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그래도 다정한 사람은 좋습니다 (G. 김현 시인)
책읽아웃 - 황정은의 야심한 책 (233회) 『다정하기 싫어서 다정하게』
(다정이란) 저한테는 어떤 상태여서, 다정한 것이 아주아주 넘치는 상태도 있고 그것이 아주 부족해지는 상태도 있고 그 중간의 상태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 상태를 왔다 갔다 하면서 더 다정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기도 하고 덜 다정한 상태가 되어보려고 노력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2022.02.24)
“용기와 자유와 박수와 키스를 남들처럼 귀하게 여겼던 그들은 나와 당신 곁에 살고 있었다, 살고 있다.”
안녕하세요, 소설 쓰는 황정은입니다. 오늘은 김현 시인이 쓴 산문 「한 사람을 위한 마음」으로 <야심한책>을 열었습니다.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이란 결국 나를 세우는 마음”에서 출발한다고 김현 시인은 쓰는데요.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이 어떻게 생겨나 지속되고 변화하며 어디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탐구한 이 긴 문장의 끝은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모든 사랑은 자기에서 출발해 타인을 경유하고 마침내 우리에게 도착한다.” 오늘은 이 문장을 쓴 작가, 다정해서 다정하기 싫지만 다정하기 싫어서 다정한 김현 시인을 만나보겠습니다. <황정은의 야심한책> 시작합니다.
오늘 모신 분은 “봄에는 뭐 하세요”라는 물음에 “사랑, 하죠”라고 답하겠다는 시인입니다. 산문집 『다정하기 싫어서 다정하게』를 쓰신 김현 작가님 모셨습니다.
황정은 : 작가의 말에서는 ‘다정해서 다정하기 싫은’ 두 사람을 상상을 하셨고, 제목을 또 『다정하기 싫어서 다정하게』로 지으셨습니다. 작가님에게 다정이란 어떤 것인가요.
김현 : 생각을 조금 해봤는데요. 그냥 약간 ‘상태’라고 생각을 했어요. 어떤 상태. 다정한 사람이라고 얘기를 하면 굉장히 고정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묶여 있고 고체처럼 딱딱하게 굳어있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저한테는 그런 거라기보다는 어떤 상태여서, 다정한 것이 아주아주 넘치는 상태도 있고 그것이 아주 부족해지는 상태도 있고 그 중간의 상태도 있고, 그런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 상태를 왔다 갔다 하면서 더 다정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기도 하고 덜 다정한 상태가 되어보려고 노력하기도 하는 것 같고. 그래서 어떤 상태라는 생각을 했어요.
황정은 : 고체랑 연결해서 생각하셨다고 했는데 말씀 듣고 보니까 액체나 기체 쪽으로 상상을 하시게 된 것 같네요.
김현 : 네.
황정은 : 그런데 어떻게 해서 다정을 고체랑 연결해서 생각을 하셨어요?
김현 : 산문집 낼 때마다 똑같은 산문이라는 형식이 있긴 한데 매번 다른 걸 쓰려고 했던 것 같아요. 『걱정 말고 다녀와』부터 시작해서 그 뒤에 나왔던 산문들의 전체가 다 제가 쓰고 묶을 때는 다 다른 책이라는, 산문의 형식을 갖고 있지만 조금씩이라도 다르다는 생각으로 묶었던 것 같거든요. 『다정하기 싫어서 다정하게』의 원고를 쓸 때, 연재로 시작을 했는데, 어떤 글을 써야 될지가 약간 물음표였어요. 제가 그동안에 써왔던 대로 그냥 산문을 쭉 쓰는 건 아닐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들었고 재미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좀 든 거예요. 그런데 제가 앞서 낸 여러 권의 책 때문에 가장 많이 듣는 게 ‘다정한 시인 김현’ ‘다정한 작가 누구’ 이런 수식이었어요. 근데 그 수식에 갑자기 물음표가 지어지기 시작한 거예요. 내가 정말 다정하기만 한 사람인가? 아닌 걸 써봐야 되겠다. 다정하지 않은 상태의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작가인지에 대해서 고민했고, 그거에 대해서 쓰면 다정한 시인이 그동안 써왔던 글과는 다른 글이 나오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가지고. 그래서 대체로 연재할 때는 다정하지 않게 글을 썼거든요.
