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부양하고 부양되는 세 모녀 이야기
『엄마를 절에 버리러』 이서수 작가 인터뷰
가족은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존재이지만 그것이 힘겨울 때가 있고, 정신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지지해주기 힘들 때도 있잖아요. (2023.04.20)
제14회 젊은작가상을 비롯해 이효석문학상, 황산벌청년문학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이서수의 첫 소설집 『엄마를 절에 버리러』가 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 17권으로 출간되었다. 세 명의 엄마와 딸이 그려내는 가능한 희망에 대한 이야기 『엄마를 절에 버리러』의 이서수 작가를 만나보자.
『엄마를 절에 버리러』는 작가님의 첫 번째 소설집이에요. 첫 소설집을 묶은 소감은 어떠세요?
제가 2014년에 등단했는데 첫 소설집이 지금 나왔으니 많이 늦긴 했죠. 등단 후 단편 청탁이 없어서 공모전에 투고하기 위해 장편 작업에 집중했어요. 그런 이유로 장편을 두 권이나 낼 동안 소설집이 안 나왔죠. 처음엔 소설집을 빨리 내야 할 것 같은 조급한 마음이 있었지만 나중엔 점차 희미해졌어요. 때가 되면 낼 수 있을 거라고 마음 편하게 생각하려 노력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일지라도 내적으로 성장할 테니 늦게 내더라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고요. 『엄마를 절에 버리러』는 비슷한 테마의 단편을 한 권으로 묶겠다는 계획으로 썼는데, 계획에 너무 치중했던 나머지 첫 소설집이라는 감흥은 느끼지 못했어요. 책이 출간되고 나서야 비로소 실감했고, '엄마와 딸'이라는 테마로 첫 소설집을 엮었다는 것에 흐뭇한 마음이 들었어요.
<트리플> 시리즈는 세 편의 소설과 세 종류의 글(소설, 에세이, 해설)이 담긴 독특한 구성을 취하고 있는데요. 일반적인 소설집과는 다른 형태여서 어떻게 구성하느냐가 관건일 것 같아요. 작가님께서 『엄마를 절에 버리러』를 구성하시면서 특별히 염두에 두신 바가 있을까요?
세 편의 소설을 수록할 수 있다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처음엔 옴니버스 형식을 떠올리기도 했는데, 그렇게 쓰면 의도치 않게 경장편으로 변할 수 있겠다는 예감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각각 독립적인 형식을 취하되 테마를 통일하는 방향으로 바꿨어요. '엄마와 딸'이라는 테마는 늘 저의 관심사였고, 소설집이지만 하나의 주제를 두고 고민한 책으로 완성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에세이를 통해 실제 저와 가족의 모습을 드러내면 소설과 제 삶이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도 잘 드러날 것 같아서 에세이도 같은 테마로 썼습니다.
처음 소설집의 제목을 봤을 때 되게 파격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표제작인 「엄마를 절에 버리러」 뿐만 아니라 다른 수록 소설들(「암 늑대 김수련의 사랑」, 「있잖아요 비밀이에요」)도 제목만 봐서는 내용이 전혀 예측되지 않아서 흥미로웠는데요. 어떻게 이런 (재밌고 신선한) 제목을 짓게 되셨는지요?
처음부터 이 소설집엔 말랑한 감수성이 넘치는 소설들이 수록되진 않을 거라고 예감했어요. 현실적인 문제로 고민하는 엄마와 딸에 대해 솔직하게 쓰려고 노력했고, 이 소설집엔 가식이나 헛된 희망 같은 건 없었으면 했어요. 그러다보니 제목도 아름답기보다 직관적인 것으로 짓고 싶었고요. 「엄마를 절에 버리러」는 노후 걱정 끝에 출가하겠다는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가면서 자책감을 갖는 딸의 혼잣말이 소설의 전체 내용을 관통한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제목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끌렸고요. 「암 늑대 김수련의 사랑」과 「있잖아요 비밀이에요」는 일부러 옛 정취가 느껴지는 제목을 지었는데, 이 소설들에 나오는 엉뚱한 엄마 캐릭터를 떠올려보니 어쩐지 그런 분위기가 맞는 것 같았어요.
