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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욕망의 경주마를 비추는 클로즈업
멈추지 않는 욕망의 레이스
욕망이 레이스가 될 때 승리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무간지옥의 레이스 앞에서 모두가 패배자다. 이게 과연 남의 일이기만 한 것일까. (2020.02.06)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의 한 장면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은 경주마와 같다. 주변 상황에 눈가리개 한 채 목표한 욕망에만 시선을 맞춰 달리고 또 달린다. 소네 케이스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은 욕망의 경주마들이 거액의 돈 가방을 차지하겠다고 벌이는 레이스를 다룬다.
참가 경주마(?)는 사라진 애인의 사채를 보증 선 이유로 쫓기는 신세의 태영(정우성), 돈 없어? 그럼 죽을 각오 해야지, 돈 앞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고리대금업자 두만(정만식), 이제나저제나 인생 리셋하려고 큰돈 만질 기회만 찾고 있는 술집 사장 연희(전도연), 남편 몰래 일 벌였다 사기당해 거액의 빚을 떠안은 주부 미란(신현빈), 미란이 좋아 사정을 듣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꾸미는 불법체류자 진태(정가람).
그들 사이에서 핀볼처럼 오가던 돈 가방이 어떤 사연인지 호텔 사우나 로커에서 발견된다. 손에 넣은 이는 사우나 프런트 직원으로 아르바이트하며 힘겹게 가족 생계를 책임지려는 전직 횟집 사장 중만(배성우). 아들과 함께 일궜던 횟집이 몰락하자 그 충격에 정신을 놓은 노모 순자(윤여정). 남편 수입으로는 먹고 살길이 막막해 국제여객터미널 청소부로 생계 전선에 뛰어든 영선(진경). 이 8명이 돈 가방을 두고 아귀다툼의 레이스를 벌이는 것이다.
욕망에 눈이 먼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비추려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이 선택한 카메라의 주된 기법은 ‘클로즈업’이다. 인물이 카메라에 가득 담기도록 비추는 클로즈업은 해당 인물의 감정을 증폭하여 전달, 관객의 감정선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가능하면 적게 활용하는 것이 미덕으로 인식되고는 한다. 그와 다르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은 과잉이다 싶을 정도로 클로즈업이 등장하는데 포스터에서조차 그렇다.
8명을 한 장에 담은 이 영화의 포스터는 각 인물의 눈동자 움직임에 포커스를 맞춰 얼굴이 다 담기지 않을 정도로 클로즈업이 타이트하게 들어간 게 특징이다. 이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감정이 휘발할 정도로 건조해진 인물의 욕망이다. 저 혼자 돈 가방을 차지하겠다고 요리조리 눈알을 굴리는 각 인물의 눈동자가 속고 속이려는 이들의 뻔한 레이스 전략을 드러낸다.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 욕망은 과잉한 클로즈업을 부르는 한편으로 컬러풀하게 묘사되기 마련이다. 번득이는 네온사인 앞에서 모종의 계략을 꾸미고, 명암이 극단으로 교차하는 공간에서 돈 가방을 가져갈까 말까 고민하고, 문양이 과도하게 들어간 옷가지로 상대방을 현혹하는 등의 이미지가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 뛰어드는 불나방의 신세를 암시한다. 누가 돈 가방을 쥐게 되건 선을 넘은 욕망은 사회적 죽음, 즉 몰락을 재촉할 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의 클로즈업은 여타의 정보는 차단한 채 화면 가득한 인물들의 욕망만을 드러낸다. 말하자면 욕망의 프레임으로 작동하는 클로즈업은 8명의 인물이 그 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철창 없는 감옥을 형상화한다. 어찌 됐든 8명 중 한 명은 돈 가방을 손에 넣는 데 성공하겠지만, 경주마의 운명이란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더라도 그게 끝이 아니라 계속해서 새로운 레이스가 이어진다는 데 있다.
돈이 있어도 그 돈을 지키기 위해 뛰고 또 뛰어야만 하는 경주마에게 욕망을 거세하면 남는 건 초라한 민낯이다. 욕망할 때에만 화려하게 빛나던 8명의 인물에게서 욕망의 인공조명을 빼고 나면 드러나는 건 레이스 동안 누적된 피로감과 먼저 들어오지 못해 낙오한 절망감과 그로 인해 감당해야 할 후폭풍의 비극이다. 욕망이 레이스가 될 때 승리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무간지옥의 레이스 앞에서 모두가 패배자다. 이게 과연 남의 일이기만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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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태그: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욕망, 경주마, 레이스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