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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아의 카페 생활] 광화문과 친구 되기 - 커피친구
임진아의 카페 생활 (7)
그 동네를 이 동네로, 그 마음을 이 마음으로 만드는 일. 이제 다시 저 동네를 이 동네로, 저 마음을 이 마음으로 만들어야 하리라. (2023.06.30)
격주 금요일, 임진아 작가가 <채널예스>에서 작업하기 좋은 카페를 소개합니다. ‘임진아의 카페 생활’에서 소개하는 특별한 카페 이야기를 만나 보세요. |
시내 한복판에 혼자 가기 좋은 카페 하나쯤 알아두기. 생활의 팁이라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서울에서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내, 광화문. 왜 이 동네를 사랑하나, 곱씹어 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 혼자 돌아다녀도 얼마든지 괜찮은 곳들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혼자서 이 거리를 걸어 다닌 건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한 번 밖에 나가면 삼각형 모양의 작은 코스를 그리며 다니길 좋아하는 나는 광화문에서도 나만의 삼각형 루트를 그리며 돌아다닌다. 혼자서 광화문에 가는 건 나의 오랜 취미로, 대형 서점과 커피가 맛있는 카페 그리고 편안한 분식집과 그에 따라 마련된 산책로를 걷다가 다시 버스에 올라타서 집에 가는 식이다.
세상, 게다가 서울은 빠르게 변하기 바쁘고 거리마저도 먼저 미래로 가버리고 있기에 나의 삼각형 루트는 꾸준히 바뀌었다. 엄마의 카페가 있던 광화문에서 엄마의 카페가 사라진 광화문으로 바뀌더니 이제는 아예 엄마의 카페가 있던 건물마저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 거리. 그 거리에서도 나의 코스는 끝없이 그려졌다. 한 시절 나의 삼각형 코스 중 한 곳이었던 엄마의 카페를 지나면서 이제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여기에서 벌어졌던 많은 일들을 건물들마저 잊었으니 말이다.
대형 서점에서 책을 구경하고 잡지 몇 권을 사서 손에 든 채로 서점을 빠져나온다. 사라진 지 오래인 카페 도토루 자리와 엄마 카페가 있던 곳을 지나 핸드 드립 커피가 맛있는 카페 '커피친구'로 향한다. 기왕이면 이곳을 오래 기억하고 있을 사람이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 옛날 노래를 찾아 들으며 뒤늦게 발견하는 아름다움에 애써 가슴 아파하는 것처럼, 서울 위를 걷는 나 또한 오래된 자국이 남아 있는 곳을 자꾸만 찾아간다. 엄마의 카페에서는 안 좋은 일이 가득했는데. 추억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무섭다.
커피친구에 들어가면 '또 왔습니다' 하는 표정으로 인사를 건넨 후 비어 있는 다정한 자리에 앉는다. 갈색의 반짝이는 테이블은 단 한 번도 끈적인 적이 없다. 백발의 사장님 또한 "어서 와요" 목소리를 내며 언제든 나를 반겨주신다. 커피친구는 두산위브파빌리온이라는, 광화문 어딘가에 자연스럽게 있을 것 같은 이름의 상가 1층에 위치해 있다. 창도 없고 그래서 창밖을 내다볼 수도 없지만, 바깥을 향하는 문이 늘 열려 있고 반대편의 상가 복도로 이어지는 문은 통유리창으로 되어 있어서 그런지 묘하게 시원한 느낌이 든다. 주문은 직원분이 받으시고, 백발의 사장님은 고양이를 찾느라 늘 바쁘시다. 카푸인지 치노인지 하는 멋스러운 고양이들이다.
