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이삭 “대중이 원하는 것과 내 지향 중간점을 찾고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밴드>로 이름 알려 <놓치고 싶지 않은 사소한 것들> 미니 앨범 발매
아티스트로 살아가면서 '어떻게 저를 표현하고 좋은 음악을 할까'의 원동력과, '어떻게 하면 사람들과 잘 살아가고 어울릴까'의 원동력은 다른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사이 모호한 색이 나오는 거죠.(2020. 07. 10)
홍이삭은 꾸준히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넘고자 한다. 어쿠스틱 기타 한 대와 함께 무대에 올랐던 신인 시절, 긴 무명의 끝에 자신의 삶을 정리하며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자 한 '하나님의 세계',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밴드>를 거쳐 영화 음악까지 계속해서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것이 갈팡질팡하며 자신의 길을 찾지 못했다는 뜻은 아니다. “겉으로 그렇게 볼까 봐 나름 걱정이지만 저는 확실히 제 길을 찾아가고 있어요.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깊이와 폭을 넓혀가고 싶습니다.” 인터뷰 내내 홍이삭은 '새로움'과 '발전', 그리고 '과정'과 같은 어휘를 반복적으로 동원했다.
“음악 하는 사람으로 자리를 잡은 지금을 어떻게 다져 놓아야 계속해서 더 좋은 음악을 오래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많은 갈등과 다짐이 교차했지만 그의 시선은 미래를 향하고 있었다.
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인해 모두가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홍이삭은 어떤가.
<슈퍼밴드> 출연 이후 쉬지 않고 계속 달려왔어요. 영화 <다시 만난 날들>(가제) 주연을 맡아 촬영도 했고, 음악 감독을 겸하는지라 작업도 했고요. <놓치고 싶지 않은 사소한 것들> 미니 앨범도 발표했죠. 물론 계획했던 많은 것들이 취소되어 슬프기도 하지만, 영화 후반 작업을 하며 재충전 및 돌아보는 시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시 만난 날들>의 개봉 스케줄은 어떻게 되나.
영화제를 통해 먼저 공개할 것 같아요.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개막작 혹은 폐막작, 혹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생각하고 있어요. 다만 코로나19 여파로 영화제 역시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추세라… 걱정이네요.
영화에 도전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시나리오를 쓴 심찬양 감독님이 학교 선배에요. 2017년 제2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어둔 밤>이라는 작품으로 최고상인 코리안 판타스틱 작품을 수상했죠. 그 후 감독님께서 제 음악을 소재로 해서 시나리오를 쓰게 되었는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계기가 생겨 제작까지 들어가게 됐어요. 원래는 음악 감독으로 참여하는 거였는데, 촬영하는 도중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서 결국 제게 주연 제의가 왔어요. 연기 경험 없는 배우들과 함께 만들어 상까지 받은 <어둔 밤>을 보고 저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영화의 음악감독을 맡았다. 사운드트랙을 어떤 음악으로 채웠나.
저의 20대 초반 이야기가 모두 담겨 있어요. 기타치고 노래하던, 지금보다 훨씬 날 것이던 시절의 음악이죠. 그렇다고 감독님께서 아마추어 느낌을 바라진 않으셨어요. 어떻게 보면 그 때 음악들이 어쿠스틱 기반이긴 해도 꽤 매니악했는데, 그 음악의 선이 영화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음악의 방법이기는 하나 '날 것이던 시절'을 담아내는 작업이 쉽지는 않았을 듯 하다.
그 지점이 힘들었어요. 습작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항상 발전하고 싶고 지금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표현하고 싶어 하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벗어나고 싶은, 잊고 싶은 모습의 저를 영화 음악에 담아야 했죠. 감독님과 이야기하면서 어린 시절의 저를 데려오는 게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홍이삭이 기존의 이미지를 벗어나 현재 새로 추구하는 음악은 어떤 형태인가.
제가 부르기 편한 노래, 잘 부를 수 있고 표현도 잘 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은 게 요즘 마음이에요. 대중이 제게 원하는 것과 제가 지향하는 것의 중간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랄까요. 우선은 기타를 내려놓고자 합니다.
기타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의외다.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깊이와 폭을 넓히고 싶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주셨으면 해요. 기본적으로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자세를 벗어나고 싶어요. 곡 작업할 때도 피아노와 기타 비율을 반반으로 가져가고 있거든요.
기타 작업과 피아노 작업의 차이가 있나.
