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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환의 제주에서 우리는] 제주에 사는 사람들

'전종환의 제주에서 우리는' 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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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는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한라산과 오름, 숲길과 바다가 있다. 그리고 다양한 이야기를 품은 이들이 제주에 모여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여태까지와는 조금 다른 형태의 삶을 꿈꾸고 있는데, 이들이 연결되고 어우러지며 제주의 매력은 오늘도 생동하고 있다. (2023.06.12)


격주 월요일, <채널예스>에서 ‘전종환의 제주에서 우리는’을 연재합니다.
6개월 육아 휴직을 낸 아빠 아나운서 전종환이 제주 일상을 이야기합니다.



제주 남쪽 바다 공천포항에는 카페 '게리가(gary-ga)'가 있다. '게리가'에는 제주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큰 창과 정성껏 가꾼 작은 정원이 있는데 이곳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는 일은 제주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호사 중 하나다. '게리가'의 주인은 호주 남성 게리 스틸과 한국 여성 이선아 씨다. 이들은 손님들에게 맛있는 커피와 간단한 음식을 내어주고 그날 제주 앞 바다에서 잡은 생선을 구워주기도 한다. 게리와 이선아 씨는 20여 년 전 호주에서 만나 결혼했고 다이빙을 하러 제주에 왔다가 무엇에 홀린 듯 공천포 앞바다의 집을 샀다. 욕실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낡고 허름한 집이었지만 운명 같은 끌림을 느꼈다고 한다.

부부에게는 공통점이 많았다. 둘 모두 대학에서 언어학을 가르쳤고 바다와 스포츠를 사랑했다. 카누와 카약과 같은 해양 스포츠를 즐기던 부부는 바다에 대한 사랑이 더 커진 나머지 항해사와 선원 자격증을 취득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보트를 탔다. 일 년의 절반은 지중해에 나머지 절반은 호주에 머무는 식이었다. 많은 이들이 동경하는 이런 삶에는 그만큼의 비용이 들어가기 마련인데 부부는 호주에 마련했던 집을 모두 팔아 자신들이 원하는 삶의 형태를 완성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이들도 나이를 먹었다. 흰머리가 제법 잘 어울리는 나이가 된 부부는 젊은 시절 마련해 두었던 제주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 게리는 바다 수영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매일 아침 7시에 자전거를 타고 출근해 제일 먼저 바다 수영을 합니다. 날씨가 좋든 안 좋든 수영을 하지요. 그리고 카페를 청소하고 커피와 식재료를 준비합니다."

남편의 얘기를 듣던 아내 선아 씨가 웃으며 말했다.

"저는 충분히 잠을 자고 천천히 카페로 나와요. 남편이 일찍 나와 준비를 하면 저는 우아하게 일을 하는 거죠.(웃음)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경제 활동을 이어가는 게 좋습니다."

때때로 느리게 흐르는 제주의 시간이 답답하고 도시의 생기와 영감이 그리울 때도 있지만 자발적 역마살 끝에 제주에 정착한 이들 부부는 행복해보였다.

그런가 하면 제주 동쪽 바다 마을 하도리에는 형사 박미옥이 산다. 우리나라 최초의 강력계 여형사였던 그는 정년을 7년 앞두고 돌연 퇴직해 제주에 머물고 있다. 실력과 상징성을 고려했을 때 더 오래 경찰에 남아 승진을 거듭하리라는 주변의 예상을 크게 비껴간 선택이었다. 과거 기자로 일할 때 강남 경찰서 강력 계장으로 일하던 그의 모습을 가까이서 보곤 했다.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현장에 나타나 후배 형사들을 통솔했고, 취재를 원하는 기자들에게 정확히 제공해야하는 만큼의 정보만을 제공했다. 지금 해야 할 말과 참아서 때가 무르익었을 때 해야 하는 말을 구분하는 그를 보며 나는 어른의 언어란 이래야만 한다는 걸 배웠다.



얼마 전 나온 그의 책 『형사 박미옥』에는 그가 형사로서 겪어낸 삶과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의 책을 보면 형사의 일이란 결국 인간의 밑바닥을 살피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는데 그가 제주로 온 이유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형사 일을 하면서 인간의 꼬락서니를 봤습니다. 모든 인간의 밑바닥에는 집착과 욕심이 자리 잡고 있더군요. 그리고 저의 밑바닥을 들여다봤습니다. 세상 모든 게 변하는데 마냥 안주하려는 마음도 집착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그는 조직과 관계를 벗어나 자신에게 집중해보기로 결심했다. 젊은 시절 깨달음을 찾아 출가를 마음먹었던 그다운 결정이었다.

"현무와, 잡초, 바다와 오름을 보고 제주에서의 삶을 결심했습니다. 특히 제가 사는 하도리의 오름은 오를 때마다 달랐고 그러면서도 매번 아름다웠습니다."

평생을 범인의 호흡과 조직의 시간에 맞춰 살았던 그는 이제 온전히 자신만으로 호흡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는 이곳 제주에서 '죽음 앞 카페'를 열려고 한다. 형사를 하며 다양한 죽음을 목격한 그에게 죽음은 평생을 함께 한 화두였는데 관심 있는 이들과 함께 죽음을 제대로 탐구해보겠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생로병사에 대해 걱정하느라 불안이 많아요. 태어남은 당연히 여기면서 죽음은 과도하게 두려워하는 것이지요."

마음은 이미 인간의 생로병사에 닿아 있으나 경찰이라는 거대 조직에서 벗어난 이상 자유와 불안은 공존하기 마련이다. 그는 "큰돈이 있지도 않고 연금이 넉넉하지도 않기 때문에 벌어먹고 살아야 할 문제가 여전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의 서재에 가득한 의학과 죽음 관련 서적은 그의 죽음학 공부가 결코 얕게 끝나지 않으리란 걸 짐작케 했다.

그리고 한라산 아랫동네 서귀포 상효동에는 변창립 아나운서가 산다. 몇 년 전 그는 요란하지 않지만 충분히 명예로운 은퇴를 하고 제주로 내려왔다. 제주에 머무는 나는 얼마 전 가까운 선배들과 함께 그의 집을 찾았는데 우리 손에는 아나운서 후배들이 준비한 감사패가 들려 있었다. 감사패의 문장은 이랬다. 

"희끗한 머리로 파업 현장을 지켜주시고 코끝에 걸린 안경을 쓴 채 회사 업무를 꼼꼼히 보시던 모습. 그 모든 자리가 아나운서의 자부심을 지켜가기 위함이었음을 후배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감사패를 읽고 옛 추억을 나누며 즐겁게 와인을 마셨다. 평소 고요했던 상효동에는 그날 밤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제주에는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한라산과 오름, 숲길과 바다가 있다. 그리고 다양한 이야기를 품은 이들이 제주에 모여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여태까지와는 조금 다른 형태의 삶을 꿈꾸고 있는데, 이들이 연결되고 어우러지며 제주의 매력은 오늘도 생동하고 있다.



형사 박미옥
형사 박미옥
박미옥 저
이야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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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전종환(아나운서)

MBC 아나운서. 에세이 『다만 잘 지는 법도 있다는 걸』을 썼다. 6개월 동안 육아휴직을 하고 아내와 아들과 제주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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