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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지의 제철숙제] 먼저 건네면 무조건 좋은 것

3화 : 소만엔 싱거운 안부가 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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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지 아닌지' 묻는 일. 그렇게 툭, 고사리 사진 한 장으로, 가게 간판 사진으로 묻는다. 무탈한가요. 그러길 바라는 마음을 방금 그쪽으로 보냈어요. 잘 받아요! 작게 차오르는 소만의 마음. 아무렴, 안부를 묻기에 좋은 계절이다. (2023.05.23)


제철에 진심인 사람이 보내는 숙제 알림장.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아요, 제철에 있습니다.
제철 행복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나중에 말고 '지금 해야 하는 일'을 절기마다 소개합니다.



"5월은 무엇이 제철인 달일까요?"

"효도?"

몇 주 전 도서관에서 강연을 하다 이렇게 물었을 때, 한 분이 답했다. 더워지기 전에 산책을 자주 하거나, 부지런히 바깥 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말하려던 참이었는데 순식간에 불효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렇죠... 효도가 제철이죠."

말하고 나니 제철 숙제를 미루고 있는 건 정작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을 나서며 주말에 농사일을 거들러 가겠다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할 일 천지라. 작업복 챙기와."

반색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시골에서는 여덟 번째 절기인 소만(小滿) 무렵이 한 해 중 가장 바쁠 때다. 예부터 모내기의 기준으로 삼았던 절기답게 밭 장만을 하고, 각종 모종을 너른 밭에 옮겨 심고, 보리를 베고, 김매기를 하는 등의 농사일이 끝없이 이어져서 오죽하면 "부엌의 부지깽이도 밭일을 거든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하마터면 부지깽이만도 못한 자식이 될 뻔했다) 아무튼 그 부지런함이 지나간 자리마다 푸르러지는 게 소만이기도 하다. 한자를 뜯어보면 '작을 소(小)' 자에 가득 '찰 만(滿)'. 풍요로운 햇볕 아래 차츰 여름 기운이 차오르고, 자그만 모종들이 물과 바람을 머금고 무럭무럭 자라나는 모양새가 눈앞에 그려진다.



시골집에 도착하니 모내기를 막 끝낸 들판 위로 개구리 소리가 요란했다. 다음은 참깨를 심을 차례였다. 일흔을 앞두고도 여전히 농기구를 맨손 체조하듯 다루는 아빠가 밭에 이랑을 만든 뒤 기계로 비닐을 씌우면, 그 뒤를 따라다니며 참깨 모종을 심는 일. 문장으로 쓰면 고작 한 줄이지만 두 군데 밭에 깨를 심는 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 뙤약볕을 피할 길 없는 너른 밭을 무릎걸음으로 다니며 모종을 심자니 어찌나 힘이 들던지 한 시간에 한 번씩 고랑에 대자로 누워 하늘을 봤다. 먼 하늘을 날며 커다랗게 원을 그리는 매가 부러울 정도였다. 밭일을 마친 오후엔 잠시도 쉬지 않는 인숙 씨를 따라 고사리를 뜯으러 갔다. 언덕배기 찔레 덤불 속을 잘 살펴보면 햇고사리가 주먹 쥔 손을 번쩍 든 자세로 돋아나 있었다. 

"밭일은 힘들어도 고사리 뜯는 건 재미져. 요봐라, 을매나 귀엽나."

 이제 그만 내려갈까 하고 돌아서면 또 보이고, 돌아서면 또 보이고...

그게 마치 고사리가 숨었다 나타나며 "까꿍!", "나 여기 있지!" 말하는 거 같다고. 열띠게 고사리 성대모사를 하는 인숙 씨 뒤를 따라다니는 동안 소쿠리가 가득 찼다.



여느 때처럼 차 트렁크에 오이와 방울토마토, 텃밭에서 뽑은 상추를 가득 싣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뒤 인숙 씨가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노란 바구니 속에 고사리를 수북이 쌓아둔 사진이었다.

"고사리 수확했음"

그새 이만큼이나 다시 돋아났구나. 답장으로 오늘 찍은 사진을 보냈다.

"산책하다가 버찌 주움"

 벚나무가 많은 동네 산책로에는 요즘 노랗고 빨간 버찌가 구슬처럼 떨어져 있다. 문득 고사리와 버찌로 나누는 안부가 정답게 느껴졌다. 고사리를 꺾었다고 카톡을 주시다니요. 혼자 찔레 덤불 아래를 살피던 인숙 씨는 내 생각이 났을 것이다. 이틀 전에는 딸하고 같이 있었는데, 고사리 꺾다 말고 자꾸 사진을 찍고 앉았던 딸이랑. 그래서 고사리를 부러 한 방향으로 모아 매무새를 다듬은 뒤 사진을 찍어 보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혼자서도 이만큼 꺾었다고. 