엄마의 카페에 있던 메뉴판과 비슷하게 생긴 메뉴판을 펼치면 갖가지 커피 메뉴들이 나를 향한다. 핸드 드립 커피 전문점인 커피친구는 그에 걸맞게 다양한 원두를 제공한다. 하지만 내가 마시는 건 대체로 이달의 커피나 오늘의 커피 혹은 비엔나커피다. 단편 소설책을 펼치면 표제작부터 읽고 음악 앨범은 트랙 순서로 듣기 좋아하는 나는, 카페에서도 대체로 블렌드 커피를 선호하는 편이다. 이달 혹은 오늘의 메뉴가 있으면 쉽사리 따라가는 아주 쉽다면 쉬운 마음이다. 이 계절에 이 커피를 추천한 이유가 왜 없겠냐고 단순한 웃음이 지어진다. 커피친구의 대표 메뉴라면 역시 비엔나커피다. 이곳의 비엔나커피 특히 아이스는 느끼하고 단것에 약한 내가 끝까지 개운하게 먹을 수 있는 비엔나커피이기도 하다.
이달의 커피 따뜻하게 한 잔 주문하고서 조금 전에 산 여행 잡지를 뒤적이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남자 손님의 통화 소리가 온 가게에 꽉 찬다. 일을 하다가 잠깐 나온 듯한 중년의 남자 손님은 아마도 지인 혹은 친구에게 이리로 오라고 전화를 하는 것 같았다.
"저번에 같이 갔던 카페 있잖아. 아니 거기 말고. 핸드 드립 맨날 내려주는 곳."
카페 이름만을 쏙 뺀 채로 위치를 설명하는 게 재미있어서 계속 귀를 기울였다. 커피친구로 오라고 하면 될 걸 왜 그렇게 스무고개를 하시지 싶었는데, 아무래도 커피 게다가 친구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가 어지간히 부끄러우신 것 같았다.
"대폿집 앞에 카페 하나 있잖아. 참새집 건너편."
그제야 어딘지 알겠다고 시원하게 대답하는 상대방의 목소리가 내 자리까지 들렸다. 커피 친구가 오시나 보네요. 혼자 생각하고는 다시 잡지 속 여행을 떠났다.
옆자리 손님처럼 나 역시 커피친구에서 커피 친구를 만난다. 대충 시간을 정해놓고 한 명씩 모이면 네 석의 자리가 찬찬히 채워진다. 고민할 것도 없이 이달의 커피를 주문하는 친구, 모처럼 비엔나커피 아이스를 주문하는 친구, 많고 많은 원두 중에서 오늘의 기분에 딱 맞는 걸 골라 흐뭇해하는 친구, 그리고 그 옆에서 비엔나커피의 크림을 쪽쪽 떠먹는 내가 있다.
"진아 너는 이런 카페 어떻게 알아?"
내가 불러서 처음 커피친구에 온 친구의 말에 꼭 과거에서 온 사람처럼 대답했다.
"엄마가 이 근처에서 카페 했었잖아. 디자인 서울인지 뭔지 재개발한다고 광화문 밀렸을 때 엄마 카페는 여기 옆 상가로 이전했다가 손님 끊겼잖아. 그 건물들은 지금 다 사라졌어."
말을 하면서 나는 생각했다. 친구가 물어본 건 이런 게 아닌데 나는 왜 아직도 옛이야기를 꺼내는 걸까. 내 말에는 어떤 장면도 그려지지 않았지만, 스스로 회상함과 동시에 나만 아는 기억이 떠올라 나에게 상처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 광화문을 알게 된 날부터 지금까지를 모두 합쳐 한데 모으느라 왜 이렇게 안달일까. 때로는 지금의 장면을 중요시하는 게 이롭지 않을까. 적어도 내가 나를 다정히 여기는 일에 있어서는 말이다. 광화문에 대한 추억이 많고 많은 게 과연 나에게 좋은 일이냐고. 나는 자꾸만 나에게 물었다.
