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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ence : 무슨 일이 있어도 너의 곁에 있을게
<월간 채널예스> 2월호
말로 “너를 응원한다, 항상 생각하고 있는 거 잊지 말라.”를 천 번 하면 뭐할까. 함께 갈 식당을 검색하고 지하철을 타고 나가는 것이 우정이며 사랑이다. (2020. 02. 10)
지금의 나를 아는 사람들은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한 때 대형 교회 청년부에 몸담고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살았다. 금요일마다 자석에 이끌린 듯이 철야 예배에 가서 ‘주여’를 외치며 통성기도를 하고 방언을 쏟아낸 다음 은혜로운 밤공기를 들이 마시며 권사님들과 교구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오른 손은 들고 왼 손을 가슴에 얹은 성령 충만한 포즈로 찬양을 부르다 간주가 흐를 때 찬양팀 리더가 외치는 “주님이 이 자리에 임재하십니다”를 듣고 그 분을 느끼기 위해 눈을 꼭 감곤 했다. 교회에 잠깐이라도 다녔거나 성경을 읽은 이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단어 임재는 영어로는 “presence(프레즌스)”이다.
이렇게 선 캄브리아 시대의 내 모습까지 소환한 이유는 지금 번역하는 책에 presence가 수시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의료 인류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50대 후반에 조발성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아내를 간병하고 보살피면서 돌봄의 정신을 탐색한다. presence는 출석, 참석, 존재감, 있음, 대면, 근접 등 은근히 뜻도 다양하고 표면적 의미 밑에 깔린 심오한 의미를 고려하고 맥락을 살피면서 번역해야 하는 단어다.
“Their presence sustain me and gave me hope.” 라면 “그들의 존재가 나를 버티게 하고 희망을 갖게 했다.” 라고 옮기면 될 것 같지만 멀리 있거나 이름뿐인 존재가 아니라 가까이 머물면서 실질적으로 힘이 되어주었다는 의미가 포함되어야 한다. 풀어서 번역하면 “그들이 항상 내 곁을 지켰기 때문에 나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가 될 것이다.
“It would take me decades to understand how important that kind of presence, alertness, and immediacy are to the practice of care.” 이제 번역하다가 막히는 구간이 찾아왔다. “수십 년이 걸려서 나는 그런 종류의 존재감과 기민함과 신속성이 돌봄의 수행에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했다.” 독자들이 이해할까?
실은 평소 내가 하던 스타일과는 다른 노년의 남성 저자의 문체에 적응이 안 되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모든 문장이 명사로만 이루어진 것 같은데 이걸 다 문장으로 풀어야 할지, 문체를 살려 약간 딱딱하게 가야 할지 고민이다. presence 앞에서 특히 더 망설이는 이유는 이것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라고도 할 수 있는 단어라 뉘앙스를 잘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의 건강이 악화되고 정신적으로 무너졌을 때 자신을 구원했던 아내를 무슨 일이 있어도 기관에 보내지 않고 직접 보살피겠다고 결심한다. 이렇게 결심한 이유는 중국과 대만에 체류하면서 동양인들이 어떻게 아픈 가족을 돌보는지를 지켜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자에게는 돌봄(care)이란 “곁에 있음”을 가리킨다.
조금 더 쉬운 영어로 하면 “just being there” 일 것인데 실은 팝송에서 사랑 고백할 때, 특히 친구에게 의리를 약속할 때 가장 많이 나오는 문장이다. 잭슨 파이브의 ‘I’ll be there’부터 시작하여 시트콤 프렌즈의 주제가 또한 ‘I will be there for you’ 이며 캐롤 킹의 유명한 우정에 관한 곡 ‘you’ve got a friend’에서도 이름만 크게 부르면 “I’ll be there.(바로 달려갈게)” 라고 말하지 않는가.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너의 곁에 있을게.”가 우리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를 더 다각도로 깊이 있게 파고들기 위해 누군가 써놓은 근사한 글을 찾고 싶었고 책의 인용구와 낙서와 일기를 적어놓은 내 블로그를 뒤졌다. 그러다가 다름 아닌 내 일기에서 안성맞춤 문장들을 발견했다. 그 날은 몇 년 만에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우정을 나눈 사랑하는 친구를 만나서 밀린 이야기를 하며 내 책을 건넨 날이었다. 친구는 사실 인생의 힘든 시기를 통과하고 있었고 나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친구에게 행복해, 앞으로 잘 될 거야, 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우리 자주 만나자. 힘이 되고 싶어’ 라고 썼다. 친구를 믿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맛있는 걸 같이 먹으며 드라마 수다를 떨면 된다. 그저 곁에만 있어 주면 된다. 나중에 빛 속으로 걸어갔을 때 가장 생각나는 사람은 함께 동굴에 있던 사람이다.” 그러나 내가 썼는지도 몰랐던 이 갸륵한 글을 보면서 바로 알았다. 그 친구를 만난 지도 일 년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그 사이 친구가 한번 콜을 했지만 나는 막연한 다음을 말하고 연락 하지 않았다. 예쁜 브런치 식당에 가자는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노래로는 부르기 쉽지만 “I’ll be there”를 실천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책의 저자가 “presence”를 왜 이렇게 강조했는지 또 다시 깨닫고 있다.
말로 “너를 응원한다, 항상 생각하고 있는 거 잊지 말라.”를 천 번 하면 뭐할까. 함께 갈 식당을 검색하고 지하철을 타고 나가는 것이 우정이며 사랑이다. 그래도 방금 친구와 약속을 잡았고 번역하기 까다로운 단어를 던져준 저자에게 고마워하는 중이다. 가끔 번역 한 줄을 하면서 내 인생도 더 나은 단어로 써 내려가려는 작은 시도들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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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KBS와 EBS에서 라디오 방송 작가로 일했다. 전문번역가로 활동하며 《나쁜 페미니스트》, 《위험한 공주들》, 《마음에게 말 걸기》, 《스틸 미싱》, 《베를린을 그리다》, 《나는 그럭저럭 살지 않기로 했다》 등 60여 권의 책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