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김 "그 누구도 정신 질환에 예외는 없다"
『아주 정상적인 아픈 사람들』 폴 김 저자 인터뷰
『아주 정상적인 아픈 사람들』은 조현병 환자인 여동생을 암으로 떠나보낸 저자 폴 김이 지난 25년간 정신 질환자 가족들을 돌보며 겪은 이야기를, 미국에서 활동한 저널리스트 김인종과 함께 쓴 책이다. (2022.10.11)
『아주 정상적인 아픈 사람들』은 조현병 환자인 여동생을 암으로 떠나보낸 저자 폴 김이 지난 25년간 정신 질환자 가족들을 돌보며 겪은 이야기를, 미국에서 활동한 저널리스트 김인종과 함께 쓴 책이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이웃,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 부부간에 주고받는 전염병 같은 갖가지 정신 질환을 실화를 바탕으로 생생하게 파헤치고 있다. 무정한 부모 앞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명문대 출신의 젊은이들, 망상에 빠져 칼을 든 청년들, 거리를 떠도는 홈리스들... 현장으로 응급 출동하는 폴 김과 함께, 그들의 역동을, 회복의 기적을, 막지 못한 참변을 가슴으로 읽는다.
현대 사회의 거의 모든 사람이 알게 모르게 정신적 장애를 겪으면서 정신 질환의 거대한 스펙트럼에 포함돼 있다고 하셨어요. 그 사실을 어떻게 깨달았나요?
처음엔 부모님들이 찾아와요. 우리 애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거죠. 대화를 나누다보면 자녀만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유전자의 영향도 있지만 만약 이 부모를, 이런 환경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건강하게 살 수도 있었을 거예요. 부모와 사회가 아픈 아이들을 만드는 경우가 많아요. 가장 약한 사람이 병자가 되는 거죠. 방치하다 병을 키우는 경우도 많았고요.
조현병 환자인 여동생의 사례가 절절하게 다가왔습니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증세가 시작됐다고요.
교회와 집만 오가던 제 여동생은 대학에 가서 문화 충격을 받았어요. 선배들이 고린내 진동하는 농구화에 막걸리를 담아서 마시라고 강권했는데 그걸 거부하지 못하고 마셨대요. 따돌림당할까봐. 87학번이라 시위가 한창이던 때라 학교 가면 전경들이 핸드백의 생리대까지 뒤지고, 교수들은 "교문 밖에서 친구들은 피 흘리는데 너희들은 뭐 하느냐?"고 질타를 했다더군요. 수치심에 괴로워했는데, 가족들이 그 메시지를 제대로 못 읽었어요. 증세가 시작되면서 방에 틀어박혀 온종일 누군가와 얘기를 하더군요. 저를 보고 씨익 웃기도 하고 허공을 향해 큰 소리로 웃기도 했어요. "오빠, 이 소리 안 들려?"하며 맨발로 뛰쳐나갈 때도 많았어요. 그 세월이 10년이었어요.
책에서 많은 가족이 질환을 방치해서 병을 키우는 경우가 많다고 하셨지요. 왜 그렇게 늦게야 병원에 갔습니까?
당시에는 조현병의 증세를 몰랐어요. 환청이나 환각이라는 것도 몰랐죠. 우리 교회 담임 목사는 저희보다 더 몰라서 무조건 기도와 믿음으로 이겨내라고 했어요. 어느 날 동생이 울면서 "오빠, 나 귀신 들린 거 아니야" 애원을 하더군요. 그때 어머니가 병원 얘길 하셨어요.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병원에서 치료받자 평범한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회복됐어요. 하지만 치료 시기가 늦은 탓에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미국의 저명한 정신과 의사인 M. 스콧 펙도 『거짓의 사람들』에서 바로 그 영적인 '악의 실체'를 깊게 파고들었지요. 폴 김 목사님의 치료방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처방전도 없고 기적의 능력도 없지만, 오직 '함께한다'고요?