생각해보면 안부가 원래 그런 일이다. 생각나서 연락하는 일. 내가 가장 못하는 일이기도 하다. 인숙 씨가 전화를 걸어 주로 하는 말은 "딸, 어데 외국 갔나"인데 번역하면 왜 도통 전화를 안 하냐는 소리다. 

"엄마가 자주 하잖아" 

실제로 그렇지만 발신인과 수신인이 늘 정해져 있는 통화라면, 수신인이 반성해야 할 일이다. 두 살 터울 오빠도 늘 먼저 전화를 걸어오는 쪽이다. 5월은 반성이 제철인 달인 걸까?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어쩌다 기념일은 한쪽으로 쏠린 케이크처럼 몰려 있고, 평소 안 하던 행동을 날을 잡아 하다 보면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혼자 있길 좋아하고 좀체 먼저 연락하는 법 없는 사람이 마흔 무렵 이르러 처하는 문제 중 하나는... 친구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내 얘기다. 서운해서 떠날 사람은 다 떠난 것 같다. 나라고 관심이 없고 보고 싶지 않은 건 아닌데 연락의 주기가 긴 편일 뿐.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이 나거든 행동도 해야지 마음먹은 건 근래의 일이다. 인숙 씨 방식으로 안부를 한번 물어보자고. <아침마당>을 보다가, 새로 핀 꽃을 보다가 생각나면 전화하는 인숙 씨와 달리, 나는 누군가 생각나면 그 생각을 안고 가만히 고여 있는 쪽이다. 그러니 다짐은 간단했다. 무언가를 보고 누군가 생각난다면 바로 연락하기. 

망설임이 자랄 틈 없이 바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같이 와본 적 있는 가게를 지날 때 사진을 찍어 보내고,(여기 진짜 맛있었지) 5년 일기장을 쓰다가 작년 오늘 같이 있었던 소식을 전하고(우리 창덕궁 산책했던 날이야) 지인이 올린 스토리에 비슷한 사진으로 답한다.(나도 오늘 비슷한 거 찍었는데!) 안 하던 일을 하기가 어려울 땐 작게 해본다. 가볍게 한다. 그중 가장 쉬운 규칙은 '이름으로 된 간판을 발견하면 주인공에게 연락하기'다. 싱겁기로는 국내 최고인, 저염식 안부라 할 수 있다. 은혜 세탁소, 태광 약국, 연우 빌라 사진과 함께 전송되는 싱거운 안부. 그 사진 안에 괄호를 열고 들어가 혼자 괄호 닫고 앉아 있는 내성적인 속마음은 '생각나서 연락했다'는 말. 혼자만의 규칙을 만들고 싶어 시작한 일인데, 이제 나는 길거리의 간판을 유심히 살펴보다 자주 반가워지는 사람이 되었다.

이게 어딘데요?

내 생각 자주 하네?



어떤 안부는 조만간 만나는 일로 이어지고, 또 어떤 안부는 서로의 무사함을 확인하고 끝나기도 한다. 그거면 됐다. 안부(安否)란 정말 별게 아니니까. '편안한지 아닌지' 묻는 일. 그렇게 툭, 고사리 사진 한 장으로, 가게 간판 사진으로 묻는다. 무탈한가요. 그러길 바라는 마음을 방금 그쪽으로 보냈어요. 잘 받아요! 작게 차오르는 소만의 마음. 아무렴, 안부를 묻기에 좋은 계절이다. 



소만 무렵의 제철 숙제

예전에 같이 온 가게를 지난다고, 길을 지나다 네 이름이 적힌 간판을 보았다고, 문득 생각나는 사람에게 싱거운 안부를 전해보세요. 포인트는 '싱거운'에 있습니다. 갖은 양념 같은 연락은 어려울지 몰라도, 싱거운 안부엔 같이 피식 웃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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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김신지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는 사람. 일상에 밑줄을 긋는 마음으로 자주 사진을 찍고 무언가를 적는다. 일상을 사랑하기 위해, 일을 더 잘하기 위해 기록을 다양하게 활용한다. 최선을 덜 하는 삶을 고민하는 사람. 이 정도면 됐지, 그럴 수 있어. 나에게도 남에게도 그런 말을 해 주려 노력한다. 너무 사소해서 지나치기 쉬운 것들을 좋아하는 게 취미다. 오늘을 잘 기억하면, 내일을 기대하고 싶어진다. 그런 마음으로 순간을 모은다. 언젠가 바닷가 근처 작은 숙소의 주인이 되는 게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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