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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인생은 자기 단어장에 적힌 어휘를 늘려 나가는 과정 (G. 문지혁 소설가)

책읽아웃 - 황정은의 야심한 책 (337회) 『중급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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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이 문학을 안 읽는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저는 한국인들이 문학을 싫어해서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저 혼자만의 가설이지만, 우리가 너무 고맥락으로 문학적인 대화를 일상에서 하고 있기 때문에, 책에서까지 이런 고맥락을 읽고 싶지 않아서 안 읽는 거다라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2023.04.20)


자서전이란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삶에 관해 쓴 글이죠. 어떤 사람들이 이런 걸 쓸까요. 그렇습니다. 전직 대통령. 전쟁 영웅. 성공한 기업인. 위대한 학자. 종교 지도자. 불굴의 영혼. 말하자면 벤저민 프랭클린, 김우중, 헬렌 켈러, 마하트마 간디, 미셸 오바마... 같은 사람들이죠. 영어로는 '오토바이오그래피'라고 부릅니다. 칠판을 한번 보세요. 세 개의 단어가 들어있죠. '오토(auto)', '바이오(bio)', '그래피(graphy)'. 오토는 '자기 자신', 바이오는 '삶', 그래피는 '쓰는 거'죠. 말 그대로 풀어보면 자기가, 삶을, 쓰는 것. 이것이 자서전의 본래 뜻입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좀 이상하지 않나요? 자기가, 삶을, 쓰는 것. 사실 이건 자서전만의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우리가 쓰는 모든 글은 실은 자기가, 삶을, 쓰는 것이니까요. 따라서 자서전은 백만장자 CEO나 유명 정치인, 특별하고 대단하고 빛나는 삶을 살았던 사람만이 쓰는 그런 글이 아닙니다. 어떤 글이든 우리가 쓰는 글들은 일종의 수정된 자서전이에요. 우리가 쓰는 모든 글은.

문지혁 작가가 쓴 『중급 한국어』에서 읽었습니다. 오늘은 이 작가를 만나볼게요. <황정은의 야심한책>, 시작합니다.



<인터뷰 - 문지혁 소설가 편>

"소설은 삶보다 작지 않고", "삶이야말로 우리가 부지불식 간에 '쓰고 있는' 소설"이라고 믿는 작가를 모셨습니다. 『초급 한국어』 그리고 『중급 한국어』를 쓴 문지혁 소설가입니다.

황정은 : 반갑습니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문지혁 : 저는 소설 쓰는 문지혁이라고 하고요. 얼마 전에 『중급 한국어』라는 장편 소설 출간했습니다. 대학에서 학생들과 함께 소설 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황정은 : 오늘은 지난달에 출간된 소설 『중급 한국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눌 텐데요. 이 소설은 2020년에 출간된 『초급 한국어』의 뒤를 잇는 소설이고, 그리고 『초급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문지혁 작가님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긴 소설입니다. 소설이 출간되고 한 달쯤 되었는데 소감이 어떠십니까?

문지혁 : 일단 책이 나오면, 아마 작가들은 다 비슷할 텐데요. 약간의 우울 같은 것이 좀 있는 것 같고요. 학기가 시작됐기 때문에 다행히 우울을 많이 느낄 틈 없이 열심히 수업하러 다니고 있습니다.

황정은 : 3년 전에 『초급 한국어』를 쓸 때는 이번 소설 『중급 한국어』라는 아이디어가 없었던 거죠?

문지혁 : 네, 전혀 없었고요. 제가 여러 매체에서 이야기했지만 (『초급 한국어』는) '이제 더 이상 소설 쓰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마지막으로 쓴 소설이라서 후속작 같은 건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썼습니다.

황정은 : 그렇지만 저는 제목에 이미 예고가 되어 있지 않나, 라는 생각도 좀 들었거든요. 제목이 '초급'이라서 자연스럽게 그 다음 단계인 '중급'이 또 궁금해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다음 단계가 제목에 이미 예고되어 있었던 것 같다'라는 생각을 저는 했습니다.(웃음)

문지혁 : 결과적으로는, 저도 의도한 건 아니지만, 계속해서 이 '한국어 시리즈'를 쓰게 된 것 같고요. 앞으로도 작가로서 여러 가지 형태의 소설을 쓰겠지만, 이 '한국어 시리즈'가 저의 어떤 시그니처처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황정은 : 연작 작업을 하고 계시는 거죠?

