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에 듣기 좋은 음악 특집 (2) 윌리엄 볼컴_세 곡의 “유령 래그Ghost Rags(1970)”
우아한 유령과 함께 춤을, 윌리엄 볼컴 세 곡의 “유령 래그Ghost Rags(1970)”
여름밤에 듣기 좋은 음악 두 번째는 미국 작곡가인 윌리엄 볼컴(1938- )의 작품, 세 곡의 ‘유령 래그’입니다. (2021.07.22)
여름밤에 듣기 좋은 음악 두 번째는 미국 작곡가인 윌리엄 볼컴(1938- )의 작품, 세 곡의 ‘유령 래그’입니다. ‘우아한 유령The Graceful Ghost rag’, ‘폴터가이스트Poltergeist(래그 환상곡)’, ‘꿈 그림자 Dream shadows’를 묶은 “유령 래그”는 볼컴이 작곡한 피아노 곡으로 클래식 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한 번 들으면 귀를 뗄 수 없는 멋진 작품이랍니다.
1938년 미국, 시애틀에서 태어난 볼컴은 퓰리처상뿐 아니라 그래미 어워드, 디트로이트 뮤직 어워드를 받고 2007년에는 미국 ‘올해의 작곡가’로 선정된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입니다. 다리우스 미요(1892-1974), 올리비에 메시앙(1908-1992)의 제자이기도 한 볼컴은 전통 클래식에 미국 대중음악, 특히 ‘래그 타임’의 특징을 절충해 그만의 특별한 음악 시그니처를 만들어 냈습니다.
래그 타임은 재즈가 본격적으로 미국을 휩쓸기 전, 1890년대 중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악보 출판이나 녹음 산업, 피아노 보급까지 두루 영향을 끼쳤던 장르입니다. 반주가 베이스 옥타브와 중간 화성을 교차하며 두 박자 행진곡풍으로 ‘쿵-짝- 쿵-짝-’ 규칙적으로 연주되는 동안, 멜로디는 당김음을 사용해 유연하게 리듬을 타며 노래하는 것이 특징이지요. 스콧 조플린(1868-1917)이 작곡한 “Maple Leaf Rag(1902)”가 대표적인 곡입니다. 이 곡은 대중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아 백만 부 이상 팔린 첫 번째 악보가 되었답니다.
스콧 조플린 롤 피아노 녹음, “Maple Leaf Rag”
왼손 반주에서 특유의 두 박 리듬 ‘쿵-짝- 쿵-짝-’이 들립니다. 래그 타임이 유행하던 시절, 함께 유행하던 두 박자 춤곡이 행진곡, 케이크워크, 폭스트롯입니다. 시간이 흐르며 행진곡과 케이크워크는 대중의 관심에서 밀려났지만 터키트롯이나 원-스텝, 폭스트롯은 유행이 지속되면서 붓점 리듬과 같은 새로운 스타일로 래그 타임에 영향을 주기도 했죠. 두 박자 리듬을 기반으로 노래하는 한국의 트로트 음악도 폭스트롯에서 기원했다고 합니다.
래그 타임은 1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 재즈에 자리를 내어 주며 사라집니다. 하지만, 1940년대에 재즈 음악가들이 다시 조금씩 래그 타임을 연주하기 시작했고, 1960년 후반, 윌리엄 볼컴과 윌리엄 올브라이트(1944-1998) 가 이 장르를 예술적으로 발전시켜 대중 앞에서 연주하면서 재조명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973년, 영화 “스팅”에 스콧 조플린의 ‘엔터테이너The Entertainer’가 삽입되어 전 세계적으로 퍼지며 인기의 절정에 오르게 됩니다.
마빈 햄리시 피아노 연주, 영화 “스팅” 주제곡 ‘엔터테이너’
스콧 조플린의 음악을 발견한 후, 단순함과 흥겨움, 그리고 그 이면에 감춘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우수에 매료된 볼컴은 1967년에서 1993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래그 타임과 전통 클래식을 접목한 음악을 작곡합니다. 그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 세 개의 “유령 래그”이죠.
I. 스펜서 마이어 연주, ‘우아한 유령’
낭만 음악에 정통 래그 타임 스타일을 절묘하게 조합한 첫 번째 곡, ‘우아한 유령’은 단순한 리듬 위에 선율, 화성, 대위법적으로 탄탄한 구성을 쌓아 유려하고 친숙한 음악을 들려줍니다. 규칙적인 왼손 리듬 위에 부드럽게 녹아드는 당김음은 우아하면서 멜랑콜리한 분위기를 자아내지요.
