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포자였던 영문과 교수가 수학과 코딩을 가르치게 되기까지
『수학을 읽어드립니다』 남호성 저자 인터뷰
'수포자' 여러분께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우리가 그토록 싫어 했던 건 '수학'이 아니라 '수능 수학'이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오늘부터라도 '문과', '수포자'와 같은 우리를 규정지었던 단어들에서 벗어나 '나 안에도 수학의 유전자가 있었구나!'를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2022.01.18)
‘수포자’라는 단어는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대다수의 학생들에게, 또 학창 시절을 거쳐 온 많은 사람들에게 어느새 너무도 익숙한 용어가 되어버렸다. 왜 우리는 수포자가 되어야만 했을까? 이대로 수포자가 된 채 살아가도 괜찮은 걸까? 여기, 대학교 영어영문과 수업 시간에 이미 수포자 바이러스에 걸려 있을 대부분의 문과생들을 상대로 수학을 가르치는 별난 교수가 있다.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이자 예일대학교 해스킨스 연구소 시니어 과학자인 저자는 매일 수학을 공부하며, 학생들에게 함수와 미분, 행렬과 벡터 같은 수학을 가르친다. 그는 어쩌다가, 도대체 왜, 이런 일을 하게 된 걸까?
『수학을 읽어드립니다』는 학창 시절 수학이 싫어서 자발적인 수포자의 길을 선택, 문과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다가 언어공학이라는 학문을 연구하면서 뒤늦게 수학의 매력에 빠져버린 남호성 교수가 쓴 색다른 수학 자기계발서다. 이 책은 지금까지의 자신의 경험담을 토대로 이 시대에 수포자로 살아가고 있는, 또 앞으로 수포자가 될지도 모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수학의 쓸모는 물론 우리가 왜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해 일깨우고, 앞으로 인공지능 시대 꼭 알아야 할 핵심 수학에 대해 짚어준다. 무엇보다도 수포자들을 매혹시켰던, 문과생들도 극찬한 강의 방식을 그대로 구현하여, 수학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고 재미있게 쓰였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서 학생들 가르치고 있습니다. 동시에 예일대학교 소속 해스킨스 연구소 시니어 과학자이기도 합니다. 아, 제일 중요한 건 미디어젠 AI 연구소인 NAMZ에서 많은 문과생들과 함께 언어 관련 AI 제품을 상용화하는 데 매진하고 있습니다.
‘수학과 코딩을 가르치는 별난 영문과 교수’라는 소개가 눈에 띄어요. 어떻게 전공과 상관없는 수학을 가르치게 되신 건가요?
먼저 질문이 잘못된 것 같아서 바로 잡겠습니다. 수학과 관련 없는 전공은 없습니다. 모든 전공은 수학과 관련이 있습니다. 관련을 안 시킬 뿐이죠, 몰라서. 그렇다면 왜 제가 그걸 하고 있냐고요? 먼저 취업 때문입니다. 문과의 낮은 취업률과 낮은 취업질을 높이기 위해 수학을 적극 이용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수학의 눈을 통하여 우리 인문학을 더 깊이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언어공학자의 길로 들어선 후 처음으로 수학과 코딩을 가르쳤을 때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신기해 하는 사람도 있었고 높게 평가하는 사람도 있었고 왜 이런 걸 배우냐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대다수는 반신반의하면서 하면 얼마나 하겠냐는 반응이 지배적이었죠.
고등학생 시절 작가님 스스로 ‘자발적 수포자’를 택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선택지가 주어졌을 때 더 쉬운 쪽을 택한 것 같습니다. 어려운 쪽을 택했을 때의 장점을 볼 수 없었던 게 돌이켜 보면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수학도 영어나 국어처럼 선택지를 주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중요성을 알아도 유독 수학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문과생들이 많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수학과 친해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취업에 대한 선택폭을 넓혀 준다는 것과 취업의 질을 높여 준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또한 수학하면 할수록 숟가락, 가위와 같은 하루도 없이 지낼 수 없는 도구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나아가 눈을 하나 더 가진 느낌까지 드니 수학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수학에 대한 나의 감정과 판단이 문과라는 이름의 집단의식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지는 않나, 다시 한번 돌아볼 필요는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융합의 시대에 서로 이질적인 학문이 만나서 화학적 반응을 가능케 하는 게 수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수학과 코딩에 새롭게 눈을 뜨고 나타난 변화들이 있을까요?
수학을 자발적으로 공부하면서부터 주변의 많은 것들을 수학의 틀로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예를 들어 “난 이제 내일부터 조금은 달라질 것만 같아요.” 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이 가사를 함수와 미분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시간을 입력으로 하고 삶의 상태를 출력으로 하는 함수, 시간의 변화(지금~내일)가 삶의 변화에 미치는 영향력을 미분으로 말이죠. 이렇게 보면 “행복”이란 현재 삶의 상태가 아니라 이 미분 값을 양으로 유지하는, 즉 오늘보다 나아진 내일의 삶으로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코딩은 삶을 게으르게 만듭니다. 부지런한 게 늘 좋은 건만은 아닌 것 같아요. 게으르고 싶은 욕구가 코딩의 동기이고 이게 결국은 문명의 진보와 맞닿아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때 컴맹이란 말이 있었습니다. 컴퓨터를 쓸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하는 사람을 구분 지었습니다. 이제는 휴대폰으로 많은 사람들이 AI를 적극적으로 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컴퓨터를 쓰는 게 큰 무기는 아닌 셈이죠? 대신 코딩을 문이과 불문하고 사회에서 크게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토익 점수처럼 말이죠. 앞으론 (지금도 그렇지만) 수학을 잘 '이용'하는 사람이 대세가 되는 건 자명합니다.
그래서 '수포자' 여러분께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우리가 그토록 싫어 했던 건 '수학'이 아니라 '수능 수학'이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오늘부터라도 '문과', '수포자'와 같은 우리를 규정지었던 단어들에서 벗어나 '나 안에도 수학의 유전자가 있었구나!'를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남호성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이자 예일대학교 해스킨스 연구소 시니어 과학자다. 2000년 삼성 SDS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예일대학교 언어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세계 최고의 언어지능 연구소인 해스킨스에서 다년간 미정부 산하 프로젝트를 주도해왔다. 2014년 한국으로 돌아와 남즈(NAMZ) 연구소를 설립하여 언어 관련 AI 기술인 자동차, 콜센터, 키오스크, 언어 학습 등에서 쓰이는 음성인식, 음성합성, 대화처리 엔진을 개발하고 상용화하고 있다. 특히, 남즈 연구소는 인문계 학생들을 수학과 코딩을 겸비한 융합형 인재로 양성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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