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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의 북커버러버] 마음속의 펭귄 - 『펭귄뉴스』
2화 - 『펭귄뉴스』
책을 출간할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그 실패의 흔적까지 북커버에 남길 수는없을까? (2023.05.18)
격주 목요일, 소설가 김중혁이 좋아하는 북커버를 소개하는 칼럼 ‘김중혁의 북커버러버’를 연재합니다. |
글을 쓰기 전에 이상적인 목표 지점을 꿈꾼다.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머릿속에는 큰 그림이 있다. 어떤 선일 수도 있고, 파형일 수도 있고, 덩어리일 수도 있고, 색감일 수도 있다. 글을 다 쓰고 나면 이번에도 목표 지점에서 한참 벗어났다는 걸 깨닫는다. 흔한 일이어서 놀라지는 않는다. 어떤 형태의 글을 쓰고 싶다고 해서 매번 성공하는 건 아니다. 실패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실패까지도 글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책을 출간할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그 실패의 흔적까지 북커버에 남길 수는없을까?
그림 1은 글을 쓰기 전, 내가 생각했던 큰 그림이다. 그림 2는 내 글의 결과물이다. 면적은 거의 비슷하지만 형태는 달라졌다. 그림 3은 디자이너가 읽은 나의 글이다. 세 개의 도형이 포개진 모습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북커버다.
첫 책을 내던 때가 생각난다. 2006년이었다. 소설집 『펭귄뉴스』에는 여덟 편의 소설이 실렸고, 사람들이 내 이름이 적힌 소설책을 읽게 된다는 생각을 하니 밤잠을 설칠 정도로 떨렸고, 설렜다. 많은 사람들이 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많은 사람들이 보면 부끄럽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나는 무엇보다 책의 표지가 궁금했다. 나만의 책을 처음으로 가지게 되는데,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기대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책표지는 운명처럼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에 나는 '펭귄뉴스닷넷'이라는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그림 일기를 열심히 그렸다.(그때는 그런 게 유행이었다) 일상의 사소한 변화가 생기거나 깨알 같은 사건이라도 발생하면 무조건 그림을 그렸다. 홈페이지 관리하는 건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이었다. 『펭귄뉴스』의 디자이너가 '홈페이지에 그림 그리는 것처럼 표지 그림을 직접 그려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왔다.
"제가요?"
아마도 그런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귀중한 장소에 이토록 미천한 재능의 그림이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려보기로 했다.
그림 작업실을 가지고 있는 형에게 도움을 구했다. 종이를 얻었다. 다양한 물감과 붓과 펜도 빌렸다. 펭귄뉴스니까 펭귄을 그려야지. 펭귄을 그리기 시작했다. 입을 그리고 눈을 그리고 몸을 그리고 날개 비슷한 걸 그리고, 깃털을 그리고 발을 그렸다. 한 장 더! 펭귄의 입과 눈과 몸과 깃털을 그리고, 한 장 더! 그리고 그리고 그렸다. 3일 동안 계속 펭귄만 그렸던 것 같다. 나중에는 어떤 펭귄이 더 나은지 구분하기도 힘들었고, 내가 그리고 있는 게 펭귄인지 까마귀인지 수달인지 알 수 없었다. 다행히 디자이너는 내 그림을 마음에 들어했고, 표지에 들어가는 영광을 누리게 됐다. 나는 지금도 내 그림이 들어가 있는 『펭귄뉴스』 표지를 무척 사랑한다.
첫 책을 그렇게 시작해서인지, 이후에도 내 책의 디자인에 참여할 기회가 자주 생겼다. 『뭐라도 되겠지』와 『미스터 모노레일』의 표지 그림과 제호를 직접 그렸고, 디자인 작업에 소소한 의견을 더하기도 했다. 때로는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귀찮기도 했을 텐데, 내 의견을 적극 반영해주었다. 책표지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는 것은 내가 책을 사랑하는 방식 중 하나다.
"작가님은 그림을 잘 그리시니까 그런 게 가능하죠."
라고 얘기한 사람도 있었다. 내가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못 그리는 편은 아니지만, 막 소름끼치게 잘 그리는 그림은 또 아니다. 막 소름끼치게 잘 그렸으면 오히려 책표지 작업에 뛰어들지 못했을 것이다.
프란츠 카프카는 『변신』을 출간할 때 북디자이너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그러지 마십시오.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벌레 자체는 무엇으로도 표현될 수 없습니다. 멀리 있어서 보이지도 않습니다."
_『책을 읽을 때 우리가 보는 것들』, 피터 멘델선드 지음
책 표지에 벌레를 그리지 말아달라는 간절한 부탁의 편지였다. 책을 읽는 사람의 마음속에 벌레가 나타나려면 실제 모습은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저런 편지를 썼을 것이다. 펭귄이 등장하지 않는 『펭귄뉴스』의 표지를 상상해보곤 한다. 독자들의 마음에 펭귄이 나타나려면 표지에는 없는 편이 나았을까? 세상에 공개된 책표지는 하나지만 내 머릿속에는 무수히 많은 버전의 책표지가 지금도 둥둥 떠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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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고 산문도 쓰고 칼럼도 쓴다. 『스마일』, 『좀비들』, 『미스터 모노레일』,『뭐라도 되겠지』, 『메이드 인 공장』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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