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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81화 : 조선인민에게 고하는 포고령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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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독부 국기게양대에서 일장기가 내려지고 성조기가 올라갔다. 부근에 조선사람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2020. 0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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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전후 처리를 주도한 조지 마샬은 일제가 패전하기 직전 조선주둔 일본사령관의 동향에 대해서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는 일본의 연락문을 감청했다. 그 연락문은 조선주둔 일본군사령관이 그들의 본국에 있는 대본영으로 보낸 것이다. 연락문은 소련 공산주의자들이 조선으로 밀려오고 있는 상황이므로, 미국이 조선을 공격할 때 미국군에게 항복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공산주의자들이 자기들에게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 두려워했는데 그것은 응당한 걱정이었다.”

 

조선총독부와 조선주둔 일본군사령부가 소련군의 경성 점령을 예상하고 공포와 불안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소련군의 맹렬한 진격속도를 보고 다급해진 일왕 히로히토는 8월 17일 미국이 제시한 항복조건을 수락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필리핀 마닐라에 있던 맥아더에게 밀사를 급파했다. 원래 히로히토는 일제가 식민지로 강점한 모든 해외영토를 포기하되 자기들에게 식량과 자원을 보급해주는 조선과 대만은 이전과 같이 식민지로 보유하는 조건으로 항복함으로써, 일제의 완전파멸을 모면하고 소련이 참전하기 전에 먼저 종전한다는 조건부 항복의사를 미국에게 전달한 바 있었다. 그러나 소련군의 빠른 진격으로 전황이 자기들에게 매우 불리해지자 무조건 항복의사를 타진한 것이었다. 어쨌든 일왕 히로히토는 막전에서 종전방송을 내보내면서도 막후에서는 항복의사를 타진한 것인데, 그의 종전방송은 뒤에서 은밀히 미국에게만 항복의사를 밝히려는 교활한 연막전술이었다. 소련군이 강원도 원산에 상륙한 8월 18일 다급해진 맥아더는 바로 그날 일본군과 일제식민통치기구를 향하여 ‘공인되지 않은 현지 세력에게 항복하지 말고 기존의 법과 질서를 유지하라’는 긴급성명을 발표했다. 이는 일제가 미국에 항복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만주에서 승리한 소련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무장해제 협정을 맺기 하루 전날인 8월 20일 맥아더는 일본군 육군대장 가와베를 단장으로 한 일제의 사절단을 만난 자리에서 미국의 전략방침을 하달했다. 그것은 미국이 한반도를 38도선을 기점으로 분할할 것이며 미군은 이남지역에서 소련군은 이북지역에서 각각 조선주둔 일본군의 무장을 해제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맥아더를 통해 미국의 전략 방침을 전달 받고 안심하게 된 히로히토는 1945년 8월 28일 일본은 미군의 ‘조속한 조선상륙을 열렬히 기다린다’는 내용의 전문을 맥아더에게 보냈다. 히로히토의 전문을 받은 맥아더는 미군이 8월 30일 일본에 상륙하고, 9월 8일 경에 조선에 상륙할 것이므로 31일부터는 조선주둔 일본군사령관이 조선에 상륙할 미군사령관에게 직접 연락하라는 내용의 답신을 히로히토에게 보냈다. 그리하여 8월 31일부터 9월 4일까지 남조선 점령 임무를 맡은 미24군사령관 존 하지와 조선주둔 일본군사령관 고즈키 요시오 사이에 40차례 이상의 비밀 전문이 오갔다. 적군의 조속한 상륙을 열렬히 기다리면서 자국 영토를 무력으로 점령할 적군 사령관과 긴밀한 연락을 주고받은 일제의 행동은 세계전쟁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괴이한 처사였다. 1945년 9월 2일 도쿄만에 정박한 미해군 전함 미주리호 함상에서 점령군사령관 맥아더에게 패전국 외상 시게미츠가 항복문서에 조인한 것은 앞으로 시작될 냉전 상황을 이용하려던 일제가 미국에게 항복하는 척했던 형식적 드라마였다. 미주리호 함상에서 연출된 항복문서조인식은 미국 일본이 더 이상 적대국이 아니며, 공동의 적인 소련과 대결하고 한반도의 통일 독립을 저지하기 위한 결탁 관계라는 내막을 감추고 있었다.

