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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소설/시 MD 박형욱 추천] 시를 읽는 시간

『슬픔이 없는 십오 초』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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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좋아합니다. 한 뼘의 공간에 우주를 담아내는 듯한 그 일이, 그렇게 탄생한 또 하나의 세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고마운지 모릅니다. (2020.03.18)

시를 좋아합니다. 한 뼘의 공간에 우주를 담아내는 듯한 그 일이, 그렇게 탄생한 또 하나의 세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고마운지 모릅니다. 시인과 나 사이, 철썩같이 ‘이해’라고 믿지만 알고보면 서로 깜짝 놀랄만한 불통일 수 있다는 그 사실까지도 좋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좋은 거겠지요. 좋아하는 것들을 여기에 몇 내놓고 나머지는 조금 더 가지고 있겠습니다. 말을 할까 말까 꺼낼까 말까 어떤 방식이 좋을까 더 고민할겁니다. 그러다 언젠가 마음이 무르익으면 문득 자연스레 또 내보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시처럼요.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심보선 저 | 문학과지성사)

 

 

슬픔이없는십오초.jpg

                                                               

 


심보선 시인의 첫 시집입니다. 출간 후 꽤 시간이 지난 후에 보았는데 저에게는 그것이 오히려 다행인 책입니다. 이 책의 출간 당시, 그때의 저라면 이 책을 전혀 다른 의미로 읽었을 테니까요. 아무 의미 없이 넘겼을 수도 있고요. 시와, 시의 사이사이 슬픔과 우울, 지독한 현실이 생생합니다만 마냥 가라앉기보다는 만족스러울 만큼 침잠하여 나와 마주하는 경험이 묘하게 스스로를 정화시킵니다.

 

결점 많은 생도 노래의 길 위에선 바람의 흥얼거림에 유순하게 귀 기울이네 그 어떤 심오한 빗질의 비결로 노래는 치욕의 내력을 처녀의 댕기머리 풀 듯 그리도 단아하게 펼쳐놓는가 노래가 아니었다면 인류는 생의 완벽을 꿈도 꾸지 못했으리
-「노래가 아니었다면」 중에서, 61쪽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함민복 저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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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것은 케이크 위의 딸기 같은 겁니다. 케이크 위에 딸기가 하나 있을 때 처음에 먹을 것인가 마지막에 먹을 것인가 하는 그거요. 자꾸 처음도 마지막도 아닌 중간 애매한 시점에 먹게 되는 딸기처럼 중간 어디쯤에서 이 책을 소개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는 말을 이렇게 길게 했네요. 함민복 시인의 다른 책들처럼 이 책 또한 그 특유의 맑고 애틋하고 뭉클한 정서로 가득합니다. 세대를 초월하는 그리움이, 향수가, 사랑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꽃은 핍니다.

 

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
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뛰고
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오르는 새떼여
내리치는 번개여
-「선천성 그리움」, 10쪽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신철규 저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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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 영화도 노래도, 보다 보면 듣다 보면 한번씩 마음이 쿵 하고 떨어지는 통에 자주 열어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 책도 그렇습니다. "절벽 끝에 서 있는 사람을 잠깐 뒤돌아보게 하는 것, 다만 반걸음이라도 뒤로 물러서게 하는 것, 그것이 시일 것이라고 오래 생각했다." 시인의 말은 그대로 그의 시가 되었고, 덕분에 저는 오늘도 잠시 숨을 고르고 뒤를 돌아봅니다. 당신을 봅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아이가 빠르게 주문을 외우고 있는 술래의 등뒤에 다가간다

 

낙엽 하나가
술래의 머리 위에 내려앉는다
술래는 주문을 다 외우고도 뒤돌아보지 않는다

아이들이 술래의 등을 껴안는다
-「술래는 등을 돌리고」 중에서, 74쪽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임솔아 저 |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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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이렇게 쓰면서 소설도 저렇게 쓰다니 반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즐겁게 당할 수 있는 반칙이지요. 그는 자신에게 가장 아픈 곳을 드러내고 힘을 내어 벽을 허물고 마침내 그 마지막 한 발을 내딛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 걸음에서는 단단한 다짐이 느껴지고요. 옳다고 믿는 것, 진짜 나라고 여기는 것을 지키려면 결국엔 행동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괴로워도 쉽지 않아도 반드시 해야하는 선택이, 가야 하는 길이 있는 거겠지요. 그 길의 한 갈래가 여기 있는듯합니다.

 

종종 착한 사람 같다는 말을 듣는다.
못된 사람이라는 말과 대체로 같고 대체로 다르다.
나의 선의는 같은 말만 반복한다. 미래 시제로 점철된 예보처럼 되풀이해서 말한다.
선의는 잘 차려입고 기꺼이 걱정하고 기꺼이 경고한다. 미소를 머금고 나를 감금한다.
창문을 연다 안에 고인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을 창밖으로 민다.
오늘 날씨 좋다.
-「예보」 중에서, 16-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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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형욱(도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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