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책] 특별 대담 - 코로나 시대에 예스24 MD로 살아가기
<월간 채널예스> 2020년 12월호
팬데믹 이후, 가장 큰 변화는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구매 장소가 이동했다는 게 아닐까 싶어요. 베스트셀러 경향은 ‘돈을 쫓는 모험’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2020.12.31)
2020년은 특이 사항으로 가득한 해였죠. 모든 것이 달라지고 있다는 말을 매일 실감하며 살았어요. 그것도 온 인류가! 책 시장에는 어떤 변화들이 있었나요?
손민규: 가장 큰 변화는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구매 장소가 이동했다는 게 아닐까 싶어요. 베스트셀러 경향은 ‘돈을 쫓는 모험’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돈을 끌어들이는 힘까지. 존 리가 경제경영 분야 주요 저자로 떠올랐고 『더 해빙』은 초판을 찍은 지 6개월이 안 돼 40만 부 에디션을 내놓았어요. 상대적으로 인문/사회 분야는 위축됐는데요. 그럼에도 진입 장벽이 낮은 교양서들이 출간돼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얇은 지식 0』, 『1일 1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짧은 교양 수업 365』 등 해설자가 이끌어주는 책이 많은데요. MD로서는 인문/사회 도서를 보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흐름에서 희망을 보고 있습니다.
김현주: 코로나 초기에는 #StayAtHome의 영향력이 클 거라고 예상했어요. 물론 #StayAtHome 키워드의 책이 주목받긴 했지만, #StayAtHome을 이야기하는 방송의 영향력이 더 컸다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전에 비해 많이 줄어든 요리책 시장을 견인한 건 『이정현의 집밥레스토랑』이거든요. 박막례 할머니가 방송에서 소개한 레시피를 모은 『박막례시피』도 인기가 있었고요. 인테리어 도서로는 『당신의 인생을 정리해드립니다』가 좋은 성적을 거뒀어요. tvN <신박한 정리>에서 공간 크리에이터로 활동한 이지영 씨가 저자죠. 방송의 영향력 밖에 있던 분야 중에는 유아교육 쪽이 약진했어요. 교육 공백을 염려한 엄마들이 한글 떼기, 수 세기를 연습할 수 있는 워크북과 그 밖의 자녀교육서를 구매한 거죠.
이주은: 소설도 방송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보건교사 안은영』,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같은 드라마 원작 소설들의 판매가 돋보였거든요. 저희끼리는 ‘넷플릭스 님’이라고 불러요, 하하. <요즘책방: 책 읽어드립니다>에서 소개한 이후 카뮈의 『페스트』도 꾸준히 나가고 있어요. 설민석 씨가 직접 쓰거나 추천한 책은 ‘믿고 보는’ 분위기가 강해요. 또 한 가지 특이 사항은, 올해 시작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웹소설을 종이책으로 만든 박스세트들의 인기예요. 팬들의 소장 욕구가 웹 베이스의 소설을 종이책으로 바꿔놓은 거죠.
김은진: 대학들이 비대면으로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이 구내 서점에서 구입하던 교재를 온라인 서점에서 구입하며 매출이 상승했어요. 반면 수험서 시장은 줄어들었죠. 공무원 시험, 자격증 시험이 연기됐으니까요. IT 분야에서는 『혼자 공부하는 파이썬』처럼 혼자 공부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책 판매가 눈에 띄게 올랐어요.
그전까지 북튜버나 유튜브가 낳은 베스트셀러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코로나를 기점으로 유튜브 셀러가 확 늘었다는 게 눈에 보여요.
손민규: 예전에는 특정 도서가 갑자기 잘 나가면 ‘TV에 나왔나?’ 하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유튜브에 나왔나?’를 먼저 생각해요. 앞서 언급한 『존리의 부자되기 습관』, 경제경영 분야 연속 17주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돈의 속성』도 유튜브 셀러예요. 존 리가 일으킨 ‘존봉준’, ‘동학개미’ 열풍 진원지는 유튜브이고, 『돈의 속성』은 유튜브 인기 강연을 다듬은 책이고요.
김현주: 취미/실용 쪽은 유튜브 영향을 많이 받아요. 콘텐츠를 충실하게 쌓고 충분한 수의 팬을 확보한 저자들은 대부분 좋은 성적을 내요. 피지컬갤러리도 그중 하나예요. 지금까지 낸 모든 책이 건강 분야 베스트셀러였죠. 올해 출간한 『하루 5분 내 몸 관리법』도 물론 그랬고요.
