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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의 짧은 소설] 저녁 산책

<월간 채널예스> 202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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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꾸는 꿈은 바뀌기 마련이지만,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꺾인 꿈은 다른 의미일 것이다. (2021.10.08)


해주가 처음 성당에 간 건 대학교 삼 학년 때였다. 자취하던 집 근처에 작은 성당이 있었는데 어느 일요일 저녁, 호기심에 미사에 들어갔던 거였다. 미사를 드리며 해주는 알 수 없는 끌림을 느꼈고 육 개월 동안 예비자 교리를 들은 후 부활절에 세례를 받았다. 안젤라라는 세례명을 받은 해주는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꾸준히 주일 미사를 나갔다.

해주의 가족은 그런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배울 만큼 배운 애가 왜 종교를 받아들였는지 모르겠다고, 시간 낭비를 하고 있다고 질책했다. 그런 곳에 다닐 시간이 있으면 운동을 하든지 책을 읽든지 뭔가 자기 자신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활동을 하라고 충고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해주는 속으로 미소 지었다. 자신의 부모가 자신의 믿음만큼은 건드릴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해주는 자기 뜻대로 중요한 결정을 해본 일이 별로 없었다. 부모가 다니라는 학원을 다녔고 읽으라는 책을 읽었고 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부모의 바람대로 교대에 갔다. 앞으로의 일들도 뻔했다.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남자와 결혼해 아이는 둘 정도를 낳을 것이었다. 그 또한 부모가 세운 계획이었으니까.

하지만 자신의 내면만큼은 그분들의 간섭이 미치지 않는다는 걸 해주는 믿음을 얻으며 알게 되었다. 자신에게도 내면이 있다는 걸, 그곳에서만큼은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걸 해주는 조용한 성전에 앉아서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의 채반 같은 마음을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허기를 인정하게 된 것도. 아무리 바가지로 물을 떠서 담으려고 해도 채반 같은 마음에는 조금의 물도 머무를 수 없었다. 신을 받아들였다는 건…, 무려 신의 사랑을 체험했다는 건 채반에 더는 물을 붓지 않고 깊은 물속에 채반을 던지는 일 같았다. 그건 입을 열어서 누구와 나누고 싶지 않은 혼자만의 소중한 경험이었다. 설명할 수도, 묘사할 수도 없는 일이기도 했다. 적어도 해주에게 믿음이라는 건 누군가에게 내보이고 싶지 않은 가장 사적인 영역이었다.

그로부터 십오 년이 지나 해주는 생각했다. 사랑은 갱신되어야 한다. 초기의 열정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사라져버리는 것이니까. 신을 향한 사랑 또한 그랬다. 예비자 교리를 듣고 세례를 받고 성당을 다니던 초기의 몇 년간 느꼈던 열정은 서서히 미지근한 온기 같은 것으로 변했다. 초등학교 교사 일은 고되었고 형식적으로 주일 미사에 참석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예전의 느낌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해주의 남편은 가톨릭 신자였으나 믿음은 없었다. 둘은 성당에서 결혼식을 하고 갓 돌이 된 딸 유리가 유아 세례를 받게 했지만 성당에 다니지는 않았다. 해주는 종교에 관한 질문을 받으면 “천주교 세례는 받았는데 안 다녀요”라고 답했다. 하지만 믿음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녀는 여전히 신을 믿었다.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언어로 설명할 수 없을 뿐이었다.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마음이라는 게 있기나 한 걸까. 남편과 이혼하고 초등학교 사 학년이 된 딸과 둘이 살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다시 그녀의 신에게 속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도 자신의 깊은 마음을 이야기할 수 없어서였다. 

딸과 이사를 간 집 바로 앞에는 성당이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성당 마당까지 가는 데 삼 분도 걸리지 않았다. 딸과 함께 동네 산책을 하면서 해주는 종종 성당 앞마당을 들어가보곤 했다. 마당에는 작은 화단과 루브르의 성모상이 놓여 있었다. 유리는 성당 마당을 둘러보며 해주에게 성당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성모상 앞에서 손을 모아 기도하는 신자들을 따라 하기도 했다. 무슨 기도를 했느냐고 물으면 유리는 비밀이라고만 답했다.

