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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칼럼] 저술노동자의 몸 관리

<월간 채널예스> 2020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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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인터뷰에서 “글 쓰는 시간을 스톱워치로 잰다”고 말한 뒤로 관련 질문을 자주 받는다. 나는 그 말이 그렇게 흥미롭게 들릴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여하튼 스톱워치로 집필 시간을 재고 엑셀에 기록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2020. 07. 03)

일러스트_ 이내 

소설가들이 은근히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가 “무슨 운동을 하시나요?”다. 강연장에서 이런 질문이 나오면 청중 중에 웃는 분도 계시는데, 사실 중요한 문제다. 육체노동이라고 말하기에는 부끄럽지만, 저술노동도 결국 몸뚱이로 하는 일이므로 몸을 잘 관리해야 글을 오래 쓸 수 있고 많이 쓸 수 있다. 정신의 집중력과 지구력, 심지어 자신감도 꽤 많은 부분 육체에 달린 문제라고 믿는다.

그래서 다른 소설가의 인터뷰를 읽을 때에도 그들이 무슨 운동을 하는지 유심히 살핀다. 김연수 작가가 마라톤 마니아라는 사실은 유명하다. 정유정 작가는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출간 직후 〈채널예스〉 인터뷰에서 복싱을 7년째 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다른 인터뷰에서는 일주일에 6일 권투 도장에 나간다는 이야기도 하신다.

『나의 골드스타 전화기』의 김혜나 작가는 소설가 겸 요가 강사다. 『제리』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고 독자와의 만남 행사를 요가 연습장에서 연 적도 있다. 『디디의 우산』의 황정은 작가는 매일 1, 2시간씩 헬스장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황 작가는 〈2016 YES24 소설학교〉 강연에서 “소설 쓸 때 중요한 것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항상 근력이 중요하다고 덧붙인다”고 소개했다. 『지극히 내성적인』의 최정화 작가는 요가, 주짓수, 그리고 브라질 무예인 카포에라를 훈련한단다.

운동신경도 별로고, 몸 움직이는 것도 귀찮아하는 나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집에서 깨작깨작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 순서는 이렇다. 스트레칭-스쿼트 5세트-푸시업 5세트-덤벨로우 5세트-덤벨컬 3세트-플랭크 3세트-스트레칭. 이렇게 적어놓으니 뭔가 있어 보이지만, 황정은 작가에게 비웃음을 사도 어쩔 수 없을 정도로 낮은 강도로 한다. 다 마치는데 한 시간도 안 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과는 대단한데, 이 간단한 운동 덕분에 오십견이 사라졌다. 회사를 다닐 때에는 목과 어깨가 간혹 바늘에 찔리는 것처럼 아팠다. 거북목도 심했다. 지금도 이런저런 이유로 일주일 정도 운동을 쉬면 목과 어깨가 다시 쑤신다. 앉아서 일하는 모든 분들께 특히 덤벨로우를 추천하고 싶다. 등 근육이 생기면 자세도 교정된다.


일러스트_ 이내

거기에 더해, 내가 일상을 장악한다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얼마간 생활을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을 맛볼 수 있다. 게을러지려면 한없이 게을러질 수 있는 게 프리랜서의 삶이다. 특히 단행본 저술업은 작업 주기가 길다. 짧아도 몇 달, 길면 몇 년 걸린다. 그런데 하루 생산량은 들쭉날쭉하다. 쭉쭉 써지는 날도 있지만 며칠, 때로는 몇 주씩 거북이걸음을 걸을 때도 있다.

그러다 보니 변명을 하기도 쉽다. 사실은 일을 게을리 하는 중인데 지금 쓰고 있는 대목이 쉽지 않다고 합리화를 하는 것이다. 그런 사실을 의식하다 보면 자신에 대한 믿음이 흔들린다. 내가 요즘 게을러졌는지, 아니면 힘겹지만 의미 있는 도전을 하는 중인지 알 수가 없게 된다. “2 더하기 2는 4”라는 수식을 앞에 두고서도 “정말이야? 진짜 답이 4가 맞아?”라는 질문을 되풀이해서 받다 보면 고민이 많아지는 게 인간이다.

‘왜 이렇게 진도가 안 나갈까, 내가 요즘 나태해진 거 아닐까, 슬럼프인가, 실력이 퇴보하는 건가’ 하는 질문은 그보다 훨씬 강력하다. 그런 때 광배근이나 이두근이 기분 좋게 뻐근하면 ‘내가 게으르지 않게 살고 있다’는 확인을 받는 것 같다. 이게 무척 중요하다. 전업 저술노동자에게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딱히 없기 때문이다.

