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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분열의 시대를 인도할 등대 찾기

가보지 못한 이념들로 여는 21세기 『21세기를 살았던 20세기 사상가들』 서평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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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존재가 현재로 소환되어 미래에 개입하려면 소환술사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장석준, 우석영, 이 두 사람이야말로 20세기와 21세기를 잇는 소환술사가 아닐까? (2019.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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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를수록 한국사회의 분열은 심해지고 갈등의 선도 다양해지고 있다. 소위 ‘조국대전’ 이전에도 세대와 성별, 계층에 따른 갈등이 있었지만, 그 분열과 갈등이 지금처럼 동시에 폭발한 적은 드물었던 것 같다. 그리고 모든 갈등이 사회의 분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개는 사회적인 관계가 그런 갈등을 어느 정도 흡수하는데 지금은 그런 관계도 무너지고 있기에 갈등이 폭발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이라도 각각의 균열과 갈등의 선이 분명하게 드러나야 서로의 열망과 이해관계를 놓고 타협하는 과정이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정치가 중요한 몫을 맡아야 하는데, 지금 한국 사회에는 정치의 방향이 없다. 정치인들이 사용하는 ‘개혁’ ‘공정’ ‘정의’ 같은 추상적인 개념은 불빛의 다양한 색깔이지, 그 자체가 등대는 아니다. 그런 개념들은 개혁의 방향, 공정의 기준, 정의의 원칙처럼 또 다른 논의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한때 무게가 너무 무겁다며, 배가 흔들리는데 무슨 소용이냐며 버렸던 ‘이념’이 어쩌면 등대의 위치를 알려줄 실마리다. 지구상에 등대가 하나뿐이라면 그 쓸모는 제한되겠지만, 여러 개라면 배의 난파를 피하는 데 유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흔적조차 없어지고 때론 조롱의 대상이 되는 ‘이념들’이 다시 등장할 수 있을까?


장석준, 우석영의  『21세기를 살았던 20세기 사상가들』  은 그런 등장을 돕는 조력자로서 역할 한다. 이 책은 두 사람이 2016년 11월부터 2017년 3월까지 <한겨레21>에 연재했던 글에 새로이 5명의 사상가들에 대한 소개를 추가했다. 저자들은 “혼돈과 전환의 시대이자 위기와 기회의 시대인 지금, 지난 100년의 자원이 다음 100년을 준비하는 데 지적?실천적 무기가 되어줄 수 있”다고 말한다. 과거의 누적이 미래는 아니듯이, 현재에 대한 개입이 과거와 미래를 묶는 실마리이다.


그렇다면 저자들은 어떤 개입을 하려 할까? 첫 번째 장은 영국의 페미니스트 실비아 팽크허스트의 무지개 연대로 시작된다. 여성 참정권과 노동운동, 대중과 사회운동, 남반구 민중과 북반구 노동자를 묶으려 했던 팽크허스트로 시작되는 것은 장석준의 개입이다. 그리고 국가주의의 폐해를 넘어서면서도 개별자와 민족공동체의 공동 활로를 모색했던 안창호의 대공주의를 다시 꺼내는 것은 우석영의 개입이다. 이렇게 20세기의 사상가들이 21세기의 문제를 풀기 위한 실마리로 등장한다.


두 사람은 적(赤, 전통적 좌파의 흐름)과 녹(綠, 생태주의 흐름)을 넘나들며 20세기의 다양한 사상가들을 호명한다. 적정한 산업화와 지역적인 공유와 연대의 전통을 되살리려 했던 호세 카를로스 마리아테기, 생태주의적 사회전환의 비전과 기본소득을 결합시키려 했던 앙드레 고르, 비참한 생명의 고통과 행복 그리고 자립에 대한 관심을 예술로 승화시킨 존 버거, 민중을 위해 과학기술을 혁신하고 새로운 경제운영시스템을 세우려 했던 스태퍼드 비어, 다른 세상을 위해 다른 물건을 생산하려 했던 루카스사의 노동자들, 동물과 인간의 공존을 위해 동물권을 정립하려 했던 헨리 솔트, 지상의 모든 개체가 서로 의존하는 공동체임을 인정하자고 주장했던 알도 레오폴드, 서로 뒤엉킨 공생진화의 세계관을 정립한 린 마굴리스, 사회적 공공자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커먼스로서 농생태계를 재구성하려 했던 우자와 히로후미, 재생에너지의 제도화에 앞장섰던 헤르만 셰어, 자연계와 인간 간의 대화와 이어짐을 강조했던 가와구치 요시카즈, 개인들에게 스며드는 공통정신과 혁명정신을 강조했던 구스타프 란다우어, 사회에 기반한 노동자의 직접 생산통제를 강조했던 알렉산드르 실리아프니코프, 뉴딜식 복지를 넘어 보편적 시민기본소득을 강조했던 노먼 토머스, 대의민주주의와 일상의 민주주의라는 이중권력을 작동시키려 했던 랠프 밀리밴드, 국가주의의 문제를 온몸으로 고발했던 엘리 위젤, 소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변혁을 추구했던 김성숙, 평등공화국의 이념을 추구하면서도 이념 통합을 추진했던 조소앙이 그들이다. 책에서 다뤄진 사상가들을 길게 호명한 이유는 그들이 21세기의 이 한국으로 소환되는 이유를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이들이 제기했던 이념의 키워드들이 이들을 소환하게 되는 주문들이다.


이 책에서 호명된 20명의 사상가들은 20세기와 21세기를 잇는 다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현재와 미래의 실마리를 얻기 위해 논의되어야 할 사상가들은 여기 소개된 20명이 전부일 수는 없고, 또한 이 책에서 미처 다뤄지지 않은 영역도 있다. 다만 과거의 존재가 현재로 소환되어 미래에 개입하려면 소환술사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장석준, 우석영, 이 두 사람이야말로 20세기와 21세기를 잇는 소환술사가 아닐까? 그런 점에서 저자 두 사람의 대담을 책 마지막에 실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앞장에서 다뤄지는 해동과 연대라는 개념에서 저자들의 차이도 살짝 드러난다. 지금 여기의 이념들로서 저자들의 입장이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들의 선구적 실천과 우리의 기다림이 더 나은 오늘과 내일로 향하는 가교를 더욱 단단하게 쌓아 올려주리라 믿는다.



 

 

21세기를 살았던 20세기 사상가들장석준, 우석영 저 | 책세상
기본소득, 복지국가, 대안생산, 정보민주화, 동물권리, 재생에너지와 같은 현재 또는 미래의 가치ㆍ사상ㆍ제도의 씨앗을 뿌린 이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 사상의 계보 추적을 넘어서는 현재와 미래의 ‘모색’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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