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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칼럼] 퀀텀 점프!
<월간 채널예스> 2021년 10월호
근작 중에서는 『1Q84』보다는 좋았고,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보다는 못했다는 게 전반적인 감상이다. 가끔은 이 작가가 말하려는 바를 손에 잡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가끔은 애초에 실체 없는 문장들이라는 생각도 한다. (2021.10.01)
얼마 전 『기사단장 죽이기』를 읽었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이 출간된 지 벌써 4년이나 됐구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집어 드는 속도가 점점 느려진다. 25년쯤 전에는 하루키의 작품이라면 소설이고 수필이고 할 것 없이 보는 즉시 구매하거나 대출했다.
책 자체는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중심에 미스터리와 괴기 요소가 있고, 기묘한 사연을 지닌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나온다. 문장은 언제나처럼 편안하고 생생하면서 맛깔나고, 곳곳에 고상한 취향이 배어 있다. 이런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불만스러운 부분도 여전하다. 이번에도 마무리는 어정쩡하고,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야?’ 하고 따지고픈 마음이 든다. 이번에도 신비스러운 매력을 지닌 10대 소녀가 가만히 있는 중년 아저씨한테 접근한다. 편리하기도 해라.
근작 중에서는 『1Q84』보다는 좋았고,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보다는 못했다는 게 전반적인 감상이다. 가끔은 이 작가가 말하려는 바를 손에 잡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가끔은 애초에 실체 없는 문장들이라는 생각도 한다.
사실 내게 하루키의 소설은 『댄스 댄스 댄스』 이후 동어반복 같다는 느낌이 들고, 언젠가부터는 ‘이제 신작을 굳이 챙겨 읽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여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다 『기사단장 죽이기』를 읽(은 것 같)고, 아내가 추천도 해줬지만, 출간 이후 4년이 지나도록 책을 펼치지 않았다.
‘한번 읽어볼까?’ 하는 마음이 든 것은 뜻밖에도 아내가 아니라 아버지 때문이었다. 무슨 대화를 나누다 무라카미 하루키에까지 이야기가 흘러갔을까. 그다지 살가운 부자관계도 아니어서 더 기이한 기억인데, “하루키는 정말 대단한 작가 아니냐?”고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문호’라는 표현도 쓰셨던가?
그 질문에 나는 한동안 대답을 못했다. 어…… 아버지는 비소설을 열심히 읽으시는 분이고, 하루키의 책은 분명히 내가 아버지보다 많이 읽었을 테고, 아니, 나는 한양출판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번역 출간한 1991년부터 하루키를 읽었는데?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단호하게, 의심 없이 하루키를 높이 평가하시는 거지? 그리고 나는 왜 반박할 수 없지?
그 후로 이 질문이 몇 번씩 불쑥 마음에 떠올랐고, 나는 마침내 인정하게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우리 시대의 문호다. 의심할 바 없이 그렇다. 노벨문학상을 받건 못 받건 간에. 그리고 그런 대작가와 같은 시대를 살면서 그의 경로와 성취를 지켜본 것은 성장하려는 소설가로서 커다란 행운이다.
결국 작가는 작품으로, 그것도 그가 발표한 책 중에서 가장 뛰어난 단행본으로 평가 받는다. 나는 하루키가 『노르웨이의 숲』으로 기억되리라 전망한다. 이 소설은 이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 올라 있다. 이 선집에는 코맥 매카시, 오르한 파묵, 가즈오 이시구로 같은 생존 작가들의 작품들이 있고, 여기서 『노르웨이의 숲』의 위치는 매우 단단하다.
한때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카미 류를 나란히 세우는 것이 유행이었다. ‘투 무라카미즈’라고도 했다. 지금은 아무도 그런 말을 쓰지 않고, 하루키와 류를 비교하지도 않는다. 두 작가의 위상이 너무 달라졌다. 나는 그 분기점 또한 『노르웨이의 숲』이었다고 본다.
다재다능하다는 게 류의 불운 아니었을까 멋대로 짐작해본다. 그는 라디오 프로그램과 TV 토크쇼를 진행하고, 영화감독과 사진작가와 공연기획자로 활동했다. 온라인 잡지 편집장과 세계미식가협회 임원을 지냈고, 소니뮤직과 레이블을 만들어 일본에 쿠바 음악을 알렸다. 축구 해설을 했고, ‘류의 비디오 리포트’라는 동영상 채널도 운영했다. 그에 비하면 하루키처럼 시드니 올림픽을 취재하거나 위스키 에세이를 쓰는 정도는 외도라 할 만한 것도 못 된다.
