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희 번역 대가의 손에서 재탄생한 <쥘 베른 모험소설> 시리즈
<쥘 베른 모험소설> 시리즈 김석희 번역가 인터뷰
할아버지가 되자, 제 관심은 손주들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번역도 손자가 크면서 읽을 만한 책을 중심으로 작업하고 싶어졌던 겁니다. <쥘 베른 걸작선>을 아동 청소년용으로 다듬어 <쥘 베른 모험소설> 시리즈로 펴낸 것도 제가 번역가로서 손주들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인 셈이지요. (2023.04.19)
쥘 베른 탄생 195년을 기념하여 과학의 달인 4월, <쥘 베른 모험소설> 시리즈가 새롭게 태어났다. SF의 아버지이자 인류의 미래상을 통찰한 예언자 쥘 베른 이야기 다섯 편을 클래식 번역의 대가 김석희 번역가가 번역했다.
<쥘 베른 모험소설> 시리즈 중, 오랜 세월 '15소년 표류기'로 알려져 왔던 작품을, 원제인 『2년 동안의 방학』으로 번역하여 출간하셨는데,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쥘 베른의 소설 『2년 동안의 방학』이 '15소년 표류기'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배경을 설명하겠습니다. 원작이 프랑스에서 발표된 것이 1888년인데, 이때쯤 쥘 베른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기 작가였습니다. 그래서 이듬해 초에 2권짜리 영역본이 나왔고, 그해 말에는 소년용으로 축약한 1권짜리 영역본이 나왔는데, 제목이 '태평양 표류 : 소년 선원들의 기이한 모험'이었어요. 이 책을 가지고 1896년에 모리타 시켄(森田思軒)이라는 영문학자가 일본어로 번역하여 <소년 세계>라는 잡지에 '모험기담 15소년'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했고, 그해 말에 단행본으로 내면서 '15소년 표류기'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인기와 평판을 얻으면서 제목도 그렇게 통용되게 되었지요.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책들도 모두 일본에서 나온 아동용 축약본을 토대로 번역한 것이기 때문에 제목도 하나같이 '15소년 표류기'였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출판계에는 이런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알렉상드르 뒤마(아들)의 『춘희』도 '동백꽃 아가씨'라는 제목을 일본식 한자로 붙인 제목인데, 우리나라가 세계 문학을 접하고 받아들인 과정이 일제 강점기와 겹치기 때문에, 번역도 초창기에는 일역본을 가지고 중역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21세기, 더구나 한국이 문화 강국의 반열에 들어선 때가 아닙니까? <쥘 베른 모험소설> 시리즈는 새롭게 번역한다는 취지로 기획된 만큼, 거기에 걸맞게 제목도 붙이고 싶었습니다. 다만, 이제 와서 제목을 바꾸면 다른 작품인 것처럼 혼동을 일으킬 우려가 있어서, '15소년 표류기'를 부제로 덧붙였습니다.
'Deux ans de vacances'의 'vacances(바캉스)'를 '휴가' 대신 '방학'으로 번역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바캉스'는 업무를 잠시 쉬고 피서나 휴양을 떠나는 것을 말하니까 일반적으로는 '휴가'라고 번역되지만, 학생들의 경우는 학교 수업을 쉬는 것이니까 '방학'으로 번역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니 『2년 동안의 방학』은 여름 방학을 맞아 뉴질랜드섬을 항해 일주하려던 소년들이 폭풍을 만나는 바람에 표류하다 어느 무인도에 도착하여 '2년 동안의 방학'을 보내게 되었다는 뜻이지요. 그 내용을 보면 소년들이 표류하는 모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인도에 표착한 뒤 2년 동안 생존을 도모하면서 내적·외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이 중요하게 다뤄지기 때문에 주제에도 더 부합합니다.
<쥘 베른 모험소설> 시리즈 중 『2년 동안의 방학』을 읽게 될 젊은 독자분들께 바라는 점이 있으신가요?
앞에서 말한 이 책의 내용과 주제, 제가 이 책을 번역한 취지를 이해하고 읽으면 소설을 더 충실히 감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단순 모험소설이 아니라, 성장 소설로서도 중요한 작품입니다. 무인도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활약상은 실로 감탄을 자아냅니다. 난파선에서 가져온 물건들로 삶의 토대를 마련하는 일에서부터, 물고기를 잡고 사냥을 하고 동굴을 거처로 꾸미고 짐승을 잡아다 가축으로 기릅니다. 선거로 리더를 뽑고, 어른 사회의 축소판 같은 공동체를 이룩해냅니다. 리더십을 둘러싸고 파벌이 생기는 것까지 문명 사회의 복사판이지요. 이런 모험을 경험한 아이들에 대해서 작가는 책 끝에 이렇게 밝혀놨어요.
