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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롱 꽃다발

<월간 채널예스>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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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사랑이라는 단어를 보면 어린아이들이 생각난다. 나에게 있어서 그들은 아직 그늘 없는 빛이고 삐뚤어지지 않은 사랑인 것 같다. (2020. 02. 05)

출처 언스플래쉬.jpg

언스플래쉬

 


한 사람이 그 손으로
태어나 한 번도 죽지 않은 손으로
한 사람에게 손을 내민다

 

미래가 있는 손으로
미래가 있는 손에게

 

밤은 머뭇거리며
시간의 무릎을 지나
자연은 욕망의 넓은 허벅지를 지나
손은 처음으로 사랑과 손잡는다

 

그때 그 바닥
입술에서
밤의 껍질이 깨진다

 

첫 빛이
그곳에서 부화한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모든
사랑은 그 공간으로부터 약속한다

 

빛을 지키자

 

 김현, 『입술을 열면』 중 「사랑의 알」 부분

 

 

800x0.jpg

                                                                    

 

 

얼마 전 조카들과 함께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에 다녀왔다. 아는 분이 거기 살고 있어서 여행 계획이나 숙소비 걱정도 없이 캐리어만 달랑 들고 떠났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대체로 관대해진다. 공항에서 짐 검사를 할 때도 여섯 살 조카 예린이는 자기가 매고 있던 자그마한 토끼 가방을 야무지게 벗어서 바구니 안에 넣었는데, 무표정으로 바구니를 나르던 검역관은 씩 웃으며 토끼 가방을 예린이 등에 걸쳐주었다.


비행기 안에서도 네 살짜리 예준이는 자리에 앉아 조용히 그림을 그린 것밖에 없는데 옆좌석 사람들은 칭찬 일색이었다. 어쩜 이렇게 조용하고 착하냐고.


사실 난 우는 아이든 잘 웃는 아이든 아이들 자체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가장 좋은 건 아이들의 엉뚱함이다. 아이의 재밌거나 놀라운 말을 기록하는 부모의 블로그를 몇 개쯤 염탐하고 있기도 하다. 웃음이 나고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또 어린아이 둘과 약 일주일 정도 여행을 하고 보니 정말 행복한 순간들이 많아서 신기했다. 그래서 이 글을 보게 될 사람들도 아주 잠시 웃거나 마음이 따뜻해지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갑자기?) 그 순간들을 기록해보기로 했다.

 

1. 예린이랑 같이 잘 때 “이모 손 꼭 잡아줘.” 했더니 “나 원래 손잡고 안 자는데?” 하더니 몇 초 후 내 쪽으로 돌아누워 손을 꼭 잡아주었다.

 

2. 예린이와 수영장에서 함께 수영하는데 대뜸 “이모 수영장 물은 파란색이니까 여긴 하늘이야.” 그래서 “응 진짜 하늘 같다!” 하니까 팔을 파닥거리며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하늘을 날고 있는 거야.”라는 말에 감동해서 내적 눈물을 흘리며 함께 날았다.

 

3. 아침에 잠에서 깨니 예준이가 내 옆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깨우지도 않고 그냥 가만히. 너무 귀여워서 손을 잡았더니 조그만 손으로 내 손을 꽉 잡아주었다. 그렇게 낭만적으로 누워 있는데 할머니가 “아니 얘는 똥 마렵다더니 어디를 간 거야.” 하고 내 방에 들어오셨다.

 

4. 바닷가 해변에서 “이모 우리 조개 줍자.” 하더니 1분 만에 “이모 우리 그냥 모래 눈싸움하자.” 하길래 “왜 이렇게 빨리 생각이 바뀌었어?” 하니까 “왜…계획이 바뀔 수도 있는 거잖아…….” 하길래 바로 사과했다. 그리고 모래 놀이할 때도 왼쪽 모래가 설탕이라고 해놓고는 다시 물이라고 하길래 “이거 물이랬잖아?” 하니까 “아 맞다. 그런데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는 거잖아…….” 해서 다시 사과했다.

 

5. 사막에서 모래 놀이를 하며 예린이는 요리사, 나는 보조요리사 역을 맡았다. 몸을 쓰며 노는 걸 좋아하는 예린이는 자꾸 음식 장난감을 던져버리고 내게 찾아오라고 하길래 너무 힘들어서 이제 그만하자고 해야지, 하고 다가가니 갑자기 귓속말로 “이모, 오늘은 내게 잊지 못할 행복한 날이야…….” 라고 해서 다시 계란후라이 장난감을 찾으러 달려갔다.

 

6. 애들의 체력은 절대 고갈되지 않는다. 이모가 에너지가 다 떨어졌으니 밥 먹고 다시 놀자고 했더니 5분에 한 번씩 와서 “이모 에너지 얼마나 찼어? 나는 여기까지(정수리) 찼어.” 하길래 이모는 무릎까지밖에 안 찼다고 했더니 “어른들은 왜 이렇게 힘이 없는 거야…….” 하며 돌아섰다.

 

7. 수영장에서 서로 멀리 있다가 얼굴 앞까지 다가가서 웃긴 표정을 짓는 놀이를 했다. 한참을 반복하면서 놀다가 내가 다가가서 웃긴 표정을 짓자 갑자기 주먹으로 내 어깨를 밀쳤다. “왜 그랬어?” 하니까 “너무 무서웠어.”

 

8. 지인의 집에는 고양이가 있었는데 아이들은 고양이를 아주 좋아했다. 그런데 할머니는 “난 고양이 싫어. 너무 싫어.”하니까 예린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럼 여기 왜 왔어?”라고 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 감흥도 없겠지만 난 이런 게 좋다. 예측이 잘 안 되고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엉뚱한 말과 행동들이. 그중에 제일 좋았던 건 이거였다. “이모 저거 좀 봐봐.” “이모 이것 봐!” 아이들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 중에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는 거. 다 그림, 분수대, 비행기, 천장의 무늬 등 내가 혼자 지나갔으면 절대 보지도 않고 신경도 쓰지 않을 것들을 가리키면서 신기해하는 게 좋았다.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음식점 보기 바빴는데…….


빛과 사랑이라는 단어를 보면 어린아이들이 생각난다. 그냥 나에게 있어서 그들은 아직 그늘 없는 빛이고 삐뚤어지지 않은 사랑인 것 같다. 막 빛나는 모습을 지켜주고 싶고 사랑의 가장 좋은 방식만 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래서 곧 있을 어린이집 발표회 때 줄 마카롱 꽃다발을 열심히 만들고 있다.


 

 

 

입술을 열면김현 저 | 창비
악(惡)과 위악(僞惡)이 낮과 밤처럼 연속되는 우리의 사회현실에 대한 시인의 담대한 저항이자 이 상황을 함께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의 민낯을 오래 바라본 다정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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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백세희(작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5년간 일했습니다. 10년 넘게 기분부전장애(경도의 우울증)와 불안장애를 앓으며 정신과를 전전했습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지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떡볶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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