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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르네상스의 두 가지 얼굴

『산책자의 인문학』 2편 종말론을 사랑한 화가 보티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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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의 화려함을 대표하던 보티첼리는 역설적이게도 이 시기 유행했던 종말론에 도취되었다. 마치 화려한 르네상스가 한편으로는 엄격한 종교개혁의 씨앗을 품고 있었던 것처럼. (2019. 10. 04)

괴짜 수도승, 교황에게 맞서다_보티첼리와 피렌체2

 

로렌초가 사망한 뒤, 피렌체 통치권은 장남인 피에트로에게 계승된다. 그러나 ‘불행한 자’라는 그의 별명처럼, 이후 메디치가에는 불운이 잇따른다. 가장 큰 위기는 외부에서 왔다. 프랑스 왕 샤를 8세가 나폴리 왕국을 공격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쳐들어왔는데, 피렌체가 그 침략 경로에 있었던 것이다. 위기에 처한 피에트로는 샤를 8세와 협상에 들어갔고, 유약했던 그는 결국 프랑스 왕의 요구대로 피사 등 여러 요새를 내준다.

 

그러나 피에트로의 결정에 피렌체 시민은 분노했다. 의회가 소집되고 메디치가를 피렌체에서 영원히 추방한다는 법률이 가결되었다. 1494년 9월, 피렌체 시민의 맹렬한 분노에 메디치가는 내쫓기듯 도망쳐야만 했고, 대저택과 값비싼 예술품을 빼앗겼다. 메디치가가 이렇게 피렌체에서 추방되었다가 1512년 다시 복귀할 때까지의 시기가 ‘대공위 시대’다. 이때 메디치가를 대신해 피렌체를 장악한 이가 사보나롤라라는 괴짜 수도승이었다. 그는 샤를 8세와 협상해 프랑스군을 피렌체에서 내보내고 도시 중산 계급의 지지를 바탕으로 권력을 쥐었다. 그는 예언가이자 신비주의적 수도승으로 누더기 옷을 입고 다녔으며, 사치스럽고 화려한 예술품과 의복 등을 불태우는 ‘허영의 불꽃’이라는 행사를 자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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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보나롤라의 초상화

 

 

그는 화려한 르네상스의 한 지점에서 시작되어, 이내 온 유럽을 뒤덮을 종교개혁이라는 뜨거운 불길을 예고하는 인물 중 하나였다. 지독한 원리주의자이자 뻣뻣한 성격의 사보나롤라는 심지어 교황에게도 맞섰다. 교황청의 죄악을 비판하고 교회 개혁을 위한 공의회를 소집하라고 촉구한 것이다. 처음에 교황 알렉산데르 6세는 지지자가 많은 그를 회유하려 했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에 교황은 그를 처단하려 음모를 꾸몄고, 결국 여러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사보나롤라는 몰락하고 만다.

 

 

르네상스의 화가, 종말론에 도취되다

 

그렇다면 이 시기 보티첼리의 처지는 어땠을까? 르네상스의 화려함을 대표하던 화가는 역설적이게도 이 시기 유행했던 종말론에 도취되었고, 사보나롤라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마치 화려한 르네상스 인문주의가 한편으로는 엄격하고 경건한 종교개혁의 씨앗을 품고 있었던 것처럼.

 

이 시기의 그의 그림에서는 이전까지와는 정반대로 슬픔과 정제된 감정이 도드라진다. 대표적인 작품이 「석류 열매를 든 성모와 아기 예수」다. 그림에서 아기 예수는 왼손에 막 한 입 베어 먹은 듯한 석류를 손에 들고 있고, 성모 마리아를 슬픈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오른손을 들어 복을 빌고 있다. 예술사가 에른스트 슈타인만은 이 작품을 보티첼리의 최고 걸작으로 평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 그림에서 아기 예수와 성모는 자신들이 인류의 모든 슬픔을 져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깊게 인식하고 있다. 그 어느 작품에서보다 더욱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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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로 보티첼리, 「석류 열매를 든 성모와 아기 예수」(우피치 미술관 소장)

 

 

「석류 열매를 든 성모와 아기 예수」는 우피치 미술관에 「마그니피카트의 성모」와 마주 보는 위치에 걸려 있다. 두 그림 사이에는 30년이라는 격차가 있다. 30년 전 그린 「마그니피카트의 성모」의 기조가 겸손이라면 「석류 열매를 든 성모와 아기 예수」의 기조는 슬픔이다. 성모는 자기 무릎에 서 있는 아기를 끌어안고 있다. 아기는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왜 그렇게 슬퍼하는지 궁금한 눈치다. 어머니의 얼굴과 태도에는 깊은 자애가 묻어나는데, 거기에는 다른 그림과 마찬가지로 슬픔이 깊게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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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로 보티첼리, 「마그니피카트의 성모」(우피치 미술관 소장)

 

 

1500년 말에 보티첼리가 그린 「신비의 강탄」은 현재 런던 국립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그림은 당시 피렌체의 혼란한 정황을 보여준다. 보티첼리는 자신의 그림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나는 이 그림을 1500년 말 이탈리아가 혼란에 빠져 있을 때, 그러니까 『요한의 묵시록(요한계시록)』 11장에서 말하는 둘째 환난이 닥쳐 마귀가 3년 반 동안 풀려나 한참 활동하는 시기에 그렸다. 그러나 묵시록 12장에 따르면 그는 머잖아 결박될 것이고, 우리는 이 그림에서처럼 그가 짓밟히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점점 더 종말론에 도취된 보티첼리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을 정도로 점점 쇠약해졌다. 그리고 1510년에 세상을 떠나 오니산티에 있는 소교구 성당 묘지에 묻힌다.


비슷한 시기에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제2의 밀라노 시대(1506~1513년)’를 보내며 프랑스 치하 밀라노에서 프랑스 왕 루이 12세의 궁정화가로 활약한 뒤, 1516년에는 루이 12세의 뒤를 이은 프랑수아 1세의 초청으로 앙부아즈로 옮겼다. 미켈란젤로는 1505년 교황 율리오 2세의 초대로 로마로 가서 「천지창조」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 벽화를 그렸다. 그는 무려 4년 동안 발판 위에 누워서 그림을 그리느라 관절염과 근육 경련에 시달려야 했으며, 천장에서 물감이 흘러내리는 통에 눈병도 얻게 된다. 라파엘로는 1508년 교황의 초청을 받아 자신의 주 무대였던 피렌체를 떠나 로마로 갔고, 거기서 수많은 걸작을 남겼다.

 

 

*문갑식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며,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세계 곳곳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산책자. 사진작가인 아내와 함께 예술이 깃든 명소를 여행하고 거기에 담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고,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울프손칼리지 방문 교수와 일본 게이오대학교 초빙연구원을 지냈다. 1998년 조선일보에 입사해 《월간조선》 편집장 등을 지냈다.

 

 

 


 

 

산책자의 인문학문갑식 저/이서현 사진 | 다산초당
예술가의 이름을 잔뜩 나열하거나 미술 사조나 기법 따위를 늘어놓지 않는다. 그저 도시와 마을을 천천히 거닐며, 독자와 대화를 나누듯 작품의 탄생 비화와 작가의 은밀한 사생활 등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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