어느 인터뷰에서 “글 쓰는 시간을 스톱워치로 잰다”고 말한 뒤로 관련 질문을 자주 받는다. 나는 그 말이 그렇게 흥미롭게 들릴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여하튼 스톱워치로 집필 시간을 재고 엑셀에 기록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내가 나태해진 게 아닌지 점검하고 싶고, 확인 받고 싶다.

몸 관리의 다른 측면은 식사겠다. 전업 작가가 되기 전에는 식사는 100퍼센트 외식, 배달음식, 아니면 인스턴트 음식이었는데, 지금도 거의 그렇다. 집에서 반찬을 만드는 건 준비도 귀찮고 음식물 쓰레기도 부담이다. 반찬가게에서 사 와서 밥만 지어 먹는다. 편의점 도시락과 라면을 사랑한다. 냉동음식들도 요즘은 너무 잘 나온다. 볶음밥이니 만두니 하는 것들을 골고루 냉장고에 갖춰 놨다. 물론 혼자 식당에 가서 먹고 오기도 한다. 요즘은 집 근처 회사의 구내식당에 종종 간다.

솔직히 영양과 관련한 현대인의 고민거리는 결핍이 아니라 과잉 아닌가? 게다가 나는 일정이 없으면 며칠씩 집밖으로 나가지 않고 지내기도 한다. 특히 겨울이 그렇다. 지금은 겨울이 아니지만 어제는 아파트 입구의 재활용 분리수거함까지만 나갔고 오늘은 집 밖으로 한 발도 안 나갔다. 아침에 눈을 뜬 뒤로 이 순간까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부엌에 있는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거나 멍하니 화면을 지켜보며 보냈다.

그러다 보니 자칫 잘못하면 살이 확 찐다. 재택근무를 해본 분들이라면 다들 동의하실 텐데, 사람이 집에 혼자 있으면 입이 심심하다. 나는 원래 간식을 그다지 즐기는 사람이 아닌데, 아내가 과자를 좋아해서 집에 많이 쌓아놓는다. 그러면 자꾸 그리로 손이 간다. 과자를 먹는 대신 차를 마시거나 사탕을 물고 있으려 해보는데, 쉽지 않다.

점심을 먹으면 졸려서 꼭 낮잠을 자야하고, 몸도 자꾸 부으니까 일일일식을 시도해본 적도 있는데 역시 잘 되지 않았다. 마르셀 프루스트처럼 카페라테―나는 유당불내증이 있으니까 소이 라테―로 끼니를 대신해 보려 했는데 프루스트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와 별도로 커피는 꽤 마신다. 하루에 수십 잔을 마셨다고 하는 발자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하루 예닐곱 잔 정도는 마신다. 혹시 커피를 덜 마셔서 발자크처럼 열심히 쓰지 못하는 건가.

나하고 카페인은 궁합이 잘 맞는 것 같고 거기에는 아무 불만도 없는데, 알코올하고도 궁합이 잘 맞는 게 문제다. 저녁이 되면 슬슬 맥주 생각이 난다. 엑셀성애자인 나는 술을 마시는 날도 액셀에 기록해 둔다. 올해는 1~5월까지 술을 마신 날이 39일이다. 지난해에는 162일 마셨다. 이건 좀 줄여야 한다.

근육, 식사, 커피, 술 등 관리해야 할 대상들을 적다 보면 거꾸로 내가 어떤 경주에 참여하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단거리가 아니라 장거리, 그것도 울트라 마라톤이나 투르 드 프랑스 같은 초장거리 경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관리를 해가며 내가 매달리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하고 내 업(業)의 본질에 대해서도 고민해보게 된다.

그래서 나는 ‘글쟁이’라는 말을 별로 안 좋아한다. 아무 글이나 쓰는 건 내 일이 아닌 것 같아서다. 책이 될 글을 써야 한다. 나는 ‘단행본 저술업자’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아 참, 특히 단행본 저술업자가 걸리기 쉬운 병도 있다. 나 역시 그 고약한 병마와 몇 년을 싸웠다. 그런데 지난해 솜씨 좋은 대장항문외과에서 잘 치료 받아 이제는 완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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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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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장강명(소설가)

기자 출신 소설가. 『한국이 싫어서』,『산 자들』, 『책 한번 써봅시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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