앞에서 제목에 대해 여쭤봤는데, 저는 『엄마를 절에 버리러』가 책의 제목과 반대로 일종의 엄마에게 보내는 위로처럼 느껴졌어요. 자주 딸 같고, 가끔 엄마 같지만 그래도 괜찮다, 이렇게요. 그리고 저 또한 위로를 받은 기분이었습니다. 소설을 쓰면서 작가님께서 바라거나 기대했던 독자분들의 반응이 있을까요?
처음 이 소설집을 구상했을 때 가장 많이 봤던 자료가 '영 케어러(Young Carer)'에 대한 기사였어요. 아픈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는 청년을 뜻하는 말인데, 저는 이것이 청년층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자신의 노후에 아무런 걱정이 없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그에 대한 대비를 하기 전에 가족의 노후 문제가 코앞에 닥쳐 있는 사람도 많을 거고요.
가족은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존재이지만 그것이 힘겨울 때가 있고, 정신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지지해주기 힘들 때도 있잖아요. 팬데믹 시대를 통과하면서 통계적으로 저소득층의 가계가 더 큰 위험에 빠진 것도 사실이고요. 그런 것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작업을 해보고 싶었어요. 소설을 시작했을 땐 희망이 보이지 않는 소설이 될 것이라 예감했는데, 다 쓰고 보니 결국 '가능한 희망'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독자분들도 그것을 느끼고 힘을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암 늑대 김수련의 사랑」의 엄마는 로맨스 판타지 소설을 쓰는 딸의 모든 글을 읽는 것으로 나와요. 혹시 작가님의 어머니께서도 작가님의 작품을 찾아보시나요? 『엄마를 절에 버리러』에 대한 반응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웃음)
저의 어머니는 원래 제 소설을 다 읽으셨는데 이젠 읽지 않기로 마음먹으셨어요. 제가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고요. 소설이 출간되면 그보다 큰 기쁨도 없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그늘도 있다는 걸 이젠 어느 정도 알게 됐거든요. 어머니가 제 소설을 읽고 나면 관련된 모든 기사와 리뷰, 댓글을 찾아서 읽으시는데, 감사한 글들도 물론 있지만 어머니의 입장에선 상처가 되는 글도 있어요. 그래서 어머니께 책만 읽고 다른 건 읽지 말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호기심에 결국 검색을 해보시는 것 같더라고요.(웃음)
그동안 정말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셨어요. 사실 항상 글이 잘 써지는 것은 아닐텐데요. 슬럼프나 번아웃 같은 건 없으셨는지, 있으셨다면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해선 명확한 답변을 드릴 수가 있겠네요. 생계에 대한 공포가 슬럼프의 출몰을 막았습니다.(웃음) 저는 첫 책을 낸 3년 전부터 거의 전업으로 소설을 썼고, 소설을 열심히 써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어요. 번아웃이 왔을 땐 번아웃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면서 번아웃을 극복하기도 했습니다. 생계에 대한 공포가 심한 사람이라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작가로서, 개인으로서 바라는 작가님의 소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소설을 오래 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떤 현실적인 이유에 발목이 잡히더라도 소설 쓰는 일을 절대로 놓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소설에 진심을 담을 수 없다면, 그땐 소설 쓰기를 그만두어도 된다고 생각해요. 소설을 쓸 거라면 언제나 마음을 다 쏟아붓고, 그것이 한 명의 독자일지라도 누군가에게 오롯이 전해질 때까지 묵묵히 기다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서수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으며, 『당신의 4분 33초』, 『헬프 미 시스터』, 『몸과 여자들』 등을 썼다. 황산벌청년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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