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해 “요리로 ‘코로나 블루’를 치유해보세요”
『식탁의 위로』 최지해 저자 인터뷰
특히 요즘같이 코로나로 몸과 마음이 위축된 분이라면 저의 책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것 같아요. 감히 장담하건대, 요리는 이를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일지도 몰라요. (2020.07.23)
로켓 배송, 번쩍 배달, 새벽 배송 등등, 날이 갈수록 좀 더 편하고 좀 더 빠른 걸 선호하는 세상 속에서 요리라니!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는 최지해 작가는, 직업 특성상 생산자와 소비자를 자주 만나며 느낀 것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 책의 ‘반’을 만들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정한 먹을거리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써 내려가며, ‘요리는 삶의 축소판’이라고 말한다. 요리를 통해 알게 되는 진짜 잘 먹고 잘 사는 삶이란 대체 무엇일까. 최지해 작가에게 물었다.
‘오늘도 삶이 담긴 식탁을 준비 중’이라는 표현이 인상 깊습니다.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책 소개 부탁드려요.
‘요리는 언젠가 너를 빛나게 해 줄 네 적성’이라는 무려 16년 전의 사주 결과에 기겁하여 반발이라도 하듯 요리를 즐기지 않았지만, 그 시간 동안 가지고 있던 ‘요리는 하찮다’는 편견을 깨는 과정을 책에 담았습니다. 위로의 때를 놓쳤을 때 미안한 마음을 농축시킬 수 있는 콩포트라는 유일한 방법을 찾거나, 요리라는 행위가 단순히 먹는 것을 넘어 누군가와 관계를 이어가는 연결 고리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거든요. 또한 접시 너머에 있는, 살면서 한 번쯤은 생각해 봐야 할 것에 대해 알아가는 삶의 방식이라는 진한 양념도요.
조금 더 거창하게 이야기하자면 ‘요리라는 행위는 삶의 축소판과 같다’는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퇴근 후 모임에 나가 ‘화려한 삶’을 개척하는 것에 비해 오로지 ‘어묵 한 꼬치’가 전부인 나의 퇴근길에 누군가 간장 종지를 건네주었으면 하는 다소 허무맹랑한 짠내도 폴폴 풍기면서요.
한살림이라는 생협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음식과 요리에 대한 책을 써냈다는 부분이 눈에 띄어요. 생협에서 근무한 것과 『식탁의 위로』에는 어떤 연결점이 있는 걸까요?
생협에서 일하는 동안 꼭 해보고 싶던 업무를 맡았었습니다. 생산자와 조합원(소비자)을 자주 만나고 이들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역할 같은 것이었는데, 정말 운이 좋게 이 업무를 할 수 있게 됐어요. 그 과정에서 정말 다양한 일을 겪었고, 저는 이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글로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거든요. 결국 우리 모두가 하나라도 없으면 완성이 안 되는 ‘식탁의 동료’라는 점을 말이죠. 세상의 모든 식재료가 땅과 하늘, 그리고 생산자의 작품이라는 삶의 이치와 같은 것들도 이 책에 꾹꾹 눌러 담았습니다.
처음부터 편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요리에 편견을 가졌던 이유가 따로 있나요?
제가 어릴 적 일이었어요. 일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는 늘 겉옷도 벗지 않은 채 주방으로 뛰어들어갔죠. 그리고 황급히 가스에 냄비를 올리고 불을 켰습니다.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아 금방 차려진 밥상을 보면서, 내심 요리가 쉽고 하찮게 보였던 것 같아요. 정신 없는 하루를 보내면서도 딸의 끼니만큼은 놓치지 않던 엄마의 모습이 어린 마음에는 안쓰럽기 보다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꼭 그렇게까지 밥을 차려 먹어야 하는 걸까 생각했고, 그래서 언젠가 밥을 잘 차려 주는 남자와 결혼하거나 돈을 많이 벌어서 비싸고 좋은 음식을 원 없이 사 먹어야겠다는 원대한 꿈을 늘 가슴에 품고 살게 되었어요. 그런 시간들이 차곡차곡 모여 ‘요리란 하찮은 것’이라는 편견이 저도 모르게 생겨났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요리라는 행위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뀐 계기는요?
