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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 비엔나, 예술이 꽃피다

『산책자의 인문학』 3편 황금의 화가 클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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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라는 순간에는 늘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도 담겨 있다. 몰락한 화려한 왕족과 귀족을 대신해 비엔나의 주인공이 된 것은 수많은 천재와 예술가였다. (2019. 10. 11)

클림트의 작품 <키스>의 모델은 누구일까? _클림트와 비엔나

 

비엔나는 유독 세기말이라는 말과 잘 어울리는 도시다. 물론 이곳은 지금도 충분히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런던이나 파리, 뉴욕 하면 떠오르는 생기 넘치는 이미지와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민족주의에 영향을 받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폴란드 등 여러 나라로 쪼개진다. 한때 유럽 최고의 도시로 손꼽혔던 수도 비엔나에는 그렇게 번영했던 옛 시절의 쓸쓸한 꿈만 남게 된다.

 

그러나 끝이라는 순간에는 늘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도 담겨 있다. 몰락한 화려한 왕족과 귀족을 대신해 비엔나의 주인공이 된 것은 수많은 천재와 예술가였다. 현대 물리학의 아버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정신분석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와 표현주의의 시조 오스카 코코슈카, 그리고 이들과는 결이 다르지만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끔찍한 학살 범죄를 저지른 아돌프 히틀러 역시 세기말 비엔나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그렇다면 세기말 불꽃처럼 등장한 이들의 주요 무대는 어디였을까? 바로 살롱과 카페다. 비엔나는 지금도 커피라는 단어와 무척 밀접한 도시다. 그곳에서 카페를 누비고 다녔던 수필가 알프레트 폴가는 이런 말을 남겼다. “카페란 혼자이고 싶은 사람들이 머무는 곳, 동시에 옆자리에 벗이 있어야 하는 곳이다.” 이처럼 예술가와 지식인에게 살롱과 카페는 자유롭게 작품을 구상하고, 자신의 이념과 가치를 설파하며, 서로의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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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센트럴. 1876년에 문을 연 이곳은 오늘날까지도 비엔나의 명소로 유명하다. ⓒ이서현

 

 

비엔나를 대표하는 ‘황금의 화가’

 

그렇다면 빈을 대표하는 예술가는 누구일까? 적어도 ‘황금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를 결코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1862년 7월 14일 빈 근처 바움가르텐에서 보헤미아 출신 귀금속 세공사인 아버지와 오페라 가수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일곱 남매의 둘째로 태어난 그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유년 시절을 딛고 1876년 비엔나 응용미술학교를 거쳐 동생 에른스트와 함께  쿤스틀러 콤파니(예술가 회사)를 세워 큰 인기를 얻는다.

 

당시 오스트리아에서는 건물을 새로 짓거나 수리할 때 내부에 그림을 그려 넣는 게 유행이었는데, 여기서 클림트는 재능을 크게 인정받는다. 1886년 유럽 최대 오페라 극장인 부르크 극장의 장식을 맡아 극찬을 받는데, 특히 「옛 부르크 극장의 객석」으로 황실로부터 금십자 공로상까지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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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클림트, <옛 부르크 극장의 객석> (빈 미술사 박물관 소장). 이 작품에서 클림트는 무대가 아니라 객석으로 시선을 돌리는 혁신을 선보였다.

 

 

그런데 이렇게 ‘잘나가며’ 명성을 쌓던 1897년, 그는 중대한 변화를 단행한다. 기존까지의 화풍을 대대적으로 혁신하며 ‘비엔나 분리파’를 이끈 것이다. 분리파는 전통 예술 양식에 반기를 들면서 예술가 협회나 정부로부터 독립된 자유로운 활동을 추구했다. 그들의 모토는 문예평론가 헤르만 바르의 다음과 같은 말로 대표된다.

 

“우리는 삭막한 일상과 너절하고 하찮은 집착, 모든 형태의 악취미에 선전포고를 선언한다!”, “오스트리아를 아름다움으로 덮어버리자. 각 세기마다 고유한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

 

분리파는 1898년 제1회 분리주의 전시회를 개최했고, 많은 사회적 논란 속에서도 황제의 지원을 받고 방문객도 무려 5만 7천 명이나 찾아오는 대성공을 이루게 된다.

 

 

‘비엔나의 바람둥이’ 클림트의 순정

 

‘황금의 화가’ 클림트의 작품은 대부분 여성의 나신이 등장하고, 표정이나 색감이 굉장히 관능적이다. 그런데 유독 그의 대표작 <키스>만큼은 다른 작품들과 달리 숭고하고 절제된 분위기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긴 걸까? 여기에는 한 가지 비밀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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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클림트, <키스> (벨베데레 궁전 미술관 소장)

 

 

사실 클림트는 ‘빈의 카사노바’로 불릴 만큼 소문난 바람둥이였다. 특히 작품의 모델로 삼은 여성과는 꼭 육체관계를 맺는다는 말이 따라다녔다. 그런데 천하의 바람둥이인 그를 쭈뼛거리게 만든 여성이 단 한 명 있었다. 바로 동생인 에른스트의 처제 에밀리 플뢰게였다. 예술적 동반자이기도 했던 동생이 일찍 세상을 떠난 뒤, 클림트는 동생의 가족들을 돌보다가 에밀리 플뢰게를 만난다. 그리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제멋대로의 바람둥이인 클림트였지만, 이상하게도 에밀리 앞에서는 숙맥이 됐다. 둘은 휴가를 함께 보내기도 하고,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깊게 교류한다. 클림트가 에밀리에게 쓴 편지는 무려 400통이 넘었으며, 어떤 날은 하루에 8통이나 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어디까지 ‘플라토닉 러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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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에밀리 플뢰게와 구스타프 클림트가 함께 찍은 사진.

 

 

당대에 실력 있는 디자이너이자 성공한 사업가이기도 했던 에밀리는 그렇게 수십 년간 클림트와 정신적 사랑을 나누었고, 클림트가 죽은 뒤에는 사생아들에게 유산을 나누어주는 일까지 맡는다. 이런 일들을 감안하고 <키스>를 보면 왜 클림트가 이 그림을 그렸는지 느껴진다. 어쩌면 그는 자신이 평생 가장 사랑했지만, 동시에 끝내 온전히 전하지 못한 에밀리 플뢰게에 대한 사랑을, 바로 <키스>라는 작품에 담아내려 했던 건 아닐까?

 

 

*문갑식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며,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세계 곳곳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산책자. 사진작가인 아내와 함께 예술이 깃든 명소를 여행하고 거기에 담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고,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울프손칼리지 방문 교수와 일본 게이오대학교 초빙연구원을 지냈다. 1998년 조선일보에 입사해 《월간조선》 편집장 등을 지냈다.

 

 


 

 

산책자의 인문학문갑식 저/이서현 사진 | 다산초당
예술가의 이름을 잔뜩 나열하거나 미술 사조나 기법 따위를 늘어놓지 않는다. 그저 도시와 마을을 천천히 거닐며, 독자와 대화를 나누듯 작품의 탄생 비화와 작가의 은밀한 사생활 등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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