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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보미의 오늘밤도 정주행]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 - 오피스
<월간 채널예스> 2022년 3월호
그들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지만, 시간을 결을 따라, 어쩔 수 없이 서로를 사랑하고 있는 중이므로. (2022.03.03)
내가 미국 드라마 <오피스>를 처음 본 게 언제였더라? 음…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충 2006년도 정도? 그렇다면, 내가 <오피스>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봤더라? 음…그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막연하게, 아주 자주? <오피스>는 제지 회사 ‘던더 미플린’ 펜실베니아 스크랜튼 지점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모큐멘터리 형식의 드라마이다. 등장인물들은 때때로 카메라 앞에 앉아서 진짜 마음이나 처지를 이야기하는데, 2011년에 내가 쓴 소설 『그들에게 린디합을』은 아무래도 이 드라마의 형식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은 것 같다.
각설하고,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이클 점장(이하 마 점장)을 처음 봤을 때의 인상을 기억하고 있다. 아,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지? 이상한 농담을 던지고, 지위를 이용해서 직원들을 조종하고(하지만 항상 실패하고), 온갖 이유로 하루에도 몇 번씩 직원들을 회의실로 불러모으는 마 점장. 게다가 모든 게, 그저 사랑받고 싶어서 하는 행동들이라니. 마 점장만 이상한게 아니다. 코가 너무 앙증맞게 생긴, 맨날 강한 척을 하지만 맨날 당하고 사는 드와이트, 음식을 다람쥐처럼 먹고 차가운 얼굴로 막말하는 안젤라, 사무실에서 옷을 훌렁훌렁 벗어대는 각종 중독자 메러디스, 개인주의가 극에 달한 스탠리… 아, 나 이 드라마, 도저히 못 볼 거 같아! 하지만 놀랍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누구보다 이 드라마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나는 결국 ‘던더 미플린’ 스크랜튼 지점에서 일하는 모두를 사랑하게 된다.
그 모두를? 아니다. 나의 사랑을 받지 못한 스트랜튼 지점의 직원도 있다. 나는 호오가 분명하고, 한번 싫어하게 된 사람(이든 사물이든 그게 뭐든)을 다시 좋아하게 되는 법은 거의 없는 사람이다. <오피스>에서 오랫동안 내 눈 밖에 난 등장인물들은 바로 접수원인 팸과 유능한 세일즈맨인 짐이다. 팸은 같은 건물 1층 물류 창고에서 근무하는 로이와 연애 중이다. 로이는 그리 좋은 남자는 아닌 것 같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아무렇게나 팸을 깎아내리고, 몇 년째 약혼만 유지하며 결혼은 차일피일 미룬다. 그리고 짐은 팸을 짝사랑하고 있다. 나도 짝사랑을 해 본 적이 있다. 심지어 애인 있는 남자를 짝사랑해본 적도 있다. 하지만! 짐과 팸은 사무실에서 시도 때도 없이 시시덕거리고, 종래에 짐은 팸에게 고백을 하지만, 팸은 갑자기 좋은 친구 어쩌고 하면서 짐의 마음을 거절한다. (내 기억이 맞다면) 시즌3에서 짐은 다른 여자를 사귀는데, 그건 분명히, 팸을 질투하게 만들기 위함이다(여하튼 내가 보기엔 그랬다). 그런 식으로 짐이 다른 여자를 사귀니까 팸은 갑자기 짐을 뺏긴 듯한 기분을 느낀다. 어쩌고 저쩌고 이런 저런 과정으로 거쳐서 그들은 결국 연애를 시작한다. 나는 이 둘이 정말 꼴불견이라고 생각한다. 어휴, 착한 척은 다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참 아무렇지도 않게 상처를 잘 주네!
그리고 세월이 흐른다.
