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이것은 생각 못했던 방향의 에세이였죠 (G. 윤고은 소설가)
책읽아웃 - 김하나의 측면돌파 (199회) 『빈틈의 온기』
언젠가 에세이를 한 권 내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첫 에세이가 어떤 내용으로 채워질지에 대한 것까지는 생각을 못 했고 『빈틈의 온기』의 부제처럼 출근길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들어갈 거라고는 정말 생각도 못했던 일이었어요. 내가 출근길에 대해서 쓴다고? 이것은 너무나 생각 못했던 방향의 에세이였죠. (2021.08.05)
오류와 실수, 착오와 오작동이 내포한 우연성이 나를 설레게 하고 그 헛발질을 기록하게 한다. 구글맵이든 종이지도든 방금 탄생한 실수와 오작동에 이름을 붙여 애초에 그걸 기다렸던 것처럼 저장하는 것이다. 웬만하면 최단경로가 정답이 되는 세상이므로 의도하지 않은 우회경로는 이런 실수 속에서나 가능한 걸지도 모른다. 헤매니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기억의 유효기간을 따져봤을 때도 그렇다. 허둥대며 돌아갔던 길, 착각과 오작동이 빚어낸 결과가 오래 잊히지 않는다. 그거야말로 계획과 재현이 불가능한, 고유한 것이기 때문에.
윤고은 작가의 에세이 『빈틈의 온기』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오늘 모신 분은 빈틈을 키우고 기록하는 소설가입니다. 한국인 최초로 ‘대거상’을 수상한, 빈틈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데 의외로 빈틈이 많아서 더 매력적인 윤고은 작가님 모셨습니다.
김하나 : 반갑습니다, 작가님.
윤고은 : 안녕하세요, 윤고은입니다.
김하나 : 작가님, 요즘 전에 없이 너무 시끌시끌한 상황이지 않습니까.
윤고은 : 아, 시끌시끌한가요?
김하나 : 그럼요. ‘대거상’을 수상하셨잖아요.
윤고은 : 아, 그렇죠. 맞아요. 제가 한 달 전쯤에 ‘대거상’을 받았는데 지금 또 마감 중인 거에 계속 쫓기다 보니까 ‘대거상’을 받았다는 걸 전혀 실감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하나 : 진짜요?
윤고은 : 네, 시상식 날도 그랬어요. 그날도 다른 원고 때문에 너무 쫓기는 기분이어서, 그때도 ‘대거상’이 신기하기는 했지만 더 다른 차원처럼 느껴졌던 것도 있고.
김하나 : 인터뷰 의뢰라든가 그런 것들이 쏟아지지 않나요? 기사도 굉장히 많이 나오고.
윤고은 : 네, (인터뷰도) 하고 제 생애 처음으로 뉴스 생방송에도 나가서 얘기하고 하는데, 이게 또 다른 자아 같아요.
김하나 : 지금 이 책에 (자아가) 9번까지 나와 있는데 『빈틈의 온기』에 아직 수록되지 않은 ‘대거상’을 수상한 자아가 10번으로 있군요.
윤고은 : 10번은 이미 다른 자아가 생겼었어요. 『빈틈이 온기』를 낸 다음에 인터뷰한 자아가 10번이었고, (‘대거상’을 수상한 자아는) 15번 정도. (웃음)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웃음)
김하나 : 지금 몇 번으로 나와 앉아 계신 거죠?
윤고은 : 특별히 준비했습니다, 17번. 어렵지 않아요. (웃음)
김하나 : 이 상을 수상하신 게 ‘아시아로서 최초다, 아니다’, ‘그 전에 (’대거상‘을) 탔던 사람이 이중국적이라서 아시아 최초는 아니다’ 말이 많지만, 어쨌든 아시아인으로서는 첫 번째 또는 두 번째인 거고 한국인으로서는 최초 수상인 거죠.
윤고은 : 그렇죠.
김하나 : 쾌거인 거죠.
윤고은 : 너무 감사한 일이죠. 사실 신기함과 감사함과 이런 게 뒤섞여 있죠.
김하나 : 예상을 조금이라도 하셨나요?
윤고은 : 아니요, 전혀 못 했어요. 처음에 ‘대거상’의 숏리스트에 올랐을 때 올랐을 때 주변에 소문을 많이 냈거든요. 수상까지는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숏리스트에 오른 것도 너무나 나에게는 감사한 일이고 즐거운 뉴스였기 때문에 주변에 부담 없이 얘기했어요. 이런 상이 있는데 (하면서) 거의 ‘대거상’ 아시아 지점장처럼. (웃음) 잘 모르는 사람을 붙들고 ‘이런 상이 있어’ 하고 이야기하면서. (웃음)
김하나 : (웃음) 설명부터 다 해주고.