문지혁 : 네, 이제는 그렇게 하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황정은 : 『초급 한국어』에 이어서 이번에 출간된 『중급 한국어』 역시 문지혁 작가님의 실제 경험이 반영된, 물론 '반영'이라는 말을 소설에서 부정하기는 하셨습니다만, 아무튼 반영된 오토픽션입니다. 문지혁 작가님에게는 오토픽션이 어떤 점에서 매력 있습니까?

문지혁 : 제가 수업 시간에 하는 이야기처럼 될까 봐 좀 염려되기는 하지만, 저는 오토픽션이 자서전과 자전적 소설 사이에서 진실과 허구의 경계를 흐리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저에게는 매력적인 것 같고요. 그리고 뭐랄까요, 이제 21세기에 소설에게 남은 것이 얼마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저는 그래도 소설이 마지막까지 다른 매체에 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1인칭의 세계' 그리고 '작가가 조금 더 전면으로 나오는 것' 이 두 가지라고 생각하는데, 그 두 가지를 오토픽션을 통해서 구현할 수 있다는 게 저에게는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황정은 : 『중급 한국어』는 소설 작법서의 형식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소설 쓰기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을 읽어보는 경험이기도 했는데요. 여러 인상적인 말들이 등장을 하는데 예를 들어서 "어떤 글이든 우리가 쓰는 글은 수정된 자서전"이라는 말이 있고요. "좋은 글은 나를 잘 드러내는 거짓말하지 않는 글이라서 그러려면 어쩔 수 없이 나 자신 내 주변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하신 오토픽션의 장점하고도 좀 연결이 되는 이야기일 것 같은데요. 나와 내 주변의 이야기를 쓸 때 문지혁 작가님은 어떤 점을 걱정하시나요?

문지혁 : 흔히 우리가 하는 말로 척 진 사람 없는 소설가 없다고 하잖아요. 어떤 것이든 소설을 쓰게 되면 주변에서 '어? 이거 내 얘기 아니야?' 이런 식의 의심을 받게 되고, 그게 진짜일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고, 아무리 허구적인 변형을 한다고 하더라도 누군가의 눈에는 이게 내 얘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이런 일들이 있는데요. 그래서 제가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역시 재현의 윤리, 어떻게 하면 윤리적으로 재현할 수 있을 것인가. 현실에 영향을 줄 수 있거나 누군가에게 피해 줄 수 있는 것들은 변형 왜곡하려고 노력하는 편이고요. 그렇지만 그게 항상 제 의도만큼 충분하게 되는 것 같진 않습니다. 그래서 이 두 편의 소설 같은 경우에는 제가 차선으로 선택한 방식은 소설 속 '지혁'이라는 제 자신은 그대로 두고 나머지 것들을 거의 모든 것을 바꾸는 방식의 타협을 해서 최대한 저 자신을 드러내면서도 제가 속한 외부 세계에 영향을 덜 줄 수 있는 방식으로 작업을 했던 것 같습니다.

황정은 : 소설 속의 문지혁은 어머니를 죽음으로 상실한 인물이잖아요. 그리고 '지혜'라는 이름의 여동생이 있고. 하지만 (인터뷰를 읽으니까) 소설 바깥의 문지혁 작가님에게는 어머님이 생존해 계시고 여동생이 없다는 말씀을 하셨더라고요. 

문지혁 : 네, 원래는 오토픽션이 허구와 진실의 블렌딩이고 비율이 핵심이라서 이 비율 알려주는 거 굉장히 좋지 않은데,(웃음) 말씀하신 두 가지는 너무 많은 분들이 물어보셔서 제가 얼마 전부터는 그냥 오픈해서 어머니 잘 살아계시고 여동생 없다, 라고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황정은 : 어머니의 죽음이 소설 안에서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잖아요. 그리고 저는 『초급 한국어』를 읽을 때 지혜라는 인물에 대단히 많은 이입을 하고 또 많이 신경을 썼거든요. 그래서 마음에 걸려서 더 물어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문지혁 : 제 생각보다 더 많은 분들이 소설 속 지혁보다 지혜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궁금해 하시는 것 같아서...