김은진: IT는 워낙 유튜브 셀러가 많아요. 올해 나온 책 중에서는 조블리의 『유튜브 영상 편집을 위한 프리미어 프로』, 노마드 코더의 『Do it! 클론 코딩 영화 평점 웹서비스』가 좋은 성과를 거뒀죠. 노마드 코더는 개발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유튜버예요. 추천 책 리스트가 인터넷을 떠돌 정도죠. 개발자로 커리어를 쌓는 법이나 IT 트렌드에 대한 재밌는 영상이 많아요.
그렇다면 2020년 유튜브 셀러와 각 분야에서 가장 사랑받은 책 리스트가 같을지 궁금한데요!
손민규: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아요. 종합 1위는 단연 『더 해빙』이고요. 올해 나온 인문/사회 분야 책 중에서는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라는 인문 에세이가 가장 큰 사랑을 받았어요.
김현주: 올해의 베스트셀러가 올해 나온 책이 아니네요. 판매만 보면 백희나 작가 책이 가장 인기가 좋아요. 수상 소식도 있었고 그 후 방송에도 얼굴을 자주 비추신 영향이겠죠. 올해 나온 책 중에는 안녕달 작가의 『당근 유치원』이 반응이 좋아요. 팬층이 두터운 작가이고 작품도 좋아서 오랫동안 꾸준히 사랑받을 것 같습니다.
이주은: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예요. 원래도 항상 베스트셀러 순위 내에 있는 책이지만, BTS RM과 슈가가 방송에서 추천한 후 날개를 달았죠.
김은진: 한국사 능력 검정 시험 관련 도서들이 꾸준히 팔렸어요. 내년부터 공무원이나 공기업에 지원할 때 성적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된 게 가장 큰 이유이고요.
우리 모두 언택트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어요. 온라인 서점들도 다양한 시도를 해야 했고요.
이주은: 코로나 덕분에 새로운 경험을 많이 했죠, 하하. 기억에 남는 건 역시 ‘2020 한국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온라인 투표예요. 투표 후 매년 오프라인에서 진행하던 작가와의 만남을 유튜브 라이브로 진행했습니다. 예상외로 오프라인 때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게 되더라고요. 참여하신 분들께 일일이 굿즈를 발송하는 데만도 엄청난 시간이 들었어요. 다행히 참여도는 오프라인 때와 비교해 떨어지지 않았어요.
김현주: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해마다 저희 서점은 ‘어린이 독후감 대회’를 열었는데, 올해는 오프라인 시상식이나 특강은 포기해야 했어요. 대신 동영상으로 온라인 특강을 준비했는데 MD가 챙길 일이 많더라고요. 자막 검수는 3차까지 했고, 편집점을 잡는 데만 꽤 많은 시간을 투입했어요. 조만간 그때 배운 기술을 쓸 일이 생기겠죠?
김은진: 수험서나 IT 분야 도서는 출판사, 혹은 저자 쪽에서 동영상 강의를 별도로 운영하기도 해요. 어쨌든 서경석 씨의 공인중개사 시험 합격이 화제가 되는 시대잖아요. 예스24도 이미 ‘요리책 레시피대로 요리하기’ 영상을 제작하고 있어요.
이주은 다음 편은 <수험서 MD, 한국사 능력시험 보러 가다>가 어떨까요? 당락 불문, 결과가 궁금할 것 같아요.
출판사들도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어요. 올해의 시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는다면요?
이주은: 단연 민음사TV가 아닐까요? 특히 <말줄임표>는 매회 빼놓지 않고 봤어요. 민음사TV는 기존에 민음사가 가지고 있던 ‘옛날 출판사’ 이미지를 단숨에 털어냈어요. 이제는 책을 좋아하는 2030 사이에서 가장 ‘힙한’ 출판사로 불리죠.
손민규: 중요한 건 시도보다 흐름이 아닐까 해요. 출판사와 서점이 영상 콘텐츠의 ‘생산자’가 돼야 하는 시점이 온 것 같아요. 얼마 전만 해도 출판사들은 북튜버나 유명 채널 영상을 출판사 계정에 업로드하는 정도에 머물렀어요. 하지만 이제는 아니죠. 민음사TV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만의 매력을 가진 크리에이터가 돼야 해요.
영상 콘텐츠의 생산자가 돼야 하는 시대가 왔군요! 하지만 서점이 생산자 역할을 해온 건 어제오늘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이미 많은 채널을 운영하고 있잖아요. 블로그, 인스타그램, 트위터, 예스24 안에서…. 이 가운데 어제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매체는 무엇일까요?
