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라면이 ‘완벽한 음식’인 이유 (G. 윤이나 작가)
책읽아웃 - 김하나의 측면돌파 (185회) 『지금 물 올리러 갑니다』
저는 라면이 보장된 행복이라고 생각하는데, 라면 한 봉지가 거기 있으면 그만큼의 맛과 행복이 보장돼 있는 거죠. 딱 1인분만큼만. (2021.04.29)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작은 사람. 비밀을 하나 말해줄게. 어른은 윷놀이를 하지 않아도, 축구를 하지 않아도 질 수 있어. 그런데 고모도 지는 게 너무 싫어서 진 것 같으면 몰래 울어. 눈물에서는 짠맛이 나는데, 라면 국물하고 비슷한 맛이야. 그렇지만 어른이 짠맛만 느끼는 건 아니야. 자라나고 살아가다 보면 어떤 순간은 달아서 발가락까지 간지러울 거고, 어떤 순간은 눈물 쏙 빠지게 맵기도 할 거야. 씁쓸하지만 달콤하고, 시큼하면서도 새콤하고, 짜다가도 싱겁고, 그렇게 알고 있던, 또 몰랐던 맛이 같이 느껴질 거야. 그게 어른의 맛이고, 라면이 맛이야.
윤이나 작가의 책 『지금 물 올리러 갑니다』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오늘 모신 분은 맹렬하게 쓰고 말하는 여성 창작자입니다. 책 『미쓰윤의 알바일지』, 『우리가 서로에게 미래가 될 테니까』, 『지금 물 올리러 갑니다』, 그리고 드라마 <알 수도 있는 사람>, 팟캐스트 <시스터후드>. 모두가 이 분의 작품이죠. 윤이나 작가님 모셨습니다.
김하나 : 이번에 ‘띵 시리즈’에서 나온 따끈따끈한 신작이죠. 다루고 있는 주제도 아주 따끈따끈합니다. 라면에 대한 책인 『지금 물 올리러 갑니다』의 저자 소개를 보면요. ‘작가. 거의 모든 장르에 글을 쓴다’라고 되어 있어요. 정말 다양한 일들을 하고 계신데요. 마침 ‘국내 N잡러 1호’라고 불리는 홍진아 씨가 친구 분이기도 하시죠?
윤이나 : 네, 맞습니다.
김하나 : 윤이나 작가님도 N잡러이십니다.
윤이나 : 사실 저는 N잡러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작가라는 정체성 안에 제가 하는 일들을 지금까지 통합해오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있고 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그걸 작가란 틀 안에서 다양한 장르로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 정도였어요. 사실 작가는 하나의 직업이잖아요. 작가는 좋은 게, 만들면 다 작가라고 하잖아요. 책 쓰는 것만 작가라고 하는 게 아니라. 그래서 작가라는 통합된 직업 안에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세상에 계속 내놓고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발신하고, 그런 식으로 작업을 해왔고 통합해 왔다고 생각해요.
김하나 : 쓰는 것뿐만이 아니라 말을 하는 것이 되었건 무대에 올라가는 것이 되었건 나는 계속해서 뭔가를 만들어내고 발신하는 사람이다라는 거군요.
윤이나 : 네. 그런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런 사람이 되어 왔던 것 같아요. 저의 삶이라는 게.
김하나 : 『우리가 서로에게 미래가 될 테니까』의 작가 소개를 읽어보면 ‘장래희망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어디서든 쓸 수 있을 정도의 작가가 되는 것이다. 사실 지금도 못할 건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쓰셨습니다. 이번 장르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제안을 받기 전에 ‘내가 어떤 음식에 대해서 뭔가 쓸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을 하고 계셨나요? 아니면 제안을 받고서 ‘그러면 뭐에 대해서 써볼까?’ 이렇게 생각하신 건가요?
윤이나 : 이건 처음 공개하는 건데, 사실 제가 드라마를 쓰면서 엄청 심하게 고통 받고 있을 때 ‘드라마를 쓰는 일이 너무 어렵구나’라고 생각할 때쯤에 ‘띵 시리즈’를 읽게 된 거예요. 조식(『조식:아침을 먹다가 생각한 것들』)하고 해장(『해장 음식:나라 잃은 백성처럼 마신 다음 날에는』)을 읽으면서 ‘이렇게 좋아하는 것에 대해 쓰는 일은 조금 더 즐겁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바로 그 시즌쯤에 친구들이 그런 얘기들을 하는 거예요. 최근에 트위터에서 봤는데 재능이 있다는 거는 ‘내가 정말 재능이 있어!’라는 걸 발견해서 아는 게 아니고, 어떤 사람들이 뭘 하는 걸 보고서 ‘어? 저 사람은 나처럼 안 해? 어? 저 사람은 나처럼 라면을 많이 안 먹어?’ 이런 것들을 알 때 깨닫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사람들은 저처럼 많이 라면을 먹지 않고 저처럼 라면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놀라게 된 거죠.
김하나 : ‘누구나 이 정도로 라면에 진심인 게 아니었어?’ 하고.