“나도 성당 가고 싶어.” 유리가 말했다.

“왜?”

“그냥. 가고 싶어서.”

유리는 하고 싶은 일은 무조건 해야 하는 아이였다. 해주는 유리를 데리고 십 년 만에 미사에 갔다. 마침 어린이 첫 영성체(하단 '각주' 참고) 준비반이 생겼고 유리도 그 반에 들어갔다. 기도문도 외우고, 기초적인 교리 지식도 배우는 시간인 것 같았다. 유리는 그 수업을 좋아했다. 출석도 잘하고 수업 참여 태도도 좋고 마지막 시험도 가장 잘 봐서 첫 영성체를 하는 날에는 여자아이 대표로 뽑혀 미사 시간에 성경을 낭독하는 독서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첫 영성체를 마치고 유리는 복사단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신부님이 미사를 진행할 때 보조하는 역할인 복사를 하겠다는 말이었다. 해주는 그렇게 하라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복사단 자모회 임원의 전화였다. 유리가 복사단에 들어왔으니 복사단 자모회 모임에 참여하라는 말이었다. 가고 싶지 않았지만 유리를 생각해서 안 갈 수는 없었다. 복사단의 아이들은 열 명 정도였고, 아이들 개개인의 스케줄에 맞춰 복사단 시간표를 짜야 했던 것이다.

이혼한 후 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꺼렸다. 혹여나 학부모들과 마주칠까 봐 일하는 학교에서 차로 한 시간 떨어져 있는 곳으로 이사를 하기도 했다. 가까운 사람만 만나고 싶었고 때로는 그마저도 힘들었다. 

자모회 회원들은 해주를 빼고는 서로 다 알고 있었다. “남편분은 성당 안 다니세요?” 자모회 회원이 해주에게 그렇게 물었을 때 해주는 어떻게 답해야 할지 망설였다. 보통 때였다면 쉽게 이혼했다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은 성당이었고, 성당은 자신이 이혼한 싱글맘이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 편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저는 유리 혼자 키워요. 애 아빠랑은 헤어졌구요.”

“아… 그러세요.”

자모회 회원들의 얼굴에 떠오르는 난감한 표정을 바라보며 해주는 안도감을 느꼈다. 어차피 해야 할 말이었다.

유리는 자기주장이 확실한 아이였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분명하게 말했지만 억지를 쓰는 건 아니었다. 분명한 근거가 있을 때만 주장을 했고 해주가 분명한 이유를 들어 유리의 생각에 반대하면 수용했다. 자기 생각을 또박또박 말하는 유리를 보면서 해주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옛말을 떠올렸다. 매사에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말할 필요도 없고, 상처받을 것이 뻔한 상황에서 목소리를 내는 건 위험한 일 아닌가. 하지만 당당한 유리의 모습을 보면서 만족감을 느낀 것도 사실이었다. 꾹꾹 참기만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저렇게 자기 할 말 하고 사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고 해주는 생각했다. 참는 건 지겹고 아픈 일이었으니까.

유리는 리더십이 있어서 줄곧 반장을 했다. 영리하고 밝고 주목받는 걸 좋아했다. 해주는 유리가 그런 기질 때문에 성당에서 복사를 하고 싶어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미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신부와 복사만 바라보니까. 유리가 그저 그런 관심을 바랐는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해주는 유리에게 자신에게 없는 수준의 믿음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유리는 기도를 했고 신과의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했다.