하루키라고 방송국이나 음반사로부터 교양 프로그램의 고정 패널로 나와 달라든가 컴필레이션 앨범에 들어갈 곡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받지 않았을까? 37세의 촉망 받는 소설가였던 그는 갑자기 일본을 떠나 그리스와 이탈리아, 영국에서 3년을 살았다. 그 이유가 당시 생활을 기록한 에세이 『먼 북소리』 앞부분에 나온다.
‘워드프로세서인지 뭔지의 광고에 나가라고 한다. 어느 여자대학에서 강연을 하라고 한다. 잡지에 싣기 위한 나만의 자신 있는 요리를 선보이라고 한다. 아무개 씨와 대담을 하라고 한다. 성 차별이며 환경오염이며 죽은 음악가며 미니스커트의 부활이며 담배 끊는 법 등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한다. 무슨 무슨 대회의 심사위원이 되라고 한다.’
37세의 하루키는 그 상황에 무력감을 느꼈다. 그는 40세가 되기 전에 장편소설을 두 편 더 쓰고 싶었다. 그는 말이 통하지 않는 땅에 가서 원고를 파고들었고, 그렇게 『노르웨이의 숲』과 『댄스 댄스 댄스』를 완성했다. 두 소설 모두 매우 두껍다. 각각 요즘 한국문학계의 대세인 경장편 네 편 정도의 분량을 거뜬히 넘을 것이다. 인정하자. 지금 한국 문단에는 이 정도 두께의 장편소설을 쓸 수 있는 작가 자체가 드물다.
『노르웨이의 숲』과 『댄스 댄스 댄스』는 내용도 묵직하다. ‘정면승부를 벌이겠다’는 작가의 결의가 느껴진다. 하루키의 평생에 걸친 테마라 할 만한 그것 ―상실감이라 부르든 뭐라 부르든― 이 가장 생생하게 담긴 작품들이다. 뭔가 삶에서 중요한 것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점점 놓치고 있다는 감각. 그것이 너무 자연스럽고 불가항력적이어서 비통하다고 말할 수조차 없다는 막막함. 그에 대한 섬세하면서도 날카로운 포착. 그래도 남은 것들을 최대한 지켜보려는 막연한 의지.
‘류에게는 『노르웨이의 숲』이 없었다’고 쓰자니, 그만큼 그의 작품을 많이 읽지 못했다. 모든 소설가들이 두툼한 장편소설을 써야 한다는 말도, 고국을 떠나 유럽으로 가야 한다는 소리도 아니다. 하지만 『노르웨이의 숲』 같은 작품을 쓰기 위한 하루키의 결기는 감탄스럽고, 부럽다.
당장 나더러 그런 결행을 하라고 하면 무서워서 못한다. 3년 동안 칼럼도 쓰지 말고, 인터뷰도 하지 말고, 독자와의 만남 행사도 열지 말고, TV 출연 요청이 와도 다 거절하라고? 그러다 잊히는 거 아닐까? 3년 동안 매달리면 과연 목표로 삼은 소설을 쓸 수 있을까? 간신히 다 썼는데 그게 망하면 어떻게 해?
하루키의 경로와 성취를 지켜봤기에 하루키는 그때 어땠을까, 하루키라면 어떻게 할까, 그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다. 가야 할 방향이 어느 쪽인지를, 위험하고 위태롭긴 하지만 거기에 길이 있긴 있다는 사실을 그가 알려준다. ‘나만의 자신 있는 요리’에 대해 잡지에 에세이 백 편을 실어 봤자 문호가 되지는 못한다고. 선택을 해야 한다고.
하루키라고 예지 능력이 있지도 않았을 테고, 밥벌이를 못하면 궁핍해진다는 자본주의 사회의 규칙을 모르지도 않았을 터. 그는 ‘먼 북소리’를 들으며 떠났다. 아득히 먼 데서 들려오는 가냘픈 소리였다고 그는 썼다. 그리고 돌아올 때에는 완전히 다른 작가가 되어 있었다.
『노르웨이의 숲』 같은 작품을 쓴 소설가에게는, 누구도 ‘재기발랄한 젊은 작가’라는 표현을 더는 쓰지 못한다. 책이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온갖 폄하를 당하고 의심을 받았지만, 거기에는 절대로 깎아 내릴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마 앞으로도 깎이지 않을 것이다.
37세에서 40세 사이에 하루키에게 일어난 일을 나는 혼자 ‘퀀텀 점프’라고 부른다. 물리학자들이 이 비유를 들으면 기겁하겠지만, 이미 경영학자들이 멋대로 그 양자세계의 현상을 경제용어로 전용해서 쓰고 있으니까, 뭐.
