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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루가 읽은 그림책] 『세상 모든 밤에』

<월간 채널예스> 2023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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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에서 '동물을 보라'는 주문은 '인간적인 것'에 대한 보다 나은 이해와 성찰에 대한 요구에서 비롯된다. 이때 동원되는 관념이 바로 '너머'다. (2023.05.11)

ⓒ 파니 뒤카세

깊은 밤, 나이 든 고양이 한 마리가 열린 창문을 넘어 들어온다. 방의 주인이 깨어난다. 고양이 모양의 잠옷을 입은 아이는 영락없이 한 마리의 고양이 같다. 고양이 같은 아이라서, 한밤중에 자신을 찾아와 '후앙' 하고 우는 낯선 고양이의 정체를 한눈에 알아본다. 고양이 중의 고양이 파타무아. 아이는 자신을 인도하는 고양이를 따라 기꺼이 열린 창문을 넘는다.



세실 엘마 로제가 글을 쓰고 파니 뒤카세가 그림을 그린 『세상 모든 밤에』는 밤하늘에 빛나는 낱낱의 별을 세듯 '모든' 속 '하나하나'를 상상하는 어느 밤의 이야기다. 창문 하나하나 너머의 사람들, 그림자 하나하나 속의 기억들, 음표 하나하나에 깃든 마음들을 헤아려보는 여정이 돌림 노래처럼 이어진다. 그사이 두 고양이(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정말로 고양이처럼 행동한다) 곁에는 물방울무늬 생쥐와 푸른빛 거대한 개, 줄무늬 비둘기와 장화 신은 여우가 함께 있다.

규칙도 목적도 없는 듯 보였던 이들의 놀이는 '빗장으로 재갈이 물린' 동물원 철문 앞에서 전환을 맞는다. 물방울무늬 생쥐가 열쇠 꾸러미를 꺼내는 순간, 갑자기 해방 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세상 모든 동물원의 모든 우리가 열리고 하나하나의 문에서 색색의 무지개가 터져 나오는 짜릿한 상상을 하면서, 해방 작전의 팀원들은 최고의 팀워크로 임무를 완수한다. 커다란 보름달 아래에서 동물들이 '발이 달린 폭풍우처럼', '할퀴듯 불어대는 북풍'처럼 밤의 거리로 쏟아져 나와 무섭게 내달린다.


ⓒ 파니 뒤카세

다음 날 아침, 아이는 여전히 고양이 잠옷을 입은 채로 부엌에서 엄마와 아침을 먹고 있다. 아이는 모험의 여운을 만끽한다. 그 소동에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은 듯하지만 아이는 분명 달라졌다. 등 뒤로 맞은편 창문 난간 위에 낯익은 고양이 한 마리가 사뿐히 걸어가는 중이다. 여전히 창문은 열려 있고 '한 줄기 바람이 고양이처럼 속살거리며' 들어온다.

파니 뒤카세의 그림책에는 늘 열린 문이 있다. 서커스 막사의 열린 천막 너머에서 '놀라 자빠지는' 축제의 하이라이트가 펼쳐지고(『레몬 타르트와 홍차와 별들』), 젖혀진 커튼 뒤에는 탐정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추리의 단서들이 숨어있다(『아만다 코어의 크루즈(La Croisière d’Amanda Cœur)』). 다락 천장의 열린 창으로 잘 익은 토스트가 둥실 떠올라 날아가는가 하면(『로잘리와 식물의 언어(Rosalie et le langage des plantes)』), 보일 듯 말 듯 열린 문틈 사이로 한 사람이 오래도록 가꾼 삶의 면면이 풍경처럼 펼쳐지기도 한다.(『곰들의 정원』)

열린 문은 확장의 암시다. 그것이 단지 꿈일지라도. 에두아르도 콘은 『숲은 생각한다』에서 "은유로서 꿈은 의사소통의 가능성을 놓치지 않고 여러 부류의 존재들 간의 차이를 인식하고 유지하는 방식으로 그들 간의 특정한 생태적 접속을 경험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은유가 이질적이면서도 유사하고 그러하기에 친척 관계에 있는 개체들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다는 사실 덕분에 성취"되며, "은유로서 꿈은 연결을 짚어냄으로써 간극을 인식"하게 한다는 것이다.

고양이 잠옷을 입는 것이 인간의 방식으로 고양이가 되어보는 일이라면, 고양이를 따라 지붕 위를 걸으며 손등을 핥아 귓등을 문지르고 꼬리로 균형을 잡는 행위는 고양이의 방식으로 고양이가 되어보는 일이다. 타자가 되어보기. 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일어나기 위한 조건은 문을 조금 열어두는 것. 그리고 문밖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보는 것이다. 원관념과 보조 관념 사이의 유사성을 통해 은유가 일어나듯 나와 타자 사이에서 연결과 접속이 일어날 수 있도록.


ⓒ 파니 뒤카세

인류학에서 '동물을 보라'는 주문은 '인간적인 것'에 대한 보다 나은 이해와 성찰에 대한 요구에서 비롯된다. 이때 동원되는 관념이 바로 '너머'다. 파니 뒤카세가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 창문을 열어두고, 세실 엘마 로제가 해방 작전의 안내자 이름을 '파타무아'로 설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파타무아(patamoi)는 '내 것이 아닌'을 뜻하는 프랑스어 파자무아(pas à moi)가 어린 화자에게서 잘못 발음되며 일어난 언어유희다. 고양이는 누구의 소유물도 아님을 뜻하는 동시에 세상의 모든 동물이 인간의 소유가 될 수 없음을 뜻하는 것일 테다.

단지 동물을 몹시 좋아하는 한 아이의 꿈일 뿐이지 않느냐고, 현실에서는 여전히 탈출한 어린 얼룩말이 마취 총을 맞고 다시 우리에 갇히지 않느냐고 한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쩌면 이 해방 작전의 목표는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 이 작전이 성공하려면 지나치게 팽창한 자아를 지닌 우리가 스스로 걸어둔 '인간적'이라는 인식의 최면 상태로부터 먼저 해방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에두아르도 콘이 "우리의 배타적인 관심의 결과로서 축적되어 왔던 과도한 개념적 수하물로부터 우리의 사고를 해방시켜야 한다"고 썼던 것처럼.

책의 마지막 면지에는 색색의 기구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가득 떠 있다. 온갖 존재들이 온갖 악기를 연주하면서 둥실둥실 날아오른다. 좀처럼 수수께끼를 만들지 않는 파니 뒤카세가 이번 그림책에서는 상징의 요소들을 여기저기 숨겨 두었다. 아이의 방 안에서, 색과 면의 사용에서, 캐릭터와 배경 곳곳에서 숨바꼭질하는 즐거움이 크다. 파니 뒤카세의 전작을 읽은 독자들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세상 모든 밤에
세상 모든 밤에
세실 엘마 로제 저 | 파니 뒤카세 그림 | 김지희 역
오후의소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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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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