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표정훈 칼럼] 쉬운 글과 어려운 글

<월간 채널예스> 2020년 7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첫째, 개념어를 많이 쓰면 어려워진다. 바로 위 단락의 일부를 이렇게 바꿔보자. “평이한 문장을 선호하는 독자가 다수다. 문장이 평이하거나 난해한 건 독자에 따라 상대적이다. (2020. 07. 03)


쉬운 글이 좋다고들 한다. 여기서 쉽다는 건 읽어서 이해하기 쉽다는 뜻이다. 읽어나가면서 실시간으로 글의 뜻이 술술 이해되는 글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같은 글이 어떤 사람에게는 쉽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어렵다. 요컨대 글이 쉽거나 어려운 건 읽는 사람에 따라 상대적이다. 이른바 독해력은 사람마다 다르기 마련이다. 누구에게나 쉬운 글, 누구에게나 어려운 글은 없다. 그러니 쉬운 글이란 상대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이다.

그렇다면 글이 어려워지는 이유는 뭘까? 첫째, 개념어를 많이 쓰면 어려워진다. 바로 위 단락의 일부를 이렇게 바꿔보자. “평이한 문장을 선호하는 독자가 다수다. 문장이 평이하거나 난해한 건 독자에 따라 상대적이다. 이른바 독해력은 독자에 따라 상이하기 마련이다.” ‘쉬운’으로 쓰면 될 것을 ‘평이(平易)한’이라 썼다. 평이하다는 건 받아들이거나 대하기에 어렵지 않고 쉽다는 뜻이다. ‘다르다’ 하면 될 것을 ‘상이(相異)’라고 썼다. 이러면 글이 어려워진다.

둘째, 글 쓰는 사람이 잘 모르고 쓰면 어려워진다. 자기도 잘 모르는 걸 글을 써서 남에게 전해보려는 노력. 뜻은 가상할지 모르나 성공 가능성이 없는 노력이다. 글 읽다가 괜히 어렵기만 하다는 느낌이 들면 글쓴이를 의심해보는 게 좋다. 잘 모르고 썼을 가능성이 크다. 글쓰기의 정직성은 자기가 아는 만큼, 딱 그만큼 쓰는 것이다. ‘아는 척 글쓰기’의 유혹을 물리치고 ‘아는 만큼 글쓰기’를 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반성하건대 나도 ‘아는 척’ 자주 한다.

셋째, 높은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주제에 관한 글은, 그 분야·주제에 익숙하지 않은 대다수 독자들에게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입문·개론 수준의 ‘알기 쉬운 철학’ 성격 책은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지만, 예컨대 철학자 칸트에 관한 전문적인 연구서는 그렇지 않다. 철학사, 철학 전문 용어, 철학의 주요 문제, 칸트 철학 등에 숙달되어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 모든 글, 모든 책이 쉬울 수는 없고, 꼭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 어려운 건 어려운 것이다.

어떻게 하면 글을 좀 더 쉽게 쓸 수 있을까? 나는 가상의 친구를 한 명 두고 있다. 이 친구는 나보다 뭘 더 많이 아는 친구는 아니다. 평소 책도 잘 읽지 않는다. 다만 호기심만은 남들에게 뒤떨어지지 않아 묻기를 잘한다. 나를 만나도 이것저것 물어본다. 내가 제법 아는 주제라면 성의껏 답해준다. 내 답에서 잘 이해되지 않는 게 있으면 다시 물어본다. 이 친구의 질문에 계속 답하다보면 내가 뭘 제대로 알고 뭘 잘 모르는지 분명해진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한 일이 바로 그러하다. 무엇을 잘 안다고 자신하던 사람도 소크라테스의 계속되는 질문에 답하려 애쓰다보면, 사실은 자신이 제대로 아는 게 없다는 걸 깨닫는다. 이른바 ‘무지(無知)의 지(知)’다. 소크라테스는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상대방이 답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질문을 통해 돕는다. 아이 낳는 것을 곁에서 돕는 산파(産婆)와 비슷하다 하여 이러한 방법을 산파술이라 일컫기도 한다. 나는 글 쓸 때 가상의 산파를 둔다.

내 글을 읽고 잘 이해가 되지 않아 끈질기게 물어보는 가상의 독자, 산파가 늘 내 곁에 한 명 있다면? 글을 쓰면서 자꾸 어렵게 흘러간다 싶을 때 그가 지적하고 나선다. “이 문장이 무슨 뜻이지?” “왜 하필 그 개념어를 써야 하지?”, “이 표현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일상적으로 자주 쓰는 표현을 쓸 수 있잖아?” “문장이 너무 복잡하게 꼬여 있는 거 아닌가? 좀 단순하게 나눠보면 어때?” “글 쓰면서 왜 그렇게 잘 난 척 하고 싶어 하지?”

글 쓰는 내내 이런 질문들이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맴돈다. 글쓰기란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다. 사실은 내 글을 읽을 것으로 예상되는 독자들과 함께 하는 작업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독자들이 이미 내 곁에 있다. 그 독자들을 염두에 둔다면 글을 어렵게 쓰기가 어려워진다. 내 안에 소크라테스를 두면 여러 모로 도움 된다.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표정훈(출판 칼럼니스트)

출판 칼럼니스트, 번역가, 작가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쓴 책으로는 『혼자 남은 밤, 당신 곁의 책 』, 『탐서주의자의 책』 등이 있다.

오늘의 책

요조의 모든 것을 담은 산문집

뮤지션이자 작가, 책방주인으로 꾸준히 자신의 세계를 넓혀온 요조의 산문집이 출간되었다. 이번 책에서는 보다 내밀한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뮤지션을 꿈꾸던 이십 대부터 성실한 직업인이 된 현재까지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생각들을 노래하듯 들려준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이제는 알아야 할 IT

매분 매초 우리의 일상 곳곳에 함께 하고, 현명한 투자를 위해서도 꼭 알아야 할 IT 기술.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하는 현직 실무자 3인방이 흥미진진한 테크놀로지 세계로 안내한다. 코딩을 몰라도 이과생이 아니어도 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이 시대의 교양, IT 입문서.

대표 석학 이어령과 대화

인터뷰 전문가이자 이어령 교수의 제자인 김민희가 이어령 교수를 100시간 넘게 인터뷰하며 엮은 책. 철학과 종교를 넘나 들며 인간 존재의 본질과 한국인의 정체성에 천착해온 이어령 사유의 궤적을 그려냈다. 창조력과 통찰력의 비법을 이어령 교수의 육성으로 들어본다.

구름 좋아하세요?

구름감상협회 회원들이 보내온 사진과 명화 중 365장의 하늘 이미지를 엄선해 한 권에 담았다. 구름의 생성원리와 광학현상에 대한 친절한 설명에 문학 작품에서 뽑은 사색적인 문장들이 더해져 구름이 주는 특별한 즐거움을 만날 수 있다. 1일 1구름의 기쁨을 누리게 해줄 책.

.

주목! 투데이 포커스


문화지원프로젝트
KALIO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