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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은의 가끔은 좋은 일도 있다] 연재를 마무리하며

<월간 채널예스> 202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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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몰랐던 마음에 대해 주로 글을 짓고 음악을 만들며 살아왔더니 언젠가부터 삶의 균형이 잘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아름다운 풍경이 스쳐 지나간다고, 성공의 시간이 잠시라고 해도, 그게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닌데요." (2021.12.02)


안녕하세요?

1년간 ‘가끔은 좋은 일도 있다’를 연재한 오지은입니다. 한 해 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해가 갔습니다. 그럼 한 해가 가지, 안 가? 하고 되묻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신기하게 이런 새삼스러운 것에 한 템포 멈추게 됩니다. 한 해가 가는 게 신기한 일도 아닌데 해를 거듭할수록 왜인지 아, 하고 잠시 멈추게 되어요. 아, 또 가는구나, 하고요. 그 ‘아’ 속에 자잘하고 설명하기 힘든 마음이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에게 2021년은 어떤 한 해였을까요. 무엇을 기준에 두느냐에 따라 많이 다르겠죠. ‘가끔의 좋은 일’에 대해 쓰는 글이니 저도 올해의 좋은 일만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느슨한 채식을 시작했습니다. 어제는 끝내주는 채소 샤브샤브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중간에 두부김치 만두를 넣었고, 마지막에는 떡국 떡을 넣어서 근사한 채소 육수에 푹 익은 말랑한 떡을 먹었어요. 스트레칭 수업도 계속 듣고 있습니다. 여전히 엘라 피츠제럴드의 목소리와 함께 다리를 찢고 있어요. 이제는 각도가 상당히 나오는데 어제는 다리를 찢은 상태에서 무려 처음으로 이마가 바닥에 닿았습니다. (현수막을 걸고 싶은 기분입니다) 그리고 지금 집으로 이사 온 지 6년, 드디어 찬장을 한 칸씩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삿날 대충 막 쑤셔 넣잖아요? (아닌가요?) 저는 정리를 하지 못하고 계속 더 쑤셔 넣기만 하고 살아왔거든요. 어떤 경우에는 내 삶의 흐름을 잡을 수 있어서 이 락앤락은 여기에 넣고, 이건 낡았으니 버리고, 이건 자주 쓰니까 여기에 두고, 이런 일을 가볍게 처리할 수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뚜껑을 맞추는 일조차 할 수 없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넣고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그렇게 오래 지내다가 올해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찬장을 열기 시작했어요. 한 번에 딱 한 칸씩이요.

고백하자면 저는 인생의 좋은 순간을 강조하는 글이나 작품에 대해 약간의 심술이 있었어요. 좋고 맑은 기분이란 잠시 스쳐 가는 산들바람 같은 것이고 대부분의 시간 구겨진 마음으로 살고 있을 텐데 (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 왜 방구석 소파 뒤 먼지 같은 마음에 대해선 말하지 않지? 오히려 그 먼지가 항상 존재하지 않아? 환기는 10분이잖아? 하고 혼자 허공에 심통을 부렸어요. 목적지에 도착하는 지리한 시간이나, 도착하지 못하는 더욱 지리한 시간에 대해서 세상이 생략하길 좋아한다고 생각했어요. 정상에 도착해서 바라보는 10분간의 풍경만을 말한다고요. 성공한 사람, 빛나는 마음, 이런 것들요. 그런 것에 발끈해서는 아니지만, 어쩌다 지리하고, 어둡고, 눅눅하고, 다른 곳에서 펴보기 민망한, 나도 몰랐던 마음에 대해 주로 글을 짓고 음악을 만들며 살아왔더니 언젠가부터 삶의 균형이 잘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아름다운 풍경이 스쳐 지나간다고, 성공의 시간이 잠시라고 해도, 그게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닌데요.



인터넷에 이런 말이 있죠.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심연도 또한 나를 야옹."

(원문은 "우리가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_니체 『선악의 저편』 중)

잠깐 다른 얘기를 하자면, 마음에 기운이 없는 증상은 노력으로 극복하기 힘든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고 산소가 방에 들어오도록 해야 하는데 문고리가 고장 난 경우처럼요. 그래서 진단을 받고 약을 먹으면서 포기하는 법과 나에게 덜 실망하는 법을 익히며 한동안 살아왔어요. 안 되는 건 당연해. 원래 그런 거야. 더 나빠지지만 말았으면.

그렇던 제가 올해는 ‘조금은 나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신기하게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런저런 시도도 해볼 수 있었습니다. 완치인가 싶어서 잠시 들뜨기도 했지만, 약의 용량은 그대로…하지만 그것도 뭐, 괜찮아요. 크게 대단한 일이 아니더라도 하고 싶은 일이 생겼고, 그걸 실행할 기운이 있다는 건 제겐 엄청난 일이니까요.

그렇게 시작한 연재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마음의 재활을 하는 기분이었는데 그 과정을 <채널예스>를 통해 지금 글을 읽는 당신과 나눌 수 있었던 것이 참 기뻤고 또 감사했습니다. 여전히 그늘을 좋아하고 구석을 좋아하는 사람이겠지만 쨍한 태양의 시간도 조금씩 더 즐길 수 있게 되길 스스로에게, 또 어딘가 계실 저와 비슷한 당신에게 바라봅니다. 저는 올해가 가기 전에 달리기를 해보고 싶어요. 매일 몇 킬로씩 뛰는 분이 보면 ‘뭘 저걸 저렇게까지 결심해야 하지?’ 싶으실지도 모르겠네요. 누군가에겐 폴짝 넘으면 되는 도랑이 누군가에겐 깊고 커다란 강처럼 느껴지기도 하잖아요. 그리고 그 너비는 내 안에서도 끊임없이 바뀌고요. 도랑을 만나면 뛰어넘고 강을 만나면 도망갈래요. (도랑이 자주 있었으면!) 또 어디선가 만나게 되길 진심으로 바라며 다시 한번 감사했습니다. 좋은 겨울 되시고 즐거운 2022년 되세요.


- 오지은 올림



선악의 저편
선악의 저편
프리드리히 니체 저 | 박찬국 역
아카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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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오지은(작가, 음악가)

작가, 음악가. 책 <익숙한 새벽 세시>, 앨범 <3>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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