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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은의 가끔은 좋은 일도 있다] 갑작스러운 이별의 시간
<월간 채널예스> 2021년 2월호
나는 뭘 바랐던 거지. “지은 씨는 제 환자고, 제가 책임지고 완치시키겠습니다. 우리는 나을 수 있습니다!” 이런 선언이라도 듣고 싶었던 것일까. (2021.02.03)
정신과에 다닌 지 올해로 7년째. 처음엔 잠깐 다니다가 말 줄 알았는데 어찌어찌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다. 첫 병원에 실패하고 현재 병원에 정착한 지도 5년이 넘었다. 파주로 이사를 간 탓에 서울의 동쪽에 있는 그 병원에 가려면 왕복 3시간의 여정을 떠나야 하지만 잘 맞는 정신과 의사를 찾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기꺼이 견뎌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다름없이 핸드폰 메모장을 열고 그간의 증상에 대해 선생님께 브리핑을 하고 있었다. 잠은 어떻게 자는지, 식욕은 어떤 양상인지, 우울감은 어떻게 나타나는지, 최근의 특이 사항은 무엇인지, 진료시간은 짧고 정신 상태는 표현하기 참 애매하기에 내 나름의 요령으로 날 설명하다가 갑자기 내가 물었다. 충동적으로 생각한 건 아니었고 예전부터 궁금하던 것이었다. ‘선생님, 제가 이 세팅으로 약을 먹은 지도 한참 되었는데, 이제 약을 끊는 것은 포기했고 이 세팅 그대로 동네 병원에 가는 건 어떨까요?’ 연말에 병원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아 두 번이나 예약을 옮긴 터였다. 선생님은 전혀 망설이지 않고 그럽시다!하고 경쾌하게 말씀하셨다. 어어?
그렇게 갑작스러운 이별의 시간이 왔다. 나는 뭘 바랐던 거지. “지은 씨는 제 환자고, 제가 책임지고 완치시키겠습니다. 우리는 나을 수 있습니다!” 이런 선언이라도 듣고 싶었던 것일까. 나도 몰랐던 나의 당황스러운 마음을 뒤로하고 선생님은 수속 준비를 하셨다. 나는 어떤 환자라고 정의되어 전달되는 걸까. 지금 받고 있는 섬세한 처방이 잘 이어질 수 있을까. 나의 뇌는 예민한데 새 선생님은 그걸 잘 파악할 수 있을까. 환자로서의 자의식이 커져만 가는 동안 선생님은 엔딩 멘트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 내용이 조금 의외였다.
“반려동물을 키운 게 결국 큰 도움이 되었을 거예요. 누군가를 돌보고 움직이고 사랑을 주고받은 게 마음을 많이 좋게 만들어줬을 거예요.”
5년간 한 달에 한 번 누군가를 만나서 마음의 상태를 꼬박꼬박 보고한다는 건 좀 신기한 일이었다. 선생님의 판단에 따라 가끔은 약이 줄기도 했고 상당히 늘기도 했다. 선생님은 나의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동시에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치료가 성립하는 것이겠지. 진료실을 나가고 다음 환자가 들어오면 리셋이 되기 때문에 지속 가능한 관계. 그래서 선생님이 그간의 총평을(?) 내려주신 게 신선했다. 그리고 거기에 강아지 흑당이 이야기가 꼭 집어 나올 줄은 몰랐다. 감상에 젖으려고 하자 선생님은 깔끔하게 나를 내보냈다. 언제나 그러시듯.
처음 집에 왔을 때 2개월 작은 아기였던 흑당이는 이제 세 살, 15킬로의 멋진 성견이다. 항상 실외 배변을 하는 흑당이는 하루에 두 번 산책을 나가야 하는데 한심한 엄마는 가끔 집 밖에 나가지 못하는 상태가 되곤 했다. 그럼 동거인이 혼자 산책을 시키고 터그 놀이를 하고 밥을 주었다. 그래서인지 내 상태와 상관없이 흑당이는 무럭무럭 자랐다. 그리고 흑당이에 대한 나의 사랑도 무럭무럭 자랐다. (그 과정은 책 『괜찮지 않을까, 우리가 함께라면』에 자세히 적어두었습니다 하하)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흑당이와 밤 길을 걸을 때다. 어떻게 이런 감정의 흐름이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흑당이가 실룩실룩 걷는 모습만 봐도 좋다. 가끔 웃으며 나를 돌아보면 너무 좋다. 잘 먹으면 너무 좋다. 잘 싸도 너무 좋다. 기쁜 표정을 보이면 너무 좋다. 인형을 뇽뇽 뜯어도 너무 좋다. 잠자는 모습을 보아도 너무 좋다. 그렇구나, 너무 좋은 순간이 이렇게나 많았는데 내가 안 좋아졌을 리가 없지.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반려동물을 키우면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호더의 집에서 위험에 빠진 개나 고양이를 구출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생명을 키우는 일은 당연한 소리지만 힘이 많이 든다. 우울증 환자는 자기 자신도 챙기기 힘드니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지 못할 것이고 그럼 동물들이 행복하기 힘들 것이라는 논리이다. 그런 글을 읽으면 나는 찔리고 움츠러들어 내 옆에 있는 흑당이를 바라본다. 흑당아, 맨날 이렇게 누워있는 엄마도 괜찮아? 나는 네 덕분에 이렇게 행복해졌는데 흑당이는 어때? 당연히 흑당이는 말이 없고 꼬마는 나를 척척 밟고 지나간다. (꼬마는 최근에 등장한 슈퍼스타 고양이입니다) 그리고 동거인이 말한다. 이상한 소리 그만하고 꼬마 화장실이나 좀 치워줘. 응 미안해….
다른 병원으로 옮기기 위한 서류를 받으러 카운터에 갔다. 너무 두꺼운 서류를 받으면 어쩌지 걱정이 되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처방 내역과 나의 특이사항, 미묘한 나의 정신적 변화 같은 것이 모두 적혀있는 아주 흥미로운 서류를 받게 되는 것일까! 서류는 단 한 장이었다. 나의 병명은 단 한 줄. 불면증과 우울증. 환자들의 자의식 과잉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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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음악가. 책 <익숙한 새벽 세시>, 앨범 <3>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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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이 많은 나지만, 슬슬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내 인생에 꿀 같은 일들이 일어났다고.” 완전하지 않아도 분명히 존재하는 행복의 가능성들 행복의 모양은 어떤 모양일까. 완전한 동그라미일까, 반짝반짝 별 모양일까, 안정적인 네모 모양일까. 마음은 담는 그릇에 따라 모양이 바뀌는 것이라던데 행복도 그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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