초등학교 오 학년이 된 유리는 신부가 되고 싶다고 했다. ‘신부님이 되면 하느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을 위해 일하고 싶다, 힘든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다’ 같은 소원을 글쓰기 숙제에 적기도 했다. 왜 어린아이가 하느님을 찾게 됐을까, 고작 열두 살짜리 아이가 어쩌다가 이렇게 진지한 생각을 하게 됐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해주는 유리를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내가 어른 노릇을 잘못해서, 내가 유리에게 기댈 언덕이 되어주지 못해서 하느님이 필요한 건 아니었을까. 유리는 속이 깊은 아이였고 자신의 힘든 일을 해주에게 털어놓지 않았다. 엄마와 아빠가 헤어져서 미안하다고 말했을 때, 고작 열한 살짜리 아이가 했던 말을 기억한다. “내 생각 말고 엄마만 생각해.” 그게 그 나이의 아이가 할 수 있는 말이었을까.

어느 날, 자모회의 태우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유리가 복사단의 남자애들과 심하게 싸워서 걱정이 된다는 말이었다. 태우는 싸움의 당사자가 아니었지만 유리가 남자애들과 싸우는 모습을 보고 집에 와서 그 말을 자기 엄마에게 전했다고 했다. 성당 앞 골목에서 벌어진 싸움이었고 어른들도 없었다고 했다. 해주는 통화를 하며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학원을 다녀온 유리를 앉혀놓고 해주는 유리에게 복사단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별거 아니야. 말싸움 좀 했어.”

그 말을 하는 유리가 해주의 눈을 피했다. 

“솔직히 말해봐. 괜찮아.”

유리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복사에는 대복사와 소복사가 있다고 했다. 대복사는 미사 예절 중에 작은 종을 치는 역할을 했다. 유리는 사 학년 내내 소복사를 했고, 학년이 올라가면 대복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새로 복사단에 들어온 사 학년 남자애가 대복사를 하고, 오 학년인 자신이 소복사를 하게 되어서 신부님에게 건의를 했지만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고 했다. 여자아이는 육 학년이 되어도 대복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성당 방침이라고 했다. 당장 미사를 드려야 해서 유리는 참고 소복사 일을 했다. 미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복사단 남자애들 몇이 유리에게 “넌 여자애여서 대복사 못 한다” 라고 말을 했던 거였다. 그런 말에 가만있을 유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내가 졌어. 어른들이 그렇게 정해놓았잖아. 내가 아무리 말을 해도 소용이 없잖아.” 

유리는 그렇게 말하고 소리 내어 울었다. 아이가 복사단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해주도 성당에 자주 나갔다. 성당 잔치가 있을 때 성당 부엌에서 채소를 다듬고 설거지를 하기도 했고 화단 청소를 하기도 했다. 성당은 여자들의 노동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 곳 같았다. 그래도 유리가 성당 다니는 걸 좋아해서 해주도 군말 없이 그런 일에 동참했던 거였다. 자모들이 보이지 않는 온갖 궂은일을 할 동안 가운을 입고 성체를 나누어주는 봉사는 오직 중년 이상의 남자들만 했다. 여자는 수녀님이 아니고서는 성체를 나누어줄 수조차 없었다. 미사에 집중하고 싶었지만 가운을 입고 성체를 나눠주는 봉사자들이 전부 나이 든 남자라는 생각을 할 때면 절로 분심이 생겼다. 그래도 유리가 좋아하니까… 그 생각으로 버텼지만 소리 내어 울고 있는 유리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신이 대체 무엇을 위해 애써왔는지 알 수 없었다. 



신부님에게 연락이 온 건 그 다음주였다. 해주는 시간을 내 면담에 갔다. 성당 1층에 있는, 사면이 유리 벽으로 된 면담실에 들어가서 해주는 신부님과 이야기를 했다. 보좌 신부는 삼십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음성이 듣기 좋고 노인과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불편한 내색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 정도의 감정노동을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었기에 해주는 그에게 늘 따뜻한 감정을 느꼈다.

그는 자리에 앉아서 유리가 복사단 아이들과 말싸움을 자주 한다고 전했다.