 

조선반도의 38도선 분할은 1945년 8월 9일에 대일전쟁을 개시한 소련군이 파죽지세로 만주를 거쳐 조선에 진격하자 이에 놀란 미국 전략정책단이 8월 11일 소련군의 남진을 저지하려는 긴급대책으로 38선을 그어 한반도를 서둘러 분할했다는 것이 공식적 견해였다. 조선반도의 분할은 미국이 즉흥적으로 주도하고 소련이 아무 것도 모르고 동의해준 것이라는 견해는 전혀 사실이 아니었고, 이미 오래전부터 정해진 미국의 전략이었다. 트루먼 행정부의 외교정책 전문가인 조지 캐넌은 1940년대 초부터 소련에 대한 봉쇄정책을 입안했다. 조선반도를 타고 내려오는 소련 세력을 조선에서 막기 위한 전략이었는데 과거 조선과 필리핀 맞바꾸기가 그 내용이었던 가쓰라 태프트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그의 구상이었다. 한반도와 만주 등을 일본의 재지배에 맡겨야 한반도를 따라 내려오는 대륙 세력을 억제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캐넌 구상’을 기본 전략으로 받아들인 대통령 트루만을 수행하여 미국무장관 제임스 번스는 1945년 7월 17일부터 8월 2일까지 진행된 포츠담 회담에 참석했다. 번스는 미국이 조선을 분할하기를 원했다. 그는 미국이 조선에 상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측 전략가들은 세 개의 주요 항구를 주목했고 이중 두 개의 항구인 부산과 인천을 자기들 쪽에 포함시켜야 하며, 서울 바로 북쪽에 선을 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38선을 따라 선을 긋는 것이 가장 좋은 위치라고 판단했다. 이것은 미군 작전국장 존 헐과 미군 대령 해리스가 전화로 통화한 내용을 녹취한 것으로서 미국 대통령과 국무장관이 포츠담 회의에서 비공식적으로 조선반도의 분할을 안건으로 내놓았음을 밝혀주고 있었다.

 

1945년 9월9일 오후 3시 45분, 승전국 미국과 패전국 일제가 공동의 적인 소련과 대결하고 조선반도의 통일독립을 저지하기 위해 남조선점령군 미군사령관이 조선총독의 식민지통치권을 넘겨받는 조인식을 은밀히 진행했다. 조선총독부 제1회의실에서 진행된 조인식장에는 미24군사령관 존 하지, 미7함대사령관 토머스 킨케이드, 미70사단장 아취볼드 아놀드가 참석했고,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 조선주둔 일본군사령관 고즈키 요시오, 경비사령관 야마구치 기이치가 참석했다. 그 조인식은 항복문서조인식이 아니라 일제의 조선식민통치권을 미국이 넘겨받는 통치권 이양식이었다. 조선총독 아베와 남조선점령군 사령관 하지는 통치권이양문서에 나란히 서명했다. 통치권이양식을 마친 미군 남조선점령군과 일제 조선총독부 측은 당일 오후 4시 35분 조선총독부 앞마당에서 국기교체식을 진행했다. 총독부 국기게양대에서 일장기가 내려지고 성조기가 올라갔다. 부근에 조선사람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바로 전날인 9월 8일에 미군이 인천에 상륙했을 때 벌어진 참사는 이미 그런 광경을 예고하고 있었다.

 

지난 8월부터 여운형 등 애국인사들은 건국준비위원회를 설립했으며 산하에 보안대를 조직하고 전국에 145개 지부를 만들었고, 9월 6일에는 조선인민공화국 조직기본법을 채택하고 인민위원을 선출해 신정부를 구성했다. 대회에서는 임시정부 환영준비위원회와 미군환영회를 구성하기로 결의했다. 조각 명단에는 주석 이승만을 비롯하여, 부주석 여운형, 조만식, 김원봉, 이강국, 최근우 등등의 이름이 보였다. 인천에서는 해방군 미국군대가 상륙한다는 소식에 일제 강점기부터 독립운동을 해오던 이들이 주축이 되어있던 건준과 보안대 조직원들이 공장과 부두의 노동자와 시민들을 모아서 점령군을 환영하러 몰려나갔다. 환영대열의 앞에 서있던 조선노조 인천 중앙위원인 권모 씨가 가슴과 배에 총탄을 맞고 쓰러졌으며 인천 보안대원 이모 청년이 등과 허리에 총탄을 맞아 사망했다. 그들 외에도 십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총을 발사했던 일본경찰은 미군 주도의 재판정에서 그들이 폴리스라인을 넘어섰기 때문에 발사했다고 진술했고 미군측은 경찰의 발포가 정당했다고 판결했다. 전국적으로 일본 경찰과의 충돌에서 이 며칠 동안에 사십여 명이 살해 되었다.

