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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뭐길래] 음악 레이블처럼 좋아하는 출판사 – 안효진 편

당신이 읽는 책이 궁금해요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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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시인이나 작가의 순서를 따라가는 편이에요. 한 사람의 작품을 읽고 좋으면 최신작부터 역순으로 데뷔작까지 거슬러올라가는 재미도 좋아하고, 반대로 계속해서 응원하고 싶은 작가님을 만나면 신간이 나오자마자 일단 쟁여놓고 틈틈이 읽으려고 해요 (2020. 01.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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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가 미니 인터뷰 코너 ‘책이 뭐길래’를 매주 목요일 연재합니다. 책을 꾸준하게 읽는 독자들에게 간단한 질문을 드립니다. 자신의 책 취향을 가볍게 밝힐 수 있는 분들을 찾아갑니다.

 

 

음악 레이블 ‘안테나뮤직’ 제작팀에서 일하고 있는 안효진 씨는 최근 미디어창비와 루시드폴의 새 에세이 『너와 나』 를 제작했다. 유희열, 루시드폴, 정재형, 페퍼톤스, 박새별, 권진아, 샘김, 이진아, 정승환 등이 소속된 ‘안테나뮤직’은 음악 레이블이지만 가끔 책도 만들고 홈쇼핑도 한다. A&R 파트에 소속돼 음반을 만드는 안효진 씨는 ‘출판사의 편집자’처럼 음반을 기획하는 역할을 한다. 음반 맨 뒤에 있는 크레딧을 짜고 완성하는 책임자다. 음악 못지 않게 책을 좋아해 즐겁게 본 책이 있으면 아티스트들에게 꼭 소개하는 열독가 안효진 씨는 요즘 어떤 책을 읽고 있을까.

 

지금 읽고 있는 책을 소개해주세요.

 

겨울에 읽는 여름의 책들을 좋아해요. 여름이 등장하거나 여름에 읽었던 책이요. 반대로 여름에는 겨울이 생각나는 책들을 꺼내 읽곤 합니다. 가령, 난로 앞에서 안녕달 작가님의 『할머니의 여름 휴가』『수박 수영장』 을 꺼내 읽는 거죠. 다른 계절을 준비해야하기도 하고, 자꾸 여기 없는 것들을 찾으려고 하는 고약한 심보 때문일까 싶기도 해요. 지금 읽고 있는 책들은 그래서 다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낸 것들이에요. 김선재의 『목성에서의 하루』 ,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정세랑의 『지구에서 한아뿐』 이렇게 세 권이고 사실 『박완서의 말』 도 머리맡에 두고 자기 전에 한 챕터씩 다시 읽고 있어요. 아! 얼마 전에 나온 루시드 폴의 『너와 나』 도 머리맡에 두는 자리끼같은 책입니다. 

 

세 권의 책들을 어떻게 읽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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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는 첫 문장부터 여름으로 안내합니다. “여름 별장에서는 선생님이 가장 일찍 일어난다”로 가루이자와의 여름을 같이 걷게 됩니다. 건축과를 막 졸업한 젊은 건축 기사와 오래 자신의 길을 걸어온 건축가 무라이 슌스케가 보낸 여름 별장에서의 이야기인데요. 숲 속의 별장에서 설계를 하는 동안 꽃, 바람, 새, 곤충, 별처럼 세월에 따라 자연스럽게 만나고 이별하게 되는 것들과 그 안에 계속 자리잡아 있는 어떤 집, 그리고 사람과 마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공간에서 각자가 살아내는 것도 음악을 듣는 것처럼 지극히 사소하고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경험이잖아요. 건축가나 음악가가 어떤 생각으로 그 건물이나 음악을 지었건, 그 곳에 발들이고 그 음악을 듣는 사람들로 인해 새로운 의미가 지워진다고 생각하고 그 점을 매우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 공간과 노래를 마음에 들여놓으면서 온전히 내 기억으로 만드는 고독하면서 고독하지 않은 그 순간을요. 건축이라는 것이 여러지점에서 노래를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이 책에 나오는 “고도경제성장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안이한 자기과시욕에 구애되지 않고, 실질적이면서도 시대에 좌우되지 않는 아름다움을 지닌, 그러면서도 사용하기 편리한 건물’을 짓는 건축가가 음악에도 있다면 안테나도 그 중 하나이지 않을까(그랬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매일을 삽니다.