황정은 : 지혜가 감당하는 몫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지혁 : 맞습니다. 

황정은 : 오토픽션이 소설의 미래라는 말씀을 인터뷰에서 하셨더라고요. 저는 소설의 미래가 오토 픽션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작가 본인에게는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오토픽션 혹은 그런 성격을 띠는 글쓰기가 작가의 미래에게 늘 예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작가님이 좀 전에 말씀하신 것처럼 배율이라든지 비율의 문제일 뿐이지 항상 어느 장르의 글을 쓰든 작가의 글쓰기에는 그런 성격이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저는 했습니다. 『초급 한국어』에서 지혁은 미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어를 가르치는 강사로 일을 하는데요. 이것도 문지혁 작가님의 경험이기도 한 거죠?

문지혁 : 네, 그건 제 경험에 기반했고요. 다만 현실 속에 저보다는 조금 더 잘 안 풀린 방식으로 지혁의 현실을 재구성했습니다.

황정은 : 소설에서 문지혁은 한 학기 동안 수업을 진행을 하죠. 그리고 작가님은 그보다 조금 더 길게, 1년 동안 한국어 수업을 진행을 하셨습니다. 그때 이야기를 좀 듣고 싶어요. 어떤 학생들이 한국어 수업을 들으러 왔나요?

문지혁 : 한 반에 보통 20명에서 25명 정도의 학생들이 들어오는데요. 그중에 우리가 흔히 말하는 코리안 헤리티지를 가진 학생들, 한국인 부모나 한국어 문화권에서 자란 학생은 20~30 퍼센트 정도 됐던 것 같아요. 그때가 2010년 정도인데, 그때 이미 케이팝이나 케이 드라마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이 많아서, 한국과 전혀 관련 없는데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저에게는 그게 좀 신기하기도 했고요.

황정은 : 모든 언어의 번역 과정에서 늘 일어나는 일이겠지만,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의 입장을 항상 생각을 하셔야 되는 거였잖아요. 그 입장에서 한국어를 생각했을 때 새삼스럽게 이상하고 또 낯선 점을 수업 과정에서 발견을 하셨을 것 같아요. 한두 개 소개를 해주신다면 어떤 경우가 있었을까요?

문지혁 : 저 역시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용자이지만, 말하자면 모국어로 한국어를 쓰는 사람이었지만, 한국어를 외국어로써 가르치다 보니까 저 역시 한국어가 낯설어지는 경험들을 하게 됐는데요. 가장 대표적으로 '안녕하세요' 이야기를 제가 소설에서도 여러 번 썼고, 소설에 쓰지 못한 것들 중에서는 예를 들면 '괜찮아요' 같은 말을 학생들이 좀 힘들어 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커피 드실래요?"라고 했을 때 "괜찮아요"는 사실 Yes이기도 하면서 No이기도 한 거거든요. 그래서 괜찮아요라고 말했을 때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지 학생들이 어려워했고, 또 존댓말과 높임말이 아주아주 복잡하잖아요. 기본적으로는 수업에서 '폴라이트 엔딩(polite ending)'이라는 걸 배우는데 그게 '-요'로 끝나는 문장들이에요. '밥 먹었어요?'를 폴라이트 엔딩이라고 배우는데 "실제로 한국 사람과 이 얘기를 했더니 화를 내더라, 분명히 폴라이트 엔딩이 예의 바른 거라고 해서 했는데 그 어른이 너 한국 어디서 배웠냐고 물어봤다" (라고 할 때) 이런 것도 설명해주기가 되게 어려웠고요.

황정은 : 뭐라고 설명하셨어요? 한 단계가 더 있다고요?