"(...) 조난한 '슬루기호'의 소년들은 온갖 시련과 고난을 겪으면서 단련되었기 때문에,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 하급생은 상급생처럼, 상급생은 어른처럼 성숙해 있었다 (...)"
선생님께서는 이미 10여 년 전, <쥘 베른 걸작선>(전 20권, 열림원)을 완역하셨습니다. 국내 초역이었던 『그랜트 선장의 아이들』의 출간 기자 간담회에서, 당시 네 살인 손자가 조금 더 커서 재미있게 읽을 만한 아동 청소년물을 번역해 내놓을 계획을 말씀하셨습니다. 2023년, 십대가 된 손자가 흥미를 잃지 않고도 읽기 쉽도록 <쥘 베른 모험소설>을 번역 출간하신 소회를 듣고 싶습니다.
<쥘 베른 걸작선> 번역을 시작한 것이 2002년, 시리즈의 막판인 『그랜트 선장의 아이들』의 번역을 마치고 기자 간담회를 가진 게 2014년 말이었는데, 그 후 어느덧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네요. 그 사이에 손자는 초등학교 6년이 되었고, 그 뒤에 태어난 손녀는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갔어요. 10여 년 전에 제주로 귀향했는데, 오름과 바다 같은 자연 속에 묻혀 사느라 번역 일을 예전만큼 하지 못했습니다. 나이도 들었고요. 그러던 터에 할아버지가 되자, 제 관심은 손주들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번역도 손자가 크면서 읽을 만한 책을 중심으로 작업하고 싶어졌던 겁니다. <쥘 베른 걸작선>을 아동 청소년용으로 다듬어 <쥘 베른 모험소설> 시리즈로 펴낸 것도 제가 번역가로서 손주들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인 셈이지요.
손주들에게 출간된 책을 보여 주셨나요? 반응은 어땠나요?
아직은 보내지 않았어요. 책을 보내면 여기에 한눈을 팔 텐데, 아직은 학기 중이니까 학업에 충실해야죠. 좀 더 있다가 어린이날에 맞춰 선물로 보내려고 합니다. 그러면 겉모양만 훑어보고 나서 여름 방학 때 읽겠지요. 방학 때 제주로 오면 둘이서 책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을 테고요.
<쥘 베른 걸작선> 가운데, 다섯 편의 작품을 고르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쥘 베른은 60여 편의 장편 소설을 남겼는데, 대표작을 말하라면 『지구 속 여행』, 『해저 2만 리』, 『80일간의 세계일주』, 『2년 동안의 방학』을 꼽는 게 보통입니다. <쥘 베른 모험소설> 시리즈를 다섯 편으로 하자고 출판사와 협의했는데, 한 편을 추가한다면 어떤 작품으로 할까 고민 좀 했지요. 『그랜트 선장의 아이들』이나 『신비의 섬』은 『해저 2만 리』와 함께 '해양 모험 3부작'으로 불릴 만큼 재미있고 유의미한 작품이지만, 원서 분량이 많기 때문에 한 권으로 축약하기가 쉽지 않아 그만두었습니다.
그래서 『지구에서 달까지』와 그 속편인 『달나라 탐험』을 한 권으로 묶어서 『달나라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냈는데, 우리나라도 2022년 8월에 달 탐사선 '다누리호'를 발사하여 우주 개발 경쟁에 뛰어든 상황이니, 우리 아이들도 '달나라 여행'에 대한 관심과 포부를 가진 과학자 또는 모험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습니다.
<쥘 베른 모험소설> 시리즈를 읽을 21세기 한국의 젊은 독자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쥘 베른의 생애를 이야기할 때면 빼놓지 않고 인용되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열한 살 때, 속으로 좋아하던 사촌누이에게 산호 목걸이를 구해다 주려고 인도로 가는 무역선에 몰래 탔다가 배가 프랑스 해안을 벗어나기 직전에 아버지에게 붙잡히고 맙니다. 그때 소년 쥘 베른은 "앞으로는 상상 속에서만 여행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합니다. 이 유명한 전설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낭만적인 꿈을 좇아 미지의 세계로 떠나려는 소년의 모습은 과연 쥘 베른답다는 생각이 드네요. <쥘 베른 모험소설> 시리즈를 읽으면서 우리 젊은이들도 현실에 갇혀 있지만 말고, 열린 마음을 가지고 미래에 대한 꿈도 꾸면서 모험의 용기도 함께 키우기 바랍니다.
*김석희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 국문학과를 중퇴했으며,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작가로 데뷔했다. 영어, 프랑스어, 일본어를 넘나들면서 많은 책을 번역했으며, 제1회 한국번역대상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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