윤이나 : 정말 깜짝 놀랐어요. 그 얘기를 황유진 작가가 저한테 했을 때야 비로소 깨달은 거죠. ‘이나 님, 안성탕면 할아버지나 이나 님이나 다를 게 없어요’ 그렇게 말했을 때.
김하나 : (웃음) 이게 이 책의 시작이죠. 저는 시작부터 너무 빵 터지면서 들어갔어요. ““이나 님이 안성탕면 할아버지랑 다를 게 뭐예요?” 내가 질문을 받았던 순간, 이 책은 시작됐다.” (웃음)
윤이나 : 바로 그렇게 시작된 거죠. 저는 깜짝 놀랐어요. 저는 사람들이 다 라면을 굉장히 좋아하고 많이 먹는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랬는데 아니라는 걸 알고서, 저는 지금도 계속 충격 받고 있는데, 후기가 그런 식으로 올라와요. ‘1년에 라면 두 번 정도 먹으면 다행이지만 이 책을 읽었더니 라면이 먹고 싶다’고 해서 사실 저는 ‘1년에 두 번을 먹어?’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데 그걸 깨달았더니 라면에 대해서 쓸 수 있을 것 같은 거예요. 저는 사실 라면이라는 키워드만 떠올려도 이 책에 있는 내용들이 떠올랐거든요. 쓰고 싶은 게 이런 것들이 이미 있는 거예요. 한 챕터 6개 정도가. 그렇다면 쓸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기획안을 쓰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기획안을 만들어서 보냈는데 답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까이는 건가? 이렇게 라면에 대한 나의 사랑이 사라지나?’ 했더니, 어느 날 정말 황급한 메일이 되게 길게 도착을 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김지향 편집자님께서 안 쓰시던 메일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뒤늦게 발견하셨나 봐요.
김하나 : 아, 휴면 계정에 보내셨군요.
윤이나 : 그렇죠. 그런데 한 달 정도 뒤에 발견하셔서 마음이 조금 조급하셨나 봐요. 그래서 ‘큰일 났다, 얘를 잡아야 된다’ 이렇게 생각을 하셨겠죠? 왜냐하면 그 기획안만 봐도 너무 진심이었을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급하게 메일을 보내서 혹시라도 다른 데 연락하시지 않았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제가 이전 책을 낸 곳이 코난북스라는 출판사인데 거기가 ‘아무튼 시리즈’도 내니까, 혹시 ‘아무튼, 라면’을 낼까 봐 마음이 조금 조마조마 하셨대요. 나중에 하신 말씀이거든요. (웃음) 사실 제가 이걸 대외비로 해왔는데, 드라마를 쓰다가 어디다 기획안 보낸 게 조금 제 마음에 걸려가지고 대외비로 해왔는데 <책읽아웃>도 제가 좋아하는 곳이고...
김하나 : (웃음) 이 정도 풀어주시면 정말 고맙죠, 저희는.
윤이나 : 그럼요, 여기서 단독으로 (공개)해드리는 겁니다.
김하나 : 안성탕면 할아버지와 윤이나 작가님의 다른 점은 책에도 나와 있죠. ‘안성탕면 할아버지는 (라면을) 세 끼를 드시지만 나는 하루 한 끼 정도 먹는다. 그것이 차이이다.’
윤이나 : 그렇죠. 많이 먹을 때는 일주일에 5번 이렇게 먹기는 해요. 그래도 저는 30대 여성이고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인데 그렇게까지 먹으면 내 건강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기는 하잖아요. 그래서 여러 가지로 조절을 하죠.
김하나 : 책에 명언이 많이 있는데 그 명언 중에 하나는 이런 게 있습니다. “라면을 건강하게 먹는 법 같은 건 없다. 라면을 먹기 위해 건강해지는 법만 있을 뿐이다.” (웃음)
윤이나 : 웃음을 참으시는데요? (웃음) 명언이라고 하셨는데 웃음을 참으며... (웃음)
김하나 : 이 책과 함께 나온 게 허윤선 에디터님의 훠궈에 대한 책인데(『훠궈:내가 사랑하는 빨강』) 그 책도 저는 참 재미있게 읽었는데요. 훠궈는 안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고, 전체적인 조사를 해보면 한 번도 안 먹어본 사람들도 많을 거예요. 그런데 라면은 너무 엄청난 주제죠. 남녀노소를 통틀어가지고 라면을 안 먹어본 사람은 정말 극소수일 테고, 라면에 얽힌 이야기나 추억도 너무 많을 거란 말이죠. 그렇다면 오히려 너무 방대해서 쓰기가 어려울 수 있어요. 그런데 지금 라면에 대해서 쓴다고 생각했을 때 이미 (소재) 대여섯 개는 떠올랐다고 말씀을 하셨잖아요. 그게 빨리 떠올랐나요? 왜냐하면 저는 이 책을 읽고 너무 깜짝 놀랐거든요. 라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라면을 벗어나지 않는데 인생이 다 들어가 있더라는 거죠.