최근에 광화문에 갔던 날을 떠올려 본다. 가장 가까운 커피 친구들과 커피친구에 둘러앉아 가을에 떠날 여행 이야기를 나누며 오래 앉아 있었다. 커피는 진작에 다 마셨고 남은 얼음마저도 녹아 없어져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때에 사장님은 큰 주전자에 찬물을 그득 담아와 한 명 한 명 따라주셨다. 더 있다가 가도 좋다는 말이 빈 유리잔에 찰랑찰랑 채워진다. 네 명 모두 아이스커피를 마셔서 멀리서도 빈 잔이 돋보였을 텐데, 오히려 그 덕에 더 오래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채워진 물을 다 마시고 또 마신 후에야 커피친구를 빠져나왔고, 근처 지하 상가에 있는 단골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금 나에게 광화문이란 이런 곳이다. 혼자서도 여럿이서도 가기 좋은 곳들이 마련되어 있는 곳.
다음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마음속 지도를 거듭 그릴 줄 알아야 한다. 그걸 '마음 이사'라고 부르면 어떨까. 알던 동네에 지금의 나를 다시 그려 넣고, 때로는 모르는 동네에 지금까지의 나를 그려 넣는 일. 이런 이사 또한 도시에서 사는 쓸쓸한 이들에게 필요하다고.
안희연 시인의 산문집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 속의 '돌아볼 용기'라는 꼭지를 자주 펼쳤다. 이사를 앞두고 동네와 이별하는 마음이 그려지는 이 꼭지를 좋아하는 이유야 분명했지만, 글 속 문장들은 광화문에서 서성이는 나를 일으켜 주기도 했다. 서울 안에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사를 하기도 했고, 다음으로 가기 위한 마음 이사 또한 자주 해서 그런지 이사하는 이의 마음을 읽으며 내 마음속 동네들을 몇 번이나 곱씹었다.
"그 동네를 이 동네로, 그 마음을 이 마음으로 만드는 일. 이제 다시 저 동네를 이 동네로, 저 마음을 이 마음으로 만들어야 하리라."
엄마 아빠한테 미안하지만 나는 광화문을 계속 좋아하겠어요. 이제는 나의 동네로 만들겠어요. 이 생각을 끝으로 광화문 거리에서 더 이상 안 보이는 건물들을 내 멋대로 그리며 걷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나의 옛날을 오늘부터 만들 수 있게 하는 커피친구에 앉아서. 먼 다음의 나에겐 오늘부터 옛날이지 않을까 하며.
같은 꼭지에 쓰여 있던 문장. 광화문 이사를 앞둔 나에게는 큰 응원이 되었다.
"누가 뭐래도 저는 시간의 힘을 믿어요."
나에게 광화문은 어려서부터 서울에서 살았기 때문에 오랜 추억을 향유할 수 있던 곳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가왔던 장면들이 있었고, 잘 지워지지 않는 표정이 생기기도 했다. 디자인 서울이라는 명목하에 내가 알던 광화문의 옛 모습은 남아있지 않게 됐지만, 어쩌면 나의 기억을 씻는 데에는 어느 정도 일조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슬프게도. 하지만 디자인 서울이 되지 않았다면, 사라진 것들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그건 그것대로 씩씩하게 마주했을 텐데.
"그곳에서 슬픔을 탕진할 때까지 머무세요."라는 문장을 끝으로 책은 인사를 건넨다. 안희연 시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에필로그를 한참을 바라보며 나는 이사할 준비를 마친지 오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이제는 이 거리와 이 동네와 새롭게 친구가 될 차례가 아닐까. 그 중심에 커피친구가 있다. 오기만 하면 다정한 사장님과 근사한 커피와 카푸인지 치노인지 하는 고양이들을 만날 수가 있는 커피친구. 그리고 이제는 커피친구에 가기 위해 광화문으로 향하는 내가 있다. 커피친구에 앉아 있으면 함께 있기 위해 하나둘 웃으며 들어오는 친구들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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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느끼는 것들을 그리거나 쓴다. 일상의 자잘한 순간을 만화, 글씨, 그림으로 표현한다. 지은 책으로는 『사물에게 배웁니다』, 『빵 고르듯 살고 싶다』, 『아직, 도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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