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무턱대고 귀여운 책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144회) 『할머니의 좋은 점』, 『거북이 수영클럽』, 『동생이 생기는 기분』
‘책임’감을 가지고 ‘어떤 책’을 소개하는 시간이죠. ‘어떤,책임’ 시간입니다.(2020. 07. 16)
불현듯(오은): 오늘 주제는 ‘무턱대고 귀여운 책’입니다.
프랑소와 엄: ‘무턱대고’라는 표현이 있잖아요. 저는 평소에 책 선정 고민을 많이 안 하는 편인데요. 이번에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무턱대고’ 때문에요. 진짜 귀여운 책을 골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캘리: 한 회를 쉬었다고 또 새로운데요. 책 소개 준비 열심히 했습니다.(웃음)
김경희, 주옥지 저 | 휴머니스트
제목이 정말 좋아요. 코믹 다큐 느낌의 에세이고요. ‘너구리’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시기도 했던 김경희 작가님의 신작입니다. 전작으로는 『회사가 싫어서』, 『찌질한 인간 김경희』 등이 있어요. 이 책이 김경희 작가님의 책이라서 읽게 되기도 했지만 ‘할머니’에 눈길이 갔거든요. 주변에 건강한 귀여움을 가진 분들, 자존감이 높은 분들 중 조부모의 사랑을 잘 받은 경우가 많더라고요. 제가 리뷰를 찾아봤는데요. ‘귀여운 할머니의 인간극장’, ‘생각보다 훨씬 귀엽고 웃긴 책’이라는 리뷰가 있었어요. 다 귀엽다는 말이 있죠. 오늘 주제와 얼마나 가까운 책인지 리뷰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샤워를 끝내고 다시 할머니가 있는 방으로 향한다. 내가 볼 수 있는 거라곤 할머니가 옆으로 누워서 자는 뒷모습. 할머니의 숨소리를 확인하고 침대에 올라가 잠을 잔다.(중략) 할머니는 내가 거실과 방을 오가며 출근 준비하는 뒷모습만 본다. 나는 부엌에서 계란 프라이를 하고 사과 반쪽을 깎는 할머니의 뒷모습만 본다. 그리고 서둘러 집을 나서면 할머니는 기어코 문 앞까지 배웅을 나온다.
내 뒷모습을 매일 봐주는 사람이 세상에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것. 특별하죠. 책을 보면 두 분의 사랑이 아주 애틋하지만 동시에 굉장히 쾌활하고 씩씩해요. 노인정에 있는 할머니를 인터뷰한 내용이 있는데요. “할머니, 내년이면 90세네요. 기분이 어떠세요?”라고 묻거든요. 그러자 주여사님께서 “뭐 어때, 그냥 한 살 더 먹는 거지.” 해요. 다시 “언제가 제일 좋았어요?”라고 묻자 할머니는 “지금이 제일 좋지.”라고 하는 거예요. 정말 좋죠? 저는 책을 읽으면서 이게 진짜 인생이다, 라고 생각했어요.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는 삶 말이에요. 나를 건강하게 사랑해주는 사람이 가장 소중한 것 같고요. 제가 자녀에게 해주고 싶은 것도 좋은 사랑을 주는 것이거든요. 그것만 주면 아이는 힘든 일이 와도 세상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 책을 보면서 그 생각이 더 확고해졌어요. 정말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귀여운 할머니가 되는 것만큼 축복 받은 일도 없을 거란 생각도 했어요.
이서현 저 | 자그마치북스
워킹맘으로 바쁘게 살면서도 어떻게든 짬을 내 수영에 가고, 수영장에서 나의 일상과 삶을 돌아보는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프롤로그가 다름 아닌 엄마에 대한 것이거든요. 작가님의 엄마도 수영을 하시는데요. 환갑이 지난 엄마가 하루 한 시간 오로지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갖는데 그게 바로 수영인 거예요. 작가님은 아마 엄마에게 평생 이런 호사는 없었을 것이라고 짐작해요. 당연히 그렇겠죠. 중년 세대의 여성들 삶을 생각하면, 하루 한 시간 내는 게 힘들었겠죠. 작가님보다 조금 더 수영 경력이 있는 엄마는 딸의 자세를 놀리기도 하고, 함께 수영장에 가면 저만치 앞서 가기도 하는데요. 작가님은 “나는 엄마보다 늘 수영을 조금 못했으면 좋겠다”고 말을 합니다. 한 명의 사람으로, 나보다 잘하는 것을 하나 갖고 있는 엄마를 보는 게 좋은 것일 테고요. 이 관계를 잠깐 엿보는 프롤로그만으로도 정말 좋았어요.
