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음악 > 주목, 이주의 앨범
지난 10월,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가 김제형의 첫 정규 음반이 발매됐다. 소리, 소문이랄 것도 없는 조용한 등장이었다. 별다른 홍보도 없었다. 심지어 포털 사이트를 비롯한 몇몇 음악 플랫폼에 그의 이름을 검색해도 결과는 요원했다. 2017년 첫 EP <곡예>를 내놓고 올해 첫 정규를 냈다. 그게 우리가 알 수 있는 모든 정보다.
뚜껑을 열고 음악을 만나보자. 이것 참 여러 가지 이유에서의 걸작이다. 우선 지난 EP가 포크를 중심으로 일상의 감성을 노래했다면 이 작품은 장르 소환에 거침이 없다. '노래의 의미'는 레이 찰스의 명곡 'Hit the road jack' 풍의 스윙으로 몸을 들썩이게 한다. 이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위트. '음악의 쓸모없음(그럼에도 노래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을 독특한 내레이션으로 고백한다. 친숙한 '고양이 춤'의 멜로디를 묘하게 비틀어 곡의 끝을 맺는 구성 또한 매력적이다.
이렇듯 큰 악기들을 활용해 사운드를 풍부하게 채운 노래들이 많다. 뮤지컬의 한 대목을 연상시키는 '의심이 많아진 사람의 마음이 있었지'나 편애하는 사람들과 함께 모여 사는 마음을 꿈꾼다고 말하는 '편애하는 사람'이 대표적이다. 뿅뿅이는 신시사이저를 중심으로 키치한 복고 감성을 내뱉는 '인정투쟁' 역시 쉬이 넘길 수 없는 킬링 트랙. 기교 없이 굵고 정직한 목소리로 '어어' 추임새를 넣는 센스 앞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삼킬 도리가 없다. '체 킷 아웃(Check it out)'하며 곡을 즐길 수밖에.
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의 존재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포크를 중심으로 일상과 위트를 결합했다는 측면에서 얼마 전 <청파소나타>로 돌아온 정밀아가 떠오르고 그 이외에도 김목인, 김정균(김거지), 권나무 등이 그와 교집합을 가진다. 김제형이 새로울 수 있는 건 단박에 집중 조명을 쏘아도 문제없을 음악성에서 나온다. 어쿠스틱 기타의 왈츠 리듬으로 기본을 잡고 바이올린이 탄탄히 곡을 견인하는 '농담에게', 셔플 리듬의 진득한 일렉트릭 기타가 근사한 '아엠 새드' 등 노래는 단단하다. '참을 수가 없어요 / 친구가 울었던 날 / 애인이 다쳤던 날'의 쉬운 가사와 명료하고 확실히 와 닿는 멜로디 사이 선연히 김제형의 존재가 빛난다.
어디선가 뚝 던져진 듯 등장해 바람처럼 좋은 음반을 내놓고 사라졌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 이 음반은 세상의 어둠과는 별개의 유쾌함을 담았다. '실패담', '남겨진 감정'과 같은 익숙한 발라드 구성이 간혹 진부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쩐지 앨범 안에서 노래들을 만났을 때 곡의 진부함은 오히려 익숙함과 친숙함으로 그리하여 솔직함으로 다가온다. 뉴 잭 스윙, 재즈, 포크 등 다양한 소스를 맛있게 우려냈다. 김제형,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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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김제형>16,600원(19% + 1%)
[사치]로부터 사회에 내던져진 후부터 세상에 대한 믿음이 점점 사그라들고 있다. 자주 남을 의심하고 그보다 더 자주 나를 의심한다. 잘 살고 있는 걸까? 답도 끝도 없는 질문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졌고, 더 열심히 일하거나 나쁜 농담에 기웃거리면서 불안을 꺼뜨리려고 애썼다. 하지만 자꾸 공허해지는 건 막을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