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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아의 카페 생활] 여름 방학 기분 - 커먼마치

임진아의 카페 생활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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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나에게 방학을 좀 줘야지. 어째서 그간 이런 소중한 문장을 내 앞에 가져오지 않았을까. 어른에게도 방학이, 누구든지 그 사람에게 맞는 휴가철이 필요한 것을. (2023.07.14)


격주 금요일, 임진아 작가가 <채널예스>에서 작업하기 좋은 카페를 소개합니다.
‘임진아의 카페 생활’에서 소개하는 특별한 카페 이야기를 만나 보세요.



좋아하는 기분 중 하나는 여름 방학 기분이다. 여름 방학 기분은 어린 시절 겪은 고유한 기억과 더불어 때마침 찾아온 오늘 자 여유가 만나 찰나의 바람이 되어 불어온다. 이 기분은 꽤나 까다로워서 애써 느끼려 하면 느껴지지 않지만 나도 모르게 무구하게 떠들고 놀다 보면 어느샌가 바람처럼 휙 하고 지나간다. 여름 방학이라는 바람. 바람에 쓰고 있던 모자라도 뺏긴 듯이 멍하게 이 기분을 멀리 쳐다보고 있자면 왜인지 아직도 아이인 것 같고 아직도 아이인 것 같은 기분은 또 얼마나 좋은지.

어른이 된 후, 그리고 십 년 동안의 회사 생활을 마친 후, 그리고 프리랜서가 되고 나서야 초여름 여행을 떠났다. 본격적으로 더워지기 전에 혼자 여행을 갔다 오기 위해서였다. 떠나기 전에도 여행을 하는 동안에도 다시 집에 돌아온 후에도 여름 방학이 끝났다는 생각은 좀처럼 들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내 삶에 여름 방학은 끝나버렸다고 못을 박아버렸던 것 같다. 대학생 시절, 마지막 여름 방학을 보내며 내내 울상이던 마음이 지금까지 꼬리를 늘어트리고 있는 것처럼. 

그런데 어째서일까.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떠난 혼자 여행에서 오랜만에 여름, 그리고 방학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 짧은 4박 5일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공항으로 향하는 열차에서 문득 '여름 방학이었다' 하고 생각했다. 방금까지 보낸 초여름의 여행에 '방학'이라는 단어가 더해지자 나의 여정에 다채로운 색채가 더해졌다. 아직 공항에 가는 중인데도 벌써 그리운 여행이 만들어진 기분. 이건 분명히 여름 방학이 끝난 바로 그 공기였다. 그렇게 나는 이번 여름, 나도 모르게 방학을 챙긴 사람이 되어 있었다. 무심코 팔을 들어 올려 들여다봤더니 모처럼 새카맣게 탄 피부가 반짝이고 있었다. 집에 돌아가자마자 씻으면서 거울에 비친 어깨와 등 색이 다른 걸 확인하며 고개를 휙휙 돌려가며 웃었다. 얼마 만에 이런 걸 보고 웃어 보였는지. 여름 방학 기분이 아닌, 정말 여름 방학기었다.

이번 여름에는 야외를 관찰해야지. 여름을 피해서 시원하게 지내야지. 올해는 나에게 방학을 좀 줘야지. 어째서 그간 이런 소중한 문장을 내 앞에 가져오지 않았을까. 어른에게도 방학이, 누구든지 그 사람에게 맞는 휴가철이 필요한 것을.



여행을, 아니 여름 방학을 끝낸 후에 책장에서 책 한 권을 자연스럽게 꺼냈다. 제주에서 시를 쓰고 감귤나무를 돌보며 계절의 자국을 가까이에서부터 멀리까지 바라보는 사람, 오하나 작가의 산문집 『계절은 노래하듯이』를 다시 천천히 읽고 싶었다. 읽었던 책을 다시 펼치는 데에는 언제나 분명한 이유가 존재한다. 지금 이 기분을, 이 마음을, 이 책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하며 책을 뒤적였다.

역시 방학에는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 내키는 대로 산책을 떠나고, 철새들을 만나고, 하루 세 끼를 세심하게 차려 먹고, 요가나 근력 운동을 하고, 남는 시간에는 원 없이 음악을 듣고 부지런히 책을 읽고 또 만들어 낸다.