그렇습니다. 치료 방법과 약이 있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에요.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합니다. '함께함' 그 자체가 필요해요. 고통의 공유죠. 같이 시간을 보내고 옆에서 말을 들어주는 거예요. 뇌질환으로 부모를 구타해서 접근 금지 명령을 받은 아이도 버림받았다고 슬퍼해요. '너 많이 힘들겠다'고 처지를 이해해주고 돌봐줍니다. 고통 받는 부모들도 찾아갑니다. "어머니, 마음 압니다. 저도 지켜봤어요" 이런 '함께함'만으로 가족들이 조금씩 희망의 빛을 발견하고 상태가 나아져요.
책에서 「한국 사회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정신적 질환과 고통이 만연하다」는 수전 오코너 박사의 OECD 보고서를 인용하셨어요. 한국인들은 부부끼리, 부모 자식끼리 그리고 학교 시스템에서조차 정신 질환자들을 양산하고 있다고요. 충격적인 보고였습니다.
LA에 있는 미국인 정신 의학 단체의 슈퍼바이저 세미나에서도 "왜 LA 한인타운의 한인 자살률이 다른 인종보다 4배나 많은가?"라고 의문을 제기했어요. 한인 사망률의 절반 이상이 자살이에요. 가족이 구성원의 우울증을 무시하고 병을 키워서 자살에 이르는 거죠. 제가 장례예식을 인도한 스콧이라는 남자는 겉으로 보면 성공한 기업인이었는데, 추수 감사절 전날 권총 자살했어요. 아내와 친구들이 충격을 받았죠. 제가 보니 유서에 모든 게 나와 있어요. '내가 이렇게 살 자신이 없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잖아'라고. 주변에서 진지하게 듣고 개입했다면 막을 수 있었어요.
모든 걸 가진 것 같은 스타들도 우울과 고통과 자살이라는 연쇄 고리를 피할 수 없더군요. 책에서 김광석의 사례로 죽음의 유혹을 설명했는데, 우리는 그들이 보내는 사인에 실제적으로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자살 충동이 있는 사람은 100퍼센트 '우울하다'는 사인을 보내요. 그때 정확하게 물으세요. "너 혹시 자살할 생각이 있니?", "죽고 싶은 생각이 들어?", "구체적인 방법도 생각한 거야?" 자살하려던 사람에게 기름 붓는 것 같지만, 직면시키면 그 충동이 현저하게 줄어듭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누군가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하면 대충 넘어가지 마세요. 자살을 결심한 사람은 주변부터 정리해요. "이 시계 너 가져라", "내 개 좀 맡아줘라", "우리 집은 나만 없으면 행복할 거야" 이때 타이밍을 놓치지 말고 치밀하게 물어줘야 해요. 언제부터 그랬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그러면 풍선에 바람 빠지듯 자살 의지가 빠져요. 더 심각하면 의사와 상의하도록 조치하고요.
그렇다면 우리는 뇌질환자들과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뇌질환자 부모들이 신기해하며 저한테 물어요. "우리 애가 어떻게 목사님하고는 대화가 되느냐"고요. 저는 제 동생을 겪어봐서 그들을 대할 때 '이상하다'는 생각을 전혀 안 해요. "너 표정이 쿨해서 인기 많겠다" 농담하며 일반인과 똑같이 대하죠. 그들은 상대의 뉘앙스를 전부 읽어요. 바라는 건 부디 신문 방송에서 '조현병이 사람 죽이는 정신병'이라고 자극만 안 했으면 좋겠어요. 미국의 표준 진단 체계인 DSM-5 테스트에 따르면 정신 질환이 아닌 사람이 거의 없을 거예요. 저를 포함해서 모두가 아픈 부분이 있는 환자예요. 다만, 당장 약을 안 먹고 병원에 안 간다는 게 차이죠. 이것만 명심하세요. 그 누구도 정신질환에 예외는 없어요.
*폴 김 1996년 선교사로 미국으로 건너가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LA에서 비영리기관인 정신건강가족미션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28년간 조현병 환자였던 여동생을 암으로 잃은 그는, 평생을 정신 질환자 가족들을 치유하는 데 바치고 있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정신건강가족미션에서는 현재 400여 가정을 돌보고 있다. 신문과 방송을 통해 그의 활동이 널리 알려지면서 그를 찾아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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