황정은 : 네, 그건 좀 느껴졌어요. (웃음)
김현 : 그렇죠. (웃음) 약간 좀 거칠게, 그냥 막 생각나는 대로, 의식의 흐름대로, 그냥 튀어나오는 말이 있으면 그걸 정제하지 말고 그냥 다 쓰자, 그렇게 쓴 것 같아요. 사실 제목 정할 때는, 책은 상품이니까 ‘상품성 있는 제목’이라는 것이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같이 편집했던 분하고 상의를 했는데 여러 가지 제목들이 있었어요. 더 거친 제목들도 있었는데 ‘싹수’ 이런 것도 있었는데... (웃음)
황정은 : 소제목으로 들어가 있죠.
김현 : 네, 소제목으로는 들어가 있는데...
황정은 : 싹수... 난 좋은데. (웃음)
김현 : (웃음) 이런저런 제목을 고민하다 보니까, 애초에 제목으로 쓸 수도 있겠다 하고 적어놨던 게 바로 그냥...
황정은 : (지금의) 이 제목이었군요.
김현 : 네, 이 제목이 됐고. 또 마침 다정이라고 하는 키워드가 굉장히 많이... 출판계에 책들이 많이 나와 있었잖아요.
황정은 : 요즘 많이들 관심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김현 : 네, 그런 것 같아요. 그 결이랑은 조금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다정이라는 말이 들어간 책 제목을 고르기도 한 것 같아요.
황정은 : 아까 ‘덜 다정한 상태’라고 아까 말씀하셨는데. 저는 ‘덜 다정한 상태’라는 게 좀 더 많이 필요해진 시기이기도 한 것 같아요. 다정도 필요하지만 덜 다정해야 할 때 덜 다정함을 선택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이 더 필요하기도 한 것 같아요.
김현 : 맞아요. 약간 다정에 대한 강박 같은 것들이 생기잖아요. 유행 같이, 다정해야 되고 다정해야만 하고...
황정은 : 그렇죠. 그래도 다정한 사람은 좋습니다. (웃음)
김현 : 네, 저도요. (웃음)
황정은 : 「간절한 마음」에서는 식빵을 날리고 싶은 순간에 대해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주 ‘식빵’을 하시는 편인가요.
김현 : 아니요, 자주 안 하고요. 오히려 안 하는 편인 것 같아요.
황정은 : 네, 입 밖으로?
김현 : 입 밖으로도 그렇고... 내적으로도 간혹 하지만 아주 자주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황정은 : 그래요. ‘덜 다정한 상태’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마음이 반영이 돼서 그런지, 이 글에서는 제가 쓰지는 않았지만 식빵의 순간을 여럿 만났거든요. (웃음)
김현 : (웃음) 이 책에 들어가 있는 식빵의 순간들이 거의 전부인가?
황정은 : 아, 여기에서 다 터셨군요.
김현 : 잘 안 하는 것 같고. 그냥 최근에는 대선 토론 같은 거 볼 때나 올림픽 편파 판정 같은 거 볼 때나 그럴 때인 것 같고. 그리고 사건 사고 나는 것들 보면 그건 너무 당연히 욕을 할 수밖에 없어가지고 식빵의 순간 같지도 않은 순간들 있잖아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최근에는 나한테 내가 식빵을 먹여야 되겠다 라는 생각을 좀 하긴 했었던 것 같아요. 너무 게을러서.
황정은 : 좀 게으르면 어때요.
