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수학자 파스칼이 쓴 미완의 걸작 『팡세』
『팡세』 김화영 교수 인터뷰
무엇보다도 『팡세』의 ‘수사학적 차원’과 ‘과학적 차원’을 살려내고자 했습니다. 제 번역의 목표는 수사학적 차원에서 파스칼이 기획한 그대로의 『팡세』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2022.07.11)
『팡세』는 미완의 유고작임에도 당대를 넘어서 보편성을 획득한 고전의 반열에 들었다. 서구의 수많은 지성인이 탐독하고 영감을 받았다. 그 영향력의 핵심은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치열하게 탐구하고 그 해법을 제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춘기 시절에 한 번쯤 생각해 보았을 우리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파스칼의 안내와 더불어 다시 시작해보아도 좋겠다.
『팡세』는 위대한 고전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안 읽는 게 고전이라는 말도 있듯이 막상 『팡세』를 제대로 읽은 독자도 많지 않은 듯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가장 주된 이유는 『팡세』가 철학, 신학, 수사학, 논리학, 기하학, 물리학 등 광범위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미완의 유고작이기에 온전한 이해를 위해 보다 상세한 해설이 필요합니다.
『팡세』가 유명한 고전이기에 국내에 소개된 번역도 많습니다. 이번 『팡세』 번역의 차별성이 어디에 있습니까?
무엇보다도 『팡세』의 ‘수사학적 차원’과 ‘과학적 차원’을 살려내고자 했습니다. 제 번역의 목표는 수사학적 차원에서 파스칼이 기획한 그대로의 『팡세』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팡세』는 불신자를 신앙으로 인도하려는 분명한 수사학적 목적에 따라 ‘탈선의 논리’라는 특이한 전략을 사용합니다. 핵심 주제들을 여러 곳에 포진시켜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고 설득하는 방식입니다. 이를 번역에 담는 동시에 독자가 이 논리를 잘 따라오도록 장별로 맥락과 요점을 제시하는 설명과 미주를 덧붙였습니다.
아울러 『팡세』에는 수학자 파스칼의 면모가 담겨 있습니다. 과학 활동 속에 형성되었을 파스칼의 지적 태도와 사고의 메커니즘이 작품 속에 녹아있기에 과학적 저작과의 연계를 고려해야만 명확한 의미가 드러나는 지점들이 많습니다. 과학적 사유의 인문학적 변용 과정, 다시 말해서 ‘융합적 사유’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메시지를 살려내려고 했다는 점에서 기존 번역과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팡세』는 알려진 것처럼, 미완의 걸작입니다. 더욱이 단편들로 이루어진 모음집입니다. 어떻게 읽어야 제대로 읽을 수 있을까요?
단편들로 이루어졌으나 독립된 조각 글이 아니라 치밀한 구성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파스칼의 수사학적 의도를 따라 그가 직접 분류한 순서대로 읽어 가면서, 반복되는 주제들을 만날 때는 표시를 해두고 앞에서 읽은 부분을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방식의 독서는 다소 수고스럽지만, 뒤로 갈수록 모호했던 의미를 채우게 되고, 인생의 근본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팡세』의 저자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뜬 비운의 천재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 천재이며, 인류 문화에 어떠한 영향을 남겼는지 궁금합니다.
파스칼의 업적은 주로 과학 분야에서 두드러집니다. 오늘날 우리가 계산기를 사용하고 자동차를 안전하게 운행하고 확률을 적용하여 미래를 예측할 때 파스칼의 덕을 보고 있습니다. 16세에 「원추곡선 시론」을 발표하여 당시 수학계를 놀라게 하고, 22세에 아버지를 돕기 위해 기계식 수동 계산기를 발명합니다.
그리고 물리 실험 중에 오늘날 자동차에 사용되는 유압 브레이크의 기초가 되는 ‘파스칼의 원리’를 발견합니다. 또한, 중단된 도박의 판돈을 공정하게 분배할 방법을 문의한 사교계 인사를 위해 '산술삼각형'을 활용하여 해법을 찾았는데, 여기 적용한 확률 개념이 인식의 혁신을 가져왔습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합리적 수단인 확률에 대한 이해는 근대와 전근대를 나누는 지표가 됩니다.
저자에 대해 하나 더 여쭙고 싶습니다. 파스칼이 생의 마지막까지 열정을 불살라 『팡세』 집필과 구성에 힘쓴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요?
파스칼은 어릴 때부터 병으로 아파하면서도, 실험과 발명으로 이어진 과학 활동과 신학 논쟁에 가담하는 등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인생의 정점에서 돌연 허무감을 느낍니다. 고뇌의 시간 속에서 성경을 상고하던 중, 회심을 경험합니다. 31세에 겪은 이 경험이 『팡세』 집필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가 만났던 사교계 사람들의 신앙적 편견을 바로잡고 기독교가 반이성적이라는 오해를 풀어주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신을 찾아야 진정한 행복이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던 겁니다.
역자분은 평생 『팡세』를 연구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 연구에 뛰어들게 되었습니까?
고교 수학 시간에 우연히 파스칼을 알게 된 이후, 그가 과학과 인문학, 과학과 신앙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시작된 사소한 고민이 결국 연구의 동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질병이라는 공통분모가 작가와 저를 묶는 특별한 유대감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질문 드립니다. 이번 번역은 『팡세』 가운데 ‘분류된 단장’ 편에 해당합니다. 미분류된 단장들을 보지 않아도 파스칼의 사유를 충분히 향유할 수 있을까요?
물론, 분류된 단장만으로 파스칼의 사유를 온전히 향유하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이 번역으로 『팡세』의 전체 흐름과 독특한 구성 원리를 파악하고, 이를 통해 미분류 단장들을 이해하고 재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화영 17세기 프랑스 문학과 문화를 사랑하는 파스칼 연구자. 2006년에 『팡세』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줄곧 파스칼 연구에 전념해 많은 논문을 썼다. 특히 「『팡세』에 나타난 사영기하학(射影幾何學)의 인문학적 가치」로 2014년 한국불어불문학회 소현학술상을 수상했으며, 저서로는 『프랑스 문학의 이해』(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공저)가 있다. 고려대학교 번역과레토릭연구소 연구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동대학 불어불문과에서 프랑스어, 프랑스 문학과 문화를 강의한다. 또한 마하 예술원에서 시민들과 함께 프랑스 예술과 문화에 대해 나누는 등 교양의 대중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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