문지혁 : 여러 단계가 있다.(웃음) 밥, 식사, 진지가 있고, 나를 낮추면서 상대방을 높여야 하고... 이런 여러 가지가 있어서 굉장히 머리 아파했던 것 같고요. 또 한 가지는 모든 것이 생략 가능한 언어라는 게 좀 힘들었던 것 같아요.

황정은 : 그럴 것 같아요. 한국어가 되게 고맥락 언어 아닙니까?

문지혁 : 맞아요. 영어는 대표적으로 저맥락 언어인데 한국어는 고맥락이다 보니까, 예를 들면 주어 목적어를 다 생략할 수 있잖아요. '사랑해' 이렇게 말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영어에서 주어 목적어를 다 빼고 'Love'라고 말하면 그냥 명사가 되거든요. 그런데 한국어는 다 빼고 말할 수 있고, 다 말하고도 맨 끝에 뒤집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끝까지 들어봐야 되고, 이런 것들이 너무나 고맥락적인 면을 가지고 있어서 좀 어렵게 생각됐던 것 같아요.

황정은 : 말을 활용하는 방식도 대단히 다양해서, 그것도 많이 어려워했을 것 같아요.

문지혁 : 네. 그래서 저는 사실, 한국 사람들이 문학을 안 읽는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저는 한국인들이 문학을 싫어해서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저 혼자만의 가설이지만, 우리가 너무 고맥락으로 문학적인 대화를 일상에서 하고 있기 때문에, 책에서까지 이런 고맥락을 읽고 싶지 않아서 안 읽는 거다라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일상 대화가 저맥락이어야 책에서 고맥락을 얻을 텐데 우리는 너무 다들 문학적으로 말하잖아요. 서로의 뜻을 이해하고 해석하고. 눈치라는 게 대표적인 문학적 해석 능력이거든요. 

황정은 : 그러네요. 

문지혁 : 그러니까 우리는 문학적이지 않은 사람을 완전히 배제해버리잖아요. 넌 눈치가 없어, 이렇게. 그런 문화에 살고 있기 때문에 책까지 읽으면서 문학을 읽으라고 말하는 거, 전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이 되고.

황정은 : 아, 그거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네요.(웃음)


황정은 : '안녕하세요'를 책의 내용으로 소개를 하자면, 한국어의 인사말을 번역해서 소개하는 과정이었죠?

문지혁 : 네.

황정은 : '안녕하세요'가 (영어로) 뭐였죠?

문지혁 : "Are you in peace?"

황정은 : 그렇게 보니까 또 새롭더라고요. 왠지 요다와 대화하는 것 같은 그런 내용이고.(웃음) 또 그렇게 생각을 하니까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그 인사말이 약간 유의미해졌던 것 같아요. 사실은 이런 내용이었구나, 라는 생각도 새삼 하고. 그러면서 이 인사말이 정말 얄궂다, 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왜냐하면 좀처럼 'Yes'로 대답할 수가 없는 말을 인사말로 건네는 거잖아요. 우리가 다 도 닦는 사람들이 아닌데 "Are you in peace?"를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생활을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웃음)

문지혁 : 제가 책에도 썼지만 역설적으로 우리한테 너무 평화가 없기 때문에 너무 절실한 것이 평화이기 때문에 그걸 습관적으로 묻게 되는 것 같아요.

황정은 : 그러네요. '안녕하세요'가 간밤에 안녕했냐는 인사이기도 한 거잖아요. 

문지혁 : 네, 죽었는지 살았는지 염려되기 때문에 묻는 것처럼. "식사하셨습니까?"가 6.25 이후 우리에게 인사말이 된 것처럼 같은 맥락인 것 같습니다.

황정은 : 맞아요, 그렇습니다.

문지혁 : 어느 개인이나 공동체든 거기에 가장 결여된 것을 말하고 묻게 되는 것 같아요. 우리 사회가 너무 정의를 부르짖는다면 정의가 없기 때문이고, 평안을 묻는다면 평안이 없기 때문이고, 그런 것 같습니다.



*문지혁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전문사를 졸업하고 뉴욕대학교에서 인문사회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글쓰기와 소설 창작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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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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