윤이나 : 정말 멋진 표현입니다! 정말 감사드리고요. (웃음) 사실 저는 이런 책을 내기도 전에 제가 라면에 대해 말하고 있는 영상이 되게 많이 남아 있어요. 예를 들어서 라면에 대해서 북토크를 한다면, 지금은 온라인으로밖에 못하고 직접 여러분들을 뵐 수 있는 일이 많지가 않지만, 만약에 뵐 수 있으면 오프닝 영상으로 틀 만한 영상이 되게 많아요.
김하나 : 결혼식 앞에 나오는 영상처럼.
윤이나 : 네. 그런 영상처럼 제가 라면에 대해 친구들한테 설교하고 있는 영상이 되게 많아요. ‘너는 라면을 그런 식으로 먹으면 안 된다’라든가 ‘네가 라면을 끓이는 방법이 잘못됐다’라든가, 그걸 통해서 제가 라면 끓이는 법을 설파하는 내용이 되게 많거든요. 그런데 친구들이 웃기니까 그걸 다 영상으로 찍어놓은 거예요. 책에도 ‘내 인생의 마리아주’라는 챕터에서 제가 안성탕면을 맞추는 과정이 있는데 그것도 영상으로 남아 있거든요. 그냥 저는 라면에 대해서 언제나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라면이 어떤 방식으로 끓여지는 게 좋다’뿐만 아니라 라면과 이어진 이야기들을 되게 많이 갖고 있었어요. 그게 가족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무엇보다 저는 이게 차별화된다고 믿었던 게, 제가 처음 기획안 드렸을 때의 가제가 ‘1인분의 라면 1인분의 삶’이었거든요. 저는 라면이 완벽한 음식인 이유가 1인분인 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단 한 봉지를 끓였을 때 딱 1인분만 나온다는 것. 저는 라면이 보장된 행복이라고 생각하는데, 라면 한 봉지가 거기 있으면 그만큼의 맛과 행복이 보장돼 있는 거죠. 딱 1인분만큼만. 이걸 얘기를 한다면 차별화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래서 되게 당당히 (기획안을) 보냈는데 한 달 동안 답이 없었던 거죠.
김하나 : (웃음) 그런데 그 당당함이 이 작은 책에 온통 배어 있습니다. 일단 프롤로그 제목이 ‘라면이 우리를 완전케 하리라’라고 돼있고, 목차를 보면 ‘첫째, 라면을 끓이기 전에’, ‘여섯째, 물이 끓는 사이에’, ‘일곱 째, 비빔면과 기타 등등의 경우’... 논문입니까? (웃음) 어찌나 체계적으로 되어 있는지. 그리고 시작할 때도 보면 문장들이 박력이 터져가지고... “무엇보다 한 봉지에 1인분이라는 점이 완전함의 정점이다. (물론, 비빔면의 경우 대중적으로 합의된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음을 밝혀둔다. 이는 비빔면에 대한 내용에서 따로 언급할 것이다.)” 너무 멋있는 거예요. (웃음) 뭔가 재미있고 따뜻하고 알콩달콩하고 약간 페이소스가 있는 이런 문장이지 않을까라고 하는 기대를 완전히 뒤엎으면서... 저는 어디서 이런 문장력을 얻으셨는지, 어떤 문장을 보고 좋다고 생각하시는지 이런 것도 너무 궁금했어요.
윤이나 : 그냥 제가 쓰는 문장의 스타일을 편집자 님이 사실 잘 유지를 해주신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칼럼도 되게 많이 쓰고 지면이 여러 가지로 있으니까 편집하는 과정에서 어떤 저의 개성이랄까 하는 것들이 조금 윤색될 때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 같은 경우는 그대로 살려주셔서 저는 개인적으로 너무 감사드리고 기쁜 부분이고. 문장에 대해서는 저는 제 문장을 되게 좋아해요. 제가 쓴 걸 되게 자주 읽어요.
김하나 : 그리고 윤이나 작가님은 본인의 많은 것들을 좋아하시죠. (웃음)
윤이나 : 사실입니다. 그것은 굉장히 사실이고. (웃음) 그래서 친구들이 여기에서 잘난 척하고 오지 말라고 했는데, 지금 <책읽아웃> 사이에서 장안의 화제거든요. 윤이나가 드디어 김하나 작가님을 만난다, 누가 더 말을 많이 할 것인가, 이런 것들이 지금 친구들 사이에 굉장히 화제인데...
김하나 : 저는 이미 진 것 같습니다. (웃음)
윤이나 : (웃음) 사실 저는 조금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제가 글을 쓰는 것 자체를 조금 좋아하고, 제 문장을 좋아하고, 이 박자 리듬 같은 거를 많이 생각을 하는 편이고. 읽기는 굉장히 많이 있지만 ‘난 이 사람 같은 문장을 쓰고 싶다’거나 ‘이런 문장을 조금 많이 참고하고 싶어’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그냥 계속 써나가는 과정에서 ‘이걸 읽었을 때 이 문장들이 윤이나가 쓴 것 같이 보였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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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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