세계와 동등하게 입증되지 않는 세계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본질적으로는 아픔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는 채로 슬픈 얼굴을 마주하는 일들에 제법 익숙해졌다. 결국 그 무엇도 타인의 고통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으며 각자는 각자가 감당해야 할 몫의 아픔이 있다는 정도로 나의 세상에 대한 관점은 정리되었다. 그 옆에서 다만 슬픈 얼굴들을 마주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 정도가 세상의 물결 속에 기꺼이 발을 담그고 살아가기를 꿈꿨던 인간이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니겠는가 하고... 굳은살이 좀 생긴 마음으로 수긍해 보는 것이다.
올해 초 상주지청장으로 발령을 받고 처음 와서 본 상주의 들판은 막 긴 겨울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논바닥 깊숙이 얼었던 땅이 풀리느라 아지랑이가 하얗게 피어올랐다. 그것은 18년 전 2월의 어느 날 검사로 첫 발령을 받아 간 지역의 풍경과 비슷했다. 이제 곧 한해의 농사를 시작하기 위해 논마다 물을 담을 것이었다. 갈라진 흙바닥마다 가득 물이 들어 찰 장엄한 장면을 상상하면서 실로 오랜만에 초임 검사의 책상 귀퉁이에 붙어 있던 시를 떠올렸다. 물끄러미 세상을 바라보며, 넌지시 위로를 건네는 그런 일들은 지금도 가능한 것일까.
논에 들어찬 물로 땅이 다 풀리고, 농부들이 모내기를 시작할 즈음에 다시 논 구경을 가야지 생각했었다. 생명의 한 순환이 시작되는 순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 들판에 나가보지 못하고 몇 개월이 흘렀다. 밀려오는 사람의 사연들을 읽고 가르느라 바빴다. 갈라진 마음 바닥과 사무친 미움들과 집착들과 욕심들이, 무심함과 될 대로 되라는 심정들이 책상 위로 올라왔다가 분류되어 나갔다. 그러는 동안 몇 번이나 슬픈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 보아야 했다. 건네줄 위로가 마땅치 않은 빈 주머니 속을 뒤적거리는 날들이 많았다. 그러나 나는 거기 있었다.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나는 여전히 물결 일렁이는 봄논의 가장자리, 그 어디쯤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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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나의 민원인』을 썼다. 대한민국 검찰청의 귀퉁이에서 이끼처럼 자생하던 18년차 검사가 지방 소도시에서 일하며 만난 세상 사람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