정서가 다르죠. 편하게 칠 수 있는 건 기타예요. 그러다 보니 말을 하면서 곡을 쓰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나의 이야기, 나의 정서가 더 많이 담기는 것 같아요. 피아노로 곡을 만드는 건 일종의 '조각' 같아요. 정서를 만들어두고 그 과정에 닿기 위해 하나하나 소리를 조각하고 합쳐가는 과정이랄까요. 기타는 주관적이고, 피아노는 더 많이 계산해야 해요. 발성도 다르고요.
실제로 홍이삭은 버클리 음대 음악교육과에서 음악을 배웠다. 대위, 화성 등을 활용해 더 다양한 장르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제가 생각하기에 저는 지르는 음악, 록 음악보다 R&B, 블랙 뮤직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과거 뮤지션 중에는 레이 찰스(Ray Charles), 현재 뮤지션 중에는 갈란트(Gallant)를 생각하고 있고요. 학교에서 기초적인 지식을 배우기도 했지만 지금도 꾸준히 배워가는 과정입니다. 이제서야 마이크를 잘 쓰는 방법을 알게 된 거 같아요.
그렇다면 <슈퍼밴드>에서의 모습은 일탈에 가까웠던 것 아닌가.
<슈퍼밴드>는 가만히 있어도 저를 털어낼 수 있었던 프로그램이었죠. 뭐든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 자신의 한계를 좀 깨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래서 '너와 함께'라는 곡을 가장 좋아해요. 2라운드 3라운드와 달리 4라운드를 준비하는 동안 시규어 로스(Sigur Ros)의 음악을 들어보며 표현과 방향을 이 쪽으로 해도 나쁘지 않겠다는 판단이 들었고 결과도 나쁘지 않았어요. 그렇게 제 자신을 다 <슈퍼밴드> 이후 오히려 기타를 더 배제하게 된 것 같아요. 피아노를 더 많이 치고 있죠.
인천 출신이다. 인천에 대한 기억은.
저는 인천에서 태어났고 현재 제물포 쪽에 살고 있어요. 사실 완벽한 인천 사람은 아니죠. 인천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부산에서도 살았고, 포항에서도 살았고, 아버지께서 전근을 가셔서 파푸아뉴기니에도 잠깐 살았으니까요. 그래도 매 년 방학 때마다 항상 인천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어요.
인천에 대한 자부심은.
일단 재난 지원금이 아직 안 나왔고요(웃음). 농담이고. 인천이라는 도시를 속속 찾아다닌 건 굉장히 최근의 일이에요. 동인천의 헌책방거리, 차이나타운, 근대화거리 등을 다녀보면 낮은 건물들, 그리고 예스러운 분위기가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줘요.
솔직히 좋은 데가 많다.
인간미를 느껴요. 정제된 느낌은 아닐 테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들이 잘 모르는 좋은 곳들도 많이 있어요. 언젠가는 음악의 소재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평소에 서울을 너무 자주 오고가고 인천은 잠깐만 머무는 곳이라 그 점이 조금은 스트레스기도 합니다.
2013년 제24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봄아'로 동상을 수상했지만 홍이삭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것은 2015년 발매한 싱글 '하나님의 세계'다. 버클리 음대를 휴학하고 뜻하지 않은 부정교합수술을 앞둔 상황에서 써내려간 곡이다. 이 곡으로 그는 엠넷 예능 프로그램 <너의 목소리가 보여>에 출연 제의를 받게 된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홍이삭을 CCM 가수로 인식하지만, 그는 이 시기를 '엇나가지 못하는 착한 사람이었던 시절'이라 정의하며 음악에 대한 현재진행형 고민을 털어놓았다.
스트리밍 서비스, 인터넷 검색 시 홍이삭에게는 <슈퍼밴드>와 '하나님의 세계', 그리고 최근 발표한 '네가 없는 하루'가 제일 먼저 뜬다.
'하나님의 세계'는 제가 기독교 환경에서 오래 자라서 나온 곡이에요. 부정적인 의미는 전혀 없고요. 제 삶, 삶의 방식, 생각하는 방향, 가치를 두는 부분, 사람을 대하는 태도 모두가 기독교의 환경에 속해 있었던 거죠. 그렇게 살아오다 부정교합 때문에 수술을 하게 됐는데 그 당시 굉장히 힘들었어요. 부모님과 주변인들이 제게 미안해하는 모습도 좋지 않았고, 다시는 노래하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었죠. 그 때 스물다섯까지 살아온 저의 철학과 삶의 방향, 생각의 과정을 정리하고자 만든 곡이 바로 '하나님의 세계'에요. 무언가를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고, 제 철학과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죠.
