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방대한 책
책읽아웃 - 김하나의 측면돌파 (197회) 『생각에 관한 생각』 『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 『슈퍼히어로의 단식법』
시작은 책이었으나 끝은 어디로 갈지 모르는 코너, 삼천포책방입니다. (2021.07.22)
방대하지만 재미있는 대중 심리 교양서 『생각에 관한 생각』,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생각하게 되는 『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 하이틴 로맨스 소설의 뒤편을 보여주는 『슈퍼히어로의 단식법』을 준비했습니다.
대니얼 카너먼 저/이창신 역 | 김영사
대니얼 카너먼의 책은 저는 처음인데, 제가 심리학 대중서를 읽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저런 책을 읽으면 대니얼 카너먼이 워낙 많이 인용이 되어 있어서, 이 책을 읽으면서 저한테 익숙한 사례들과 실험들이 많이 나와 있었어요. 이 사람은 노벨상 수상자이기도 하고, 이 책은 대니얼 카너먼이 1960~1970년대부터 새로운 이론을 꺼내 놓은 것들을 집대성해 놓은 것이기도 하고, 본인의 이론만 있는 게 아니라 심리학에 있어서 이 사람이 관심 있는 여러 논문과 실험 결과를 집대성해 놓은 대중 교양서이기 때문에 읽어보면 일단 재밌어요.
책의 앞부분에서 참 재밌었던 것은 시스템 1과 시스템 2에 대한 이야기예요. 시스템 1과 2라고 하는 것은 꼭 두뇌에서 따로따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설명의 편의를 위해서 마치 인간처럼 배역을 1과 2로 나눠서 두뇌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처럼 설명을 해요. 시스템 1은 너무 본능적이고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요. 그것을 사실이라고 해석하고 바로 판단을 내려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조금 더 복잡한 계산이라든가 조금 더 정확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고자 하는 것은 시스템 2입니다. 시스템 2는 시스템 1이 즉각적으로 내린 판단을 점검하기는 하지만 사실은 아주 게으르고 또 관대해요. 그래서 시스템 1과 2가 합쳐져서 내리는 인간의 판단이라고 하는 것은 오류가 생기기 너무 쉬운 거죠. 그래서 시스템 1의 직관을 믿기보다는, 게으르고 또 아주 관대한 시스템 2에 조금 더 에너지를 쏟아서 조금 더 합리적이고 공정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우리는 편향을 바로잡아야 된다는 이야기를 첫 번째 파트에서 하고 있습니다.
2부에서는 ‘10만 달러를 받을 수 있는 확률이 5퍼센트이고 200만 달러를 받을 확률이 몇 퍼센트일 때...’ 이런 예가 계속 나오는데요. 그 이유를 ‘행동경제학 분야, 심리학 쪽에서 도박에 대한 예를 계속해서 쓰는 이유는 이것이 생물학 쪽에서는 초파리에 해당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초파리를 놓고 실험하는 것처럼 도박의 확률과 선택에 대해서 예를 드는 것이 가장 간단명료하기 때문이라는 거죠. 그 부분이 바로 노벨상을 받는데 중요한 포인트가 된 ‘전망 이론’이라고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손실 회피라든가 다양한 심리적인 효용을 적용하기 시작하는데, 그래서 이들이 창시한 게 행동경제학이라고 하는 새로운 분야에 초석을 놓은 것이었어요.
3부로 오면 경험하는 자와 기억하는 자를 놓고 삶의 행복 지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요. 그런 지식과, 그런 지식을 바탕으로 해서 실제 인간 삶에서 다른 사람들의 심리와 상호 교류하는 것은, 조금 다른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저는 직관을 되게 믿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직관을 무턱대고 믿지 않기 위해서, 내가 편향이라든가 내가 직관에 완전히 몸을 던지지 않게 하는 여러 안전장치를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만들어서, 저에게는 생각해 볼 만한 지점이 많았어요. 이론서라기보다는 대중 교양서라는 말이 맞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방대한 책이었습니다.
신민주 저 | 디귿
이 책은 기본소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신민주 저자는 서울시 기본소득당 에서 일하고 있어요. 이 정당에서 상임위원장을 지냈고, 지금은 이 당의 용혜인 의원실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자 본인이 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은평에서 출마한 바 있고요. <오마이 뉴스>, <여성 신문> 등 다양한 매체에 칼럼을 썼고, 지금은 <주간 신민주>라는 메일링 서비스를 하고 있어요. 공저자로 참여한 책으로 『당 만드는 여자들』이 있습니다. 저자 소개의 마지막 문장은 “장래 희망은 기본소득으로 아메리카노를 사서 마시는 멋진 비혼 할머니다”예요.