작가님은 원래 수영인이 아니라 요가인이었어요. 5년 이상 요가를 했고, 출산 이후에도 틈틈이 아가 옆에서 스트레칭을 하면서 다시 요가하러 가는 날만을 기다렸던 사람인데요. 그러다 갑자기 디스크가 터져요.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요가는 무리라고 하고요. 그래서 작가님의 수영은 사실 요양수영, 회복수영이었던 거예요. 그런데 곧이어 나쁜 소식이 찾아와요. 갑상선암이라고요. 그리고 이렇게 적습니다.
디스크든 암이든, 전쟁이 일어나든 나는 굴복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딸에게 밥을 먹이고, 수영을 하고, 또 아기를 보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했다. 그리고 암이든 뭐든 나의 일상을 무너뜨리려는 것에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지 않다는 것, 나는 어떻게든 하루를 살아내겠다는 것, 나와 내 일상을 빼앗을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런 상황에서 수영은 내 일상 유지에 아주 중요한 밧줄이었던 거죠. 저는 이 씩씩함이 정말 좋았어요. 그게 또 한편으로는 귀여움으로 다가왔는데요. 그렇지, 삶의 귀여움이나 아름다움은 이런 데서 나오는 거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수영 참 신기하죠. 내 동력으로만 움직이는 운동인데 그렇다고 너무 힘을 너무 주면 안 되고요. 책에 나오는 표현대로 말하자면 이성보다는 본능이 앞서는 공간일 텐데 또한 계속 자세도 생각해야 하는 공간이고, 아주 고요한 공간이에요. 철학적인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곧 휴가철인데 잠깐 쉬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동시에 나를 돌아보는 마음으로 읽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위로가 됐어요.
이수희 저 | 민음사
목차를 보면 1장이 ‘동생이 생기는 기분’이고요. 2장은 ‘동생이 말하는 기분’, 3장은 ‘동생이 자라는 기분’이에요. 4컷 만화 150여 컷과 에세이가 12편 수록되어 있는데요. 에세이에서 이 만화가 어떤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작가님 프로필에 ‘외동으로 10년, 수진의 언니로 19년을 살았다’고 되어 있어요. 동생과 10살 터울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겠죠. 10살 터울은 왠지 예전 드라마 <몽실언니>도 떠오르고(웃음), 육아에 전념해야 할 것 같은 기분도 있을 것 같잖아요. 동생을 돌봐줘야 할 것 같고, 사랑을 일방적으로 줘야 할 것 같은 정도 같아요. 하지만 그렇지만은 않고요. 책에는 성장하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도 나와요. 동생이 말을 하기 시작하고, 사춘기를 지나면서 서로 약간의 틈도 생기고, 어쩔 수 없는 세대차이 때문에 대화는 삐걱대는 거죠. 이런 과정이 다 담긴 책입니다.
기본적으로 너무 귀여워요. 아기가 성장하는 데 여러 과정이 있잖아요. 걸음마를 할 때도 좋았을 테고, 뒤집기 할 때 좋았을 텐데요. 책에서는 작가님의 동생이 자신의 배 위에서 목을 처음으로 가눈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아기의 목 가누기라는 단어에서는 달큰한 우유 냄새가 날 것만 같다. 그냥 빼꼼 귀엽겠거니 상상하기 쉽지만 내가 목격한 목 가누기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 작은 몸 속에 존재하는 모든 근육을 가동하여 짧은 인생 최대치의 힘을 발휘해내는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예감했다. 이 순간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야.
어느 날 동생이 컴퓨터 게임에 빠져요. 그리고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나의 마음.” 언니가 당황해서 “뭐가 네 마음을 빼앗았다는 거야?”라고 물어요. 봤더니 게임에서 지면 하트가 하나 줄잖아요. 그걸 보고 동생은 “게임에서 지면 내 마음을 빼앗기는 거야”라고 한 거죠. 만약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으면 나도 어리기 때문에 이게 추억이 되기 힘들어요. 10살 터울이란 게 이런 점에서 좋은 것 같아요. 동생이 하는 일을 하나 하나 기억할 수 있는 것 말이에요. 동생이 있다면 경험해봤을 법한 많은 순간이 있는 책이고요. 10살 터울이라 생기는 조금 더 특별한 순간들이 스며 있어서 저도 동생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읽은 책이었어요.
* 오디오클립 바로 듣기 //audioclip.naver.com/channels/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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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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