당연한 얘기겠지만 인생이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더라고요. 저는 요리를 즐기지 않는 남자와 결혼했고 매번 사 먹을 수만은 없는 끼니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요리는 그저 살아 내기 위한 생존 전술에 지나지 않았죠. 하지만 요리와 담을 쌓았음에도, 저는 먹을 거리의 최전선에 있는 생산자들을 만나야 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가시밭길을 택한 친환경, 유기농 생산자들과 만나며 생명이 자라는 흙을 직접 밟고, 그들이 들려주는 ‘식재료를 가장 맛있게 요리하는 법’을 듣고 맛보며 요리에 대한 편견이 점점 사라졌습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주방에 서는 날이 잦아졌죠.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대한 의미는 거기서부터 찾아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요리가, 밥 한 끼가 채워 주는 인생의 허기란 건 어떤 의미일까요?
요리의 최대 성과는 내 입맛대로 해 먹는 음식이라는 점이지만, 뭐 하나 마음대로 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가장 빠르고 쉽게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유일한 행위인 것도 같아요. 어른 음식의 대명사로 유명한 ‘가지’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레시피를 발견한 날, 저는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은 성취감을 맛보았습니다. 음식을 대접할 때면 상대의 취향을 생각해서 소금 한 줌을 더 넣느냐 마느냐 고민하다, 어쩌면 요리는 이 각박한 세상에 얼마 남지 않은 ‘인류애’라는 생각까지 들었죠. 이처럼 요리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위로하기에 가장 소소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확실한 방법이에요. 이 책이 독자들에게 진짜 잘 먹고 잘 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도화선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식탁의 위로』를 추천하고 싶나요?
사실 탈고하면서 글을 다시 찬찬히 살피는데 문득 슬픔이 몰려왔습니다. 책을 쓰기로 한 약 일 년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상황 때문이었어요. 아무런 제약도 없이 친구를 초대해 음식을 나눠 먹고, 술잔을 기울이고, 마스크 없이 땀을 뻘뻘 흘리며 생산자의 뒤를 졸졸 따르는 것이 이제는 어려워질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마음이 씁쓸해졌어요. 그렇게 좋아하는 공연도 온라인으로 편하게 즐길 수 있지만, 하늘을 찌를 듯 방방 뛰면서 끈적해진 옆 사람의 팔뚝과 부딪치는 일도 다시는 없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정말 서글펐어요. 이런 증상을 ‘코로나블루’라고 한다죠. 그런 생각이 몰려올 때마다 저는 늘 주방에 섰습니다. 여하간 복잡하고 뒤엉킨 생각을 정리하려면 요리 만한 일도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요리를 좋아하는 분들은 물론이지만 특히 요즘같이 코로나로 몸과 마음이 위축된 분이라면 저의 책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것 같아요. 감히 장담하건대, 요리는 이를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일지도 몰라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책에서는 주구장창 요리의 즐거움을 이야기하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직접 음식을 해먹어야 한다거나 친환경, 유기농과 같은 식재료만을 고집하자는 건 아닙니다. 단지 식당에서 밥을 먹든, 배달 음식을 먹든, 관행으로 농사를 지은 것이든 내 입으로 향하는 음식의 여정을 되새기는 첫 걸음에는 ‘요리’가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책의 문장은 커다란 볼 안에 쏟아 넣어 쓱싹 비벼 먹어도 좋고, 한 줄 한 줄 천천히 음미해도 좋습니다. 아직 음식이 서툴고 조미료를 넣지 않아서 구미를 당길 만한 맛을 보장하진 못합니다만 천천히 음미하다 보면 담백하고 속이 부대끼지 않아서 편해질 거예요.
정성스레 준비한 저의 식탁, 부디 맛있게 읽어 주세요.
* 최지해 7년간 ‘한살림서울생협’에 근무하며 잘 먹고 잘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달았다. 지금껏 쉬이 여겨 툭 내뱉던 말들을 주워 담는 중이다. 글 짓고 빵을 구우며 평생 ‘잘’ 먹고 ‘잘’ 살고 싶다. 음식과 술, 음악과 여행이 차고 넘치는 삶에서 지 않고 춤추듯 그렇게. 브런치 @organicse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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