 

 연필 깎는 소리로 시작되는 하루도 “준공되지 않은 설계도처럼 실현되지 않더라도 선명하게, 누군가의 마음에 깊이 각인되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 역시 비슷하더라고요. 물론, 음악의 실용적 기능에 대해서는 다른 생각들이 많겠지요. 하지만 음악이 늘 현실적인 것들에 뒤따라오는 낭만적인 위안이라고 하기엔 누군가에겐 굉장히 치열한 세계이기도 하고, 현실에서 반드시 ‘필요’로 하는 지점이 있지 않나 싶어요. 매 순간마다 어마어마하게 느끼는 아름다움은 아닐지라도, 사소하고 사소한 기억과 감정들이 만나는 지점이 있다면, 어느 날 문득 혼자서 잠시 동안 품는 아름다운 기억하나, 스쳐가는 것들에 마음을 줄 수 있는 4분여의 음악처럼 현실적이고 사용하기 편리한 것이 또 있을까 싶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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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작가의 『지구에서 한아뿐』 은 “아무리 해도 로또가 되지 않는 건 이미 엄마 아빠 딸로 태어났기 때문일 거예요”라는, 마음이 쿵 내려앉는 헌사를 시작으로 우주 전체와 사랑에 빠질 준비를 단단히 하고서 두 번째 완독을 시작했습니다. 최근에 동료에게 빌려주었다가 돌려받으면서 그 책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의 느낌이 기억나 다시 펼쳐 들었던 건데요. 이런 전우주적 로맨틱함이라니, 여름처럼 뜨거워집니다. 여름의 한 가운데에서 이 책을 만났던 기억인데, 봄에 나왔던 정승환의 ‘우주선’이라는 노래가 읽는 동안 많이 생각났어요. “내 여행의 끝은 그대죠”라는 마지막 가사처럼 “네가 내 여행이잖아. 잊지마”라는 고백이 반갑고 기꺼웠습니다. 그렇죠. 한 사람을 사랑해서 소행성 전체가 그 사람의 꿈을 꾸고, 그 사람으로 향하는 모든 길이 여행이 되는 일은 한아에게만 일어나는 기적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모든 노래가 시시해지는 법이니까요. 그런 기적은 오늘도 여기저기서 새로운 여정을 만들고 있다고 믿습니다. 

 

 정세랑 작가님의 책은 오래 전 『이만큼 가까이』 를 읽고 펑펑 울고 웃었던 기억이었다가 올 초에 보건교사 안은영』 , 『옥상에서 만나요』 등을 단숨에 읽고,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다른 책들로 습자지처럼 빠르게 번져갔지요. 뭐든 한 권을 시작하면 연달아 읽고 싶어지는 작가님임에 분명해요. 제가 복음 전파하듯 그렇게 주변에 여러 권을 빌려주곤 했다니까요. “이마에 뽀뽀를 하고는 우주 끝까지 달려가버린 싸가지 없는 새끼”에게 마음을 열고만 한아의 마음도 되었다가, 어떤 사람을 만나기 위해 2만광년을 달려와, 수없이 많은 난관을 헤치고 난 뒤에 긴긴 이별조차 산뜻한 경민의 마음에는 가닿지도 못하고 두 번째 완독을 앞두고 있습니다. “넌 같은 자리에 있는걸 지키고 싶어하는 거잖아. 사람들이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들을. 난 너처럼 저탄소 생활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살면서 이런 완벽한 고백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만, 이 책에 나오는 경민이 한아를 사랑하는 많은 이유들이 좀 더 마음을 쓰고픈 일들이어서 더 깊게 알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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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재 시인의 『목성에서의 하루』 는 작년 겨울에 선물 받았던 시집입니다. 그 이후로 줄곧 어쩌다보니 여행이나 출장을 다닐 때마다 갖고 다녔던 시집이라서 책 모서리 곳곳이 그럴듯하게 닳아버렸어요. 「가도가도 여름이었죠」라는 행으로 시작하는 첫 시 「열대야」부터 너무나도 여름이어서 어쩐지 저는 이 책을 어디로 도망가고 싶거나, 한없이 따듯해지고 싶을 때에 꺼내는 것 같아요. 무척 서글퍼지기도 하고, 투명한 마음이 되고 싶은, 알 수 없는 마음이 되기도 하죠.

