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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건의 집돌이 소설가의 나폴리 체류기] 다들 부럽다고 하는데 걱정부터 앞선다

제1화. 미지의 나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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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한 시간을 최대한 만끽한다는 것은 어떤 형태여야 할까? 내가 살아온 것과 다르게 살아보기로 했다. (2023.03.14)


이탈리아 나폴리에 3개월간 머무르게 된 INTJ 소설가는 
90일 동안 나폴리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될까? 
격주 화요일 <정대건의 집돌이 소설가의 나폴리 체류기>가 연재됩니다.


나폴리는 과연 어떤 도시일까

이탈리아 나폴리에 3개월간 머무르며 글을 쓰게 되었다. 나폴리 동양학 대학교와 작가 교류 프로그램으로 해외 레지던스에 가게 된 것이다. 이탈리아라니. 해외 영화제를 다녀오며 유럽은 두 차례 가봤지만 이탈리아는 경유조차 해보지 못했다. 이탈리아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삼면이 바다인 반도라서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들은 정도다. 그리고 나폴리라니. 지도를 찾아보니 나폴리 동양학 대학교는 학창 시절 음악 시간에 배운 노래인 '산타루치아' 항구 바로 옆에 있었다. 머릿속에 노래가 자동 재생되었다. 

창공에 빛난 별~ 물 위에 어리어~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지원했다는 것도 잊고 지내던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내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 이제 내가 무언가 시도하거나 무언가를 세상에 던지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찾아주지 않는다. 그것이 합격이든 당선이든 선정이든.

선정 소식을 듣고 주변 사람들이 다들 좋겠다고, 부럽다고 하는데, 나는 기쁘기보다는 복잡한 마음에 사로잡혔다. 나는 내 심란한 마음을 분석해 봤다. 이것은 즐기러 가는 여행이 아니라 90일간의 체류다. 해외여행은 그래도 적지 않게 다녔는데, 한 곳에서 일주일 이상 머무르며 '생활'해 본 경험은 없었다. 그래서 외국 생활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선망이 있었다. 관광객이 아니라 현지인들과 생활해 보고 다른 눈으로 한국 사회를 보고 싶었다.

그것은 내가 바란 것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두려워하는 것이기도 했다. 모든 게 익숙한 일상에 안주하고 있는 내게 덜컥 닥친 변화가 스트레스인 것이다. 나는 그다지 새로운 것, 모험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돌아다니는 것도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나는 집돌이로 늘 내 방 모니터 앞에서 키보드와 함께 있다. 그나마 도서관이 나의 출퇴근하는 곳이었지만 추운 겨울을 핑계로 집에 전동책상과 좋은 의자를 마련한 뒤로는 약속이 없으면 거의 집밖에 나가지 않고 있었다.

애초에 그런 내가 왜 레지던스에 지원했을까? 원래 잘 돌아다니던 성격이 아님에도, 코로나 3년 동안의 금지로 인해 좀이 쑤셔 어디든 떠나고 싶었다. 생전 안 보던 여행 유튜버들을 정주행하며 대리 만족하던 차에 나폴리 레지던스 공고를 보고 홀린 듯 신청했다. 게다가 나는 작가 레지던스의 도움을 받은 기억이 있다. 작년 3, 4월 꽃 피는 봄에 주변에 편의점도 없는 원주 토지문화관에 나를 격리했고, 산골에 머무르며 집중해서 장편 소설 『급류』를 쓸 수 있었다.


아직은 내게 미지의 나폴리

내가 스트레스부터 받는 것이 나의 MBTI가 INTJ라서 그런 것인가 싶었다.(MBTI 같은 건 관심도 없고 넌더리 내는 타입이었는데 '우주 최초 MBTI 소설집' 『혹시 MBTI가 어떻게 되세요?』에 참여하며 생각이 달라졌다) 나는 모든 것을 미리 찾아보지 않으면 안 되는 성미를 가졌는데, 앞으로 공부해야 할 어마어마한 정보들에 과부하가 걸린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의 지난 여행은 늘 누군가와 함께였고, 나는 혼자 여행을 즐길 줄 몰랐다. 어디에나 열심히 찾는 사람과 그걸 누리는 사람의 조합이 있다. 나는 언제나 열심히 검색하고 지도를 보는 타입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오롯이 혼자다. 혼자 3개월간 말도 잘 안 통하는 이역만리에서 생활하는 것, 그 외로움이 두려웠다.