제목이 『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잖아요. 저자가 1994년생인데, 첫 꼭지부터 지금 청년 세대가 겪는 주거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부분은 장류진 작가님의 『달까지 가자』가 많이 생각났어요. 기본소득 문제를 이야기를 하는 방식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기본소득에 대한 이론이 어떻게 태동했고, 어떤 선례가 있으며 맹점은 무엇인지’ 학술적으로 풀어낼 수도 있겠죠. 이 책도 그런 정보를 전달하지만, 그것보다는 다른 방식을 택했다고 생각해요. 그 방식이 『달까지 가자』 하고 유사하다고 생각하는데 ‘보여주기’인 거죠. 『달까지 가자』를 읽으면 1.2평, 1.5평으로 작은 공간이 늘어남으로 인해서 나의 달라진 일상을 그리는 설렘과 간절함이 그려지잖아요. 그런 디테일의 힘이 이야기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에필로그에서 저자가 친구의 말을 소개를 하는데요. 이 친구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기본소득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라고 생각해. (중략) 난 기본소득이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는데 완성품은 아니라고 생각해. 그래도 뭐, 국가가 돈을 나눠준다면 나는 그 돈을 받고 더 많은 것을 해볼 수 있을 것 같긴 해.”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쪽에서는 ‘그거 준다고 사회 문제가 다 해결될 것 같냐, 너무 나이브하다’라고 얘기할 수도 있는데요. 기본 소득이 주어짐으로 인해서 일어날 변화들을 구체적으로 한번 그려보면 터무니없는 이야기기라고만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샘 J. 밀러 저/이윤진 역 | 열린책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맷이고요. 배경은 뉴욕과 조금 떨어진 약간 촌구석인 것 같아요. 맷은 고등학생이고, 누나는 가출을 한 지 며칠이 되었습니다. 엄마는 동네에 있는 돼지 축산 공장에 다니는 노동자고요. 빈민촌에 살아요. 아빠는 없고, 동성애자입니다.
미국 영화를 보시면 항상 나오는 미식 축구하면서 건들거리는 남자 애들 있잖아요. 맷은 그런 친구들한테 맨날 맞고 다녀요. 누나의 이름은 마야인데 머리를 짧게 자르고 불량한 남자친구들이랑 어울려 다니고 학교도 잘 다니지 않아요. 그리고 펑크 록 밴드의 일원입니다. 맷이 다니는 고등학교에는 타리크라는 친구가 있는데, 아주 잘생기고 금발에 근육이 우락부락한 축구 선수인, 전형적인 킹카의 느낌입니다.
여기까지 보시면 아주 전형적인 미국 하이틴 고등학교의 모습이 그려지시죠. 이 소설은 해피해피한 하이틴 로맨스 소설의 무대 뒷배경 같은 느낌이에요. 타리크가 잘생긴 주인공 역할을 시도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무대 뒤편에는 맷처럼 쭈글쭈글하게 다니고 항상 괴롭힘 당하는 친구들이 있는 거죠. 그 친구의 입장에서 서술이 됩니다.
소설은 맷이 쓴 이야기를 토대로 전개되고 있는데요. 그 이야기의 제목이 ‘단식 병법’이에요. 맷은 사실 밥을 잘 안 먹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맷은 충분히 말라 보이는데 자신의 눈에 비친 모습은 괴물 같이 뚱뚱한 거예요. ‘나는 너무 못생겼어, 나는 어떻게든 이 못생긴 상태를 벗어나야 돼’ 하면서 밥을 굶기 시작해요. 굶다가 폭식도 해요.
하루는 샌드위치를 막 먹어 치우고 아주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로 학교에 간 거예요. 그날은 점심도 잘 안 먹고 집에 가려는데 타리크랑 몰려다니는 남자 애들 중에 한 명이 시비를 건 거예요. 걔가 열 받아서 맷을 때리려고 하는 순간, 맷이 그 남자 손의 궤적을 정확히 보게 돼요. ‘왜 내가 이렇게 보게 된 거지?’ 생각하고 계속 음식을 적게 먹었어요. 그다음 날 학교에 왔더니, 호르몬으로 가득한 10대들 각자가 풍기는 냄새가 다 맷한테 들어오는 거예요. ‘내가 왜 이렇지?’라고 생각을 하다가 자기가 지금 허기진 것을 감각을 했어요. ‘내가 혹시 허기져서 이런 능력이 나타났나?’ 그래서 카페테리아로 가서 엄청 달고 기름진 빵을 사 먹었더니 냄새가 나지 않아요. 그래서 맷이 ‘나는 음식을 안 먹으면 초능력이 생겨’라는 걸 자각하게 된 거예요.
저자가 열다섯 살 때 섭식 장애를 겪은 적이 있어요. 그래서 그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하는데요. 아마 저자 본인이 10대 때 섭식장애를 갖고 본인이 동성애자 남자로서 살아갔던 어떤 힘듦이 맷이라는 주인공에게 투영됐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다 읽고 나서 아주 훌륭한 영어덜트 소설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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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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