 

시를 무척 좋아하는데, 왜 좋아하는지 어디가 어떻게 그렇게나 좋아서 읽고 또 읽는 건지는 매번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시들은 마구 저를 쥐고 흔들기도 하고, 가만가만 내버려두기도 하고, 끝까지 어딘가로 데려갔다가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오게 해서 좋아하는 것 같은데, 이 역시도 말하면서도 ‘그냥 좋다’라는 말을 뛰어넘지는 못합니다. 책갈피를 자주 읽어버리는 사람이라 좋아하는 페이지 끝을 세모로 접어 두는데, 빌려서 읽은 누군가가 "나도 그 시가 좋았다”고 하면 어딘가 친해진 기분이 드는 건 소설보다 시에서 그렇더라고요. 뭔가 들켜버린 기분이 들기도 하고요.

 

김선재 시인의 시는 여기에 없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여행지에 시집을 꼭 데려가는 이유도, 아마 그래서가 아닐까 해요.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에서 내가 살아있다는 기분이 몸으로 읽혀지는 것 같은 감각 때문에요. 손끝으로 시의 구석구석을 다 만져보고 올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꿈틀댑니다. 시인의 덤덤함과는 다른 결의 감상일 수도 있으나 그 또한 시인이 만든 움직임이겠지요. 이 시집에서 「흔들리는 노래」, 「머리 위의 바람」, 「열리는 입」, 「그린란드」를 특히 좋아합니다. 

 

평소 책을 선택할 때, 기준은 무엇인가요?

 

좋아하는 시인이나 작가의 순서를 따라가는 편이에요. 한 사람의 작품을 읽고 좋으면 최신작부터 역순으로 데뷔작까지 거슬러올라가는 재미도 좋아하고, 반대로 계속해서 응원하고 싶은 작가님을 만나면 신간이 나오자마자 일단 쟁여놓고 틈틈이 읽으려고 해요. 이제 더이상 신작을 낼 수 없는 분들 중 좋아하는, 페르난도 페소아, 허수경, 박완서나 존 버거의 책은 순서 없이 그 때 그 때 다시 읽곤 하지만요. 아, 그리고 음악 레이블처럼 좋아하는 출판사가 있어요. 전에 은유 작가님의 『출판하는 마음』 이라는 인터뷰집을 아주 재밌게 읽었는데, 역시나 사람마다 책을 펴내는 ‘마음’이 다르구나, 라고 많이 느꼈고 어쩌다 보면 그 출판사 책이 자연스럽게 쌓여 있기도 하더라고요. 열화당과 분도출판사처럼 오래 좋아한 곳도 있고, 최근에는 유유출판사, 마음산책, 봄날의 책, 아침달의 책이 많아졌어요.

 

어떤 책을 볼 때, 특별히 반갑나요?

 

음반을 제작하거나, 그에 따른 콘텐츠들 (뮤직비디오나 스틸 이미지, 콘서트 등)을 만들 때에 나왔던 아이디어들이랑 결이 비슷하게 움직이는 책들이요. 노래가 누군가에게 가 닿을 때 새롭게 태어난다는 지점에 대해서 늘 고맙고 신기해하는 편인데, 꼭 같지는 않아도 비슷한 정서의 테두리를 만날 때 반가워요. 각자 다르지만 또 같이 그리워하고 애틋해 할 수 있어서 우리가 이 책을 보고 이 노래를 듣는구나 싶을 때 말할 수 없이 따듯해집니다. 
 
신간을 기다리는 작가가 있나요?

 

 작년에 좋아하는 작가님들의 반가운 외도를 만날 수 있었어요. 가령 심보선 시인의 첫 산문집 『그 쪽의 풍경은 환한가』와 김애란 작가님의 첫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 이요. 또 박연준 시인님의 에세이집이나 프리다 칼로에 관한 에세이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도 너무 좋았어요. 그렇게 자신의 일정 궤도를 잠시 벗어난듯 하지만, 결국 같은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책들이 참 고맙고 좋습니다. 그 분들의 본업을 마구 응원하고 있고요. 독촉이 되는 것은 원치 않지만, 각기 다른 씩씩함을 지닌 안미옥 시인님의 시집과 최지은 작가님의 신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잊기 좋은 이름김애란 저 | 열림원
가족에의 사랑이나 청춘의 성장 및 애환과 같은 보편적인 주제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것은 물론 소수자 문제라든가 존재의 고독처럼 무게감 있는 주제도 서슴없이 꺼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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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엄지혜


eumji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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