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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가 맞닥뜨린 격리의 시대
곽민지의 혼자 쓰는 삶 9화
같은 차원에서, 나는 서로의 공간을 단독으로 파고들 사이는 아니었지만 다른 색깔로 나와 친밀하게 지냈던 사람들과 연결감을 느낄 방법을 찾기로 했다. (2020.09.15)
운동을 못 간 지 2주가 넘었다. 모임은 더 아득하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아주 가까운 사람을 제외하면 삶에서 얼굴을 마주할 수 없게 되었다. 사랑하면 흩어져야 하고, 곁을 오래 지키고 싶으면 곁을 떠나야 하는 기간. 그러다 그 고립감이 너무 버겁고 힘들면, 내 집이 날 집어삼킬 듯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들면, 가족이거나 가족에 가까운 친구 1명 정도를 집에서 만나 함께 배달음식을 먹었다. 가족이거나 가족에 가까운 친구가 같은 고통을 호소할 때 나도 그렇게 가주었다.
그렇게 버티다 최근, 불안감이 엄습했다. 힘들 때 제3의 공간이 아닌 서로의 집에 찾아갈 정도로 매우 절친한 존재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 관계들은 내가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예를 들어 거의 십 년째 두어 달에 한 번씩 배가 터지도록 술을 마시던 5인의 모임이나, 여행 코드만큼은 잘 맞아 함께 해외로 떠나던 3인의 모임 혹은, 각자 생업을 이어가느라 쌓인 스트레스가 폭발할 때쯤 1년에 두어 번 만나 1차는 수다 2차는 맛집투어 3차는 단체로 클럽에서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며 놀다가 아침에 쌀국수 한 판씩 먹고 들어가던 6인의 모임... 이런 이들을 나는 앞으로 어떻게 지켜야 할까. 단둘이 만날 때 특유의 친밀함은 없지만 그만큼의 부담감을 서로에게 지우지도 않으면서, 서로가 필요할 때 외출을 곁들여 느슨하게 밀착해 함께 살아온 그 사람들을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서로를 너무 아껴서 당분간 온라인에서만 친밀하게 지내던 요즘, 문득 단톡방에서 재잘대는 이들이 어느 나라에 있는지도 모르겠네 싶어졌다. 살면서 몇 번의 장거리 연애를 했는데, “어느 나라에 있든 뭐 어때, 한 동네 살아도 바빠서 1년을 안 보는 친구도 있는 건데. 그런 거라고 생각할 거야.” 하면서 거리감을 무시하려 애썼다. 그런데 이제는 반대로, 서울에 있어도 쉽게 만날 수 없어진 친구들이 미국이나 이탈리아에 있는 연인처럼 서글프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핸드폰 안에 있지만 당장 만나러 달려 나갈 수 없어 서러운 기분이, 한동안 다시는 원거리 연애 따위 안 할 거라며 옆으로 누워 웅크린 채 잠들던 그 시절로 나를 돌려놓았다.
집에 디폴트로 누가 있다면 나았을까 하는, 살면서 한 번도 안 해본 생각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잠시 후, 연인이 집에 이틀 이상 있으면 불편해 어쩔 줄 모르면서 요즘처럼 외출도 안 하는 시기에 누군가 사실상 24시간을 함께 있어야 한다면 나는 이미 미쳐버렸을 게 분명하다는 걸 복기했다. 한 치의 의심 없이 몸으로 알고 있었던 그 사실이, 요즘처럼 난생 처음 이런 자발적 고립을 언제까지 해야 할지 모르는 시즌에는 혼돈 속에서 지워지기도 하는 것이다.
유난히 고통스러웠던 지난주를 넘기고, 캠핑의자를 사기로 결정했다. 여행도 야외 치맥도 당분간 안 된다면, 나는 우리 집 옥상에 홀로 올라가 파티를 하기로. 내 머리 위 파란 건 더블린의 하늘이다, 혹은 여기가 을지로 노상 호프집이다 생각하기로. 여행비용이다 생각하고 무조건 제일 좋은 걸로 사야지. 반쯤 누울 수도 있고 맥주 포켓도 있는 것으로.
같은 차원에서, 나는 서로의 공간을 단독으로 파고들 사이는 아니었지만 다른 색깔로 나와 친밀하게 지냈던 사람들과 연결감을 느낄 방법을 찾기로 했다. 먼저 안부를 묻기도 하고, 화상회의 어플 켜놓고 집술파티도 하고. 홀로 있어야 하지만 홀로 있기 때문에 공간 전체를 내가 원하는 소리와 활동으로 채울 수 있다는 특권을 누리면서. 일단 친구들과 작당해서 몇 년이 걸리든 전 세계가 이 고통 속에서 탈출하는 때가 오면 함께 떠날 목적으로 적금을 시작해야겠다. 어느 해변 도시 클럽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방방 뛰고 파티할 돈을 모아야지. 그러자면 살아남아야 한다. 이 시절을 살아남을 방법을, 적극적으로 강구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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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출판레이블 <아말페> 대표. 기성 출판사와 독립 출판사, 기타 매체를 오가며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걸어서 환장 속으로』 『난 슬플 땐 봉춤을 춰』 등이 있다. 비혼라이프 팟캐스트 <비혼세>의 진행자, 해방촌 비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