가끔 작가도 양자처럼 완전히 다른 수준으로 도약한다. 그때 그 안팎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외부인은 잘 알 수 없다. 누가 그렇게 도약할지 예상하기도 어렵다. 기실 많은 이가 재기발랄한 젊은 작가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하루키를 통해 작가의 커리어에 그런 단절과 도약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보니 위대한 작가들이 위대한 작가가 된 과정이 달리 보였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아마 도스토옙스키 아닐까. 시베리아 유배 생활을 마치고 그는 전과 다른 작가가 되어 돌아왔다. 체호프는 사할린을 다녀와서 다른 작가가 되었다.
『1Q84』에서 체호프의 사할린 여행 이야기가 나올 때 묘한 기분이 들었다. 『기사단장 죽이기』에는 이런 대사가 두 번 나온다. “에이허브 선장은 정어리를 뒤쫓아야 했는지도 몰라.” 한 번은 주인공이 듣는 말이고, 다른 한 번은 주인공이 하는 말이다. 두 번 모두 강렬한 반어의 맥락에서 나오는 대사다. 아암, 정어리 따위를 쫓을 수야 없지.
고백하자면 나도 요즘 정어리가 아닌 흰 고래를 쫓고 있다. 3년째 붙들고 있는 장편소설 원고의 분량이 200자 원고지 2000매를 넘어섰다. 느낌으로는 대강 85퍼센트쯤 쓴 거 같다. 그렇다면 앞으로 350매 남짓 더 남았다는 얘긴데. 매몰 비용이 너무 커서 이제는 절대로 대충 마무리할 수 없다.
쓰느라 힘들었다. 이렇게 긴 글을 써본 적이 없다. 중간에 고비가 여러 번 있었다. 이야기를 너무 크게 벌인 것을 깨닫고 등장인물 한 사람을 빼고 원고를 고치며 처음부터 다시 쓴 적이 있었다. 가슴이 쓰렸다. 나름 범죄물인데 반전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몰라 똥 눌 곳을 못 찾은 강아지처럼 집 안을 며칠씩 뱅뱅 맴돌았다.
플롯에 대한 고민은 주제에 대한 고민에 비하면 약과다.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 그게 뭔지 뚜렷이 짚을 수 없어서 헤맨 기간이 길었다. 지금은 안다 ―2021년 한국 사회의 기원에 대해 말하고 싶다. 지금은 제법 정연하게 그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다행히.
그 뒤에도 내가 그런 얘기를 쓸 수 있는 사람인지 자신이 없어 번민한 밤들이 있었다. 그럴 때면 마귀 같은 것이 귀에 대고 속삭였다. ‘포기해. 포기하라고. 꼭 2350매짜리 소설을 써야 하나? 3년이면 뚝딱뚝딱 600매짜리 소설 네 편을 쓸 수도 있었겠다. 2350매짜리 소설이 600매짜리 소설보다 낫다는 근거는 뭔데?’
잘 팔릴 원고가 아닌 것 같아 괴로웠다. 요즘 세상에 2350매짜리 한국 소설을 읽으려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을까? 원고가 1700매를 넘어갈 즈음에는 ‘이제 단행본 한 권으로 출간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에 맥이 탁 풀렸다. 요즘 세상에 두 권짜리 한국 소설을 사보려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하지만 분권을 할지언정 분량을 줄일 생각은 없다.
얘기하는 김에 다 털어놓자면 영화 프로듀서들이 반길 거 같지 않다는 점도 진지한 고민거리였다. 액션이 드물고, 독백과 사변이 많고, 과거와 현재가 복잡하게 오간다. 2차 판권 수입이여, 안녕.
지금은 그런 고비들을 다 잘 넘긴 상태인데, 마음이 평화롭다. 자신의 욕망을 정확히 깨달으면 자신이 누구인지도 알 수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덜 흔들린다. 음, 나는 2차 판권 수입을 위해서가 아니라 멋진 작품을 쓰기 위해 소설가가 된 거였지, 하고 받아들이는 것만으로 꽤 많은 문제가 해결되고, 심지어 자존감도 좀 고양된다.
이 원고가 어떤 평가를 받을지, 잘 팔릴지 아닐지, 내가 퀀텀 점프를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실패할 수도 있고, 그러면 마음에 얼마간 타격을 입겠지. 하지만 커다란 시합에 출전하는 젊은 운동선수와 달리, 소설가에게는 기회가 자주 오고 현역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간도 상당히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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