오하나 작가님은 오늘의 계절을 부지런히 만나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방학을 챙기며 지내온 사람이지 않을까. 역시 방학에는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고 말하며 자신만의 방학 목록들을 나열하는 기세가 씩씩하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혼자서 떠난 여행을 여름 방학처럼 여기게 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은 시간에 했다. 내키는 대로 산책을 했다. 낯선 지역에 사는 신기한 생김새의 새를 구경하며 시간을 허비했다. 나만을 위한 한 끼를 정성스럽게 고민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나를 위해 러닝을 했다. 미리 준비해 간 여행 플레이리스트를 줄기차게 들었다. 가져간 5권의 책을 호텔에 진열해 두고 그때그때 꺼내 읽었다. 하고 싶은 게 떠오르자마자 곧장 행동하며 며칠을 그렇게 지냈다. 단 며칠이지만 마음껏.

나와 비슷한 시기에 같은 도시로 떠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기로 했다. 같이 여행한 건 아니지만, 비슷한 계절에 같은 곳을 서성였을 친구와 몇 시간이든 떠들고 싶었다. 우리가 만나기로 한 곳은 서로에게 가까이 위치하는 카페 '커먼마치'였다. 여름 방학 기분에 딱 맞는 카페로 커먼마치보다 더 적합한 곳이 또 있을까.

커먼마치는 두 사람이 다정하게 하이파이브를 치며 운영하고 있는 카페이다. 두 사람 각자의 강점이 만나 한 곳을 꽉 채워 방문하는 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시간을 선사하는 곳. 정성스럽게 내린 커피는 물론, 계절의 롤케이크와 따뜻한 샌드위치, 그리고 카레나 타코라이스 등 식사 메뉴까지 갖추고 있다. 어떤 상태로 방문하더라도 그에 맞는 메뉴가 준비되어 있는 카페.



여름 여행 이야기를 떠들기 위해 커먼마치를 떠올린 이유는 사실 따로 있었다. 여름 한정 메뉴로 팥빙수와 오로라빙수를 개시했다는 소식을 마침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팥은 좋아하지만 팥빙수는 잘 먹지는 못한다. 아무래도 위가 안 좋은 사람은 팥빙수를 좋아하기 어렵다. 하지만 팥빙수를 보는 건 누구보다도 좋아한다. 팥빙수를 먹는 건 위에는 안 좋을지 몰라도 눈에는 좋지 않을까. 팥빙수 먹기가 어렵다면 오로라 빙수가 있다. 차조기 시럽과 패션 후르츠 청이 골고루 뿌려진 빙수로, 보기만 해도 마음 안에 파라솔이 펄럭하고 시원하게 펼쳐진다.

커먼마치 내부에는 가구 포함 모든 것들이 방문하는 이를 향해 있다. 마치 특별히 시간을 내서 떠나야만 느끼던 것들이, 낯선 여행지에서 찾은 카페에서만 보이던 것들이 한 데 모여 카페의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메뉴만큼이나 분위기 또한 풍요로운 차림에 합류한다. 정성스러운 운영은 한 그릇 한 잔에만 보이는 게 아님을 나는 커먼마치에 앉아 있을 때마다 생각한다. 벽의 틈이나 가구의 모서리, 진열된 책들과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종이들까지도 오늘의 카페 시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내가 주문한 건 두유 라테 아이스와, 말차 롤케이크. 그리고 두 사람이 1인 1빙수 하는 걸 반찬 삼았다. 친구의 빙수를 조금씩 뺏어 먹으면서 그들의 여름을 날름날름 맛보던 시간. 아. 역시 방학에는 하고 싶은 걸 해야 하고, 카페에서는 먹고 싶은 걸 먹어야 한다.

이날 마주한 커먼마치 테이블을 종종 다시 그려본다. 지난 우리의 테이블도 여름 방학 기분이었구나 싶어서. 수박 하나를 덜렁 놓아두고 끝이 없는 대화를 느리게 나누던 툇마루에서의 시간을 닮은 하루. 특별할 거 하나 없는 도시에서의 피서는 이런 게 아닐까. 여름이 가기 전에 커먼마치에서 빙수의 시간을 누리시기를. 커먼마치의 안쪽 주방에서 직접 만든 차조기 시럽과 패션후르츠 청, 직접 졸인 팥. 누군가 긴 시간을 들여 만든 걸 시원하게 먹다 보면 이 더위까지 고맙게 느껴진다. 장시간 뜨겁게 졸인 것을 얼음 위에 부어 시원하게 먹을 수 있다니. 여름에 받는 크리스마스 선물 같다.



계절은 노래하듯이
계절은 노래하듯이
오하나 저
미디어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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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임진아(일러스트레이터, 작가)

살면서 느끼는 것들을 그리거나 쓴다. 일상의 자잘한 순간을 만화, 글씨, 그림으로 표현한다. 지은 책으로는 『사물에게 배웁니다』, 『빵 고르듯 살고 싶다』, 『아직, 도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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