 

미군이 상륙하기 하루 전인 9월 7일에 맥아더는 조선인민에게 고하는 포고령을 발표했고 이것은 군용기로 경성 상공에 뿌려졌다.

 

태평양방면 미군육군총사령부 포고 제1호

 

조선인민에 고함

 

태평양방면 미군 육군총사령관으로서 나는 이에 다음과 같이 포고함.

 

일본국 천황과 정부와 대본영을 대표하여 서명한 항복문서의 조항에 의하여 본관의 휘하에 있는 승리에 빛나는 군대는 금일 북위 38도 이남의 영토를 점령한다.

 

조선 인민의 오랜 노예상태와 적당한 시기에 조선을 해방 독립시킬 연합국의 결정을 고려한 결과 조선 점령의 목적이 항복문서조항의 이행과 조선인의 인권 및 종교상의 권리를 보호함에 있음을 조선인은 인식할 줄로 확신하고, 이 목적을 위하여 적극적 원조와 협력을 요구한다.

 

본관은 태평양방면 미군육군부대 총사령관인 나에게 부여된 권한에 의하여 이로부터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과 조선 주민에 대하여 군정을 실시함에 따라서 다음과 같은 점령 조건을 포고한다.

 

제1조 조선 북위 38도 이남의 영토와 조선인민에 대한 모든 통치권은 본관의 권한 아래서 실행한다.

 

제2조 정부 공공단체 또는 기타의 명예직원과 공익사업 공중위생을 포함한 공공사업 기관의 직원과 고용인은 유급무급을 불문하고 주요한 직업에 종사하는 자는 새로운 명령이 있을 때까지 종래의 직무에 종사하고 모든 기록과 재산을 보존 보호해야 한다.

 

제3조 모든 주민은 즉시 본관의 명령과 본관의 권한 아래 발포한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점령군에 대하여 반항하거나 또는 공공안녕을 문란 시키는 행위에 대하여는 엄벌에 처한다.

 

제4조 주민의 재산소유권을 존중한다. 주민은 본관의 별명이 있을 때까지 일상의 업무에 종사하라.

 

제5조 군정기간 중에 모든 목적에 사용하는 공식언어는 영어로 정한다. 영어와 조선어 일본어 간에 해석 및 정의가 불분명 또는 부동한 점이 있을 때에는 영어를 기본으로 한다.

 

제6조 이후 공포하게 되는 포고 법령 규약 고시 및 조례는 본관 또는 본관의 권한 아래서 발포하여 주민이 이행해야 할 사항을 명기할 것이다.

 

포고 제2호

 

범죄 또는 법규 위반

 

조선인민에게 고함

 

본관은 본관의 지휘 아래 있는 점령군의 보전을 도모하고 점령지역의 공중치안질서의 안전을 기하기 위하여 태평양방면 미국육군총사령관으로서 아래와 같이 포고한다.

 

항복문서의 조항 또는 태평양방면 육군총사령관의 권한 하에 발포한 명령 지시를 범한 자, 미국인과 기타 연합국인의 인명 또는 소유물 또는 보안을 해친 자, 공중 치안 질서를 교란한 자, 정당한 행정을 방해하는 자, 또는 연합군에 대하여 고의로 적대행위를 하는 자는 점령군 군법회의에서 유죄로 결정한 후 동회의의 결정에 따라 사형 또는 엄벌에 처한다. 

 

위와 같이 포고함

 

1945년 9월 7일
 
태평양방면미국육군총사령관


미국육군대장 더글러스 맥아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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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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