윤고은 : 네. 제가 얼마 전에 그 뉴스 생방송을 나갔는데 진행자님이 저한테 ‘대거상’을 설명해 달라고 하셔서, 저도 모르게 ‘대거상은 미국의 ‘에드거상’과 쌍벽을 이루는...’ 이렇게 이야기한 거예요. (웃음) 이게 두고두고 너무 웃긴 거예요. ‘쌍벽을 이룬다’는 표현을 제 삶에 써본 적도 없는데 거의 주입식으로 외워진 거죠. 하도 사람들이 물어보니까. 그리고 ‘대거상’ 설명하면 ‘미국의 ‘에드거상’과 쌍벽을 이루는 60여 년 된 전통의 영국 추리문학상’ 이렇게 나와 있으니까, 저도 모르게 거의 웅변대회에 나가서 외운 거 이야기하듯이 ‘네, ‘대거상’은 미국의 ‘에드거상’과 쌍벽을 이루는 상으로서...’ 하고 이야기하는 저를 제 안에 또 다른 자아가 보면서 비웃었죠. (웃음) 틀린 표현은 아닌데 너무 저답지 않은 표현을 하는 거예요.
김하나 : (웃음) 게다가 자신이 수상한 상, 지금 화제가 되고 있는 상이 ‘이 상이 어떤 상인지 아니?’라고 과시하듯이 ‘쌍벽을 이루는’이라고...
윤고은 : (웃음) 그러니까 이게 너무 민망하고 조금 웃긴 상황인데, 자아가 분리돼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인 것 같긴 합니다. 15번 자아의 일이기 때문에. (웃음) 그래서 저는 전혀 기대를 품지는 못했어요. 시상식 당일까지도. 전혀.
김하나 : 그러면 (수상자) 발표가 났을 때 어떠셨나요?
윤고은 : 후보가 호명되고 ‘이번 수상자는...’이라고까지 나왔을 때 그 순간 갑자기, 새벽 3시 반에서 4시가 되던 상황이었는데...
김하나 : 온라인으로 중계가 되고 있었죠.
윤고은 : 네. 그리고 저도 누가 수상하는지 모르는 상황이었고, (수상) 부문이 많아서 조금 졸든 말든 이러고 있다가,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이러고 있다가... 왜냐하면 저는 새벽에 잘 깨어 있지도 않거든요. 이게 재미있기는 한데 이러다가 저만의 추억으로 남을 수도 있고, 이런 거잖아요. 약간 해외 축구 보듯이 보고 있다가 갑자기 공이 저한테 오는 느낌인 거죠. 그 순간만 굉장히 두근두근 했어요. ‘너무 신기하다’, ‘화면에 나 나왔어, 어떡해!’ 막 이러면서. (웃음) 너무 당황해가지고. (웃음)
김하나 : 『빈틈의 온기』가 윤고은 작가님의 첫 에세이인 거죠.
윤고은 : 네. 소설은 일곱 권 냈는데 에세이는 처음인 거잖아요. 굉장히 새로운 기분이었어요.
김하나 : 어떻게 달랐나요?
윤고은 : 에세이라고 하는 장르를 읽는 걸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물론 소설도 좋은데 에세이가 갖고 있는 굉장히 특수한 다정함이랄까, 따뜻함이랄까, 이런 게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살아가고 있구나 이런 걸 볼 수가 있고 에세이의 문장의 결을 읽는 것도 좋아해서 굉장히 사랑하는 분야인데, 그래서 언젠가 에세이를 한 권 내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첫 에세이가 어떤 내용으로 채워질지에 대한 것까지는 생각을 못 했고 『빈틈의 온기』의 부제처럼 출근길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들어갈 거라고는 정말 생각도 못했던 일이었어요. 내가 출근길에 대해서 쓴다고? 이것은 너무나 생각 못했던 방향의 에세이였죠.
김하나 : 생각 못했던 방향의 에세이이인데, 저는 그게 너무 탁월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서울 지하철을 많이 경험하는 사람이라면 공감 포인트가 차고 넘치는데 매일 이걸 타면서도 눈여겨보지 못하거나 잠깐씩 그 생각을 했던 여러 요소들이 있잖아요. 이를테면 누구나 잠깐씩 그 생각하잖아요. 전동차에 타기 직전에 ‘이 사이로 스마트폰이 쏙 빠져버리면 어떡하지?’라든가, 환승하러 가고 있는데 누가 달리기 시작하면 다 같이 달리기 시작하는 거라든가, 그런 공감 포인트들이 다 요소 요소에 들어가 있는데 그게 한 편 한 편의 맛있는 글로 다 탄생할 거리가 된다는 것은 너무 신기한 일인데다가, 여기 안에는 출근길에 해당하지 않는 것들도 있지만 출근길로 묶어냄으로 인해 가지고 조금 더 정확하게 캡슐에 쏙 들어 와서 내 몸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 책을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윤고은 : 감사합니다. 정말 출근길을 갖게 되어서, 그리고 출근길을 기록하는 계기가 생겨서 사실 저에게도 가능했던 작업이었던 것 같긴 해요.
