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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 갈란드가 저 높은 곳 무지개 너머에서 본 것은

무지개 너머, 관객과 하나 되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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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실현한 관객은 이제 주디의 꿈을 실현하게 도와줄 주디의 스타이자 삶이었다. 주디를 구원한 건 관객이었다. (2020.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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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주디>의 한 장면

 

 

<오즈의 마법사>(1939)에서 도로시를 연기한 주디 갈란드는 ‘오버 더 레인보우 Over the Rainbow’를 불렀을 뿐 아니라 ‘저 높은 곳에 way up high’ 있는 ‘무지개 너머’를 꿈꿨던, 그리고 실현했던, 그래서 전 세계적인 아이콘이 된 인물이다. 주디 갈란드의 삶을 영화화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주디의 시선이 향했던 ‘저 너머’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주디> 의 루퍼트 굴드 감독은 “주디 경력의 특정한 두 순간을 다뤘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각본에 끌렸다.”고 말한다. 영화는 주디(르네 젤위거)가 수천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도로시 역할을 맡았던 17세 때와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공연을 펼쳤던 1960년대의 런던 시절을 교차한다. 그 시절 동안 주디에게 <오즈의 마법사>에서 오즈의 나라에 내던져지고도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희망을 잃지 않았던 미국의 낙관주의를 대표하는 ‘얼굴’은 없었다.

 

얼굴 이미지가 중요한 <주디> 는 주디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스크린 ‘너머’를 바라보는 장면을 여러 차례 의도적으로 노출한다. 마치 관객과 선을 긋듯, 하지만 대화를 갈구하듯, 결국에는 소통하고 이해를 구하려는 성격의 설정에서 <주디> 는 인물의 일생을 다루는 일반적인 전기물이 아니라 주디 갈란드와 관객 사이의 관계를 묻는 작품이란 사실을 분명히 한다.

 

<오즈의 마법사>로 미국이 사랑하는 배우가 되었지만, 주디의 유년기는 불행했다. 제작사 MGM은 아침부터 촬영장 출근을 강제해 연기를 종용했고 그 여파로 스트레스가 심한 주디에게 신경안정제를 처방했다. 힘들어 쉬고 싶다는 주디에게 MGM의 수장 루이스 B. 메이어는 카메라 쪽으로 이끌어 관객과 대치하는 구도를 만든다. 부와 명예가 보장된 길을 마다하고 (관객과 같은) 평범한 사람이 될 거냐며 도로시를 연기할 배우는 널렸다고 윽박했다.

 

평범함과 거리가 먼 인생을 40년 동안 이어오면서 주디에게 남은 건 전(全) 남편과의 사이에 양육해야 할 두 아이와 생활고와 신경 쇠약이었다. 아이의 시간을 보호해야 했던 부모의 역할 부재(무엇보다 엄마는 MGM의 학대를 방조했다!)는 성장기의 주디가 대중의 사랑과는 또 다른 사랑을 받을 기회를 철저히 차단했다. 그 후유증이 쌓여 겨우 얻게 된 런던에서의 첫 무대는 그래서 화려한 재기의 공간이 아니라 감옥과도 같았다.

 

홀로 감당해야 할 무대, 아니 혼자 되어 스크린 너머를 바라보는 주디의 눈은 공포로 사로잡혀 있다. 대중의 인기가 이제는 감당하지 못할 짐이 된 주디에게 관객은 지원군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창살이었다. 보통의 일상이 절실했던 주디에게 삶이란 사각의 스크린을 넘어야만 도달할 수 있었던 곳이었기에 정면을 응시하는 숏은 스타의 인생에 갇혀 헤어나오지 못하는 굴레를 의미한다.

 

주디가 수천, 수만 번은 불렀을 ‘무지개 너머 저 하늘 높이 어딘가에 somewhere over the rainbow way up high’ 존재한 건 관객이었다. 주디에게 관객은 다가가고픈 꿈이었다. 관객과 괴리하지 않고 그 안에서 하나로 존재하는 삶이었다. 관객에게 꿈은 주디 갈란드였다. 주디의 무대를 본다는 건 꿈이 실현되는 것이었다. 꿈을 실현한 관객은 이제 주디의 꿈을 실현하게 도와줄 주디의 스타이자 삶이었다. 주디를 구원한 건 관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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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주디> 포스터

 

 

고질적인 신경 쇠약 증세로 무대에서의 성실한 공연 이행 약속을 지키지 못한 주디는 생애 마지막 무대에 올라 그제야 ‘오버 더 레인보우’를 부른다. 가장 의지했던 사람에게 당한 배신의 결과로 그 전 무대에서 쓰러졌던 주디를 일으켜 세운 건 관객들이 하나둘 입을 모아 부른 ‘오버 더 레인보우’ 합창이었다. 관객과 다른 삶을 살았고 관객이 감옥이 됐던 이전과 다르게 주디에게 관객은 자신과 하나 되는 목소리였다.

 

주디의 정면 숏으로 관객과 대치했던 이전과 다르게 카메라는 무대 뒤편에서 공연장을 전체화면(full shot)으로 담는다. 마지막 숏 안에서 무대 위의 주디는 노래를 따라부르는 관객들과 구별되지 않고 섞여 들어가 꿈 같은 현실을 완성한다. <오즈의 마법사>로 스타덤에 오른 이후 스크린 너머의 무지개를 꿈꿨던 주디의 바람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주디를 연기한 르네 젤위거는 말한다. “그러하였기에 주디 갈랜드는 그토록 많은 역경을 이기는 데 성공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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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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