II. 스펜서 마이어 연주, ‘폴터가이스트’
두 번째 곡의 제목인 ‘폴터가이스트’는 집에 들어와 그릇을 덜그럭거리거나, 문을 쾅 닫는 등, 사람에게 장난을 치는 유령을 말합니다. ‘우아한 유령’이 전통적인 래그 타임 형식으로 작곡되었다면 ‘폴터가이스트’는 래그 환상곡이라는 부제가 붙은 것처럼 마지막 주제를 여러 가지로 변주하는 확장된 형태를 보여줍니다. 다양한 꾸밈음과 불협화음뿐 아니라 현대 기법인 톤 클러스터(손바닥으로 피아노 건반을 누른 듯 가까운 음을 한꺼번에 연주해 만드는 음향 효과)를 사용하는 등, 조성 음악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가 많아서 ‘우아한 유령’에 비해 화성적으로 어렵습니다. 하지만, 익숙한 두 박자 리듬 덕에 귀여운 유령의 장난처럼 가볍고 발랄한 분위기로 자연스럽게 음악이 표현됩니다.
III. 스펜서 마이어 연주, ‘꿈 그림자’
세 번째 곡인 ‘꿈 그림자’는 래그 타임에 20세기 초반 카바레 음악과 ‘스트라이드 스타일’을 연결해 꾸민 작품입니다. 스트라이드 스타일은 1910-1920년에 뉴욕 할렘에서 발전된 또 다른 래그 타임 스타일입니다. 재즈에서 쓰는 복잡한 화성과 블루스 음정을 꾸밈음으로 사용하면서 화성적으로 풍성한 음향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지요. 세 번째 음악에서는 다양한 스타일이 꿈꾸듯 부드럽게 섞이면서 앞의 두 곡과는 완전히 다른 신비로운 분위기가 펼쳐집니다.
볼컴의 음악은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중간 어디 즈음에 존재합니다. 그래서 악보를 해석할 때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답니다. 그 한 예가 바로 리듬입니다. 악보에 16분음표로 고르게 표기된 음표를 쓰인 그대로 연주하지 않고, 스윙 리듬에 기반해 연주자가 원하는 대로 유연하게 연주할 수 있죠. 스윙은 같은 길이의 음표를 앞은 길고, 뒤는 짧게 바꾸어 연주하는 재즈의 기본 리듬입니다. 악보에 표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연주자는 자신의 해석에 따라 스윙의 정도를 다양하게 조절해 연주하게 됩니다. 연주자에 따라 달라지는 창의적 순간을 섬세하게 드러내는 지점이지요.
양인모 바이올린, 홍사헌 피아노 연주, ‘우아한 유령’
바이올린과 피아노로 편곡한 위 버전이 스윙 리듬을 최대한 살리며 즉흥 연주적 측면을 강화했다면 다음 현악 4중주 연주자들처럼, 악보 그대로 리듬을 따르면서도 음표와 음표 사이를 짧게 끊거나 연결하는 다양한 분절법으로 즐거움을 끌어내는 연주도 가능합니다. 이 경우엔 스윙이 훨씬 내면화되었다 볼 수 있겠죠.
알티우스 현악 4중주단 연주, ‘우아한 유령’
한 인터뷰에서, 윌리엄 볼컴은 아버지를 생각하며 ‘우아한 유령’을 작곡했다고 말했습니다. Ghost를 17세기적 의미로 해석해, 유령보다는 영혼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우아한 영혼을 가진 자신의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작곡한 세 곡의 래그 타임은 그래서 무섭거나 오싹하지 않고 사랑스럽습니다. 우리의 기억 속에 항상 함께하는 그리운 영혼을 떠올리며 우아한 쿵-짝-, 달콤한 래그 타임으로 유혹하는 미국식 현대음악으로 여름밤의 열기를 잊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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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선생. 한국, 미국, 프랑스에서 피아노, 오르간, 하프시코드, 반주, 음악학을 공부한 후 프랑스의 렌느 2대학, 렌느 시립 음악원에 재직 중이다. 음악 에세이 『음악의 언어』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