손민규: 유튜브가 핫한 건 분명하지만, 모든 MD의 꿈은 자체 채널의 힘을 키우는 거예요. 개인적으로 올해는 콘텐츠의 힘을 다시 생각하게 된 시기예요. 굿즈도 좋지만, 그리고 안 할 수 없지만, 언제까지 굿즈에 기댈 것인가? 그래서 몇 가지 기획전을 해봤어요. <쓸모없지만 재미있는 기획전>은 정말 쓸모없는 일을 해보자는 기획이에요. 출판사 이름으로 장난을 치기도 하고, 예를 들어 휴머니스트와 후마니타스를 붙이고, ‘솔직히 헛갈린 적 있다’를 묻는 거죠. 또 <대장금>이라고, ‘대표가 장난 아니라 진지하게 추천하는 금쪽 같은 내 새끼’가 풀 네임이에요. 둘 다 ‘해도 될까?’ 고민이 많았는데, 반응이 예상 밖이었어요. <쓸모없지만 재미있는 기획전>은 멘션을 올리자마자 리트윗 건수가 2200건을 기록했으니까요.
김현주: <쓸모없지만 재미있는 기획전>은 모든 MD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SNS를 할 때 자기 검열 과정을 피할 수 없거든요. 화제에 오르면 플러스가 돼야 하는데 독이 될 수도 있으니까. “책으로 장난해?” 하는 피드백을 들을 수도 있었던 거죠. 그런데 역시 콘텐츠가 재미있으니까, 많은 사람이 기꺼이 공감해주더라고요.
김은진: 저희는 4월부터 <월간 개발자>를 발행하고 있어요. 일종의 웹진이죠. IT는 전문가와 마니아들의 세계인데, 제가 전공자가 아니거든요. 그래서 개발자들의 의견을 듣고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슬슬 반응이 오고 있어요. 내년에도 이어갈 생각입니다.
이주은: <MD의 구매 리스트>라는 기획전을 하고 있어요. #내돈내산 책을 인상 깊은 구절과 함께 피드하는 형식인데, 테드 창의 『숨』을 올렸다가 편집자에게 연락을 받았어요. 첫 메일 이후 꽤 여러 번 감상평을 주고받았죠. 꾸준히 하면 되는구나, 그걸 깨달은 경험이었어요.
2021년에도 여전히 한 해의 대부분이 팬데믹 상황일 것 같지만, 올해와는 다른 한 해가 펼쳐질 거라는 기대도 있습니다. 새해에는 어떤 변화가 우리를 찾아올까요?
손민규: 전자책이나 오디오 시장의 약진을 기대하는 사람도 있는 듯한데, 적어도 인문/사회 그리고 종교 분야는 전자책이 우위를 점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여요. 웹소설에서는 네이버 같은 플레이어가 활약할 것으로 보이고요. 코로나도 이 흐름을 바꿀 수는 없지 않을까 합니다. 내용 면에서는 ‘돈만으로 살 수 없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길 바라요. 올해 돈 이야기는 충분히 했으니까요.
김현주: 줌 수업이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본 엄마들이 홈스쿨링을 주제로 한 책을 찾지 않을까 해요. 이미 엄마가 먼저 배워서 가르치는 수학책, 노트 필기법 등 기존과 다른 접근의 책들이 나와 있는데 더 다양해질 거고요. 시장은 크지 않지만 어른들을 위한 동화도 주목하고 있어요. 짧은 글에 익숙해진 어른들이 시장을 형성해줄 가능성이 높죠.
이주은: 청소년 도서들이 풍성해지고 있어요. 공부법, 진로, 공부 수기까지 주제나 접근법도 다채롭고요. 홈스쿨링 하면서 관심사가 확장됐고, 또 출판사들이 다양한 주제의 청소년 도서를 내면서 시너지를 일으킨 거죠. 이 흐름이 조금 더 이어질 것 같아요.
김은진: 코로나로 언택트 삶에 대한 관심이 커졌잖아요. 여러 변화가 있겠지만 특히 대중적인 IT 관련 책들이 나오지 않을까 해요. 올해 『비전공자를 위한 이해할 수 있는 IT 지식』이라는 책을 텀블벅에서 론칭하고 베스트셀러에 안착했어요. 여러 면에서 새로웠던 책이에요. 한동안 개발자를 비롯한 전문가용 책이 주를 이뤘거든요. 이 책의 성공은 많은 사람이 ‘이제 IT와 분리된 삶을 살 수 없겠구나’를 알게 됐다는 증거물이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조만간 우리를 찾아올 기쁜 소식이 있다면 이 자리에서 전해주세요.
이주은: 곧 히가시노 게이고 책이 나와요. 전 세계 동시 출간하는 데다 신작이라 두근거리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손민규: 조만간 마이클 샌델 책이 나옵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알릴레오 시즌3>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유시민 작가가 본업인 작가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했고, 첫 편에서 소개한 『자유론』이 이미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어요. 티저 격이었던 <다스뵈이다> 추천 도서 세 권, 『죽은 자의 집 청소』,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 『아인슈타인이 괴델과 함께 걸을 때』가 일으킨 반향을 봤을 때, 도저히 기대감의 크기를 줄일 수 없죠. 작가님, 힘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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