팸과 짐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둘 낳는다. 사무실의 라이언과 켈리는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한다. 라이언은 본사의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다가 추락해서 다시 스크랜튼으로 돌아온다. 오스카는 게이인 사실을 아웃팅 당한다. 팸은 접수원에서 (그토록 되고 싶었던)영업사원으로 진급하지만, 자신의 적성이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사무실 관리자로 다시 승진(?)한다. 새로운 접수원인 에린이 온다. 마 점장은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고, 그녀와 인생을 함께 하기 위헤 스크랜튼을 떠난다(이때 나는 불안해진다. 마 점장이 없이 이 드라마가 계속될 수 있을까? 물론 그렇게 되었다. 마 점장이 떠나고 이 드라마는 두 시즌이 더 진행된다). 안젤라와 드와이트는 계약 연애를 한다. 안젤라는 주 상원위원과 결혼을 하지만 게이인 상원위원과 오스카는 바람을 피운다. 앤디가 점장이 되고, 사무실은 이상한 방향으로 자꾸 흘러간다. 짐은 스크랜튼이 너무 답답하고 자신은 더 큰 일이 하고 싶다며 애틀랜타에서 대학 친구들과 동업을 시작하고 팸과 아이들에게 소홀해진다.
마지막 시즌인 시즌9에서 짐과 팸의 부부 생활은 위기에 봉착한다. 그리고 그들이 그런 식으로 위기에 처한 것 때문에 내 마음이 아파진다. 찢어질 듯이 아프다. 그건 정말 이상한 경험이었다. 나는 짐과 팸이 싸우고 갈등하는 걸 보면서 어쩐지 그 시절, 그들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그 시절을 떠올리고 있었다. 비바람을 맞으며 청혼을 하던 그 시절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들이 부디 그 시간들을 상기하게 되기를, 그리하여 그 시간을 그들의 삶에서 저 멀리 던져버리지 않기를, 계속해서 간직하게 되기를 바랐다. 그러니까, 나는 그들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건 아주 자연스럽게 일어난 일이었다. 아마도 내가 그들의 삶을 너무 오래동안 지켜봐왔기 때문이리라. 물론 여전히 나는 그들이 사랑을 이룬 그 과정들을 모두 다 이해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때때로 그런 생각을 한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과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라고.
이 드라마의 명장면은 너무 많지만, 이 장면을 말하고 싶다. 사무실에 홀로 남은 팸이 짐과 전화로 싸운 후 울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봐요, 괜찮아요?” 그건 그 기나긴 시간-무려 9년동안 카메라 뒤에서 던더 미플린 사람들을 찍고 있던 스태프 중 한 명이다. 그건 참 새삼스러웠다. 아, 그렇구나. 저들을 찍고 있던 사람들이 있구나, 보이지 않는 곳에, 카메라 뒤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있었구나. 9년 만에 처음으로 목소리와 얼굴이 등장한 그는 팸에게 당신은 아무 잘못이 없다고, 그냥 지금은 좀 힘들 뿐이라고 위로를 건넨다.
이 드라마를 끝까지 본 사람들은 다들 그렇겠지만, 피날레 에피소드를 보는 내내 나는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들의 삶을 다시 볼 수 없다니. 팸은 자신들이 <오피스>라는 모큐멘터리를 찍었던 시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결말에 다다르기 싫은 두꺼운 책을 읽는 것과 비슷해요. 계속 붙들고만 있어도 좋아요. 책을 결코 덮고 싶지 않으니까요.” 결말에 다다르기 싫은 두꺼운 책. 이것보다 이 드라마를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 책을 붙들고만 있을 수는 없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오피스>라는 책을 덮었지만, 그 이후에도 던더 미플린 사람들의 삶은 계속 되고 있으리라고 믿고 싶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엉뚱한 노력을 하고, 말도 안되는 결론에 다다르고, 사소한 일로 서로에게 삐졌다가 조그마한 계기로 풀어지고, 그래도 마음의 앙금을 여전히 간직한다. 그들에게 이런 일상은 계속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기 때문에. 서로 너무 달라서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래도 그들은 서로에게 멀어지지 않고 여전히 우당탕당 던더 미플린에서 북적북적거릴 것이다. 왜냐면 그들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지만, 시간을 결을 따라, 어쩔 수 없이 서로를 사랑하고 있는 중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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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와 빵을 좋아하는 소설가. 『디어 랄프 로렌』,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맨해튼의 반딧불이』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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