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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보내온 SOS

<월간 채널예스> 2019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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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다. 순둥이가 다시 할머니와 함께 할 수 있어서. (2019. 09.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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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순둥이가 아롱이한테 쫓겨났나봐. 인석이 배가 불룩하게 새끼 낳을 때가 됐는데, 먼저 새끼 낳은 아롱이가 지들 새끼만 키우려고 쫓아낸 거 같어. 사흘 전 순둥이가 사료 먹으러 오긴 했는데, 하이고 바싹 말라서… 밥 먹고 가는 걸 따라가 봤더니 저기 산 밑에 빈 외양간으로 가더라고. 새끼도 거기 낳은 거 같고. 그래 거기다 사료를 몰래 놓고만 왔지.” 이웃마을 전원할머니가 나를 붙잡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쩐지 순둥이가 한동안 보이지 않았더랬다. 녀석을 다시 만난 건 거의 달포가 다 되어서였다.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사료 포대를 이고 할머니 댁으로 들어서는데, 대문 앞에서 녀석이 냐앙냐앙 울고 있었다. 녀석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반갑다며 한참이나 발라당을 했다. 때마침 현관문을 열고 나온 할머니는 순둥이를 쓰다듬으며 눈물까지 글썽였다. “아이구, 우리 순둥이 왔네. 일루와 어여 밥 먹자!” 배가 고팠는지 순둥이는 순식간에 사료 한 그릇을 다 먹어치웠다. 할머니에 따르면 그동안 몇 차례 외양간으로 사료배달을 했는데, 거기 주인이 어떻게 알고는 사료가 보일 때마다 치워버리더라는 것이다. 순둥이는 밥을 다 먹고도 할머니를 바라보며 냐앙냐앙 울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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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녀석의 행동이 좀 이상했다. 할머니가 집안으로 들어간 뒤에도 녀석은 나를 바라보며 냐앙냐앙 울어대는 거였다. 바지춤에 얼굴을 부비더니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기도 하면서. 처음엔 그게 만져달라는 건 줄로만 알고 목덜미를 쓰다듬었더니, 저만치 걸어가 발라당을 하며 또 다시 냐앙냐앙거렸다. 어쩐지 무언가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내가 다가가면 벌떡 일어나 또 몇 미터쯤 걸어가 냐앙거리기를 네댓 차례. 그제야 나는 어렴풋이 녀석의 의도를 알 것만 같았다. 녀석은 나를 부르고 있었던 거고, 어디론가 나를 데려가려는 거였다. “무슨 일이 있는 거구나! 그래 가자!”

 

내가 걸음을 재촉하자 녀석은 이제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 걸었다. 얼마나 따라갔을까. 100여 미터는 족히 넘게 따라간 뒤에야 녀석은 걸음을 멈추었다. 뒤따르던 나도 덩달아 걸음을 멈췄다. 풀이 우거진 과수원 고랑이었는데, 할머니가 말한 외양간 바로 앞이었다. 순둥이가 바라보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놀랍게도 그곳에는 조막만한 아깽이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녀석들은 외양간 앞 배수구 구멍을 드나들며 숨바꼭질 장난을 치기도 하고, 고추밭 오이밭 고랑을 잰걸음으로 내달리기도 했다. 모두 다섯 마리였다. 순둥이는 바로 저 녀석들을 보여주려고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것이다. 녀석은 내게 “우리 아이들 밥 좀 주고 가세요!”라며 SOS를 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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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비상으로 가져온 샘플사료 봉지를 주머니에서 꺼내느라 바스락거리자 외양간 앞에서 제멋대로 놀던 아깽이들이 일제히 놀란 토끼눈을 하고 나를 쳐다보더니 혼비백산 배수구 속으로 숨어버렸다. 다행히 내 옆에는 순둥이가 있었으므로 녀석들은 얼마 가지 않아 배수구 밖으로 하나 둘 걸어 나왔다. 저 많은 녀석들 배불리 먹으려면 샘플사료 한 봉지로는 어림도 없었다. 나는 우선 허기나 면하라고 사료봉지를 뜯어 버려진 나무판 위에 부어놓고 서둘러 차로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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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차에 있는 사료를 비닐봉지 가득 담아 외양간으로 향했다. 이미 부어놓은 사료는 흔적도 없었고, 한 번 더 나는 그곳에 사료를 듬뿍 내려놓았다. 산중에는 이제 아깽이들이 둥그렇게 모여앉아 사료를 먹는 소리가 앙냥냥냥 냐옹냠냠 울려퍼졌고, 순둥이는 안심이 된 듯 느긋하게 그루밍을 했으며, 나는 눈으로 보고 귀로만 들어도 배가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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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2~3일에 한 번씩 나는 사료를 챙겨 순둥이네 은신처를 찾았다. 그런데 어느 날 외양간에 갔더니 아깽이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얼마 가지 않아 의문이 풀렸다. 전원할머니 댁을 방문했더니 뒤란에 떡하니 순둥이네 가족이 모여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글쎄 어젯밤 순둥이가 지 새끼들을 데려왔어. 아롱이 때문에 앞마당에는 못 가구, 저기 보일러 아래다 새끼들을 데려다 놨더라구.” 그렇게 순둥이는 다시 자기가 살던 할머니 댁으로 돌아온 것이다. 공교롭게도 녀석은 집중호우 예보가 있던 하루 전날 아이들을 이곳으로 피신시켜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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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예감이 좋지 않았던 순둥이는 새끼들의 안전과 생존을 위해 아롱이의 결사반대를 무릅쓰고 이곳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돌아온 산둥이와 새끼들을 위해 할머니는 살진 멸치도 한 그릇 내오고, 따로 불러서 백숙 국물도 먹였다. 혹시 비가 들이칠까 뒤란에는 순둥이 가족을 위해 비가림용 비닐막도 따로 설치했다. 다행이다. 순둥이가 다시 할머니와 함께 할 수 있어서. 더 이상 아깽이들이 굶을 일은 없으므로.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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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이용한(시인)

시인. 정처 없는 시간의 유목민. [안녕 고양이]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영화 [고양이 춤] 제작과 시나리오에도 참여했으며,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는 일본과 대만, 중국에서도 번역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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