기독교적 환경이 음악에도 영향을 주었을 텐데.
물론이죠. 저는 저 자신을 '학습을 잘 하는 사람'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우선 부모님께서 초등학교 선생님이세요. 그리고 아주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어요. 성가대도 하면서 교회 생활을 굉장히 열심히 했어요. 주위 분들이 원하시는 대로 올바르게 잘 자라고 싶었고 잘 배우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러다 보니 지금 사람들이 저를 올바르게 봐주시지만 반대로 저는 엇나가지 못하는 게 답답하기도 해요. 음악을 하게 된 것도 제게는 '분출'의 의미가 있었어요. 올바른 이미지, 학습의 과정을 벗어나고 싶어서 다양한 시도를 더 고민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가장 최근 발표한 '네가 없는 하루'는 어떤 마음으로 만든 곡인가.
앞서 제가 말씀드린 저의 환경을 벗어나 또 다른 곳에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만들었어요. 작곡가 입장에서는 '나도 이렇게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노래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노래를 불러야 할까'를 강조하고자 했죠. 이전에는 노래할 때 중심을 항상 제게 뒀어요. 하지만 '네가 없는 하루'에서는 듣는 분들을 더 많이 생각했어요. '어떻게 하면 더 잘 들어주실 수 있을까?'를요. 분기점이 된 곡입니다.
거듭 자신이 속한 세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을 강조하고 있다. 아티스트적 고민이 가득 차 보인다.
이런 고민을 제가 20대 후반부터 해왔어요. '하나님의 세계' 이후 많은 CCM 쪽 관계자 분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신앙의 영역으로는 훌륭하나 음악의 방향으로는 저와 잘 맞지 않는다고 느꼈어요. 과거가 싫은 건 아니에요. 다만 다음을 바라보고 고민하는 과정인 거죠. 영화음악도, '네가 없는 하루'도요. '하나님의 세계'가 진정한 저를 들려주겠다는 마음이었다면, '네가 없는 하루'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분들께 닿을 수 있을까를 고민한 곡이에요. 사람들이 보다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감정선을 찾고자 했죠.
지난해 12월 홍이삭은 두 번째인 EP <놓치고 싶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발표했다. 2008년부터 작곡해온 곡들을 모은 앨범은 어쿠스틱 위주의 소박한 편성인 돋보인다. 듣는 순간 즉각 자신의 음악세계를 천천히 들려주고자 하는 의도임을 알 수 있다.
홍이삭은 앨범에 대해 “내가 왜 이 곡을 내고 싶은지 스스로 물어봤어요. 틀을 깨지 못한 답답함을 토로하면서도 나 자신을 위로했던 과정을 담아 갈무리하는 의미가 있었죠.”라고 설명했다. 셀프 힐링 앨범? 하지만 동시에 '과거보다 현실이고 싶은 마음'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홍이삭에게 음악은 어떤 의미인가.
'하나님의 세계' 때까지는 저를 담는 일기였고요, 지금은 조각해야 할 대상이라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 나올 앨범에 대해 이야기해준다면.
아직 정규 앨범에 대한 구상은 하지 못하고 있어요. 앞서 말한 그 조각품이 적어도 서너 개는 나와야 전체적인 틀이 잡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음악을 만드는 데 있어 아이콘, 혹은 롤 모델이 있나.
보통 저 같은 친구들에게는 데미안 라이스(Damien Rice)가 우상이죠. 저는 나름의 깊이도 있고 쉽게 쓰는 아티스트를 추구하는데 사실 그렇게 다차원적인 분이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존 메이어(John Mayer)는 그런 점에서 스펙트럼이 넓은 가수죠. <Contiuum> 앨범을 듣고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어요(웃음).
음악을 만드는 원동력이 뭔지 궁금하다.
노래마다 각기 다른 것 같아요. '네가 없는 하루'는 보다 많은 분들께 노래를 들려드리고자 했죠. 반대로 <놓치고 싶지 않은 사소한 것들>의 '소년', '별 같아서' 등의 곡은 분명 대중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기는 하지만 제 기준에서는 좋은 곡이거든요. 제가 아티스트로 살아가면서 '어떻게 저를 표현하고 좋은 음악을 할까'의 원동력과, '어떻게 하면 사람들과 잘 살아가고 어울릴까'의 원동력은 다른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사이 모호한 색이 나오는 거죠. 계속해서 음악을 만들게 되는 힘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어요. 음악적인 부분에서도, 음악 외적인 부분에서도요. 어떻게 하면 가장 나답고 행복할 수 있을지를 고민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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