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노바가 모차르트를 찾아가 ‘오디션’을 봤다고?
『산책자의 인문학』 4편 베네치아의 바람둥이
그저 바람둥이에 불과한 카사노바의 이름이 왜 지금까지 언급되고 또 그의 자서전이 읽히는 걸까? 그것은 그의 삶이 당대 사회와 인간 군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2019. 10. 18)
이탈리아 북동부에 위치한 베네치아는 ‘물의 도시’라는 별칭만큼 수많은 섬이 수백 개의 다리로 이어진 아름다운 항구 도시다. 한때는 매년 조금씩 가라앉아서 언젠가는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풍문이 돌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그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베네치아는 물과 다리의 도시다.
이 도시를 여행할 때, 나는 한창 단테에게 빠져 있었다. 『신곡』 은 물론 그의 이름이 나오는 『단테의 모자이크 살인』 시리즈와 『단테 클럽』, 『인페르노』 같 은 온갖 추리소설과 음모론 소설까지 모조리 섭렵하고 있었다. 베네치아에 있는 이탈리아 최초의 카페, 플로리안의 화려한 테이블 한편에 앉았을 때에도, 나는 『단테의 신곡 살인』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책에서 낯익은 이름 하나를 발견했다.
이따금 자코모 카사노바를 만났는데 알고 보니 그 역시 엇비슷한 행운을 거머쥔 차였다. 이 얼마나 인생 역전인가! 그는 베네치아 고관대작들을 따라 가슴 뛰는 권력의 현장을 목격했고 카지노에서 정기적으로 지갑을 두둑이 채웠다. 물론 그가 결점만으로 점철된 인간은 아니었다. 그는 감탄스러운 시를 지어낼 줄 알았고, 아리스토텔레스에 통달했으며, 철학에 능했다. 해박한 지식과 카리스마, 명석한 두뇌, 재치 있는 임기응변, 그리고 듣는 이를 숨 돌릴 틈 없이 몰아치다 기어이 울리고야 마는 탁월한 이야기꾼의 능력을 지닌 그는 유쾌한 벗으로서 인기가 높았다.
아르노 들랄랑드, 『단테의 신곡 살인』 중 (권수연 역, 황매, 2007)
바로 인류 역사상 최고 최악(?)의 바람둥이 카사노바였다.
나는 평생 감각의 노예였다
“나는 건전한 윤리관을 가지고 있었고 가슴속에는 일찍부터 신의 원리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평생 동안 감각의 노예였다. 옳은 길을 엇나가는 데에서 기쁨을 느꼈고, 내 잘못을 자각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위안도 없이 계속 실수를 저질렀다.”
카사노바의 자서전인 『카사노바 나의 편력』(김석희 편역, 한길사, 2006)은 위와 같은 변명으로 시작된다. 도대체 그는 어떤 삶을 살았기에 오늘날까지 난봉꾼의 대명사가 된 걸까? 피렌체에서 태어난 그는 희극 배우 아버지와 성악가 어머니 사이의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파도바대학교 재학 시절 라틴어, 그리스어, 프랑스어, 히브리어, 스페인어, 영어, 고전문학, 신학, 법학, 자연과학 등 폭넓은 지식과 춤, 펜싱, 승마, 카드 게임 같은 사교술을 익히는데, 이러한 다양한 교양 지식을 그는 오직 최고의 바람둥이가 되는 데 썼다.
결국 그는 서른 살이 된 1755년 무렵, ‘이성을 유혹하는 이단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라는 죄목으로 5년 형을 선고받고 투옥된다. 그가 투옥된 곳은 베네치아 두칼레 궁전의 피옴비 감옥인데, 훗날 카사노바는 자신이 투옥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변명했다. “나는 타인에게 잘못한 적이 없다. 사회의 안정을 위협한 적도, 남의 사적인 일에 간섭한 적도 없다. 단, 한 가지 죄목이 있다면 종교 재판관의 애인과 자주 만났던 것일지 모른다.”
프란체스코 카사노바, <카사노바의 초상>(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 소장). 카사노바의 동생인 화가 프란체스코가 그린 초상화다.
두칼레 궁전 재판소(왼쪽)와 피옴비 감옥(오른쪽)을 잇는 탄식의 다리. 카사노바도 이 다리를 건너며 탄식을 했을 것이다.
천하의 난봉꾼인가, 시대의 ‘뇌섹남’인가?
카사노바에게는 흥미로운 일화가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것은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와 얽힌 이야기다. 모차르트가 오페라 <돈 조반니>를 작곡하고 있을 무렵, 예순 중반이 된 노년의 카사노바가 그를 찾아간 적이 있다고 한다. 카사노바는 모차르트에게 자신의 화려한 여성 편력을 자랑하며, 돈 조반니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본인 역시도 바람둥이에다 부도덕하고 문란한 주인공 돈 조반니를 주인공으로 한 오페라를 쓰던 모차르트였지만, 카사노바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카사노바보다는 돈 조반니가 훨씬 낫겠다.”
그런데 그저 바람둥이에 불과한 그의 이름이 왜 지금까지 언급되고 또 그의 자서전이 읽히는 걸까? 그것은 그 자신의 삶이 단지 한 바람둥이의 개인적인 엽색 행각을 넘어, 통찰력 있게 시대를 관찰하면서 당대 사회와 인간 군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의 자서전을 번역한 김석희도 이런 평가를 남겼다. “프랑스혁명을 앞두고 낡은 것이 해체되고 새로운 것이 태어났다. 그 이상한 활기와 감미로운 권태로 가득한 데카당스의 세계를 묘사한 수많은 작품들 가운데, 카사노바 회고록은 우뚝 자리 잡고 있다.”
*문갑식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며,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세계 곳곳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산책자. 사진작가인 아내와 함께 예술이 깃든 명소를 여행하고 거기에 담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고,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울프손칼리지 방문 교수와 일본 게이오대학교 초빙연구원을 지냈다. 1998년 조선일보에 입사해 《월간조선》 편집장 등을 지냈다.
산책자의 인문학문갑식 저/이서현 사진 | 다산초당
예술가의 이름을 잔뜩 나열하거나 미술 사조나 기법 따위를 늘어놓지 않는다. 그저 도시와 마을을 천천히 거닐며, 독자와 대화를 나누듯 작품의 탄생 비화와 작가의 은밀한 사생활 등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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