김하나 : 책 앞의 작가 소개에 보면 ‘소설가, 라디오 DJ, 여행자, 지하철 승객, 매일 5분 자전거 라이더’ 이렇게 시작이 되는데요. 각각의 자아에 대한 작가님의 애정과 그것이 서로 간에 영향을 미치는 게 이 책에서는 잘 드러나는 것 같아요. 일단 출근길이 생긴 것은 라디오 때문인 거죠?
윤고은 : 그렇죠. 지하철이야 워낙 학교 때부터 많이 타고 다녔고 굉장히 좋아하던 공간이기도 했어요. 그 안에서 정말 압축되면서도 그 압축되는 구간을 통과하고 나면, 비교적 정시 도착하는 조금은 예측이 가능한 대중교통수단이라는 면을 좋아했었거든요. 그리고 그 안에서 책도 많이 읽고 여러 가지 메모도 하고. 지하철은 익숙했는데 그것을 지금 2년 정도 집중적으로 ‘네가 좋아하는 지하철 마음껏 타봐라’ 거의 이런 느낌으로, (웃음) 거의 종점에서 종점 수준으로 타게 되는 계기가 생긴 것은 라디오 진행을 하면서부터였죠.
김하나 : 2019년에 운명처럼 라디오 DJ가 되셨습니다.
윤고은 : 네.
김하나 : 라디오 DJ 제의를 받았을 때도 여행을 떠나는 때였죠?
윤고은 : 네, 여행을 가기 진짜 몇 시간 전. 그래서 짐을 꾸리고 있던 중이었어요. 제 앞에 짐 가방이 가운데가 열린 채로 있고 짐을 꾸리는 순간, 그리고 몇 시간 후에 이제 여행을 가려고 공항으로 가야 하는 그 부산스러움이 있는,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순간이었죠. 그 순간에 전화가 와서 라디오 DJ 이야기를 듣게 됐고요.
김하나 : 작가님이 살고 계신 곳으로부터 일산에 있는 방송국까지 가려면 지하철로만 1시간 38분이 걸리고, 일주일에 네 번을 가면 거의 하루에 4시간씩을 일주일에 4번 출퇴근을 해야 되는 거였는데, 굉장히 고난이 닥쳐 온 것이지 시기도 한데요. 그때 타이밍이 참 절묘한 게, 런던으로 떠나는 때였기 때문에 작가님 머릿속에는 ‘런던도 가는데 일산을 못 가겠냐’라고 하는 터무니없는 비교가 들어서게 된 거죠. (웃음)
윤고은 : (웃음) 터무니없는 거긴 한데, 그런데 제가 뭔가를 시작할 때 완전히 x표를 해서 정말 못하는 거 진짜 아닌 거를 빼놓으면 나머지에 대해서 약간 핑크빛 상상을 즐겨하는, 기본 값이 그런 것 같아요. 거기서부터 ‘아닌가? 아닌가?’ 하면서 이제 흘러가는 그런 거였던 거 같아요. 워낙 라디오 듣는 걸 좋아하고, 또 EBS 라디오가 우면동에 있을 시절에 게스트로 몇 번 간 적이 있거든요. 그걸 생각하니까 뭔가 익숙하고, 여러 가지가 저로 하여금 굉장히 친밀감을 주면서, 원래 처음에는 주 5회를 가야 하는 거였거든요. 그런데 제가 주 5회는 어려울 것 같다고 해서 주 4회로 조정이 되는 순간 ‘이 정도면 괜찮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웃음) 그리고 답을 오래 고민할 시간이 없었어요.
김하나 : 그래서 2019년부터 지금 2021년까지 라디오 DJ로서 보낸 2년, 어떠신가요?
윤고은 : 라디오를 워낙 좋아했고 어릴 때는 라디오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거든요. 제가 대학 때 국어국문 문예창작과를 들어가게 된 것도 라디오 작가가 되고 싶어서 들어간 게 있었어요. 그래서 라디오라는 세계를 좋아했었는데 그동안 청취자로만 있다가, 그 내부의 스튜디오 안의 풍경이 어떤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런 거는 모르잖아요, 그걸 알 기회가 생겼다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2년을 보내면서, 물론 이번에 낸 『빈틈에 온기』 에세이에도 라디오 얘기가 많이 들어가지만, 최근에 라디오 스튜디오를 배경으로 한 단편도 발표를 하고, 굉장히 많은 영감을 얻고 있어요. 그래서 재밌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김하나 : 핑크빛 상상을 잘 하시기도 하고, 그 상황을 핑크빛으로 바꾸어 버리는 힘도 있으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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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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