“그런데 유리가 틀린 말을 하는 건 아니에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우리 본당은 2009년까지만 해도 남자아이들만 복사를 섰습니다. 그때도 유리 같은 아이가 있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갈등이 있었고 여자 복사가 생겼습니다. 저는 유리의 말이 맞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금 본당 신부님께서 반대를 하시네요. 대복사니 소복사니 그런 구분이 뭐가 중요하냐, 하느님을 위한 일에는 큰 몫, 작은 몫이 따로 없다고 하셨어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 해주의 표정을 살폈다.

“유리가 하는 말이 그거 아닌가요. 그런 구분이 뭐가 중요해서 여자애들을 대복사 못 서게 하느냐는 말을 하는 거 아닌가요. 큰 몫, 작은 몫 따로 없다면서 정작 중요해 보이는 일들은 남자만 하고 있잖아요. 유리는 열두 살이에요. 여자여서 안 된다는 거, 무의식적으로라도 여기서 배울까 두렵네요. 저는 유리가 여자라는 이유로 배제되는 기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다시 본당 신부님께 말씀드려보겠습니다. 마음 좀 가라앉히시고요.”

얼마 뒤 여자아이들도 대복사를 설 수 있게 되었다. 대복사 자리에 무릎 꿇고 앉아서 항아리 모양의 종을 치는 유리의 모습을 바라보며 해주는 씁쓸함을 느꼈다. 저 자리에 앉기까지 유리가 겪어야 했던 상처가 너무 컸으니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유리가 부당함에 저항해 이긴 경험을 얻었다는 것이 기쁘기도 했다. 

그 이후로도 유리는 성당에서 모두를 불편하게 하는 말들을 했고 복사단 아이들과 싸웠다. 자신은 앞으로 꼭 신학교에 가서 신부가 될 것이며,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신부가 될 수 없다는 식의 법은 사라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했던 것이다. “유리를 잘 다독여줘요.” 해주는 자모회 회원들에게 그런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지만 유리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답하고 싶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유리는 복사단에서 나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당에 발길을 끊었다. “언젠가는 다시 갈 거야. 하지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유리는 그렇게 말했다. 

유리와 해주는 그 무렵 강아지 한 마리를 입양하고 도우라고 이름 붙였다. 유리는 도우를 끔찍하게 생각했고 온갖 정성을 쏟았다. 시간이 흘러 유리는 고등학생이 됐다. 해주와 유리는 매일 저녁 강아지 산책을 시켰다. 어느 산책길에서 유리는 해주에게 어른이 되면 동물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 조용히 고백했다.

“도우는 왜 날 사랑할까 생각해.” 유리가 말했다.

“이유가 없지. 그냥 사랑하는 거지.”

“이제 하느님을 생각하면… 날 보는 도우의 얼굴이 떠올라.”

“너도 참 별나다.”

대수롭지 않은 척 답했지만 해주는 놀랐다. 성당을 다니지 않게 된 후로 유리는 하느님에 대해 말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사랑과 하느님을 다른 말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어.”

유리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 말을 하고 리드 줄을 잡고서 도우를 따라 뛰어갔다. 

유리를 가졌을 때 해주는 자신의 아이가 아이 자신의 꿈을 꾸기를 바랐다. 자신처럼 부모의 욕망을 맞추느라 꿈꿀 자유를 빼앗기지 않기를 바랐다. 유리는 신부가 되기를 꿈꿨고 그 꿈은 이제 과거의 것이 되었다. 어릴 때 꾸는 꿈은 바뀌기 마련이지만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꺾인 꿈은 다른 의미일 것이다. 그 상처가 어떤 것일지 해주는 짐작할 수 없었다. 

유리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달려 나갔다. 점점 멀어지는 유리의 모습을 바라보며 해주도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제는 해주가 유리를 따라 달려야 할 때였다. 


(각주) 영성체 : 가톨릭에서 성체성사를 받는 일. 이때 가톨릭에서는 빵과 포도주가 실제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화되며 이를 먹고 마실 때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는 은총을 받게 된다고 가르친다.




*최은영

소설가. 소설집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장편소설 『밝은 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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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은영(소설가)

소설가. 장편 소설 『밝은 밤』과 소설집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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