김현 : 근데... 안 게을러야 할 때 게을러지는 것 같아서. 이를테면 마감을 앞두거나 글을 써야 할 것이 있는데 그걸 하지 않고 다른 걸 하는 거예요. 그건 게으른 거랑 좀 다른 것 같긴 한데, 아무튼 점점 더 글 쓰는 게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듯한 느낌? 그러니까 잠을 더 자고 싶고 그냥 좋아하는 사람들 만나서 잊고 싶고 그 뒤에 하고 싶은 거가 되는 듯한 느낌이 좀 있는데, 그게 어느 순간에 현타가 좀 오더라고요. ‘네가 이래도 되니?’라는 느낌으로. 글을 쓰는 것이 잠을 자는 것보다 우선인 때도 있었고 사랑을 만나는 것보다 우선인 때도 있었는데 그걸 계속 후순위로 밀어놓는 것, 그래도 되나 라는 생각도 들고. 그러면 약간 ‘뭐 하는 거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황정은 : 저는 될 것 같은데.
김현 : 되나요?
황정은 : 네. 김현 작가님은 작업을 대단히 많이 해오셨고, 이제 좀 게으름 좀 해도 괜찮지 않나요. 저희 지난 시간에 다녀가신 안희연 작가님이 방전의 시간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방전이 돼야 네온에 불이 들어온다면서요. 그런 시기이기 때문 아닐까요?
김현 : 맞아요. 이런 얘기 들으려고 이런 소리 하고 다녀요. (웃음)
황정은 : (웃음) 다 계산해두시는군요, 큰 그림. 좀 쉬셔도 될 것 같아요. 「누구나 아무나 기억하기」에서는 누구나 써도 되지만 아무나 쓰면 안 되는 이야기, 라는 말을 쓰셨더라고요. ‘아무나’는 무엇을 어떻게 쓰는 사람일까요?
김현 : 약간 감수성 같은 것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이제 정말 누구나 글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더더군다나 이제는 등단이라고 하는 것의 시스템에 문제 제기도 하고 그것을 거치지 않고도 자유롭게 글을 쓰고 책을 만들 수 있는 시대잖아요. 그래서 누구나 그렇게 다 쓸 수는 있지만, 어떤 인권 감수성이나 성인지 감수성이 결여된 채로 그리고 그것이 한 번도 변하지 않고 자기가 갖고 있는 어떤 사고를 영원히 변하지 않는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딱딱하게 굳어진 채로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쓰는 글이 아마도 아무나가 쓰는 글이라는 생각이 좀 들고요. 이를테면 망언하는 분들 많잖아요. 세월호나 5.18이나 이런 역사적이거나 비극적 사건에 관해서 망언하고 그 망언을 그대로 글로 옮겨서 책으로 만드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 사람들은 아무나일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은 글을 쓰지 않아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고, 그리고 미투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미투 이후에 아주 잠시인 것 같은 변화의 시간들이 있었고 그것에 맞춰서 어떤 사람은, 가해자이겠죠, 가해자들이 잠깐 숨었다가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아무렇지 않은 척 책을 내는 경우도 왕왕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사람들의 글을 ‘아무나’라고 칭해도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황정은 : 그런데 저는 그 문장을 읽으면서 많은 사람이 뜨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그랬거든요.
김현 : 네, 저도. (웃음)
황정은 : (웃음) 그러네요. 우리가 다 그런 가능성도 다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고, 미처 모르고 저지른 뭔가도 있을지 모르고.
김현 : 맞아요.
황정은 :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질문을 꼭 해보고 싶었습니다.
김현 : 그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미처 내가 모르고 그럴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라고 하는 거를 인식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어떤 사건이나 혹은 전환점 같은 것을 계기 삼아 가지고 그걸 인식하고 고민하고 또 그 이후로 나아가고. 근데 그것이 다 생략되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김현 1980년 출생. 2009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시 「블로우잡Blow Job」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김준성문학상,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글로리홀』, 『입술을 열면』, 『호시절』 등, 산문집으로 『걱정 말고 다녀와』, 『아무튼 스웨터』, 『질문 있습니다』, 『당신의 슬픔을 훔칠게요』, 『어른이라는 뜻밖의 일』, 『당신의 자리는 비워 둘게요』 등이 있고, 앤솔러지 소설집 『새벽의 방문자들』, 『인생은 언제나 무너지기 일보 직전』 등에 참여했다. 2012년 짧은 영화 [영화적인 삶 1/2]를 연출했다. 2021년 『낮의 해변에서 혼자』 시집을 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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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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