또 다른 걱정은 언어다. 나의 영어 실력에 대해서 나는 스스로를 한국 교육 시스템 폐해의 표본이라고 소개하는데, 시험 문제 풀이로 단련되어 듣기와 읽기는 어느 정도 되지만 (이마저도 안 쓴 지가 오래되어서...) 말하기와 쓰기는 창피한 수준이다.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현지에서 두 차례 특강을 해야 한다. 전화를 받은 나는 기뻐하는 내색도 없이 첫마디를 내뱉었다.

"저 언어 문제가... 괜찮을까요?"

수화기 반대편에서 들려온 담당자님의 밝은 목소리가 나를 안심시켰다.

"걱정하지 마세요. 안드레아 교수님이 한국말을 정말 잘하시니까요."

그 순간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반년 전 김민재 선수의 나폴리 입단식에서 통역가의 유창한 한국어 솜씨가 뉴스를 타서 화제가 됐었다. 유튜브에서 영상을 다시 보니 그분이 맞았다! 이런 인연이 있을 수가. 영상으로 미리 접한 분이라 더 반가웠다. 나는 긍정 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나폴리가 더럽고 위험하다는 이야기, 인종 차별과 소매치기에 대한 이야기는 마음을 단단히 먹게 했지만, 다행히 최근 김민재 선수의 맹활약으로 온 도시가 한국인에게 우호적으로 되었다고 한다. 압도적인 성적으로 33년 만의 스쿠데토(이탈리아 리그 우승)를 앞두고 도시 전체가 흥분해 있는 시기에 나폴리를 방문한다니. 어느새 나는 나폴리가 사랑스럽게 느껴졌고 벌써 나폴리 축구팀 삼대째 팬인 나폴레타노(Napoletano, 나폴리 사람)의 마음이 되었다.

지난 몇 년간 슬픈 내용의 장편 소설을 쓰느라 심신이 지쳐 있었다. 게다가 작년은 잘해보고 싶었던 관계들의 어긋남으로 눈물 가득한 해였다. 기대하고, 내게 주어지지 않는 것에 실망하고, 피폐해졌다. 나는 나를 불러주는 곳을 사랑하기로 했다. 결국 나를 찾아주는 곳이 최고다. 그곳이 서울에서 8,964킬로미터 떨어진 이탈리아라 할지라도! 머무르는 유한한 시간을 진정으로 만끽하기로 다짐했다.

그렇다면 그 유한한 시간을 최대한 만끽한다는 것은 어떤 형태여야 할까? 내가 살아온 것과 다르게 살아보기로 했다. 적극적으로 밖으로 나다니고,(집에서는 한 발짝도 나가지 않는 내가?) 사람을 만나고 친구를 사귀기로(한국에서도 친구 사귀기에 서툰데 과연 나폴리에서?) 다짐한 것이다.

나폴리에 대한 사랑을 키우며 '나폴리 4부작'으로 유명한 엘레나 페란테의 소설 『나의 눈부신 친구』를 읽기 시작했다. 동시에 소설을 영상화한 드라마도 봤다. 1950년대의 나폴리가 배경이긴 하지만 시작부터 내내 왜 이렇게 잿빛이고 폭력적인 장면이 자주 나오는지... 다시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유명한 유럽 여행 카페에 들어가 '나폴리'를 검색해보니, 조금 전 휴대폰 소매치기를 당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하소연 글이 올라와 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전부 밤 11시에 도착하는 비행기들뿐이다... 걱정 반 설렘 반으로 나폴리에서의 90일을 기다린다.



급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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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MBTI가 어떻게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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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정대건

2020년 장편 소설 『GV 빌런 고태경』을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소설집 『아이 틴더 유』를 출간했다. 다큐멘터리 <투 올드 힙합 키드>와 극영화 <사브라>, <메이트>를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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