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권, 비건 특집] 백 마디 말보다 오늘의 식탁 - 비건 크리에이터 초식마녀
<월간 채널예스> 2021년 6월호
비건이 되지 않아도 좋아요. 레시피가 마음에 들어서, 음식이 맛있어 보여서 오늘 저녁 식사를 채식으로 하기만 해도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행동의 결과는 같으니까요. (2021.06.08)
일명 ‘초마 님’으로 통하는 박지혜는 비건 생활 한 달 만에 유튜브 채널 ‘Tasty Vegan Life’를 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채식이 얼마나 맛있는지는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제는 들깨칼국수 편을 봤어요. 그렇게 맛있게, 무엇보다 많이 먹는 마른 사람은 처음 봤어요. 이래서 채널명을 그렇게 지었나 싶더군요.
적정량을 만드는 데 또 실패했죠, 하하. 면 요리를 좋아해요. ‘Tasty Vegan Life’라는 타이틀은… 맞아요, 그런 의미예요. 맛없을 것 같고, 배고플 것 같고, 풀밖에 없을 것 같고. 시작할 때만 해도 그런 선입견을 가진 사람이 많았어요. 그런데 저는 비건을 결심한 후 음식에 대한 영감이 굉장히 많이 떠올랐거든요. 어렵지 않았어요. 그동안 쌓아온 식도락 경험에서 동물성만 빼면 되니까요. 저처럼 샐러드를 먹지 않는 비건도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
이십대가 좋아할 만한 메뉴가 많더군요. 예를 들어 마라크림 떡볶이 같은.
세대를 고려하며 레시피를 구성하진 않아요. 워낙 먹는 즐거움이 큰 사람이라, 새로운 음식을 발견하면 일단 시도해요. 마라크림 떡볶이도 그중 하나인데 반응이 아주 좋았어요. 마라샹궈 소스에 두유만 넣으면 무조건 맛있거든요. 맛있는 게 중요해요. 백 마디 옳은 말보다 맛있는 음식 한 그릇이 더 설득력 있다고 생각해요.
『오늘 조금 더 비건』에 “더 이상 동물을 먹을 수는 없어” 하고 결심하던 어느 밤 이야기가 나오죠. 그날 이후 페스코나 락토-오보를 거치지 않고, 곧장 가장 엄격한 채식생활자인 비건이 됐어요.
그전에 끝없는 합리화의 나날이 있었어요. 육식을 배제하면 맛있는 걸 먹을 기회가 줄어드니까, 나는 먹는 즐거움이 큰 사람이니까, 모든 동물이 끔찍하게 죽는 건 아닐 거야…. 그러면서 4~5년간 육식을 끊었다 먹었다를 반복했어요. 그사이 육식에 대한 불편함이 많이 누적됐던 것 같아요. 그러다 그날 밤, 미뤄둔 일을 치른 거죠. 방아쇠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카우스피러시(Cowspiracy)>였고요. 목이 잘린 채 살고 싶어서 버둥거리는 오리를 보는데….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오열했어요. 그렇게 깨우쳤죠. 죽고 싶은 동물은 없구나. 인도적인 도살은 없구나. 나는 이제 동물을 먹을 수 없어. 그 후론 한 번도 육식을 하지 않았어요.
네 컷 만화 형식의 인스타툰을 먼저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튜브 채널을 열었어요. 무려 회사에 다니면서 말이에요. 혼자 하는 실천이 아니라 공유를 선택하고, 또 멈추지 않은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거예요.
사실 박지혜라는 개인은 부끄러움이 많아서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에요. 그럼에도 해야 했어요. 피해의 주체인 동물들이 그만하라고 말할 수 없으니, 누군가는 대신 말해야 하고, 그렇다면 내가 해보자. 나는 말할 도구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렇게 비건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거죠. 그게 유튜브로 이어졌고요. 지금은 이렇게 생각해요. 한 명이라도 더 비건이 된다면, 내 흑역사가 인터넷에 남는 것은 감수할 수 있다! 아니, 비건이 되지 않아도 좋아요. 레시피가 마음에 들어서, 음식이 맛있어 보여서 오늘 저녁 식사를 채식으로 하기만 해도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행동의 결과는 같으니까요.
내공 있는 비건들 사이에서 ‘초마 님’으로 불리더군요.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2만 4천명이나 되고요.
‘꾸준함’ 덕인 것 같아요. 회사에 다니면서도 멈출 수 없었던 이유는 ‘누군가는 해야 하기 때문’이었어요. 제가 만화 연재와 유튜브 방송을 시작할 무렵, 막 비건 콘텐츠 만드는 분들이 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나는 역할을 덜해도 되겠구나 했는데, 그분들이 어느 순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더라고요. 저마저 그만두면 비건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다 사라질 것 같아서 불안했고, 그러다 지금까지 왔어요. 제 콘텐츠의 장점은 ‘불완전함’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앵그리 비건이었던 적도 없고, 비건에 대한 선입견을 꽤 오래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에요. 그래서 시작할 때부터 ‘어쩌면 나 같은 사람이 많을지도 몰라’ 하고 생각했고, 어설프면 어설픈 대로 나의 실천을 보여주기로 했죠. 실수로 동물성 원료가 들어 있는 소스를 사용한 적이 있는데 편집하지 않고 그대로 내보냈어요. 나 같은 사람도 하니 당신도 할 수 있다, 실천을 망설이는 분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요.
최근 들어 만화 내용이 조금 달라졌어요. 레시피보다 비거니즘을 더 자주 이야기해요.
저는 코로나가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경고라고 생각해요. 이런 상황에서도 행동을 바꾸지 못하면, 다시 기회를 잡지 못할 것 같아 마음이 급해졌어요. 그래서 이전보다 좀 더 강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려 해요. 악플은 감내해야죠. 명색이 ‘마녀’인데!
곧 새 책이 나오겠군요!
네, 제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 원고를 써야 할 때죠.(웃음) 두 권을 준비 중이에요. 한 권은 그간 받은 질문들에 답하는 형식이고, 다른 한 권은 동물권 이야기예요. 이번에도 저 같은 사람을 위해 쉽고 재미있게 만화로 갈 거고요.
‘비건이 된다는 것은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라는 말에 동의해요. 비건 3년 차, 박지혜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나요?
처음으로 제 인생의 운전대를 잡은 것 같아요. 저는 제가 운전대를 잡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더라고요. 세상이 시키는 대로 생각했더라고요. 육식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니까 육식을 했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를 유보하며 살았죠.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가치의 우열이 없었던 거예요. 그러니 ‘표류’할 수밖에 없고요. 비건을 하면 삶에 질서가 생겨요. 비거니즘은 음식에 머물지 않고 옷을 비롯한 소비로, 사람으로, 세상으로 확장되니까요. 이제, 내비게이션에 목적지 찍고 갈 수 있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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