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에 새겨진 한없이 따뜻한 여행의 순간들
『파리의 감각』 정연숙 저자 인터뷰
색다른 사유와 감각적인 문장으로 가득한 이 책은 독자들에게 직접 파리를 거니는 듯한 느낌을 선사해줄 뿐 아니라, 나를 사색하는 기쁨을 알려줄 것이다. (2022.09.27)
통번역가인 작가는 평소 불어에 매력을 느끼고 파리를 동경해왔다. 그러다 서른의 문턱에서 큰 실패를 맛보고 홀로 파리로 떠난다.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와 같은 질문이 내면에서 끝없이 떠올라, 파리의 거리를 걸으며 자기를 들여다보았다. 그 과정이 『파리의 감각』에서 말하는 '파리의 감각'이다. 나다운 삶을 찾아 떠난 여행에서 얻은 답은 하나였다.
"나는 언어를 다루고, 매만질 때 행복한 사람이구나."
그리고 에펠탑에서 세계 각국의 다양한 언어를 마주하고는, 자신이 느꼈던 행복감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한국에 돌아와 실제로 37개국의 언어를 번역하는 에이전시를 설립했으며, 쓰는 사람이 되어 이 책을 집필했다. 방황하던 한 인간이 자기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색다른 사유와 감각적인 문장으로 가득한 이 책은 독자들에게 직접 파리를 거니는 듯한 느낌을 선사해줄 뿐 아니라, 나를 사색하는 기쁨을 알려줄 것이다.
『파리의 감각』은 파리 여행에서 경험한 것을 시각, 청각, 미각부터 육감까지 6개의 감각으로 나누어서 쓴 책인데요. 이처럼 '파리'와 '감각'을 연결하게 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파리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제 안에 흘러 들어왔습니다. 파리에 다녀온 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도 이따금 그날의 기억이 불쑥 고개를 내밀곤 했어요. 어떤 날은 벨벳 질감의 몽블랑이, 또 어떤 날은 에펠탑의 선명한 금빛이, 그리고 또 어떤 날은 거리의 음악가의 청아한 음성이 떠올랐어요. 이 기억들을 떠올릴 때마다 머릿속에 그날이 재현되는 듯했습니다. 떠오른 기억들은 어느 한 감각에 치우쳐 있지 않고, 저의 눈, 코, 입, 귀, 살갗에 스며들어 있었고, 심지어 제 영혼에까지 새겨져 있었어요. 그래서 제 육체의 일부이자 인생의 한 챕터가 된 이 여행의 순간을 '감각'을 중심으로 풀어내게 되었습니다.
파리 여행을 하고 난 후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글을 쓰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유가 있을까요?
이 글을 쓰는 데 7년이 걸렸습니다. 그건 파리에서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데 걸린 시간이자, 흩어진 시간들을 살표보는데 꼭 필요한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제 삶에 대해 많이 숙고하고 고민한 끝에 마주한 확신 덕분에 비로소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어요.
사람마다 떠올리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 여행의 순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파리 여행 중에 가장 행복했던, 잊을 수 없는 순간을 꼽자면 언제일까요?
에펠탑을 봤던 밤이 기억에 남습니다. 에펠탑이 내뿜는 강렬한 빛의 연주를 즐겼던 그 순간이 가장 행복했어요. 마치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24번'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었어요. 저는 그 순간을 악마적인 매혹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짜릿한 전율과 거대한 떨림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을 정도니까요.
다른 여행지도 많은데 꼭 파리여야 했던 이유가 있을까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파리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평소처럼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문득 연차를 써서 파리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여행을 갈까? 그럼 어디로 갈까? 이런 순서가 아니라 마치 가야 할 곳이 이미 정해져 있고 때가 되었기에 간다는 사람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게 결정했어요. 오래전부터 가슴에 품어오던 파리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그리움을 시간이 흐른 후에 제 안에서 꺼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파리는 사유를 돕는다"라는 말이 머릿속을 스치는데요. 파리는 도시 자체가 예술품이라고 생각해요. 심오하게 아름답습니다. 예술에는 내면 세계를 건드리는 무언가 있어요. 자신의 심연 속에서 깨닫고 성찰하게 하는 매혹적인 힘이 있죠. 그래서 파리를 걸었던 그 10일 동안 파리의 풍경과 예술이 저도 모르는 사이, 제 안에 부드럽게 흘러 들어온 것 같아요. 그때 제 마음에 사유의 씨앗이 여러 개 심긴 게 아닐까 해요.
이 책에는 '고독'을 바라보는 작가님의 긍정적이고 따뜻한 시선이 녹아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고독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하는데, 작가님께서는 고독을 긍정하고 즐기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어렸을 때부터 기질적으로 고독함을 타고났어요. 저는 이 고독함을 일종의 재능이자 조용한 자산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고독을 부정하기보다 저의 타고난 기질을 활용해 제 삶의 소명을 찾고 싶었습니다. 따뜻하고 유쾌한 방식으로요. 어쩌면 고독은 혼자서 하는 1인 예술이 아닐까요?
작가님께 파리 여행이란 자기 정체성과 원하는 일을 찾게 된 전환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신가요?
저는 아주 오랫동안 혼돈의 시기를 겪었어요. 그런데 그런 마음의 통증도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한발 떨어져서 돌아보니 조금 다르게 느껴졌어요. 마치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파리 전체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인생을 내려다보는 시기가 다가오면 그 시간을 잘 견뎌준 나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독자 여러분도 부디 차가운 어둠 속 한줄기 빛을 발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분들이 『파리의 감각』을 읽으면 좋을까요? 그리고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파리의 감각』은 일반적인 여행기는 아닙니다. 여행 기록에 저만의 사유가 함께 들어가 있는 에세이죠. 자신의 심연 속에 가라앉아서 스스로를 탐색하고 싶은 분께 이 책을 추천드립니다. 나와 함께 하는 여행 그리고 깊은 사유, 그 감미로운 사유가 파리를 배경으로 펼쳐진다고 생각해보세요. 근사한 기분이 들지 않나요?
*정연숙 일어일문학을 전공한 뒤, 인하우스 통역사를 거쳐 지금은 통번역 에이전시를 운영하고 있다. 아침 커피와 비 냄새, 고요한 밤공기, 그리고 프랑스 화가 오딜롱 르동의 서정성을 좋아한다. 이성의 언어로 가득 찬 세계에서 언제나 감성에 목말라했다. 그러다 감각적인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시간에 정신적 풍경을 바꾸는 해갈의 능력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글을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글을 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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